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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밖 백선생 Jun 07. 2022

나는 갱년기 3.

처방전: "소리반, 공기반"

  스물몇 살 어간에 잘못 걸려온 전화를 한 번 받았는데, 그쪽에서 내가 꼭 아나운서 같다며 수차례 전화통화를 한 적이 있다. 대구 남자였다. 한 번은 대구에 학회가 있어 갈 일이 있어 만난 적이 있었는데 실망하는 기색 역력했다. 그는 전화 목소리 상의 나에 대해 매우 성숙한 여성을 상상했던 듯하다. 아마 긴 머리에 풀메이크업을 하고 정장 원피스에 명품 핸드백을 든 여성.

  그때나 지금이나 일할 때 아니면 화장을 하지 않는다. 민낯에 키도 작고 깡마른 여자가 청바지에 점퍼를 입고, 책을 잔뜩 쑤셔 넣은 배낭을 메고 나타난 나는 그냥 공부하는 고등학생 같았을 것이다. 자신은 글래머러스한 여자를 좋아한다며 동대구역에서 만난 나를 대구에 있는 학회 장소까지 태워주고는 갔다. 태워다 주는 내내 뭔가 퉁퉁거리는 느낌? 그때만 해도 남녀 간의 썸에 대해 눈치가 없었다. 속으로 초면에 이런 무례는 뭔가 하며 불쾌했던 기억. 아직까지 동대구역은 내게 이미지가 좋지 않은 이유는 그때의 불쾌감이 함께 연동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쪽이야말로 외모로 뭐라 할 수는 없을 외모더만. 꼭 찌질이들이 자기 부족한 거 상대에게 채워오라고 하지. 내가 눈이 높다는 사람을 스스로 자격지심이 많은 사람으로 해석하는 근거가 이것이다. 내 못난 점을 상대가 채워오라는 뜻이다. 눈이 높다는 건 그만큼 상대가 채워야 할 게 많은 즉, 내게 채워지지 않은 요건이 많다는 것이다. 이게 스스로 자격지심이기 때문에 반드시 채워지길 바라는 것이고, 자신이 채울 능력이 없으니 배우자가 채워왔으면 하는 것이다.

  그 남자는 정말 외모나 목소리 모두 채워야 할 빈 공간이 현저해 보이긴 했다. 글래머러스한 여자를 좋아한다는 대구 남자는 내 목소리에 호감을 느껴서 사귀고 싶었으니 동대구역까지 마중을 나왔다가, 외모에 실망해서 그만둔 것 같다. 소싯쩍이나 지금이나 외모를 가꾸는 일은 귀찮기도 하고 시간도 없고 관심이 없다. 지나고 보면 한참 이쁠 시절에 이쁠 틈도 없이 뭐에 그리 매진했는지 싶다. 이젠 이쁘고 싶어도 이쁠 수가 없이 나이가 들어가는데 말이다.

   한 번 내가 제대로 꾸민 모습에 뜨악했던 적이 있었다. 결혼사진을 촬영할 때였다. 분장 아닌 분장을 하고 드레스를 입었는데 나도 내 모습에 깜짝 놀랐다. 안경으로 가린 얼굴이 훤하게 드러나서 고등학생 같았던 나는 없고, 동화책 속 공주님이 거울 속에 있었다. 다들 신부가 너무 이쁘다며 찬사 가득이다. 웨딩촬영 때는 신부가 주인공이니 입엣말인 줄은 알지만, 나도 내가 저렇게 이쁜 줄은 미처 몰랐다. 그제야 화장의 파워를 절감. 평소에 외모를 가꾸며 아름다워지는 자신의 모습이 평상시의 행복감 지수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하는지 느껴졌다.

  그래도 그런 절감은 그때뿐이다. 외모 꾸미기가 내 관심 영역으로 들어오기엔 내 일상이 너무 빡빡했다. 우리 집에 오는 사람들도 웨딩 사진을 보면 다들 저 여자 누구냐고, 사모님도 화장 좀 하고 꾸미고 다니시라고 한다. 확실히 사진 속 여자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 맞다. 내게 여성으로서 이쁠 시간이 없어서 내게 이쁠 틈도 주지 않은 사이에 그냥 폭싹 늙어버렸다. 이게 어느 순간부터인지 마구 억울했다.

