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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밖 백선생 Nov 13. 2021

이쁜 영화

[여중생A](2018) "슬프면 울어도 괜찮아-희나"

[여중생A](2018)

감독: 이경섭

출연: 김환희, 수호, 이종혁, 정다빈, 유재상


영화가 참 이쁘다.

난 이쁘다는 말은 일단 여자에게는 누구에게든 인사치레로 했던 표현으로 그닥 크게 의미를 두지 않은 채 살아왔다. 안면인식 장애가 살짝 있는 고로, 누구나 똑같이 눈코입 달려있는 얼굴에서 눈크기, 코높이, 입크기 몇미리 크고 작은 걸 갖고 더 이쁘니 못생겼니 하는 말자체가 우습기 짝이 없었다. 사람이면 누구나 귀하다는 베이스에 여자라면 이쁘다, 남자라면 잘생겼다라는 말 해주는 건, 그냥 큰 노력없이 그 사람 기분 좋게 만드는 립서비스 차원이었다.

그러나 작년 겨울 갱년기 진단을, 그것도 비교적 이른 나이에 받아버리면서, 그간 나를 특히 내 몸을 돌보지 않고 매진해왔던 지난 날이 허무해지기 시작했다. 조금만 노력하고 관리하면 이쁠 수 있는 꽃같은 시절을 너무 돌보지 않은 게 억울했다고 할까? 그래서 더 늙어 더 이상 아무리 노력해도 그 말을 들을 수 없기 전에 많이 듣고 싶은 말이 이쁘다는 말이 돼버렸다.

이쁘다는 말은 눈으로 훑기에 외모가 괜찮다는 의미 즉, 외모의 객관적인 미가 아니다. 어떤 특정한 측면이 내 마음 어딘가를 따스하게 만들거나 울림이 있게 만들어 그 대상이 특정한 의미로 와닿는 아름다움을 말한다. 그냥 웃음이 나오거나 아껴주고 싶거나 사랑스럽거나, 어떤 종류의 소중한 느낌이 드는 아름다움이 내가 말하는 이쁨이다.


그런 이쁨이 이 영화에 있었다. 여중생인 장미래의 처참한 현실인 즉, 아버지로부터의 학대, 학교에서의 집단 따돌림으로 인해 미래를 꿈꿀 수 없었던 미래. 유일한 탈출구가 소설쓰기와 원더링월드 게임이었다. 현실과 다른 세상 속에서만이 현실을 잊을 수 있었기에, 픽션은 미래의 생명을 지탱하는 버팀목이었다.

프리허그라는 간판을 들고 큰 인형탈과 옷을 입고 광장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허그하는 재희. 미래와 재희는 죽을 결심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죽기 전에 하고픈 버켓리스트를 만들어 함께 미션을 수행하는 그들의 모습이 꽤 귀엽고 정겨워 이뻤다. 미래가 접한 부당한 현실과 맞설 수 있게 용기를 주는 재희가 이뻤다. 재희가 죽으러 가려 할 때 재희의 옷자락을 살짝 잡은 재희의 손가락이 이뻤다. 재희가 알레스카로 떠날 때 마지막 인사를 한 후 떠나보내고, 드디어 친구가 없다는 상실감을 불현듯 자각함과 동시에 파르르 떨렸던 재희의 숨소리가 이뻤다.

마지막으로 재희의 마지막 편지, "슬프면 울어도 괜찮아-희나"라는 메시지에서 전해지는 재희의 마음이 이뻤다. 그 편지를 받아들고 자신의 진심을 토해내는 미래의 눈물이 이뻤다.


이 이쁨들이 주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진심이라는 점. 모두 상대를 귀히 여긴다는 점. 모두 상대를 소중히 여긴다는 점. 그래서 서로는 서로에게 특별한 의미라는 점.

이런 이쁨들을 남녀로 풀지 않고 "A와 여우"의 진한 우정으로 풀어갔다는 점이 특히 내 어딘가를 두드렸다. 현실과 동화적 환상을 적절히 매치하여 친구 관계의 의미와 사랑을 탁월하게 보여준 영화이다.

한동안 소중한 시간을 함께했던 친구들, 지금 곁에서 시간을 공유하는 친구들. 같은 하늘 아래 어딘가에서 내가 기억하는 이쁜 모습으로, 혹은 내 곁에서 내게 이쁜 모습으로 내게 행복을 주며 살아가는.

그게 바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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