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신

"사랑의 신이 죽었다."

by 라한

“사랑의 신이 죽었다”


십여 년 동안 한 번도 공연이 열린 적이 없었던 이곳은 지상 최대의 규모였다. 또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극장이었다. 역대 최고의 부호 ‘올머니빅’이 극장의 주인이었다. 그는 어떤 극단도, 예술가도 극장에서 공식으로 공연을 허락한 적 없었다. 지금 극장 무대 위에서 ‘사랑의 신이 죽었다’라고 말하고 있는 저 청년도 그저 혼자 허락없이 무대에 올라 개인극을 하였을 뿐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올머니빅이 그의 연습을 관람하게 된 것뿐이었다.


극장에서 무대는 올리지 않았지만 올머니빅은 극장을 개방하였다. 지상에서 가장 크고 가장 화려한 극장을 보기 위해 세계의 사람들의 발길은 끊김이 없었다. 다만 무대만이 끊겨 있을 뿐이었다.


가끔 도전정신이 뛰어난 사람들이 무대에 올랐으나 특별히 제재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 모습을 보고 고작 그런 모습을 보이려고 가장 위대한 무대에 올랐느냐! 라는 핀잔은 주어졌다. 그 핀잔을 견디지 못한 세계최고의 연극배우 ‘올라 딘’이 자살한 이후부터 극장에 대한 소문은 더욱 크게 널리 퍼졌다. 이 무대는 축복이자 저주의 무대라는 역설적 표현이었다.


최고의 무대에 오른 최고의 배우가 자살했다. 그 자체만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는 진실이든 거짓이든 중요치 않고 자신만의 생각을 집어 놓고 퍼트리기를 좋아했다. 자신의 이야기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는 것을 즐겼다. 그저 이야기의 주인공인 딘은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 필요한 인형에 불과했다. 그가 겪었을 고통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사랑의 신이 죽었다. 심장이 아팠다. 아니, 가슴이 아팠다. 그것도 아니, 마음이 사라졌다. 이건 모두 사랑의 신이 죽었기 때문이었다.”


사랑이 죽은 것이었을까, 신이 죽은 것이었을까? 무대 위의 청년이 혼자서 조명도 없이 계속 대사를 읊었다. 빅이 고개를 저으며 “너 때문에 내가 죽겠다” 했다. 청년이 그를 보았다. 무대의 관객처럼 보였다. 관객이 ‘이게 아니야’ 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럼 자신은 이게 맞다며 무대를 계속 이어가야할까 죄송하다며 사과해야할까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청년이 그를 쳐다보며 다시 대사를 읊었다.


“사랑의 신이 죽었다. 심장이 아프다 못해 사라졌다. 이건 다 사랑의 신이 죽었기 때문이다.”


아까보다 대사를 조금 더 함축적으로 말했다. 자신의 대사가 너무 길어 재미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저렇게 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빅이 픽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애기를 보듯 귀엽다는 표정으로 청년을 보았다. 청년은 딘을 떠올렸다. 딘이 저 자식 때문에 이 위대한 극장을 그저 관광지로 만든 저 놈 때문에 자신이 동경했던 그가 이 세상을 떠났던 거구나 생각했지만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 무대인 만큼 그 감정을 감추려 애썼다. 분노라는 감정을 연기로 바꾸려고 애썼다.


“사랑의 신을.”


청년과 빅의 눈이 마주쳤다.


“죽였다.”


빅의 눈이 흔들렸다. 청년이 분노가 담긴 목소리로 지금까지 와는 다른 목소리의 톤으로 대사를 말했다. 빅의 눈이 그의 입술과, 손짓과, 몸짓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기 시작했다.


“심장도, 가슴도, 마음도, 사랑에 필요한 모든 것의 쓸모가 사라졌다. 사랑이란 게 필요가 없어졌다. 내가 사랑한 그녀를 죽인, 그래서 나는 사랑의 신을 죽였다.”


빅이 마시던 음료를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그것을 신호로 극장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10년만에 무대가 열린 극장에는 인산인해로 사람으로 가득 찼다. 청년이 읊조린 말 한마디는 연극의 가장 하이라이트 대사가 되었고 아이와 노인과 여자와 남자를 가리지 않고 외치는 유행어가 되었다.


지상 최대의 극장에서 열린 무대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매일같이 극장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청년은 무대에 오르고 내릴 때 마다 생각했다. 갑자기 찾아온 행운은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으니 겸손하고 조심스럽게 그래도 늘 최선을 다하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처럼 최선을 다해 공연을 마쳤다. 그의 생각처럼 갑자기 찾아온 행운이 갑자기 사라지는 거였을까, 어느 낯설지만 낯설지 않았다. 처음 보았지만 여태까지 기다렸던 것 같은 무대 위의 자신보다 더 밝고 빛나는 존재를 만났다


하늘부터 땅끝까지 라는 표현도 모자랐다. 우주를 준다고 해도 부족했다. 신이 있다면 빌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였을 때였다.


