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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밖 백선생 Jan 05. 2022

겨울꽃의 붉은 맘

동백꽃은 이렇게 내일을 기다려요


오늘 오랜만에 날 보며 웃어준 그대, 고마워요.

우리 만난 작년 겨울은 그저 서툴렀어요.

나도 당신도 수줍은 듯 낯선 채로 그렇게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죠.


어색하고 삭막했던 겨울 하늘에 살포시 햇살이 담아지던 날

내 조상 누군가가 살다 왔을 어떤 호수에 피어오르던 아지랑이에 살랑이던 봄밤의 공기처럼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그대는 나를 바라봐줬죠.

나는 조금은 낯 간지럽게 조금은 뿌듯하게 그대를 힐끗거렸어요.


태양이 뜨겁게 타오르던 올여름

뜨거운 열기가 내 전신에 뿜어지던 그 시간들은 모두 당신을 향한 내 열정 덩어리였죠.

나는 따가운 햇살과도 같았던 당신의 사랑에 온 몸에 윤기가 흐르고 반질반질 생기를 얻어갔죠.

누군가의 뜨거운 사랑을 받는다는 그 매혹적인 감정을 온몸의 감각으로 느끼면서 그렇게 내 맘은 열렬히 당신을 향해 있었죠.


가을이 와도 지난여름은 좀처럼 물러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어요.

나 역시 여름과 같았던 당신의 열정을 계절에 빼앗기기 싫어 온 몸을 웅크리며 당신의 마음을 붙잡으려 했죠.

그러나 당신은 슬퍼 보였어요.

하늘을 보며 자주 울던 당신의 눈물을, 하늘은 자꾸자꾸 담아가더군요.

당신이 울면 하늘도 울고, 하늘이 울면 내가 애써 붙잡으려던 당신의 사랑의 열기가 조금씩 조금씩 공중으로 날아가버리곤 했어요.


그렇게 그렇게 식어가는 당신의 사랑도 다 느껴지더군요.

난 식어가다 못해 차갑게 얼어버린 당신의 마음을 흐리고 차가운 겨울의 하늘로 느끼며,

기울어진 태양 속에서 옅게 느껴지는 햇살의 온기를 가까스로 받으며 억지로 나를 지킬 수밖에 없었어요.


바라보았어요, 당신만을.

지켜보았어요, 당신만을.

당신의 식은 마음 차디찬 얼음장이 되어 하늘에서 눈으로 부서지던 날.

오열하는 내 눈물 가슴으로 삼키며,

당신만을 바라봤던 내 마음을 내려치고 당신만을 지켜봤던 내 가슴을 마구마구 할퀴어 피로 물든 내 내면은.


이렇게 겨울꽃으로 피었어요.

피울음이 얼어서 붉게 피어났어요.

이렇게 붉은 맘도 또한 당신을 향해 있는 나를

스스로 자책하기도 지쳤고, 미워할 힘도 이젠 없어요.

그래서 그냥 두기로 합니다.

이 피맺힌 겨울꽃이 뚝 떨어질 때까지만

그냥 이렇게 두기로 합니다.


오늘도 찬 바람은 시렸습니다.

들판에는 서리가 맺혀 희뿌연 했습니다.

당신을 멀리서 바라보는 내 붉은 맘,

아직도 당신을 향해 있는 시린 맘을 안고

오늘을 살았습니다.

내일을 버티고 또 내일을 버티다 보면

이 겨울꽃의 붉은 맘이 뚝 떨어져 나갈 그날이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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