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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한 Jul 02. 2024

조국 대표를 떠올리며 상상하여 만들어 보는 캐릭터

캐릭터 - 203


조국 대표를 상상하여 떠올리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조국 대표를 상상하여 떠올리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이름: 내나라

제목: 어떤 나라


“과거의 말이 지금의 나를 옥죌 수가 있지”


나라의 방에는 나체를 입고 대학을 등교하고 있는 두 명의 학생이 보이는 엽서가 있었다. 이 엽서를 보고 나라의 취향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 엽서는 나라가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를 다니기 전에 일어난 일을 기념하기 위해서 대학에서 발행한 기념엽서였다. 


버클리에서 나체로 다니던 두 명의 학생들에게 교수가 민망해 하며 “옷 입고 다녀라”라고 했는데, 학생들이 “우리 학교 교칙에 학생은 반드시 옷을 입고 수업에 참여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으니, 나체로 수업을 들을 수 있다”라고 주장했던 것이었다. 그러자 학교에서는 교칙을 수정해 ‘학생은 반드시 옷을 입고 수업에 들어와야 한다’라는 부분을 추가하여 적시했다고 한다. 그때를 기념해 발행된 엽서였다. 


나라가 생각한 규칙에 대한 정의가 바로 이런 엽서와 같은 것이었다. 법의 존재의 이유였다. 예절이나 예의, 전통이란 이름으로 지켜져 오는 것들은 실제로 명시된 규정이 아니지만, 법은 어떠한 경우를 확실하게 정의한 경우에 대한 안내, 즉 지도로 여겼다. 


나라는 법을 공부한 인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라에게 배우기를 청했는데, 정작 나라는 자신을 위해 법을 사용한다는 ‘법꾸라지’라는 별명을 얻었다. 


“법꾸라지 라는 별명 부끄럽지 않냐?”

“내가 쓴 논문만 몇 개인 줄 알아?”


나라의 말에 한 때 같은 대학에서 논문을 썼던 친구, 노영이 손가락을 펼치며 세어 보았다. 


“내가 아는 것만 스무 개..?”

“약 150개 정도다”

“많이도 썼네, 박사들은 여기저기 불려간다고 1년에 2개 써도 잘했다고 하던데, 너는 어떻게 그렇게 많이 썼냐, 많은 박사들이 검증은 또 잘 해줬나 보네”

“내 논문이 재밌다잖아.”

“재밌지, 어디서 나오는 고상한 자들만 읽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세 살짜리도 쉽게 잘 썼잖아”

“세 살은 심했고, 열 살도 좀 그렇지? 스무 살 정도면 쉽게 읽히게 노력했지. 어려운 논문 쉽게 읽는 법이라던지, 논문번역기 그런 거나 해볼까 해”

“이제 와서? 그러기엔 너무 많이 오지 않았냐”


나라는 며칠 전까지 이 나라의 법에 관련된 인물 중 가장 높은 인물인 사법부에서 헌법재판소장은 아니었지만, 행정부에서 대통령 다음으로 법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법무부 장관이었다. 


그가 내건 것은 법으로 세상을 통치하는 일 중, 가장 강력한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검찰과 법원에 대한 조정 조치였다. 그리고 그가 박수갈채를 받은 이유 중의 하나가 제갈공명이 유선의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읽는 바람에 제대로 된 기록이 남겨져 있지 않다는 출사표처럼, 다음 제7공화국에 대한 헌법개정문을 제출하면서 법무부장관의 임기를 마쳤다. 


그와 동시에 나라에게 반기를 든, 검찰총장 시열이 바로 나라의 주변을 털고 있었다. 나라의 입장에서는 가장 큰 빚을 지고 있었던 노영에게 찾아와 자신 때문에 괜히 고생하는 걸 미안하다는 말 대신에 술을 따르고 있는 것이었다. 처음 나라가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된다는 소문이 돌자마자 새벽에 대통령을 찾아 ‘나라’는 절대로 안 된다고 주장했던 게 바로 시열이었다. 


“이만큼 왔으니까 된 거지. 더 이상 가면 그게 민폐야. 내가 할 일은 끝났다.”

“평생 법을 공부하던 놈이, 새로운 세상을 여는 문을 열고 은퇴하는 것도 대단하다, 아니 근데 너 은퇴할 수 있겠냐? 나 뿐만 아니라 니가 아는 이름 석자, 두자, 니네 집 강아지를 아는 사람들도 다 털고 있던데”

“세상이 바뀌면서 없는 죄는 만들지 않잖아? 그걸 믿어야지, 그렇게 법을 만들었으니까. 법치국가니까. 그렇게 흘러갈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살면서 느낀 건, 아무리 좋은 제도가 있어도 그걸 악용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좋은 법이 아니더라”


친구 노영의 말 대로였다. 나라의 예상치보다 더 많이 노골적으로 나라의 주변을 못살게 구는 시열이었다. 한번은 나라가 직접 시열에게 연락을 할까 고민하다가 수화기를 들었다. 


