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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밖 백선생 Nov 22. 2021

수다라는 질환의 바이러스는 외로움

[내 아내의 모든 것](2012)

감독: 민규동

출연: 임수정, 이선균, 류승룡


  간만에 배꼽을 잡으며 웃으며 본 영화. 그런데 내 몸은 웃는데 내 눈엔 눈물이 고였다. 처음엔 너무 웃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영화에 빠져들수록 그 눈물의 근원은 어딘가 저미도록 가슴 한 켠을 덥히는 따뜻함이었음을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

 연정인이라는 여자. 매사에 사람들과 시비 트길 좋아하고 사사건건 그냥 넘어가는 게 없다. 이런 아내가 창피한 두현은 이혼을 목적으로 이웃집 카사노바 장성기에게 자신의 아내를 꼬셔달라며 거래를 트는데...

  배역을 정말 잘 맡았다. 특히 카사노바 장성기. 낮은 저음의 목소리에 구레나룻, 살짝 통통한 마스크가 그 느끼한 카사노바를 능청스럽게 잘 흡수했던 것 같다. 이 인물이 등장 시마다 깔렸던 서부영화식 배경음악도. 장성기가 등장할 때마다 진심으로 느끼했지만 그 느끼함을 배경음이 더더욱 기름지게 만드니, 장성기 등장 시마다 빵 터져서 웃음 공작소가 따로 없었다.


  영화 속 정인과 두현은 기혼자들의 현실을 너무나 잘 까발려준 것 같다. 특히나 남편에게 시시콜콜한 것 죄다 미주알고주알 말하는 아내와 그게 귀찮은 남편으로 이루어진 부부들. 많은 부부들이 해당이 될 것이다. 영화에서는 정인의 병적인 수다 원인을 외로움으로 진단한다. 그 부분이 내 내면을 마구 흔들어놓았다. 맞다. 나도 외로워서 곁에 있는 사람에게 계속 지껄인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수다의 원인과 일맥상통한다. 나를 잘 아는 26년 지기 언니가 나를 보면 기본적인 정서가 외로움인 것 같다고. 그 말을 듣고 눈물이 줄줄 흘렀던 적이 있다. 아마 내 맘을 알아준 것에서 느껴지는 따뜻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늘 이 영화를 보면서도 딱 그 온도만큼의 뜨거운 눈물과 함께 따뜻함이 느껴졌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단 그걸 잘 삼키며 티 안 내는 사람들이 있고, 나처럼 못 견뎌서 말이나 글로 해소를 해야는 사람이 있고. 인터뷰 현장에 가면 이런 점이 뚜렷하게 들어온다. 우리 전공에서 이야기꾼이라 불리는 말쟁이들일수록 외로운 처지나 외로운 내면이 잘 관찰된다.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일수록 인터뷰에 호의적인 것도 아마 외로움과 상관이 있을 것이다. 말할 상대가 가족, 연인, 친구, 이웃 등 어떠한 형태로라도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외로움에 대한 처방은 말로 소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해서 결혼한다고 하지만 이건 매우 추상적인 것 같다. 가수 이효리의 말이 결혼을 왜 하는지에 대한 가장 명쾌한 답인 거 같다. 이효리는 그의 남편과 결혼한 이유가 "말하고 싶어서"라고 한다. 서로 말을 맘껏 하고 맘껏 들어주며 소통할 수 있는 관계가 될 때, 그 상대가 이성이라면 그 관계를 사랑으로 인지하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이 사랑이 별 거냐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는 적어도 나에게는 중요하다. 직업적으로 사람들의 말을 많이 들어야 하는 나는 인터뷰 현장만 다녀오면 정보의 입력과 출력 불균형으로 인해 내면의 에너지가 바닥이 나곤 한다. 그럴 때마다 가족을, 그중에서도 남편을 잡는다. 이 영화의 정인이처럼. 물론 인터뷰한 사람들의 프라이버시는 아무리 남편이라도 공유하지는 않는다. 단지 날씨가 어쨌다는 둥, 시간이 어찌어찌 꼬였다는 둥, 누구한테 펑크 맞았다는 둥, 어떤 운전자가 나한테 아줌마 소리를 했다는 둥... 생각해보니 영화 속 정인이 못지않게 남편 붙들고 하소연이다. 남편이 정말 피곤했겠다는 생각이 이 영화를 보고서야 든다. 나한테 다 맞춰줘야 집안이 편하다고 생각해서 그냥 허허 웃으며 넘어갔지만 이게 남편에겐 고문일 수도 있겠다 싶다. 그래서 요즘에 그리 자주 아픈가?


  설정이 다소 과격하긴 했다. 아내와 이혼하고 싶어서 아내와 바람이 나 달라고 카사노바를 고용하는 잡놈인 남편. 영화에서는 이혼하러 갔다가 용서한다는 결말이지만 나라면 아무리 사랑해도 절대 용서할 수 없을 듯하다. 어떤 경우라도 사랑하는 이의 진심을 이용하거나 그걸 갖고 장난치는 사람은 용서할 수 없다. 부부 아닌 부모 자식 간이라 해도 난 그것만큼은 용서가 안 된다. 처음엔 이 설정을 보는 게 정말 부담스러웠다. 영화를 보면서 특유의 익살이 어느 정도 무마되어 그냥 설정이라 생각하고 넘길 수는 있었다. 그러나 카사노바와 정인이 서로에 대한 맘이 진심인 걸 깨닫는 그 장면이 또 보기 힘들게 만들기도 했다. 그래도 설정이니까 하고 넘어가려는데... 성기가 불러주는 "매일 그대와"를 들으며 흐르는 정인의 눈물이 참 아팠다.

  매일 그대와... 수다로 세상을 씹어뭉개고, 주변 사람을 평판하는 일상이 견디기 어려운 남자, 여자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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