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시작은 있다

사랑의 시작

by 라한

누구에게나 시작은 있다


정연은 사랑의 신이 보내온 것으로 보이는 인물정보들을 볼 때마다 한숨을 쉬었다. 왜 이렇게 많은가, 이런 사람들을 처음에는 한 명 두 명 찾아갔었지만 이제는 너무 많아서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창밖을 보며 한숨을 쉬는 정연이었다.


“사랑은 어렵구나”


붉은 액체가 담긴 잔을 천천히 돌리며, 들이키는 정연이었다. 정연의 눈가에 비친 광활한 도시는, 어둠이 내려 깔려 앉았지만 태양빛 하나에 묻혀 있던 지상의 별들이 어쩌면 낮의 시간보다 더 밝게 빛나며 자신을 뽐내고 있었다.


한 명 한 명 어떤 사연인지도 적혀 있지 않고 그저 이름 나이 사는 곳정도만 적혀 있었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어 보였다. 그래서 정연은 생각하고 생각해 결정했다. 그 사람들을 모아서 뭐 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극단도 최근 자신의 부상으로 인해 쉬고 있으니 이를 이용하자고 생각했다.


극단의 이름을 따서 ‘마음’서포터즈를 만들자고, 그 사람들에게 그 자리를 제안해서 일단 모아보자고, 만나야 뭐 라도 이뤄지지 않을까 생각하는 정연이었다. 자신과 그 첫눈에 반한 사랑이 반드시 만나야 하는 것처럼 말이었다.


정연은 곧장 생각을 실현하기 위해 빅과 매니저를 불러 의견을 나눴다. 빅은 정연이 하자는 의견에 의문도 달지 않고 그대로 하자고 하였다. 매니저는 지금 극단은? 이런 질문을 했지만 그 질문에는 정연 대신 빅이 대답했다.


정연은 곧이어 ‘서포터즈’ 공개 모집에 대한 건을 각종 뉴스와 인터넷 여기저기로 퍼트렸다. 지금껏 항상 열려 있었던 위대한 극장 ‘마음’이었지만, 이제는 그 마음을 위한 서포터즈를 모집한다는 소식은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말보다 더 빠르게 멀리 퍼졌다.


그중 정연은 사랑의 신이 보내온 명단을 직접 찾아가 서포터즈에 초대했다.


그렇게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이유에서일까, 많은 관심과 열정을 보내며 마음 극장에 발걸음 했다.


위대한 극장의 서포터즈 모임은 생각보다 많은 인기를 끌었다.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고 신청을 보내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떤 이유에서 이 서포터즈에 관심을 가지고 신청하게 되었을까, 사람들은 궁금했다. 정연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많이 신청할 줄 알았어?”


정연이 매니저를 보며 물었다. 당연한 거 아니냐, 너도 여기에 한 번 서고 싶어서 난리 치다가 빅에게 발탁된 거 아니냐 말하는 매니저였다. 거참 말을 곱게도 한다고 생각하는 정연이었다.


“그래도 너무 많은데”


그 많은 사람들 중에 그 사람이 있을까 생각했다. 확률은 지금으로선 반반이었다. 있거나 또는 없거나. 둘 중 하나였다.


“있을까?”

“뭐가? 누가?”


매니저가 정연이 또 혼이 나갔구나 하는 표정으로 정연을 보았다. 정연은 딱 매니저가 생각한 표정대로 중얼거렸다. 그 사람을 못 본지는 벌써 며칠이나 시간이 흘렀는데 그 느낌과 그 설렘은 그대로, 아니 더 커져 있는 상태였다.


심장이 있는 가슴을 자신의 손으로 붙잡는 정연이었다.

‘있다는 걸 알겠어서, 꼭 찾고 싶은데, 왜 없지”


매니저가 정연이 마신 게 물이 아니라 술인가 하여 자신이 직접 마셔보고는 맛만 좋은 고급 물인데 왜 이럴까 싶어서 나 몰래 마약이라도 하는 건가 싶어서 주변을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보다가 정연의 다리와 팔을 걷어 주사의 흔적을 찾아본다. 정연은 그런 매니저의 행동에 놀란다.


“뭐야 갑자기! 왜 이래?!”

“너, 나 몰래 뭐 하는 거 아니지?”


매니저의 질문에, 자신이 지금 짝사랑을 하고 있다는 걸 들킨 건가 싶어 식은땀이 나는 정연이었다.


“뭘, 뭘 해 내가”

“안 해?”

“뭘 하냐고 내가. 내가 뭘 하는데? 내가 뭘 하냐고”

“그걸 내가 알겠어? 니가 알지?”

