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거짓말
사랑, 내게 하는 거짓말
따르릉, 벨소리가 울리지만 받지 않는다. 그 벨소리를 듣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한쪽에선 걸고 있는 지선이 있었고, 한쪽에선 받지 않고 있는 경윤이 있었다.
울리는 벨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는 경윤, 경윤의 주변으로 많은 사람들이 웃으며 마주 앉아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는 비어져 있는 술잔을 그냥 못 보고 지나가며 채워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 으뜸이 경윤이었다.
“야! 비었잖아!”
비어진 술잔은 그렇게 빠르게 눈치채고 채워주면서 비워진 마음은 모르는 걸까? 아니면 모른 척하는 걸까? 옆에 있던 동료 범영이 “어 자기야” 하고 바로 전화를 받자, ‘술 맛 떨어지게!’ 말하며 ‘누구는 여자친구 없는 줄 아나’ 라며 자신도 휴대전화를 꺼내 통화목록을 확인해보고, 부재중으로 걸린 전화 목록을 본다. 아침에 걸린 목록과 방금 전 걸려왔던 전화였다. 아, 아침에 못 받아서 잠깐 쉬는 시간에 하려고 했는데, 벌써 저녁이었다. 나중에 해야지. 지금 괜히 흐름 끊기는 싫으니까. 생각하는 경윤이었다.
술자리의 흐름은 중요하면서, 두 사람의 사랑의 흐름은 중요치 않았을까? 아니면, 이해해줄 거란 깊은 믿음이 있었던 걸까?
“안 받네.”
긴 발신 벨소리가 끝나고 녹음을 하겠냐고 물어보는 목소리에 아니요, 하고 끊는다. 회사가 끝나고 집까지 가면서 전화를 걸어볼까 생각해봤다. 그러다 도착할 때까지 하지 않았다. 도착하고 나서는 샤워를 끝내고 전화를 걸어볼까 생각했다. 그러다 샤워하는 도중에 오면 어떡하지 생각했다. 그래서 휴대전화를 가지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노래를 켜 놓았다. 예전에 친구들에게 샤워하면서 노래를 들어? 그럼 샤워에 집중이 안 되잖아? 했던 자신이 생각나 피식 웃는다. 그러다. 샤워가 끝나도 끝나지 않은 노래 소리에 한 동안 멍하니 듣는다. 그 사람이 좋아하던 노래였다. 경윤이 노래방에서 자주 불렀던 노래였다. 그 노래처럼,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던 경윤은 어느덧 변해가고 있었다.
바쁘겠지, 바빠서 그런 거겠지 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알람 소리 대신 들리던 휴대폰 소리였다. 자기 전 마지막으로 하루의 끝에서 들렸던 목소리였지만 어느 덧 그 목소리는 점차 멀어져 가고 있었다.
얼마나 멀어질까 지켜보는 건 아니었는데, 서로에게 익숙해져 가고 있으니까 그런 거겠지 싶었다. 그로 인해 밝아졌던 세상이 그로 인해 어두워지고 있었다. 알았지만 알지 않으려 했다.
그가 집에 와서 같이 마셨던 와인을 꺼내 잔에 따른다. 그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걸려온 부재중 전화가 이내 마음이 쓰였는지 담배를 피지도 않는데, 담배타임이라며 자리를 뜨는 친구들을 따라 나와 조금 멀어진 거리에서 부재중으로 찍혀 있는 지선의 전화번호 옆, 통화 버튼을 누른다.
갑자기 방안에서 울리는 수신음 소리에 온 신경이 집중 되서 급히 잔을 내려놓는다. 탁상 모서리부분에 잘못 착지 된 잔은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져 형태를 잃어버리고 그 일부의 조각이 지선에게 튀었다. 놀라 털어내다가, 소리가 끊기기 전에 방으로 가 전화를 받으려는 때 끊어진 수신음이었다.
“안 받네..? 바쁜가?”
즐거운 시간, 흐름을 깨지 않으려 하다가 그래도 생각이 나서 애써 시간을 내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는다. 못내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경윤이었다. 바쁜 가 보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지선이도 잠깐 시간내서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은 모양이겠지 생각이 들어 전화할 맘을 접고 들어가려는데, 그래도 한 번 더 해본다. 전화가 울린다. 지선이는 다시 전화를 하려고 하다가 울리는 전화에 바로 받았다.
