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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한 Jul 21. 2021

반성 없는 하루

해야 할 일은 많지만 하고 싶은 건 없었다. 

주식은 고공 상승, 비트코인도 100000%의 수익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최선을 다했던 모든 일이 허무했다. 

돈을 벌려고 산 건 아니었는데 돈이 벌리니 뭔가 허무했다. 

1%의 수익만 해도 엄청난건데, 10%도 100%도 아니다. 

그렇다고 1000%도 아닌 100000% 수익이었다. 

1원만 넣어도 10만원이 되는데 내가 넣은 돈은 거의 전 재산에 가까운 1천만원이었다. 

순식간에 1조 원을 벌었다. 

바로 5000억 원은 현금으로 만들었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통장엔 3000억이 들어왔다. 

그사이에 가격이 내려간 것이었다. 

나머지라도 얼른 다 팔아야지 하는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이게 말이 되는 건가? 말이 되고 있었다.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내 수중에는 3000 원의 돈이 들어왔다. 

이걸로 나는 평생 놀고먹고 살 수 있었다. 

기다렸던 삶을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이게 꿈인가 싶어서 볼을 꼬집어 본다. 아프다. 

굉장히 아프다. 이건 꿈이 아니었다. 

가장 꿈 같은 순간에 이건 꿈이 아니라는 확인이 이처럼 설레고 가슴 뛰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행복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내가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일이었다. 

행복이 느껴졌다. 나는 무엇이든 가능해졌다. 

그런데, 막상 하고싶은 게 없었다. 이게 어제 벌어졌다면 조금은 달라진 얘기였겠지? 돈이 필요하다며 절친한 친구의 연락. 내 수중에 있는 마이너스 통장의 천만원. 현금은 0원. 이걸 줘야하나 고민하다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꽤 길게 고민하고나서 전화를 걸었는데, 친구는 받지 않았다. 

아홉시 뉴스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부모님도 없이 자란 나를 돌봐주었던 친구네 가족들. 아버지가 빚에 휘둘리다 자살하신지 5년인가 됐나. 어머니가 아프셨다고 했다. 내겐 어머니 같은 분이지만 나도 살기 어려워 처음에 몇걸음을 다녀왔지만 이후에는 갈때마다 빈손으로 갈 수 없었던 게 부담이 돼서 결국 발걸음을 끊었다.

맨손으로 가도 될텐데, 마음이라도 전하고 오면 될텐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러다 친구가 전화가 왔다. 자기가 지금 대리운전을 나왔는데, 일이 꼬여서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그러면서 나는 지갑도 없는데 어떻게? 하면서 천만원을 넣은 코인 통장을 깨야하나. 당장 팔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결국 타이밍을 놓쳤다. 

다른 사람들을 기쁜 일로 좋은 일로 운명을 마주 치는데 내가 마주한 건 오로지 악몽과 같은 시련밖에 없었다. 

이 돈으로 할 수 있는 게 참 많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건 없었다.

나는 돈이 많다. 그러나 행복하지 않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 

살 수 있는 건 행복으로 가기 위한 길이었다.

그런데 그 길은 이제는 내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현금 3천억을 인출하겠다고 하니까 모든 사람들이 달려와 말린다. 

그래도 인출을 한다. 

가방이 하나둘여러 개, 난 단 하나만 들고 나머지는 가까운 재단이든, 어디든 기부하기로 한다. 내가 짊어진 가방에만 200억이 들었다. 

나는 200억 현찰을 들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돌아다니는 골목으로 간다. 

그곳에서 내가 돈 뭉텡이를 꺼낸다. 나를 무시하던 사람들이 나를 동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지금은 겨울이 아니라 눈이 내리지도 않는다.

여름도 오지 않았기에 소나가기 내리지도 않는다.

돈꽃, 돈으로 된 소나기와 같은. 

지기도 전에 낙엽이 된 푸른 잎새를 하늘위로 던져 올렸다.

사람들이 뭐야 뭐야 하면서 웃는다.

이렇게 돈을 뿌려도 주워가면 불법이란 걸 아는 똑똑한 사람들이었다.

내가 이 돈 주워도 된다고 말하기 전까지 가져가면 안돼지. 그게 법이니까.

그런데 나는 그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길거리에 돈을 뿌렸다.

사람들은 돈을 주을까 말까 고민한다. 혹시라도 범죄에 관련된 돈이면 어쩌지?

가끔 미치광이들이 돈을 주워서 더 뿌리라고 하지만 나는 그럼 한 묶음을 들고 한 대 맞으면 이 만큼 줄게 하고 연신 두들겨 팬다. 죽여버릴 정도로 팬다. 다시는 사람 구실 못할 정도로 패버린다. 

그렇게 때려도 사람은 또 쉽게 안죽는 다는 걸 죽기 직전에 알았다. 

나는 이돈으로 할 수 있는 게 하고싶었다. 

친구가 보고싶다.

나는 돈 가방을 던져 올라 도로에 뿌린다. 

"주은 자가 임자다!“

나를 따라다니던 사람들이 원하는 말을 해준다. 

사람들이 우르르 나를 스쳐간다.

그들은 애초에 나를 따라온 게 아니라 돈을 따라온거다. 

미련도 후회도 없다. 

반성은 더더욱 없다.

나는 이로소 자유로워졌으니까.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채로. 

아주 오래부터 나의 벗이었던 친구를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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