“그렇지 내가 하는 거면 내가 알겠지! 근데 모르겠어 내가, 내가 뭘 하는지. 뭘 하는데”


매니저가 정연을 보았다. 동공이 커다래진 건 당황한 건지, 황당한 건지, 어찌되었든 둘 중 하나의 눈빛으로 정연을 보고 있었다. 정연도 그 눈빛을 보고 괜스레 뻘줌해졌다.


“됐어 나 잘래, 내일이지? 준비 잘해줘”

“야!! 야!! 내가 니 매니저지!!! 서포터즈 매니져냐고!”


분명히 안들을 수 없게 큰 매니저의 목소리였지만 정연은 듣지 못한 척 후다닥 방으로 들어가 미연의 방지를 위해 문도 잠그고 침대로 점프했다.


침대에 덩그러니 누워 내일 펼쳐질 일에 대해서 생각하려 했지만, 생각은 미래보다 과거에 더 머물렀다.


극단에 서기 전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에 대해서 떠올리는 정연이었다. 극장에서 그냥 구경만 하고 나와야지 하다가 그 웅장하고 위대한 모습에 이끌려 무대에 올랐다.


한번 오르니 뭔가 라도 하고 싶어서 외치다 싶이 했던 대사.

“사랑의 신이 죽었다. “


그리고 당시에는 짜증나 죽을 뻔했던 지금의 은인인 빅의 딴지. 그래서 말한 “사랑의 신을 죽였다” 라는 대사.


모두가 깊은 잠을 자고 있을 때였다. 아직 잠을 청하지 않고 내일 있을 일을 기대하고 있는 나주가 있었다. 나주는 우연히 발견한 ‘마음’서포터즈 모집 글에 지원했고, 합격통보를 받았다. 지금 자신의 처지로 이 일을 해도 될까 고민했지만 그래도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일들이었기에 신청하게 됐고. 결과는 합격이었다.


기대했다. 나주는 극장에서 일하는 게 꿈이었다.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그저 극장에서 일만 하면 됐다. 빗자루로 하루 종일 극장을 쓰는 일이래도 상관없었다.


가장 위대한 극장에서 일할 수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상관이 없었다. 처음으로 극장에 갔을 때였다. 누군가 극장 위에서 무대 위에서 사랑의 신 어쩌고 저쩌고를 말하고 있었다. 이 무슨 민폐인가! 생각했었다 나주였다. 그런데, 그때 자신의 생각을 마치 대신 옮겨 주기라도 하듯, 너 때문에 내가 죽겠다라고 말하는 아저씨가 있었다. 통쾌했다. 그러더니 상랑의 신을 죽여버렸다. 헐. 했다. 놀라웠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지 했다. 혹시 신이 노하여 분노하여 처벌이라도 내리면 어쩌지 생각했다. 신 무서운 줄 모르고 저딴 말을 내뱉을 수가 있을까 생각했다. 자신이었으면 절대로 하지 않을 그 위험천만하고 몰상식하고 품위 없고 위험한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날 극장안에 우연히 같이 있었던 십여명이 안되는 사람들이 모두 박수를 쳤다.


나주도 분위기에 휩쓸려 박수를 쳤다. 그 박수는 조만간 세상 사람 대부분이 치게 되었다. 왠지 모를 수치심에 자신의 자리를 빼앗긴 느낌이었다. 그때부터 이제는 두 번 다시 저 위대하지 않은 극장에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멍청한 극장에 발길을 돌리지 않아야지 마음먹었지만 그는 저녁 노을이 붉게 물들 시간이면 언제나 그 곳에서 서성거렸다. 자신이 정한 선을 딱 넘지 않고 주변만 어슬렁거렸다.


그러다 어느 날 주인공이 쓰러졌다는 소문을 듣게 되고 자신이 지금까지 연기한, 정연을 흉내 낸 연기를 대중 앞에서 선보일 수 있을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들리는 소식은 자신과 함께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 극단원들이 전원해고를 당한 소식이었다. 나주는 해고된 단원들을 찾아가 이 해고를 무효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극단원들을 설득해 극장 앞에서 시위를 열었다.

빼앗긴 극장을 돌려받아야 하니까, 빼앗긴 권리를 되찾아야 하니까. 빼앗긴 자리를 되찾아야 하니까!


그래도 결과가 바뀌는 건 없었다. 이젠 극 단원 해고가 아닌 극단을 아예 해체시켜버렸다. 단원들은 나주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너 때매 일을 다 망쳤어. 라고 나무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있을 때마다 나주는 이게 모두 정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꼭 복수해야지 생각했다.


