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이었다.

사랑의 처음

by 라한

첫사랑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극장은 매우 컸다. 건물의 극장으로 가는 길에는 수많은 통로를 지나야 했다. 걸음으로 무려 20분 정도는 걸어야 비로소 극장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걷지 않으면 도착할 수 없었다. 안으로 들어오기까지는 여자나 남자나 아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북쪽으로 남쪽으로 동쪽으로 서쪽으로 도착 했어도 결국 달팽이골의 길처럼 결국 하나의 통로로 들어와야 했다.


들어오는 길에는 수많은 전시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 전시품들 하나하나의 가치도 어마해서 가장 위대한 극장 ‘마음’의 위대함은 더 빛이 났다.


마음에선 모든 것이 가능했다. 지난 10년동안 공연이 열린 적이 없었을 때도 사람들이 발길을 찾았던 이유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유산이 마치 모두 이 곳에 있는 느낌이었기에, 공연이 열리지 않았어도 모두가 찾아왔다.


가장 위대한 극장에서는 마치 모두가 신기하게도 마음과 마주했다. 숨김없이, 그렇게 극장은 더욱 위대해져 갔다.


매우 이례적으로 수많은 서포터즈를 관중석에 두고 정연의 인사가 끝나고, 그가 새로운 인물을 소개했다.


“어서 오세요 백작가님”


정연의 소개를 받은 그는 모두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는 ‘사랑의 시간’의 연극의 극작을 맡은 인물이었다. 정연만큼이나 주목받았다.


“반갑습니다. 처음에 정연 배우님이 연극을 끝내고 서포터즈를 모집한다고 했을 때 짤리는 줄 알고 새 밥줄을 찾아야 했나 싶은데, 이렇게 여러분의 자문위원이 될 수 있어서 반갑습니다.”


백 작가의 인사는, 서포터즈에게 그리 반가운 시간은 아니었다. 그들의 목적은 전부 다르겠지만 대부분은 정연을 보기 위해서였기 때문이었다. 백자가가 들고 있는 마이크가 얼른 다시 정연의 손으로 가기를 바라는 사람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 바람을 읽은 백작가는 얼른 정연에게 마이크를 넘겨주었지만 짓궂은 정연은, 사실 관객들을 보며 그녀를 찾기에도 여력이 없는 정연은 바로 마이크를 백작가에게 돌려주었다. ‘어떤 자문을 주실 건가요?’ 라는 질문이었다.


마이크를 받은 백작가가 그래도 나름 진지하게 고민을 하더니 마이크를 툭, 툭. 한 번 치고는 말을 했다.


“마음대로 하세요. 이곳은 마음입니다. 속이지 마세요. 속일 수 없습니다. 다 티가 나요.”


사람들이 한순간 웅성 됐다. 무슨 뜻인지 해석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오늘을 후회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제도 후회하지 마세요. 내일도 마찬가지고요”


관객들을 한 번 훑어보듯 전체적으로 한 번 보다가 왼쪽 끝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걷다가 다시 무대 중앙에 서는 백작가다.


“뛰기 위해 태어난 심장을, 왜 뛰지 못하게 합니까”


정연이 관객석을 보다 백작가를 보았다.


“사랑의 신이 여러분에게 살아있습니다.”


왼손으로 마이크를 고쳐 잡고, 오른손 바닥으로 심장을 어루만지는 그였다.


“느끼세요. 삶의 많은 이유 중에, 유일하게 이유가 필요 없는, 진심입니다.”


관중, 아니 서포터즈 하나가 손을 벌떡 들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일어서서 고함일 지르듯 말을 했다. 그에게 마이크가 도착하자, 그제야 모두가 들을 수 있게 소리가 울렸다. 석찬이었다.


“뭘 느끼란 겁니까, 왜 느껴야하는겁니까!”

“왜 느끼냐고 질문하셨죠. 그럼 느끼지 않아도 됩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됩니다.”

“그럼 애초에 그런 말을 안 하면 되잖아요”


백작가가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제가 하고 싶은대로 한 겁니다. 이런 방향도 있으니 참고 하란거고요”

“책임 없는 행동이지 않나요?”


그 말을 듣고 잠시 고개를 끄덕이던 백작가가 무대 전체를 둘러보다가 다시 석찬을 보았다.


“잊혀지는 것이 두렵습니까?’ 저는 잊으려는 노력이 두렵습니다.”


석찬이 울컥하면서 울분을 토하듯 소리를 높였다.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잊은 게 아닙니다. 잃은 겁니다”


석찬의 울분이 더해진 소리를 듣고 백작가가, 정연이, 모두가 그를 보았다. 잠시간의 정적이 있은 후 다시 마이크의 울림이 극장 내 퍼졌다.