그가 민정수석 시절에 검찰총장으로 추천한 인물이 바로 시열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라는 12명의 민정수석 중, 가장 문제없는 인사를 선별한 인물 순위 10위에 올랐던 민정수석이기도 했다. 그런 결과가 시열이기도 했다. 


“권시열입니다”

“내나라입니다”

“아, 장관님 오랜만입니다. 왜 갑자기 통화를 주셨습니까?”

“만납시다. 만나서 얘기하면 좋겠습니다.”

“제가 지금 장관님을 만나는 것은 무리인 것 같습니다. 지금 수사중이시지 않습니까? 또 외압으로 비쳐질 수 있고 안 만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제가 상관도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해명하겠습니다. 직접 해명을 할 테니까”

“조만간 공소장이 갈 겁니다. 그때 봅시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전화가 끊겨 뚝. 뚝 소리가 들린다. 나라는 크게 한 숨을 쉬었다. 주변 친구들이 모두 나라의 멘탈을 칭찬하고 있었다. 자신도 멘탈이 강한 축에 속하는데 나라의 멘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렇게 나라는 살아있으면서 당할 수 있는 최고의 수모를 당하고 있는 중이었다. 오죽하면 나라에게 “놈들이 노리는 건 공소권 없음이라는 걸 잊지 마라’ 라는 말까지 전했다. 


나라가 법꾸라지로 불리는 여러가지 이유 중에는 아버지에게 상속받은 6원이 있었다. 그는 50억이 넘는 빚을 유산으로 물려준 아버지에게 상속한정승인을 통해 22원 중 6원만을 상속받아 변제했고 나머지 50억은 갚지 않았다. 많은 빚쟁이들이 찾아와 나라를 욕되게 했으나 나라는 자신이 배운 법으로 그들의 공격을 막았다. 


그렇게 법의 구멍을 아는 나라는 직접 그 구멍을 이용하면서도 막으려고 애쓴 인물이었다. 그렇게 사회의 암(어둠)을 직접 경험함으로 이를 비추려 하는 게 나라였는데, 과거 그가 민정수석으로 일 할 때 같이 일했던 경찰 총경이 사회적으로 큰 문란을 일으킨 ‘버닝썬게이트’와 연관이 있었기에 이 역시 많은 사람들이 비판하기 일쑤였다. 


여러 부분에서 논란을 낳는 게 나라였는데, 그가 법무부장관으로 재임한 시절 시열의 중심으로 나라를 조사할 때, 나라는 당시 자신의 집에 압수수색을 하러 오는 담당검사에게 장관이라는 사실을 밝힌 후 빠르게 압수수색을 해달라고 했는데, 이는 나라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집에 있을 때 압수수색에 대한 참여권자가 압수와 수색의 상황을 지켜볼 필요로 인해 한 말이었다고 했으나 그가 검찰의 인사권자인 법무부 장관이어서 수사 외압이었다는 논란이 있었다. 나라가 직접 형사 소송법 123조를 인용한 기자회견을 하며 ‘일반인’이었다면 가장이 그 현장에 있어야 하며, 그저 공교롭게 장관이 가장이었기에 오해의 소지가 있었고 아쉽게 생각한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 부분도 ‘법’으로 한정하여 놓은 일들에 대해서는 나라는 거침이 없었다. 나라는 지난 전통이나 예절보다는 ‘법’에 초점을 맞추어 살아가는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라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렇기에 나라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조금 더 많았는데, 그렇게 많은 지지 속에서 나라는 현재의 헌법보다, 보다 법치가 강화된 ‘제7공화국’으로의 개헌 선봉장으로 선 것이었다. 


무작정 잘못돼서도 아니고, 무조건 옳은 것도 아닌 자신 스스로가 법의 포위망을 잘 활용하고 또 법꾸라지는 별명처럼 미꾸라지와 같이 빠져나가는 듯한 모습도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시열도 결국에는 나라가 법을 직접 어긴 것은 찾지 못했다. 오죽하면 수많은 논문을 직접 쓴 것으로 유명한 나라의 논문이 표절이다라고 공격까지 했지만 이 역시 의심은 되나 의도적으로 표절한 것이 아니고 인용과정 중의 실수로 판단이 되어 무죄로 밝혀졌다. 그래서 시열은 나라의 가족이나 주변의 지인들을 수사하여 구속할 수밖에 없었다. 정작 나라를 잡지 못하고 가족을 노렸다. 그렇게 가족들이 집이 아닌 구치소에 드나들며 끝내 투옥됐을 때 나라가 느꼈을 좌절감은 감히 함부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때의 나라는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처음으로 후회를 했다. 돌아보니까 자신의 길 중에 과연 정답이 있었을 까 싶었다. 그때 연대의 참여라고 법에 관련된 자문활동을 했던 곳에서 청년들을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자신이 민정 수석이 되기 약 1년 정도 전의 일이었다. 한 청년이 나라에게 질문을 했다. 