“나를 죽여 놓고, 나에게 빌겠다고?”


귓속을 맴도는 말이었을까, 들렸지만 듣지 않은 소리였다. 목소리라고 하기에는 울림에 가까웠다. 그녀에게 멈춰진 심장이 마치 세상으로 퍼진 것 마냥 모든 사람들의 숨과 행동이 멈추었다. 오직 단 하나 보이나 볼 수 없는 그림자 같으나 빛의 존재만이 자신에게 천천히 또각또각, 발소리를 내며 걸어왔다.


“세상 무엇으로도 죽일 수 없는 게 사랑이지”


숨결이 불어왔다. 흐느끼며 무너지는 청년이었다. 깊은 물속에 빠진 것처럼 숨이 꽉 막히며 흐느적거리며 발버둥쳤다. 모두가 멈춰 있었다. 그래서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약해빠진 아무것도 아닌 모습을 그녀는 볼 수 없으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죽을 꺼야. 네가 나를 죽인 죄로, 나는 그녀를 죽일 거야.”


청년의 동공이 분노로 가득 찬 채 볼 수 없는 존재를 보았다. 분노였다. 온 힘을 짜내 사랑의 신을 죽이려 달려들었다. 강력한 중력을 발휘하는 물속에 갇힌 청년이었지만 청년이 느낀 마음은 어쩌면 사랑이란 감정은 그 중력보다 훨씬 위대하고 강력했다. 재밌다는 표정으로 청년을 바라보는 사각이 없는 시선이 입꼬리를 올렸다.


“사랑을 죽여 놓고, 사랑을 하겠다고?”


닿으려 했던 손길이 멀어졌다. 아니 처음부터 닿지 않았다. 닿을 수 없었다. 청년이 있던 무대는 어느새 사라진 채 한 치의 앞도 보이지 않은 칠흑의 어둠이 가득 찼다. 깊은 물 속에 갇힌 것처럼 강력한 공허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그 사이에서도 그녀가 있어 보이는 곳은 한 줄기의 빛으로 다가왔다. 헤엄을 쳐서 다가갈 수 있을까 생각하고 바로 다가가려는 청년이었다.


그런 청년을 밀쳐내는 힘이 있었다. 청년은 그대로 밀려났다. 아무리 가까이 다가가려 해도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가까이하려 할수록 멀어질 뿐이었다.


“살려줘…”


청년의 간절한 목소리가 흘러왔다. 열린 입 사이로 물길이 들어오는 고통을 느꼈다. 공기가 드나들며 삶의 숨결을 내뿜어야 하는 곳이 물길로 막히기 시작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심장이 꽉 막혀서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느낌이었다. 죽고 싶지 않은데 살고 싶은데 그녀에게 가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다.


“왜?”


그런 청년이 우스웠던 걸까, 안타까웠던 걸까? 누군가 물었다. 사랑의 신이었을까 그러자 청년이 깊은 마음 속 모든 것을 꺼내 겨우 입을 열었다.


“사랑... 하니까. 제발 그녀를 살려줘”


더 이상 입을 열 수 없었다. 청년의 두 입술도, 두 손도, 두 발도, 두 눈도, 더 이상 청년이 컨트롤 할 수 없었다. 그의 의지가 조그맣게 희미 해져가며 어두워졌다.


“우습지, 우스워”


스스로를 사랑의 신이라 밝혔던 존재가 인간의 형태로 쭉 늘어선 청년의 옆으로 다가와 청년을 내려다보았다. 그때였다. 청년의 팔이 움직여 그동안 잡지 못했던, 신의 목을 검지와 엄지로 움켜 잡았다.


“그녀를, 살려줘”


신이 당황하지 않아 보였다.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청년을 내려다보았다. 아무 말없이 청년을 내려 다 보았다.


“그녀에 대해 뭘 안다고, 이렇게 지키는 거지?”

“사랑이면 뭐든 이유가 돼지”


청년의 손짓을 가볍게 억누르는 신이었다. 피식 웃으며 뒤돌아가는 사랑의 신이라 밝힌 존재였다. 청년은 이미 없는 힘을 다시 한번 끌어 모아 보았으나 더 이상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제발! 제발!!”


신이 걸음을 멈췄다. 돌아서지 않았지만 이미 공간을 접어 청년의 곁으로 와 있었다.


“나를 찾는 간절한 사람들을 네가 나 대신, 일을 해준다면 고려해 볼만하지”

“할 게! 제발!! 제발!!!”


청년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신은 웃으며 사라졌다. 청년은 이미 없는 힘을 짜낼 것도 없었지만 또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기적 같은 힘으로 ‘제발’을 외쳐 됐다. 사랑의 기적 때문이었을까, 청년의 몸이 움직였다. 두 팔과 윗몸을 일으키며 제발! 이라고 소리치는 청년이었다.