“안 잃었네요. 안 잊었네요.”


파도가 천천히 밀려왔는데, 어느새 잠겨버렸다. 애써 감춰두었던, 잃을까 바 숨겨두었던 마음의 열쇠가 오랜 금고를 부수고 뭉개 졌다.


너무나 사랑했던 옛사랑의 목소리가, 잘 지내냐고 인사를 건네 왔다. 니가 없어서 못 지낸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한 채 눈물을 글썽였다.


석찬의 그런 모습을 뒤로, 은재가 마이크를 잡았다.


“부서져버리면요? 이제 두 번 다시 볼 수 없으면요?”


백작가가 웃으며 말했다.


“보고싶어서 말하는데 볼 수 없을 까봐 고민이네요.”

“자기 일 아니라고, 쉽죠?”

“쉬운 사랑이 어딨겠습니까, 다 어렵죠. 사랑이 쉽다면, 그 시간이 소중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어렵고 소중하니까, 고생이고, 고생이지만, 낙이오는 거고 그런 거 아닐까요?”

“참 쉽게 말하시네요”

“무례가 됐다면 사과드립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왜 아는 척해요”

“왜 다 알면서 아무것도 안 하시죠?”

“…”


석찬에 이어, 은재가 울분을 토해내 듯 소리쳤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겁니다!”

“결국은 안 하는 겁니다. 그 사람과의 미래보다, 지금을 더 지키고 싶은 거 잖아요?”

“지금 그게 말이라고!” 하는데.

“문도 두드려야 열리고, 종도 쳐야 울립니다. 박수도 부딪쳐야 소리가 나고, 길도 걸어야 길입니다. 사랑도, 보여줘야, 사랑입니다. 혼자 사랑하는 거, 짝사랑이란 거창한 이명이 붙었지만, 그거 사랑 아닙니다. 사랑을 바라는 희망입니다.”

“내 사랑을 모르잖아!”


은재의 울분을 무시하는 백작가였다.


“희망하시는 게 좋다면 계속 희망하세요. 그것도 나쁜 선택은 아닙니다.”

“야! 니가 뭘 알아!”


다소 격분한 은재를 제지하려 경호원들이 움직이려 하자, 백작가가 정연을 보았고, 정연이 손을 들어 멈추라는 제스쳐를 보냈다.


“희망은 사랑의 조각입니다. 그게 사랑이라고 말하는 분도 있겠지만 적어도 제겐 아닙니다. 왜 냐구요? 사랑은 혼자 하는 게 아닙니다. 서로가 감싸주고, 함께 하는 게 사랑이거든요.”

“야이 개(#$%$#$)”


격분한 은재의 모습에 백작가가 무대에서 한걸음 내려온다.


“스스로가 틀렸다는 걸 인정해야, 고쳐서 라도 정답에 갈 수 있지 않을까요? 가만히 있으면 옵니까? 왜 옵니까? 가만히 있는데. 가만히 있으면서 아프다고 하지 마세요. 그런 겁쟁이는 사랑할 자격이 없습니다.”


은재가 달려가다 넘어지듯 엎드린다. 무릎이 꿇린 채로, 빛나고 있는 무대에서 내려오고 있는 백작가를 보았다. 눈물이 이미 흐르고 있었다. 마음이 새어 나와서 아팠다.


“좋아하는데, 좋아하면 안되니까요.”


백작가가 은재에게 다다랐다. 무대 쪽에 선 후광이 그를 비추고 있어, 은재에겐 마치 사랑의 신이 그 앞에 다가온 모양이었다. 검은 그림자로 모든 게 가려져 크게 빛나는 후광만 보일 뿐이었다.


“사랑엔 자격이 없습니다.”


백작가의 구두 앞, 눈물 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선택과 책임, 그 정도가 있다고 할 순 있어도, 서포터즈님”


은재의 이름을 확인하고, ‘은재씨’가 부르는 백작가였다.


“왜 아픈지는 몰라요. 왜 슬픈지도 모르고, 그런데 사랑이니까, 지레 짐작은 해봅니다. 은재씨가 틀린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사랑이 그런 거예요.”


정연도 은근슬쩍 백작가에게 주목된 시선을 틈타 무대에서 내려와 걸으며, 그녀를 찾아다닌다.


나주가 옆에 앉은 채원과 주연을 조금씩 몰래 쳐다본다. 보기만 해도 예쁘다. 설렌다. 좋다. 지금 무대에서 펼쳐지고 있는 그런 일들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저 자신의 눈에 채원과 주연을, 마음에 새긴 두 사람을 바라보는 이 순간이 마냥 행복할 뿐이다.


