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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한 Sep 1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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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살짝 찡그려진 얼굴을 보고, ‘아, 들켰구나. 이제 다 끝이구나’ 생각했다. 끝인 줄은 이미 알았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한 번이라도 더 오르고 싶은 욕심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가장 높은 곳에서 최후를 맞이 하니, 썩 나쁘지는 아니하구나. 그러하구나. 가장 높은 곳에 마련된 단두대 위에 오른 느낌이었지만, 이런 끝이라도 좋았다.

한 평생을 바친 무대에서. 맞이하는 최후는 이런 것이라도 좋았다. 

무대가 끝났다.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를 비방하기 위해서였을까. 

손가락은 펼쳐져 있고, 서루를 마주해 박수를 친다. 

관객도, 지휘자도, 동료도 나를 바라본다. 

수염을 덜 깎았나, 목덜미와 턱을 만져본다. 어차피 저들이 나를 욕하더라도 듣지 못하니 상관없었는데, 이제는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싶어 졌다. 

입모양으로 추측해보건데,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거야“

마법...

이 순간 마법과 같은 일이 일어난건가.

며칠 후, 나는 오랜만에 신문의 일면을 장식했다.

'21세기 베토벤', 바이올리스트 xxx, 소리가 없는 곳에서, 소리의 신이 되다.‘

듣을 수 있을 땐 보지 못했던 이야기가, 이제는 듣지 못하는 내게 들렸다.

하나부터 열까지. 기억의 모든 순간을 억지로 꺼집어내, 울렸던 소리들을 기억하고. 

느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0.001초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어느새 나는, 

그들에게 음악의 신. 베토벤의 재림이 되어 있었다.

이미 있는 음악을 기억해, 연주한 것 뿐인 내가, 새로운 음악을 창조한 베토벤과 비교되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다. 나는 그처럼 이제, 새로운 음악을 할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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