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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밖 백선생 Jun 04. 2022

나는 갱년기 2.

옆구리 찔러 프러포즈 받기

   그날도 싸움의 시작은 뭔지 모른다. 내가 제일 못 견뎌하는  동영상이 우리 집 이쪽저쪽에서 찍힌다. 대화를 피해 이방 저 방 헤매다가 한쪽 귀퉁이에서 코를 고는 남편. 빚쟁이처럼 그런 남편을 쫓아다니면서 대화를 시도하다가 코 고는 꼬락서니에 폭발해 버린 나.

  이런 악순환의 굴레는 무조건 벗어나는 게 답이다, 이혼. 또 이혼 얘기가 나왔다. 당장 큰애 입시가 걸렸으니 빠르면 내년, 늦어도 내후년에는 정리하자고 했다. 이건 콜?

  언제 자기랑 상의했냐고 되물으며, 자기 때문에 불행하다면 어쩔 수 없단다. 꽤 구체적으로 말했다. 난 세 녀석 중 한 녀석도 못 줘. 남편 없인 살아도 애들 없인 못 살아. 친권이니 어쩌니 하며 지저분하게 굴 생각하지 마. 아무 말 없이 서재로 내려가는 뒷모습에 각서라도 쓰게 해야 하나 싶다가도. 하기야 요즘에 이혼할 때 서로 애 안 맞겠다고 싸운다던데 내가 나서서 다 데리고 간다니 한 편으론 속 시원하겠다...


  한 5분 시원했다가, '속 시원하겠다'는 말이 너무 아팠다. 이 말을 내 애들이 듣는다면 얼마나 비참할까... 서재로 쫓아내려 갔다. 남편이 멍~하니 의자를 젖힌 채로 기대 누웠다.

  "야!넌 애들 안 보고 살 수 있어?"

  내가 울먹이며 분노한다. 남편이 되묻는다.

  "당신이면 그렇게 살 수 있겠어?"

  한 숨 섞인 남편의 목소리.

  "그럼 왜 그러자고 했어? 애들 없이 어떻게 살려고?"

  "나 때문에 힘들다는데 어떻게 해, 그럼!"

  "그럼 너는!"

  함께 애를 셋이나 낳고 키우느라 각자 스케줄이 미어터지는데, 그러느라 서로에게 소홀했는데. 결국 애들 양육이라는 큰 과제를 나름대로 빡세게 하다 보니 서로서로는 어른이란 이유로 이해하겠지 하며  넘어가고 넘어갔던 틈이 바로 소통의 부재로 남겨져 지금의 불통을 만들어낸 것이리라.


  "우리 사귀자."

  "?"

   "라고 말해."

  남편이 못 알아듣는다.

  "나한테 대시하라고! 당신 연애할 때도 내가 먼저 고백했잖아. 결혼 프러포즈도 이리저리 눈치 보느라 진짜 후졌고. 나한테 대시해. 다시 사귀자고."

  "그래. 사귀자?!"

  "끝까지 날로 먹을라고 드네. 연애할 때 공부하는 가난한 수험생이라고 데이트 비용이니 이런 거 다 내가 댔는데 끝까지 이러기야? 적어도 빤짝빤짝한 건 들이대면서 사귀자고 해야지! 지난번 생일 선물도 그냥저냥 퉁쳤잖아!"

  대략 난감한 표정. 연애 2년, 결혼 14년 차 남자가 이 지경이라면 정말 못 알아듣는 건지, 못 알아듣는 척하는 건지! 남자가 정말 여자 사랑하면 이런저런 선물도 한다고 하던데 난 연애 때 받아본 선물이라곤...? 없다. 어차피 명품 같은 거 줘봤자 알아보지도 못할 나지만, 내게 그런 거 해다 바친 남자는 남편도 그전에 사귄 애인들도...? 없다. 데이트 비용도 내가 돈을 번다는 이유로 더 냈으면 냈다. 차도 내 차로 다녔다. 남편은 연애할 때도 노가다 담당이더니, 지금껏 그렇다. 그러고 보면 난 별로 인기 없는 여자였나 보다. 나를 갈망해서 어떻게든 내 맘에 들어보려는 남자는 없었다. 먼저 내게 대시했던 남자들은 적당히 사귀다가 잠수하거나 환승하곤 했다. 남편 이전에 결혼할 뻔한 남자가 딱 한 사람 있었는데 그 남자나 내 남편이나 공통점이 있다면 내가 먼저 고백했다는 점. 둘 다 경제적 능력이 없다는 점. 둘 다 말없이 내 얘기를 잘 들어주고 지지는 해주되, 결정적으로 문제해결력은 없다는 점. 즉 내가 남자 보는 눈이 정말 없다는 점.

