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미녀 같은 영화
[클레어의 카메라](2016): 2019.7.17. 본인 인스타그램 게시
감독: 홍상수
출연: 이자벨 위페르, 김민희, 장미희, 장진영
1. 오래전 대전시청에서 시나리오 작법 강의를 들었을 때 강사였던 진헌수 작가는 그 무렵 같은 대학에 출강하기도 했고, 나중에 알고 보니 대학 선배이기도 하여 오며 가며 서로 낯이 익었기도 했던지라 한동안 알고 지냈다가 요즘엔 연락이 끊어졌다. 그 작가가 좋아한다던 홍상수 감독의 영화. 극찬을 했지만 당시에는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내가 당시에 영화를 맘 편히 볼 수 있는 처지가 아니어서였던 것이 가장 큰 이유라면 이유였던 듯.
2. 이 영화는... <밤에 해변에서 혼자>와 같이 김민희에게 쭉 빨려 들어가서 보다 보면 끝나던 영화. 진짜 명배우다. 감탄한다. 불륜과 부도덕으로 욕을 바가지로 먹으며 사회에서 매장당하다시피 하는 홍 감독과 김배우이지만, 난 이 둘의 조합으로 이뤄낸 작품들만큼은 정말 멋지다. 홍 감독은 의식의 흐름에 따라 자신의 예술촉이 이끄는 대로 즉흥적으로 촬영을 한다고 들었다. 영화 산업에 대해 난 잘 모르지만, 그런 제작 방식은 굳이 영화의 상업적 구조에 의지하지 않아도 될 만큼 홍 감독이 자본의 자립성이 있기 때문이라고도 하는 글을 본 적은 있다. 난 잘 모르는 분야라 뭐라고 보탤 말은 없으나 관객 입장에서는 상당히 매력적인 이단아 같은 느낌이 든다. 자유롭고 자연스럽다. 세련되게 다듬은 화면이나 음향 효과, 극적인 감정들이 충돌하는 어지러움 등. 이런 거 없이 심플하게. 한 듯 만 듯한 메이크업과 청바지에 흰색 면티만 걸친 모태미녀를 보는 듯한 기분이랄까? 홍상수 영화는 그런 느낌이다.
3. 그런데 그 모태미녀 같은 그의 영화를 전형적으로 표상하는 배우가 딱 김민희이다. 모델 출신이라 그런지 그녀는 참 선이 이쁘다. 여기서의 선이란 그의 외모만이 아니라, 그가 스크린에서 표현되는 동작의 선들을 말한다. 시선, 입모양과 입꼬리의 선, 얼굴 표정을 나타내는 근육들의 선, 팔의 선, 손끝선, 어깨에서 다리로 떨어지는 걸음걸이의 선 등. 이 선들이 화면을 묘하게 분할하며 일종의 균형을 잡아준다. 그리고 하염없이 빨려 들어가게 한다. 심지어는 그녀의 목소리도 어떤 선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그녀만의 묘한 매력이다. 그저 무심한 듯 속삭거리는 듯한, 다소 힘이 없는 듯한 목소리와 발음이 상당한 힘으로 관객을 휘어잡는다.
4. 안타까운 것은. 이 땅에서는 유부남과 젊은 여자의 불륜은 정서상으로 쉽게 용서되지 않는 부도덕이라 대한민국 모든 사람에게 공개된 그들의 부도덕으로 인해 좋은 작품들이 사장되는 듯한 아쉬움이 있다. 홍 감독의 부인의 심정도 이해하지만, 난 둘의 사랑도 나름 용감하다고 본다. 대부분 앞으로의 활동을 생각하여 거짓말하거나 비겁하게 다른 모사를 하기 마련인데. 연연하지 않고 솔직하게 시인하고 맞을 것 맞고 타격받을 것 받고 매장당하고 돌팔매질을 당하더라도 그냥 다 맞고 나아가는 것.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아무리 사랑해도 난 못 버티고 포기했을 것 같은데. 그들은 그렇게 손가락질받으며 누구 하나 내 편 없는 고독한 사랑을 감내하며 서로를 지키고 있으니. 난 그 질기고 아프며 고독한 사랑의 진정성에 어떤 고귀함을 느낀다. 또한 그들이 서로에 대한 사랑을 누리기 위해 다른 이를, 그것도 가장 가까운 이를 짓밟고 짓이겼던 가해의 잔인함은 그것대로 판단하고 있고. 난 둘 다의 입장을 충분히 공감하지만, 이 모순이 지속적으로 명작의 창작으로 이어지니. 나 역시 관객으로서 이기적으로 생각한다면 좋은 작품에 푹 젖다 나올 수 있음의 원동력이 되는 그들의 모순과 그 모순이 부여하는 치열한 싸움과 잔혹한 상처에 일종의 연민도 느껴짐이리라.
4. 도덕적인 배우도 있고 부도덕한 배우도 있다. 도덕적임과 부도덕적임이 다 배우로서 이유 있는 자질일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 이영화의 결말이 꼭 요즘의 나를 보는 듯하여. 울 뻔하였으나 홍 감독 영화 특유의 쿨한 분위기에 피식하며 너털웃음 지었던. 나만 이러는 거 아니라는 위로 아닌 위로받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