우린 지금 권태기 1.

열리지 않는 문

by 집밖 백선생

5월부터 대면 강의로 전환된 후, 수요일과 토요일 이틀 강의가 잡힌 이번 학기 일정에 대한 첫 출장을 다녀오는 길은 벅찼다. 원래 차를 몰고 불쑥 떠나는 걸 좋아하는 나이긴 하다. 스트레스 해소의 수단이기도 한 것이 드라이브이다.

그러나 일로 장거리를 다녀오는 건 다르다. 일에 온통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탓에 전신과 전심이 긴장한다. 특히 토요일은 고속도로며, 일반 도로들이 꽉꽉 막혀 있다. 일이 주는 중압감과 주말의 꽉 막힌 서울-대전의 도로는 정말 나를 피곤케 했다.

원래부터 체력이 안 좋아 조금만 몸에 무리가 가거나 스트레스를 받아도 몸살감기를 앓는다. 주말 내내 토사 광란에 배탈을 동반한 몸살로 고생을 하다가 겨우겨우 정신을 차린다.

남편은 가사일이나 육아에 네 일 내 일 할 것 없이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이었다. 주일 내내 쓰레기통 같았던 싱크대며 주방이 깨끗이 정리돼 있고 애들도 아침에 잘 챙겨서 입혀서 학교에, 유치원에 보낸 것 같다. 그래 이런 점은 착하지 싶은 맘에 말을 건넨다.

강의를 한 학기나마 쉬고 싶다, 장거리 다녀오니 벌써 큰아이와의 공부부터 놓아버려서 아이 공부 루틴 챙기기를 먼저 포기하곤 한다. 내가 일을 하면서 겪는 체력적, 정신적 문제로 인해 제일 먼저 양보하는 게 애들이고 가정이라 이런 게 쌓이다 보니 큰애가 겪는 사춘기와 다른 아이들이 겪는 문제들이 악순환이 되는 것 같다고.

남편은 그러라고 한다. 난 이런 대답이 화가 난다. 어차피 내 경제 활동 중 상당 수입을 차지하는 강의료가 빠지는 틈을 어떻게 메꿀 것인지를 상의하고 싶은데 남편은 그건 자기 알 바가 아닌 것이다. 어차피 나는 일을 하든 안 하든 그 부분을 어떻게든 만들어낼 사람이라고 믿는 것이다.

목사라는 경제력을 강요할 수는 없는 직종을 가진 남편이라, 늘 경제적인 부분을 신경 쓰지 않도록 배려하는 게 내 임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뭐든 했던 것 같다. 강의료, 연구비를 모아 적으나마 펀드나 부동산도 조그맣게 사서 투자도 하여 작게든 돈을 불리면서. 아이들도 피아노, 태권도가 아니면 다 내 선에서 해결을 해도 지방에 있을 때는 영재교육원에 들어갈 정도의 수준은 될 정도였다.

다만 육체노동이 약하니 가사노동을 남편이 많이 했고, 집에서 힘쓸 일은 다 남편이 도맡아 했다. 아침에 잘 못 일어나는 내가 쉬도록 애들 등교, 등원 알아서 해줬고, 일 때문에 출장 갈 때도 신경 안 쓰이게 해 줬다.


그러나 가족이 나아갈 방향성, 꿈, 미래, 경제적 문제 등에 대한 계획이나 밑그림은 나 몰라라 한다. 내가 다 계획하고 실행하는 동안은 늘 모르는 척한다. 그러다가 결과가 좋으면 좋은 결과로 찬사 받는 것은 다 남편이다. 부부는 원팀이니 고생해서 남주는 것 아니지 하며 넘어갔지만, 매번 나만 동동거리고 남편은 나 몰라라 하는 동안 외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게 쌓이다 폭발한 것이 내 갱년기 선고를 받은 작년 어간이었다.

조기 폐경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폐경 시기라 보기엔 이른 나이이다. 보기엔 내 나이보다 훨씬 젊은 나이로들 보는 외모이지만, 내 몸 나이는 이미 70대라는 소견을 이미 서른 살 때 병원에서 받았다. 70대 노인 체력으로 애를 셋이나 낳아 키우며, 가장 역할을 했다. 가장 역할이란 경제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가족들이 기대어 꿈을 그리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버팀목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역할이다.

남편은 이런 면에서 빵점이었다. 결혼 직후 시댁에서 살면서 이건 안 되겠다, 이혼해야겠다는 생각을 4개월 만에 했던 건 남편은 원 가족에서 파파보이, 마마보이, 누나보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자기 생각이나 주관이라는 것이 도통 형성되지 않은 채로 가족의 생각을 수동적으로 실행하는 사람으로 그때까지 자라왔던 것이다. 뱃속에 이제 곧 생겨난 큰애를 품고 이 남자가 이 생명의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를 심각하게 고민했고, 아닐 거라는 결론에 이르자 난 이혼해달라고 했다.

어떻게든 지금껏 이혼 못하고 사는 동안, 이 사람은 지금은 여보보이로 사는 듯하다. 자신의 주관. 생각이라는 것을 도통 힘들어하는 사람. 어떤 주체의 리더로서 방향성을 갖고 미래를 설계하거나 결단력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 그래서 이 가정에서 내가 무너지면 난파선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은 버텼지만, 이게 어느 순간부터 안 된다. 나도 원래 독하거나 이를 악무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나도 집안에서 장녀이긴 해도 이토록 과중한 부담감을 짊어지고 살아온 사람은 아니다. 나름 곱게 컸다. 그런 내가 결혼 후 이토록 억척이가 된 것은 내게도 이런 운명을 통에 배울 게 있겠지 싶었으나...

사람이 뛰어넘지 못하는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일단 몸이 안 된다. 자꾸 이렇게 병이 나고 아픈데, 이 몸으로 어떻게든 내 주어진 루틴을 견뎌내고 견뎌내서 방전된 몸으로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아이들을 돌봐야 할 몸이 아이들과 함께 있는 곳에서는 늘 병자처럼 누워있으니 애들에게도 못할 짓이다. 요즘 하트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우울증에 걸린 엄마를 둔 유치원생 아들이 한 말,

"엄마는 아파. 그래서 나랑 못 놀아."

라는 그 대사가 현재의 내 아이들이 내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이렇게까지 지쳤을 때 한 번쯤은 나를 이끌어주면 안 되나?그래서 내가 지쳤으니 이제는 당신이 나를 이끌어달라고 말하는데, 이 남자의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화가 나서 성질을 부리면 도망 다니고, 좋게 이야기하면 잔다. 희망이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