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집밖 백선생 Nov 11. 2021

"You're My Best Friend!"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1990)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1990)

명작이라고 들어는 봤어도 직접 보는 건 31년이 흐른 지금.

31년 전에 봤더라면, 아니 21년 전에도, 11년 전에도.

난 이 감동을 지금처럼 느끼진 못했을 영화,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이 깐깐한 유대인 할머니 데이지를 유일하게 커버하는 흑인 호크와의 만남은 인종에 따른 계급 차별이 당연시되었던 당대의 상황에서  어찌 보면 참 짠한 뒤틀림이 예상되는 조합이었다.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 이러한 뒤틀림이 어떻게 제 자리를 찾아가는가를 지켜보는 묘미가 뛰어났던 작품이었다. 처음부터 주어졌던 시대적인 모순에서 오는 갈등 상황, 데이지의 모난 성격이 만들어내는 갈등 요소들을 풀어가는 화두를 감독은 "우정"으로 던진다.

 

  어찌 보면 너무나 뻔하고 식상했을지도 모를 이 "우정"이라는 열쇠는 적어도 이 영화의 갈등 상황에서는 가장 정확한 답이었다. 모건 프리먼과 제시카 텐디의 놀라운 연기력도 한몫을 했고, 영화 전반에서 느껴지는 절제된 연출과 과하지 않은 감정선들이 이 '우정'이라는 키포인트를 매우 잘 받쳐줬던 것 같다. 명작이다.

 

  사랑보다 진한 우정이란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건가 보다. 사실 우정도 사랑의 종류이다. 사랑이란 남녀가 지지고 볶고 하는 것만을 대표하는 고유명사인 것처럼 말들 하지만, 사실 사랑의 종류 중 가장 에너지가 크기 때문에 남녀의 사랑이 사랑의 대표 명사가 된 것일 뿐이지, 사랑은 정말 다양하다.

 

  이제 40의 중반을 달리는 지금에 와서야 우정의 깊이에 대한 사색에 깊이 빠져든다. 난 친구와 우정을 참 소중하게 생각했던 사람 중의 하나였다. 아직까지도 먹먹하게 내 어딘가에 남아있는  내 유년 시절부터 청소년기까지 이르렀던  10년간의 짝사랑도  사실은 우정 때문에 물러섰다. 어떤 사랑도 우정과 부대낄 경우, 난 사랑을 놓으면 놓았지 우정보다 사랑을 우선하진 않았다. 그래도 우정이란 게 억지로 당긴다고 내 곁에 머무는 것도 아니고,

밀어버린다고 해서 완전 내 인생의 밖으로 사라지진 않았던 것 같다. 이젠 우정에 억지를 부리진 말아야지 싶은. 자연스럽게 찾아오고 떠나가는 모든 관계들을 그저 물 흐르듯 수용하고 보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는 요즘. 딱 운명처럼 이 영화를 만났다.

 

  성별, 인종, 계급 등을 초월한 호크와 데이지의 우정이 중년의 내게 깊이 있게 와닿았던 것은. 내게도 이런 우정 하나쯤 간직하고 싶은 그런 열망이 강하게 있어서인지 모르겠다. 우리 둘 중 하나는 노년에 혼자 남겠지. 내가 먼저 남편을 떠날 가능성이 지금으로서는 많지만, 내가 떠난 자리를 대신할 그 어떤 누구도 없을 거라는 남편에게

호크와 데이지 같은 우정이 있었으면 싶은. 혹시 또 모를 변수에 의해 남편을 먼저 보낼 수도 있는 경우가 생긴다면, 내게도 호크와 데이지 같은 우정이 있었으면 하는. 사랑보다도 진한 우정.  그 어떤 색깔로도 덧칠할 수 없는 고귀한 우정.

 

"You're My Best Friend!"라 말하며 눈 감을 수 있는

베스트 프렌드의 주인공은 누가 될까? 그런 상념에 잠기게 했던 명작 중의 명작.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매거진의 이전글 연기의 신들린 리스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