그가 일어나자 옆 자리에서 좌절한 채 울먹이고 있는 청년의 친구, 매니저, 빅이 있었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터벅터벅 흔들리는 하얀색의 공간, 구급차 안에 실려가고 있는 청년이었다. 청년은 주변을 둘러보며 이게 무슨 일이지 생각했다.


“정연아!! 정신 차렸니!”

“다행이다 정연아!”


청년의 이름을 부르며 청년 정연을 끌어안는 사람들이었다.


다음날, ‘십년만에 열린 ‘사랑의 시간’의 주연 ‘정연’ 무대에서 쓰러져’라는 제목이 온 신문의 일 면을 차지했다. 겨우 눈을 떴다. 죽었다. 많은 가설들이 이 면을 채웠다. 앞으로 사랑의 시간은 어떻게 될까 가 삼 면을 채웠다. 그 외 여러 소설 같은 내용이 신문들의 뒷면들을 채웠다. 그런 신문을 보며 어이없어 하며 웃는 정연이었다.


순간, 사랑의 신이 떠올랐다.

사랑의 신은 죽었다.


말했던 자신, 그를 보며 어이없어 하는 그 모습이 떠올랐다. 어제 있었던 일들은 모두 그저 꿈이었을까, 아니면 어떠한 계시를 받은 걸까? 정연이 생각하고 생각해봤지만 도저히 답을 알 수 없었다. 꿈이라면 어디 까지가 꿈이었을까? 그러면서 그녀가 떠올랐다. 처음 보자 마자 사랑을 느꼈던 그 사람이 떠올랐다. 정연은 그날 공연장에 찾아온 사람들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날 공연 중에 쓰러진 자신이었으니, 환불을 해준다면서 그 대상 리스트를 보고 싶다는 핑계를 되어 보았다. 빅은 네가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질 줄 몰랐다며 의문을 가졌으나 흔쾌히 정보를 넘겨주었다.


하지만 정보를 받은 다음 정연은 곧바로 생각했다. 사진도 없는 이런 개인정보로 그녀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던 것인지에 대해선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나마 유의미한 기록은 나이대였을까 성별이었을까 사실 두 정보 모두 의미가 없었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게 느낀 감정이라니 그런 감정으로 꿈에서 사랑의 신과 싸웠다니 하며 자신이 우스워졌다. 그녀를 본 건 맞는 걸까? 마지막 순간 이상으로 그리던 상상의 모습을 착각한 것은 아닐까 생각하는 정연이었다.


그때 간호사가 병실에 들어왔다. 정연은 무슨 검사를 할 시간이 되었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주사대신 그가 내민 것은 편지였다. 정연은 “이게 뭐 예요. 팬레터는 매니저에게” 하려 다가 이상한 끌림에 편지를 받고 간호사의 얼굴과 이름을 확인하려 했다. 나중에 컴플레인을 걸 생각이었다. 그런데 편지를 건네 준 간호사를 올려다본 순간 바람처럼 사라져버렸다. 마치 처음부터 바람에 휘날리며 편지가 스스로 다가온 것처럼 병실에는 정연만이 침대 위에 덩그러니 앉아 있을 뿐이었다.


편지를 열어보자 두 사람의 신상 명세가 들어있었다. 둘 다 남자였다. 이게 뭐지 싶은 정연이었다. 그러자 문득 꿈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그 시간이 떠올랐다. 불가능한 사랑을 이뤄준다면 자신이 첫눈에 빠진 사람을 살려주겠다는 그 말이었다.


눈만 끔뻑끔뻑 떴다 감았다 하면서 편지를 내려 다 보고 있었던 그였다. ‘이게 무슨’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을 이뤄주는 일이라 했는데, 또 남자와 남자의 사랑이라는 건가. 근데 이 나이차는 또 뭐지, 30살의 나이차이는 또 뭐인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의 신을 죽이겠다 하여 혼났던 그였지만, 다시 한번 사랑의 신이 죽이고 싶어 졌다. 어디선가 으스스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아 얼른 그 생각을 지우는 정연이었다. 이제는 생각마저 마음대로 할 수 없나 하는 생각이 드는 정연이었다. 이게 모두 자신이 사랑의 신을 죽였기 때문이었다.


편지 속 인물들을 찾아 나서야 하는 걸까, 고민을 하는 정연이었다. 찾아서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 조차도 의문이었다. 그저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이력이 적힌 이 편지로는 그가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없었다. 도대체 이런 건 왜 준거 지, 불가능한 사랑을 이뤄주라고?


내가 이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이뤄주지 않으면 그 사람은 죽는 건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첫눈에 반했지만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 죽게 놔둘 수 없지만 정체조차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이렇게 해야 하나, 사랑이라는 이유로?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잠깐이었다. 해야지. 그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찾아 내야지. 내 사랑을 위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정연이었다.


받았던 편지를 보며 왜 이 정도의 정보만 줬을까? 이왕 줄거 많은 정보를 주면 안되나, 불가능한 이유가 알 것 같기도 하지만, 불가능한 이유라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