  

  내가 그런 남자한테 끌리는 사람인 걸 철저히 자각한다. 사랑에 경제적인 것을 따지면 속물이라는 도덕적 알레르기가 강한 집안 배경과 주입식 교육도 그런 내 낮은 안목에 한몫을 하기도 했다. 내가 속물적인 사람 아닌 것을 그런 식으로 증명받고 싶었나 보다. 남자에게 경제적인 거 안 따지며 내 일만 가중시키는 쪽으로.

  역으로, 경제적 능력을 전담한다고 집에 와서 모셔줘야 하는 남편과 살 수 있었을까? 지금의 남편은 내가 정말 못하는 것을 다 해내잖아? 가사노동과 어린애들 육아. 내가 첫째애 교육에 집중할 수 있는 건 남편이 가사노동과 둘째 셋째 꼬맹이들을 전담해서 가능한 거잖아? 적으나마 따박따박 월급도 통째로 갖다 바치고. 만일 이혼해서 지금 남편의 월급, 가사노동, 꼬맹이 육아를 다 내가 한다면? 내겐 지금의 배가 되는 수입원이 있어야 하고 큰애 입시에도 신경을 덜 쓸 테고, 저 꼬맹이 둘째, 셋째도 내가 캐어해야 한다는 생각에 미치자.... 나를 사랑한다는 사람이 뭘 감수하고 곁에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내 눈은 자존심을 의심할 수 있을 정도로 낮은 것도 아니고, 자존감을 의심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것도 아닌. 딱 내게 적당하였던 것을 내 무의식이 알았던 것이다. 그래, 난 이런 사람 없이는 못 산다.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치르는 것이란, 일회성 명품보다 훨씬 품이 많이 들어가는 시간과 노동으로 일구는 일상이다.


  "반짝반짝하는 거! 얼마 전 선물 받은 기프트카드가 뚜레쥬르에서 쓸 수 있는 거잖아. 거기서 케이크에 촛불이라도 올려서 반짝반짝하라고! 그러면서 대시해야지, 끝까지 날로 먹으려고 들어! 내가 꼭 이렇게까지 콕 찍어서 절 받아야 돼?"

  그제야 뭔가 풀린 듯 슬며시 웃으며 대답한다.

  "어."

  "반짝반짝한 거 주면서 사귀자고 해야 1일이야. 1년 사귀어보고 계속 살지, 이혼할지 결정할 거야!"

  살짝 안심하는 표정.  아침에 7세, 8세 두 아이를 유치원과 학교에 데려다주고, 6시 25분 하원 차에서 내리는 애들을 맞으러 일하다가 뛰쳐나오는 남편은 결국 뚜레쥬르 케이크를 살 기회를 계속 놓치고 이 일이 있은지 벌써 사흘인데 여태껏 반짝반짝한 것은 집에 들여올 기색이 없다. 우리 동네 뚜레쥬르가 없다면서.

  그럼 그냥 동네 다른 빵집에 미리 전화 걸어 주문해놓고, 퇴근해 오면서 카드로 계산하고 오면 될 것을. 파리바게트는 오는 길목에 바로 보이는데 옆동네 뚜레쥬르까지 어느 틈에 가나를 머리 터지게 고민하는 남편. 그런 단순함에 뒤집혔던 내 눈이 이젠 분노로 이글거린다. 다~ 내가 이렇게 생겨먹어서 이리된 걸 어쩔까!

  우린 언제부터 1일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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