“사람들이 흔히 착각하는 게 하나 있는데, 사랑이 더 큰 범위입니다. 행복보다. 더. 사랑 안에 행복이 있습니다.”


재성이 마이크를 붙잡고 백작가에게 걸어오면서 얘기했다.


“너무 다 아는 듯이 얘기를 하시네요…”

“몰라요. 모르지만, 다 모르진 않아요.”


백작가가 자신에게 걸어오고 있는 재성에게 애기를 했다. 지금은 왠지 경호가 필요할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참고 얘기를 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얼마나 아픈 건지, 얼마나 미치는 건지. 모르잖아요.”

“애기입니까? 울면 다 받아주는 부모라도 기다립니까? 그건 사랑이 아니라 관심이죠”

“이별 해 봤어? 두 번은 없는, 이제는 절대 볼 수 없는 그런 이별, 해봤냐고!!”

“여기 이별을 겪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그거 조금 미리 겪었다고, 신이라도 됐냥, 제단하지 마십쇼”


백작가의 예감이 옳았다. 이번에는 경호가 필요했다. 그런 직감을 경호원들도 받았고, 무대에서 사라진 정연의 제지도 없어서 빠르게 달려나가 백작가의 바로 코앞에서 겨우, 재성을 제지할 수 있었다.


야수처럼 끓어오르는 분노를 보이는 재성을 바로 눈 앞에 둔 백작가는, 두 눈에 담긴 슬픔과, 뜨거운 눈물을 마주했다. 재성의 이름표를 한 번 보고는.


“제가 재성씨의 사랑을 잘 모르죠. 그래서 제 생각을 말씀드린 건데, 저는 재성씨의 생각을 바꿀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니 제 생각도 바꿀 생각하지 마세요. 토론은 받아들이겠지만 일방적인 명령조면 조금 아니 매우 많이 곤란합니다. 그건 폭력이거든요. 사랑엔 당연히, 그리고 일상에도 폭력은 안 돼죠. 존중이 가능할 때, 자유로울 때 비로소 사랑이 가능하거든요.”


재성이 백작가의 코라도 깨물려고 씹어 보려 했지만 간발의 차이로 실패했다.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네. 그래도 괜찮습니다.(머쩍게 웃으며) 여긴 마음이니까요. 사랑의 신도 죽는 곳인데, 뭘 못하겠나요”


재성의 어깨에 손을 올려 토닥거리다, 무대 쪽으로 다시 걸어가는 백작가였다.


“세 분이 사랑에 대한 의견을 주셨네요. 저랑은 좀 다르지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희 네 사람의 의견은 서로의 답이죠.”


무대에 다시 올라선 백자가는 온갖 조명 세례를 받았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무대에 홀로 서 있는 그는 정연을 찾다가 이내 포기한 모양세였다.


“이 무대의 주인공은…”


주변을 둘러봐도 없는 정연, 그를 찾던 백자가의 눈에는, 처음보는 정연의 모습이 두 눈에 담긴다. 귀신이라도 본듯 손을 뻗으며 천천히 다가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여러분입니다”


하고 끝내는 백작가였다. 인사를 하고 무대에서 내려가고 있었다. 누군가 백작가에게 질문했다. 누군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럼 백작가님은 사랑을 하세요?”

“하죠.”

“왜요? 어떻게요?”

“절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거든요. 그래서 사랑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먼저 다가가셨나요?”

“제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그랬죠”


“혼자서 못해요 사랑은.

“두려우시죠? 혼자일 까봐? 그것도 사랑입니다.”

“아깐 아니다면서요?”

“아니라는 게 아니라, 식사는 밥을 먹는 거지 배부른 게 아니잖아요? 근데 왜 배부름을 생각하냐는 거죠. 사랑도 같다는 거죠. 결말도 안 났는데 어떻게 알아요. 그 과정 또한 사랑인데, 혼자서 애 태우는 게 사랑보단 희망이다. 뭐 그런 거였죠.”


자신에게 질문을 한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목소리가 난 쪽으로 쳐다보았지만 아무도 없는, 이미 밖을 향해 가고 있는 사람들의 뒷모습만 보인다. 잠시 둘러보다 가는 백작가였다. 빈 무대, 사람들 웅성거리다가, 끝난 건가 하다가 이제는 나가고 있는 모습이다. 사람들이 한 번에 몰려 나간다.


제대로 본 건 처음이고. 마침내 발견한 사람인데.

분명한 것은.


사랑이었다.

처음이었다.


처음이

사랑이


만나


‘첫사랑이었다’



이전 06화사랑, 내게 하는 거짓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