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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한 Sep 22. 2021

<키워드 글쓰기> : 가을

가을


가을이 내게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보다 나는 가을에게 어떤 의미일까?

내가 가을을 생각하듯 가을에게 나는 의미가 있을까?

물어볼 수 없다. 지금까지, 앞으로도.

그렇다면 내게 물들어 오는 그 풍경이 가을이겠지만

내가 가을에게 나를 증명할 방법은 모른다.     


그 방법을 알게 됐을 때,

나도 가을에게 어떤 존재일수가 있을 때.     


눈부신 가을이었다.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서슬퍼런 가을의 향기가 불어오고,

가을의 배경으로 세상이 뒤집힐 때.     


나는 가을로 존재하는 가을의 날에.

가을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보다

그 가을에게 의미있는 존재가 되어야겠다.         

 

가을이 깊었다. 옷을 갈아 입은 채 떨어질 준비를 하는 잎새가 먼저 하늘에서 떨어지는 하얀 눈물을 보았다. 얼마나 버티다 떨어졌는지 그 슬픔이 닿으면 아플정도로 굳어버린 채였다. 진눈깨비는 서러워 눈도 비도 되지 못했다. 날씨가 적당하게 추웠고, 적당하게도 더웠다. 누군가에는 시덥지 않은 시원함이었고, 누군가에는 뜨뜻미지근한 뜨거움이었다. 그런 날들이 아직 가지 않았고, 아직 오지도 않은 날씨였다. 가을이었다. 모든 것이 떠날 채비를 하는 시간이었다. 모든 것이 떠날 준비를 하는 세월이었다.     


다 떠나도 남는 건 그리움이구나, 굳이 이곳에 남아서 역사를 새기겠다고 말하는 넌 투사라도 되는 모양이구나. 그런 투사의 마음으로 이루지 못할 게 사랑이구나. 그런 사랑을 했던 넌 기적이었구나.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네가 내려왔다. 날개를 잃은 것마냥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던 너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꽃을 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꽃을 꺽어 집으로 가져가던가, 꽃을 보기 위해 나서는 일이라고 했다. 나는 후자를 택하는 자였다. 네가 피어난 곳에서야 네가 좋아하는 햇빛과 바람이 불어와 너를 감싸고 어루만져 줄테니, 나또한 네가 원하는 햇살과 바람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피어난 네가 무궁이란 이름의 꽃처럼 지지 못할 때, 낙엽이 너무 뜨겁지 않냐고 내려앉아 잠시의 그림자를 만들어 줄 때, 잠깐사이 그리움마져 만들어진 너일텐데 너는 비로소 미소로 답했다.     


"사랑이지 않는 날이 없었고, 사랑이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너를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있던 잎새가 한 잎 자신의 바람을 쫓아 날아가버리는 때, 나는 이 꽃잎의 모음을 사랑했던 것인가, 이제는 잎새 없이 시무룩하게 바닥을 내려다보는 네 얼굴을 나는 보았다.     


어느새 길어진 그 그림자를 보니, 어린시절 뜻 모르게 들었던 그 노래가삿말이 생각나지 않을 수가 없구나, 가을은 시기와 질투의 계절이라고 했다. 겨울을 사랑한 여름과, 여름을 좋아하는 겨울이 가을을 탓하며 서로 만나지 못한다고 투덜된다고 했다. 그런데 그 가을이 있기에 여름은 겨울을 사랑했고, 겨울은 여름을 좋아했다.     

어느날 문득, 가을의 햇살을 가득 머금은 채,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있었을 때 였다. 하늘에는 뻗으면 닿을 거 같은 구름이 있었고, 우주는 자시의 색을 푸름으로 숨기고 있었다. 달빛은 미소를 숨기며 구름 뒤에서 햇님과 사랑을 나누고 있었던 때였다.     


"가을이 뭍었구나, 곧 피어나겠구나"     


가을은 지는 계절이라 했는데, 어찌 피어나는 겁니까. 달려가 묻고 싶었다. 그 두발로 부족해 지팡이를 짓고 겨우겨우 길을 거니는 어르신에게 묻고싶었다. 그런데 그런 물음을 시작도 하기 전이었는데 낙엽이 바람에 흔들려 날아가더니, 어느새 피어난 코스모스와 국화꽃 사이를 지나 해바리기의 잎새와 만나 입을 맞추었다.     


해바라기는 가을이 오면서 점차 줄어가는 햇님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더 바라며 끝없이 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마음을 보니 내 마음과 같아서 나는 커피 대신 눈물을 삼켜야만했다.     


떠나버린 지난 시간들이 모두 그리움되어 바람불어서 왔다. 여름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가을이어서 온 바람이라 서늘했고, 적당했다. 여름이었으면 폭풍이었을테니, 여름이었으면 소나기처럼 시작해 장마로 변질되어 버릴테니, 여름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모든 것이 메말라 버리는 겨울이 아니어서도, 피어나 아래로는 뿌리르 뻗치고 위로는 가지를 뻗치는 봄이 아니어서도 다행이었다. 적당히 슬프게 지어가는 가을이어서 다행이었다.     


온 가을은, 조금은 슬프고, 조금은 기쁜, 그런 가 싶은. 가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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