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이야기는 잘만들어진 꾸며진 이야기가 아니라 스스로 겹치고 쌓여 굳건해진 이야기가 아닐까한다. 무엇으로도 부술 수 없는 무적과 같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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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런 생각을 했다. 거대한 적에 맞서는 어떤 영웅이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심어주기 위해 앞으로 나서서 하는 대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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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은 기적을 낳을 것이고, 기적은 전설이 되어 역사로 남겨져 신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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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 그런 말들이 영웅의 자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만들어진 대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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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득 지나쳐버린 영웅들의 일화를 보면 놓치고 있는 것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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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올리는 사진은 네이버 웹툰, 열렙전사의 한 장면이다. 다크라는 캐릭터가 자신에게 온 선물. 왕의 행운(오래되었기에 정확하지 않음)을 받자마자 삶의 터전을 잃은 작중 엔피시들인 호호이안들에게 고민없이 선물하는 장면이다. 영웅의 선택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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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이란 위기에서 기회를 만들어내는 존재이기에 값진 역할이라 할 수 있지만 그 보다 중요한 건 그 기회를 함께 가고자 할 때, 나누려 할 때. 무언가 혼자 잘나서 보이는 일기당천의 우월한 모습이 아닌 함께 헤쳐가고자, 연대하는 모습에서 나타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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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유,관,장과 조조군 여섯 장수를 혼자 상대한 여포를 영웅이라 부르지 않지만 백만의 군대를 뚫고 아두 유선을 구한 조운을 영웅이라 칭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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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에 안정을 도모해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했지만 여백사를 죽이며 '내가 천하를 버릴 수 있지만 천하가 나를 버리게 할 수 없다'고 말하며 서주 대학살을 버린 간옹 조조가 아닌 자신의 위기 상황에서도 10만 신야의 백성을 버리지 못하고 멸망한 한나라의 대의를 위해 촉한의 황제가 된 유비를 영웅이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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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힘에 취해, 중국 역사상 최고의 절대강자로 군림하여 그 기운으로 산을 옮긴다던 천하기개세 항우도 끝말에 이르러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내어놓는 모습에 결국 영웅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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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역사를 포함해 동아시아 역사를 통틀어도 최고의 무력이라 할 수 있는 척준경도 대의를 위했을지 몰라도 함께하려해서 지키고자 한 동료가 없었기에 영웅이란 표현에 한발치 모자랐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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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이란 말을 가장 잘 살린 영화 트롤로지.
배트맨 비긴즈 -다크나이트 - 다크나이트 라이즈도 이런 맥락과 아주 잘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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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비긴즈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잃은 브루스 웨인에게 겉옷을 덮어주며 괜찮다고 말하는 고든 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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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크나이트에서 자신의 아이에게 투페이스의 앞에서 괜찮다고 말한다. 그때 투페이스는 안괜찮은 상황에서 괜찮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허망함을 너도 느껴봐야한다며 분노를 표출하려고 할 때, 고든을 통해 따스함과 희망을 보았던 다크나이트는 둘을 위기에서 구한다. 그런 후 바로 경찰에게 쫓기며 자리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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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다크나이트를 보며 아이는 말했다. "왜 도망치는 거죠? 잘못한 게 없잖아요.(우리를 구해준 영웅이잖아요)" 그러자 고든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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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필요한 영웅이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며, 언젠가 우리가 알아차릴 때까지, 우릴 묵묵히 지켜주는 어둠의 기사란다' 그러면서 죽은 하비덴트에게 그는 우리에게 필요한 영웅이었습니다. 라고 말하는 기자회견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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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나이트는 혼자선(진실만으로) 세상을 바꾸지 못해 도망다닌다는 말을 하고 떠난다. 진정한 영웅을 기다려온 세상을 실망시켜서는 안된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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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3부,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배트맨은 무너지고, 악의 축이 범람한다. 그때 배트맨은 다시 나타나고, 희망을 본 고담시 영웅들이 일어난다. 그리하여 함께 악을 몰아내는데, 마지막, 폭탄을 가지고 떠나는 배트맨에게 고담의 시민들이 생명을 빚진 영웅의 이름정도는 알아야지 않겠냐는 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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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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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은 누구나 될 수 있어, 어린 남자 아이의 어깨에 코트를 얹혀 주면서 세상이 끝나지 않았다고 안심시켜주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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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수십년전 기억을 떠올리는 고든의 모습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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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나도, 어제, 아니 오늘, 그리고 지금, 영웅을 지나쳤을지도, 만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일은 누군가의 영웅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같이 가려는 마음을 멈추지만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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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쳐 지나칠려는 시간을 붙잡아, 우리가 되는 순간, 우리는 모두 영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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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