  소싯적엔 노래를 정말 잘했다. 록, 발라드, 교회 성가에서는 소프라노까지의 발성을 다 소화해낼 정도로 난 목소리가 좋았다. 그러나 강사라는 직업으로 한 이십 년 살다 보니, 목을 혹사당하느라 점점 목소리의 톤이 낮아지고 거칠어졌다. 녹음한 내 목소리를 들으면 정말 깜짝 놀란다. 어쩌다 목이 저 지경이 됐는지!  이젠 외모나 목소리로 여성성을 되찾아 현재의 나를 위로하기는 글렀다.



  솔직히 아직까지도 외모 꾸미기는 귀찮다. 정확히 어떤 외모가 훌륭한 외모인지 잘 모르겠다. 이는 내가 갖고 있는 안면인식 장애 때문이다. 내 눈에는 다 똑같은 눈코입이 있는 사람들인데 눈이 0.1mm가 더 째지고 덜 째지고, 코가 0.1mm가 더 높고 낮고, 입술이 0.01mg이 더 도톰하고 덜 도톰한 걸 가지고 이쁘다 못 생겼다를 판단하는 게 어려웠다. 내가 이쁘니 잘생겼느니 하는 말은 그 사람의 외모가 정말 그렇다고 느껴서가 아니라 인삿치레이다. 즉 난 외모를 잘 다듬어서 이쁘게 보이는 데에는 관심도 에너지도 없다. 그런 곳에 에너지를 쏟는 것은 내겐 스트레스이다. 아무리 못 이쁜 채로 지나가는 시절이 억울해도 이는 내 천성이라 그냥 이리 살아야 한다.

  그러나 목소리의 여성성은 되찾고 싶다. 계속 언어로 사람들과 소통을 해야 한다. 당장 이 삼악기라는 문제의 핵심도 남편,  아들과의 소통 문제이다. 소통 문제로 덜컹거리는 것을 이번 기회에 바로 잡아야 한다. 내 갱년기가 몰고 온 상실감보다는 이 시기에 내 눈앞에 떡 하는 버티고 섰는 저 산 같은 문제들은 핵심이 불통이다. 내 불통의 요인인 언어적 요소를 더 늦기 전에 교정할 필요가 있다.



  급한 성격 때문에 말까지 빨라져서 무언가 정신없고 불안해 보이는 걸 해결하고 싶다. 김언니가 그랬다.

  "말들이 입에서 나갈 때 여유를 줘봐. 얘네들도 한마디 한마디 나갈 때마다 존중받고 싶을 텐데 쏟아내듯 단어들이 뒤에서 자꾸 떠밀려오느라 밀쳐지듯 툭하니 튀어나가면 얼마나 뻘쭘하겠니? 한 단어 한 단어 나오는 말들을 존중해줘 봐."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강의는 나의 말하는 모습을 냉정하게 모니터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했다. 말이 빠르다는 것, 말투의 문제가 무슨 말이지. 의식적으로라도 천천히 하면서 많이 교정이 되긴 했는데 여태껏 맘에 안 차는 건 목소리이다.

  이젠 원래 갖고 있던 높은 소프라노톤의 이쁜 목소리가 나오기엔 너무 낮고 굵어진 목소리이다. 말을 많이 하는 직업 즉 강사, 교사들이 갖는 특유의 크고 굵어지는 목소리. 그나마 음색 자체는 하이톤인 편이다. 내 남은 여성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외적 요인은 아직까지는 음색인 듯하다.

  이 음색을 소리로만 꽉 채우지 않고 공기가 돌아다닐 틈을 주면서 내 입에서 돌아다니는 단어들에게 숨 쉴 틈을 줘보기로 하는 게 어떨까. "소리반 공기반"이 되게끔. 그러려면 말을 천천히 하면서 내 생각과 마음에 여유를 줘야 한다. 이젠 일과 휴식할 시간을 정할 게 아니라, 그냥 일상의 사는 시간 자체를 천천히 여유 있게 가는 거다. 그 첫 번째가 내 매력 포인트였던 목소리를 다듬어 말을 천천히 하는 것.

  이런 "소리반 공기반" 전략은 내 말투  교정의 핵심이라 느낀다. 내 말들에게 바람을 쏘여주는 전략을 통한 말투 교정 솔루션은 사춘기 자녀와의 갈등 문제나 권태기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매우 효율적이다. 무엇보다 나에게 가장 좋다. 목소리에 여유를 주어 입으로 나오는 말투가 부드러워진다면 궁극적으로 내 피폐된 맘에 자정능력을 주어 맘이 치유됨과 아울러 몸도 치유될 것이다. 말은 곧 그 사람이니까. 내 갱년기로 온 일련의 몸맘 치유 처방전은 "소리반 공기반"으로 내 여성과 내 포지션을 회복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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