어떻게 복수 해야지, 어떻게 복수하지 늘 고민했다. 정연이 쓰러진 그날 극장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궁금했던 나주는 극장의 시스템을 해킹하기 위해 배웠던 해커의 능력으로 극장 주변부터 극장 내부까지의 CCTV를 해킹했다.


모든 화면이 이상한 증세를 펼치고 있었지만 극장의 무대에서 정연의 뒷모습을 찍은 약 3초가량 되는 화면만 멀쩡했다. 그 앞에 유일하게 마치 빛이 나는 것 같은 여자와, 그녀를 바라보는 듯한 정연의 모습이 있었다. 나주는 다시 화면을 돌려보기 위해 뒤로 가기를 하는 순간, 화면은 다른 cctv 녹화 자료처럼 검은 화면만 나올 뿐이었다. 이게 무슨 증상이지 왜 또 이래! 생각하면서 이게 다 정연 때문이야!! 생각하는 나주였다.


그렇게 발을 동동 구르며 정연이 사라진 극장을 자신이 차지하기 위해 탐색을 한다는 명분으로 극장을 들락날락거리고 있을 때였다.


화면 속에 봤던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뭐지 싶어서 나주가 그녀를 쫓아갔는데 간발의 차이로 놓쳤다. 그녀를 택시로 태워 보내주고 있는 채원이 있었다.


그를 달려가 채원의 어깨를 잡았다. 채원이 깜짝 놀라 나주의 손목과 팔을 잡고 허리를 숙여 그대로 어깨 위로 힘을 줘 나주를 바닥으로 뒹굴게 했다. 나주의 상상속에서.


나주가 힘껏 뛰어와 채원의 주변에서 어물쩍 거리자 신경 쓰였는지 채원이 나주를 보았다.


채원이 나주를 보자, 나주가 채원을 보고 ‘안녕하세요.’ 말했다. 그러자 채원이 ‘네 안녕하세요’ 말했다.


“저, 혹시 아까 택시 타고 가던 사람 친구인가요?”

“그런데, 그걸 왜 물어보죠?”

“아, 그게 그게 사실은.”

“?”


채원은 입만 끔뻑끔뻑 되는 나주를 기다릴 수 없다는 듯 “저 바빠서 이만 실례할게요” 하고, 다음 택시를 타고 떠나버렸다.


나주는 잡으려고 팔을 뻗어 보지만, 아까 혼자 상상한 망상이 그 팔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하아,,”


채원을 놓친 나주에게는 마음 서포터즈를 모집한다는 전단지가 바람에 휘날려 나주의 얼굴을 찰싹, 하고 때렸다.


나주를 뒤로하고 택시에 올라탄 채원은 그 모습을 택시의 뒷유리로 돌아보다, 문자가 울려 보았다. 먼저 떠난 친구에게서였다.


나주는 그렇게 채원을 놓치고 집으로 돌아와 함께 가지고 온 마음 서포터즈를 매우 정성을 들여 지원했고 며칠 후 합격 연락을 받게 되었다.


이제야 진정으로 가장 위대한 극장의 진정한 주인이 강림할 때가 왔다. 라고 생각하는 나주였다.


나주는 너무 설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설레는 마음 때문에 끝냈어야 하는 일도 미루고 말았다. 일은 어차피 미뤄졌고 서포터즈 첫 모임에 빠질 수야 없었다. 나주는 헐레벌떡 뛰어 자신이 있어야하는 그곳으로 달려갔다. 이제는 놓칠 수 없으니까. 마음의 주인은 바로 자신이니까.


“안녕하세요. 제가 많이 늦었죠.”


수많은 사람들이 극장에 빼곡했다. 누가 봐도 자신이 능력이 있어서 선발됐다고 할 수 있다기 보다는 많은 인원을 뽑아서 얻어 걸린 것이란 걸 알 수 있었지만 나주는 자신이 특별히 선발됐다고 생각했다.


나주는 자신이 배정된 팀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얼마전에 마주쳤던 채원이 있었다. 그때는 잘 몰랐는데 다시 보니 선녀라는 말이 있는지 하늘에서 이제 막 내려온 선녀처럼 고와 보였다. 아름다웠다.


그 옆에 있는 그녀도 예뻤다. 주연이라는 이름이었다. 두 사람이 한 번에 나주의 마음에 들어왔다. 지금까지 가장 위대한 극장에 대해서만 가득 차 있던 나주의 마음은 어느새 두 사람이 몽땅 차지해버렸다.

내가 마음 서포터즈가 된 건 저 두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던 것이라 생각하게 된 나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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