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록
[김태원(부활)] 한국 록의 여성적 우아미
[네버엔딩 스토리] 김태원/김태원/부활(2002)
90년대, 한참 밴드 음악을 사랑하던 우리 세대는 당대 기타리스트의 양대산맥이 부활의 김태원과 시나위의 신대철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난 주로 외국 기타리스트를 좋아하긴 했지만 이 둘의 연주는 정말 벅찬 감동이었다. 이 둘은 기타 연주도 잘했지만, 한편으로 뛰어난 작사 작곡가이기도 했다.
난 당시 하드록을 선호했던 터라 신대철 쪽이 성향에 맞긴 했다. 신대철의 곡은 마이너 코드를 주로 쓰는 비장미가 느껴지는 곡들이 많았다. 김종서가 리메이크한 <겨울비>나 박상민의 <멀어져 간 사람아>가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신대철 대표곡이 듯, 그의 곡은 남성적인 비감에 깊숙이 젖어들게 만든다. 나도 소싯적에는 이런 노래들을 많이 불러서 원래 타고난 고운 소녀 같은 목소리가 허스키하게 바뀐 후 이젠 그대로 멈춰있다. 중학교 합창부 시절 음악 선생님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이쁜 목소리를 잃게 만들기도 했던 주범이 사실 신대철 곡들에게 있었다는 사실. 뭐 서운 치는 않다. 소녀의 소리와 바꿀 정도로 록을 부르던 시절 충분히 행복했으니까. 짝사랑하던 왕자님을 위해 목소리를 바친 인어공주처럼.
반면 김태원은 남성적 장르라 여겨지던 록이라는 툴로 상당히 여성적인 곡들을 많이 작곡했다는 점에서 신대철과 대조적이다. 마이너 코드를 주로 쓰는 신대철과 달리 김태원은 메이저 코드를 많이 쓴다. 툭툭 내뱉는 듯한 신대철의 단순한 가사와는 달리 김태원은 매우 섬세하게 가사를 쓴다. 아마 이 <네버엔딩 스토리>가 김태원 곡의 이런 성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대철 곡들의 미학이 남성적인 비장미라면, 김태원의 그것은 여성적인 우아미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둘은 록이라는 장르를 한국 특유의 정서로 스며들게 한 공통점이 있다. 스미게 하고 저미게 하여 종일 뇌리에서 떠나지 않도록 하는 중독성이 아주 강하다.
손 닿을 수 없는 저기 어딘가에서 서로를 그리워한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지독하고 가혹하다. 그리워하면 언젠간 만나게 될 거라는 영화 같은 희망은 현실을 사는 사람에겐 극도의 공포스러운 고문이다.
현실에선 없는 바람이기에 영화 같은 일들이고, 이는 역설적으로, 그럴 일 없으니 정신 차리라는 현타를 체험케 한다. 그것도 이토록 아름다운 선율 안에서 황홀하게.
그러니 얼마나 잔인한가! 역으로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일은 죽을 때까지 일어나지 않을 즉 손 닿을 수 없는 곳에 살고 있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일은 여기서 멈추라는 메시지이다.
신대철이라면 비감에 젖은 마이너 코드의 나열 속에 "멈추고 돌아서게"라 쓸 말을 김태원은 그리워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멈추라는 건지 가라는 건지 무척이나 헷갈리는 그런 마음들을 죄다 아름다운 음표 속으로 구겨 넣는다. 그래서 시적이다.
둘 다 천재 음악 시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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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닿을 수 없는 저기 어딘가
오늘도 넌 숨 쉬고 있지만
너와 머물던 작은 의자 위엔
같은 모습의 바람이 지나네
너는 떠나며 마치 날 떠나가듯이
멀리 손을 흔들며
언젠간 추억에 남겨져 갈 거라고
그리워하면 언젠간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 가기를
힘겨워한 날에 너를 지킬 수 없었던
아름다운 시절 속에 머문 그대이기에
너는 떠나며 마치 날 떠나가듯이
멀리 손을 흔들며
언젠간 추억에 남겨져 갈 거라고
그리워하면 언젠간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 가기를
힘겨워한 날에 너를 지킬 수 없었던
아름다운 시절 속에 머문 그대여
그리워하면 언젠간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 가기를
힘겨워한 날에 너를 지킬 수 없었던
아름다운 시절 속에 머문 그대여
그리워하면 언젠간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 가기를
힘겨워한 날에 너를 지킬 수 없었던
아름다운 시절 속에 머문 그대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