“전화 했어?/전화 했어?”
누가 먼저였을까.
“어, 밥 먹었어?” “웅, 나 오늘”
짧게 자신의 과제를 끝내는 것처럼 전화를 건 경윤이었지만 지선이의 목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좋아지는 건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평소처럼 오래 통화를 하는 건 무리였다. 담배를 다 피워가는 무리가, 이 자식 또 시작이네? 하는 눈빛으로 눈치 껏 끊어라. 하는 제스쳐를 보내오고 있었다. 눈치가 보였다. 여자친구인 지선이보다, 함께 있는 친구들의 눈치가 지금은 경윤에게 더 컸다.
경윤의 전화를 받으려 기다렸다는 말은 안 했다. 경윤도 자신과 통화를 하려고 애써 노력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오늘, 참 힘들었는데, 자기 목소리 들으니까 다 풀리네”
“나도, 나도 그렇네”
나도 라는 짧은 말로 요약하지 말고, 자기보다 길게, 더 크게 풀어서 얘기해줬으면 하는 마음이었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보고싶다.”
“나도”
예전엔 보고싶다고 말하면, 집 앞이야. 말하던가, 갈게. 라고 말하던 경윤이었는데, 어느덧 나도라는 한마디로 퉁 치려는 경윤이 되어버렸다. 못내 서운하지만 그래도 내색할 수는 없겠지.
“그러면“ 하는데 “나 들어가봐야할 거 같아” 라고 말하는 경윤이었다. 지금 볼까, 말하려는데 막혀버렸다. 응, 그래. 말고 다른 대답을 하고 싶지만 그러면 이 갈라진 금이 어디까지 늘어날지 모르니, 우선은 참는다.
통화가 그렇게 급진하여 끝나고 끊어진 목소리 사이로, 서운한 마음이 보여지는 마음이라는 눈물로 흘러내린다. 눈물이 바닥으로 툭, 하고 이슬 떨어지듯 떨어지자, 미리 흘러내리고 있던 붉은 액체와 마주한다. 아픈 줄 몰랐는데 갑자기 쓰린다.
“아..”
유리 조각의 파편 공격이 이제야 후폭풍으로 쏟아진다. 만지려 다가 주저한다. 그러다 손까지 다칠 수가 있으니까, 아까 대충 쓸어내린다고 했는데, 대충해서 정말 대충 되었던 모양이었다.
뭐든 대충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지선이는 사랑만 대충하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사랑이 전부였으니까. 그랬는데.
그래서 놓치지 않으려 억지로 잡고 있다는 걸 외면하고 있다는 걸 지선이는 느끼기 시작했다.
사랑이라고 자신을 속이고, 거짓말을 계속하고 있다고.
거짓말은 하면 안된다고, 어릴 때 그렇게 교육받았는데 한 번 빠진 달콤한 늪은 스스로 빠져나오고 싶지 않았다. 그 결말은 이미 예상한 바와 같은데, 마치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것처럼. 이번에도 그러할 뿐이지만,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길게, 그 김이 삶보다 길어 이 생에 끝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지선이와 통화가 끝나고 먼저 들어가 버린 친구들을 따라 술집으로 들어가려는 경윤이었다.
들어가려는데 저 만치서 싸우고 있는 커플이 보였다. 지선이와 자기는 저렇게 세상 이목을 신경 쓰며 싸운 적이 없어서 한심하다는듯 불쌍하다는듯한 시선으로 쳐다보는 경윤이었다.
세상 눈치 보지 않고 사랑만 했으니까, 싸울 시간이 없었으니까. 그러다 문득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가 뮤트가 되어버린다. 지선이가 말했던 보고싶다 라는 말 한 마디가 울린다.
친구들이 뭐라 떠들며 손짓하는데,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바깥을 돌아본다. 지선이 한테 가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오늘 안가도, 알아주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선이니까. 그러니까. 오늘은,
아마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나가면, 지선이도 경윤이도 이 시간을 떠올릴 것이다.
마음을 결정한 날로, 유일하게 되돌릴 수 있었던 마지막 시간으로. 어쩌면 눈치채지 못하고 잊힐 시간일 수도 있겠지만, 간절해진다면, 그래서 지나치지 못하면 반드시 마주할 순간이었다.
사랑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혼자선 할 수 없다는 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