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애절함
[김광석]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김광석] 남자의 애절함
내 또래의 남자들이 김광석을 참 좋아했던 것 같다. 노래를 잘 하기는 했지만 고인이 된 지 25년이 지난 지금에서는 창법이 올드하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명곡으로 들을 수 있는 이유는 아마 그 애절한 멜로디에 딱 녹아나는 가사 때문일 것이다.
김광석 노래는 남자들이 차마 말 못 하는 애절함을 잘 표현하는 듯하다. 우리 세대가 살짝 과도기이다 보니, 전통 사회에서 자라난 부모님과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시대적 변모의 급진성을 함께 겪었다.
사회에서 주는 문화적 충격은 우리에게 쇄신해야 할 것을 일깨우는데, 가정 내에서는 전통사회를 급속히 빠져나오기엔 가족 구성원과의 평화가 어그러질 수 있기 때문에 눈치를 봐야 했던 것이다. 따라서 집안과 집 밖에서 사뭇 다른 인격으로, 입장으로 처신을 했던 세대였던 것 같다.
우리 세대까지 남자들에게 주어진 전통적 굴레는 "사내다움"이었을 것이다. 이는 현재 우리 젊은이에게 주어지는 남자다움과는 비교가 된다. 자신의 성 정체성에 맞는 사회적 매너를 말하는 "여자다움"과 대등한 위치의 "남자다움"이라기보다는, 억지로 무언가를 떠맡거나 무언가를 해서는 안 되는 성역할의 굴레를 말한다.
초등학생밖에 안된 남자애한테 아직 있지도 않은 가상의 가정의 가장의 올가미를 주지 시키기도 하고, 부당함을 갖고 따지면 "쫀쫀하다"는 말로 몰아붙이기 일수였고, 우는 것은 매우 굴욕적인 것이고, 감정적이 돼서도 안되고, 감성이 예민해서도 안되고...
뭐 이런저런 굴레들이 우리 세대 여자들만큼 많았던 것 같다. 그중에서도 가장 썩어 들게 만드는 것이 바로 감정표현을 자제하도록 만드는 무언의 압력일 것이다. 억울하거나 속상한 거를 이야기하거나 따지면 바로 "사내자식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성적 정체성을 조롱당하기 마련이었다.
이렇게 표현 못한 많은 말들, 감정들 죄다 응어리져서 내면에 송골송골 맺혀있는 그 피울음 들을 죄다 끌어모은 것이 바로 김광석 노래의 가사들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김광석은 우리 세대 남자들의 사랑을 예나 지금이나 꾸준히 받는 것 같다.
올 가을, 유독 흐린 가을 하늘은.
사연이 많아 보이기도 하고, 보고 있으면 내 안에서도 뭐가 꾸물꾸물 올라오기도 하다. 때로는 우울할 때 하늘마저 울상을 짓고 있으니 더 눈물 나기도 하고. 그런 요즘의 하늘이 바로 김광석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와 같은 노래를 부른다.
김광석의 노래는 참으로 애절한데, 여성의 애절함과 많이 다르다. 여성의 애절함은 슬퍼 우는 친구 곁에 다가가서 꼭 끌어안아주며, 함께 울어주는 애절함이다. 그런데 김광석은 참고 있는 내면을 툭 건드려서 눈물 나게 만드는 애절함이다. 많이 속상해하는 친구가 곁에 있어 위로하고 싶을 때, 그 친구에게 어쨌냐 저쨌냐 하는 말없이, 눈에 들어오는 기타를 무심히 잡고 그저 자신의 이야기인 양 주저리주저리 노래한다. 그 노래를 곁에서 듣던 친구가 이 친구 지금 내 걱정하는구나 하는 친구의 맘이 느껴지면서 갑자가 훅 밀려오는 따뜻함이 온몸을 적시고 눈시울까지 뜨뜻하게 만드는데, 그 상황에서도 눈물은 보이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야 인마, 저리 가." 하면서 뒤돌아 눈물 훔치게 만드는 애절함.
김광석 노래를 들으면 남자들도 우리 여자들이랑 똑같이 상처 받고 아프고 외롭다는 걸 이해하게 된다. 그네들이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고 해서 아픔이 덜하거나 외롭지 않은 건 아니라는 것도.
유난히 흐린 올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김광석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를 듣다가, 나도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본다.
잊혀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픈 이 땅의 모든 이들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