“이 어려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질문, 나라는 그동안 자신의 행동과, 자신의 말과, 자신의 글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나라가 학교에 다닐 때는 잘 생긴 것으로 유명해서 나라가 거의 실질적으로 고정석으로 앉는 자리에는 꽃이나 음료와 같은 선물들이 한웅 큼 쌓여 있었는데, 나라는 그래서 더욱 더 그 자리에 앉기가 민망했다. 그 때를 같이 떠올리는 친구는 “나라는 도서관 보다 시위 현장에서 더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시위 현장에 여자 학우들이 많았다.”라고 인터뷰를 할 정도였다. 


그때 다른 사람처럼 꽃과 음료와 함께 편지를 전해온 다 거나 하는 게 아니라, 바로 “오늘 시간 되면 차를 한잔하자. 밥이면 더 좋고”라고 말을 하던 마음이를 만났다. 다른 사람처럼 우물쭈물 하거나 그런 게 아니라 직접 말을 건내 온 게 나라에게는 매우 매력적으로 느껴진 마음의 행동이었다. 


당시 대학 재학시절 원경이라는 퀸카가 있었는데 사람들은 내심 퀸카인 원경과 킹카인 나라가 사귀기를 바랐다는 썰도 있다고 했지만, 나라의 연인은 그때부터 쭉 마음이었다. 언제나 고속질주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마음이었다.


그런 마음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는 나라였다. 자신 때문에 온 가족이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으니까. 나라가 미래의 나라를 생각하는 우국충정이 이런 소란을 일으킬 것은 사실 조금은 예상한 봐 였지만, 이렇게 무거운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나라는 그 청년에게 해주었던 대답이 떠올랐다. 


“사랑을 하십시오, 사랑을 하면, 뜨거워집니다. 뜨거워지면 살고 싶어 지고, 살고 싶어 지면 열심히 하게 됩니다. 열심히 하게 되면 잘 살게 될 겁니다. 열심히 잘 하는 사람들이 살기 좋은 세상이 올 겁니다.”


자신의 대답 중에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세상이 되었다. 열심히 한다고 잘 사는 세상은 아니다. 나름 그런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은 했는데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그래서 나라가 담은 제7공화국은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적어도 부족하게 살지는 않게, 가난이 가난을 대물림 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방향을 제시했다. 


그러나 기득권의 사람들은 자신의 수확물을 나누는 걸 원하지 않았고, 제7공화국을 옹호하지 않고 무용지물로 만들고 싶어했다. 


그리고 그 작전은 먹혀 들어 나라의 가족은 나라를 뺀 모두가 투옥을 하게 되었다. 나라는 분노에 찰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라의 차례였다. 나라가 고위공직자 시절에 이제는 투옥된 아들이 군대를 사면받는데 힘을 썼다는 이유(혐의)로 1심에서 나라에게 유죄를 내렸기 때문이었다. 이어받은 장학금도 같이 논란이 되었다. 


사람들은 나라에게 두 가지 시선을 보냈다. ‘나라가 그럴 리가 없어’와는 반응이었다. 나라가 법을 이용하기는 하지만 직접 법을 어긴 적은 없다는 시선이 섞여 있었다. 또 하나는 역시 그렇지, 깨끗한 놈이 없다니까 하는 시선이었다.


나라가 유죄가 되면서 나라가 낸 제7공화국에 대한 선언문도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차 흐려져 갔다. 아무래도 법을 어겨 집행 판정을 받은 인물이 낸 개헌에 대한 내용은 상당히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여기서 이제 그만 놓아야 하는데, 나라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자신에게 묻던 청년에게 ‘포기하지마’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이 순간을 이겨내기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실 기자회견을 나가기 전까지 어떤 말을 해야할 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청년이 기자가 되었는지 기자회견장에 와 있었다. 사실 그 청년인지 몰랐는데, 질문을 듣고 그 청년인 줄 알게 되었다. 


“제가 오래전에 장관님을 뵙고 질문을 드린 적 있는데,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때는 이렇게 험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물었는데, 지금, 지옥같은 삶을 살고 계신 것으로 추측되는 장관님은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 그때 저한텐 사랑을 하라고 했는데, 아직도 사랑을 하고 계십니까?”


청년의 질문을 들은 나라는 잠시 바닥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마이크를 잡는데, 마이크가 위잉 울리는 소리가 기자회견장을 가득 채웠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제게 물었습니다. 저는 굳이 말로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이제부터는 행동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보여주겠습니다. 저 내나라는, 다음 대선에 출마하겠습니다. 제 7공화국을 이 손으로 직접 열도록 하겠습니다”


연이어 플래시가 터졌다. 청년과 나라 사이에, 아니 두 사람이 있는 공간에 엄청난 환호와 탄식이 동시에 새어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는 발언이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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