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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한 Nov 03. 2021

<키워드 글쓰기 - 야한남자>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미남이가 부럽지 않다는 건 모두 거짓말이다. 미남이가 부럽다. 저 앞뒤 안 가리고 대단한 몸. 뒤태며 앞태며 지나가는 모든 길을 모세의 길로 만들어 버리는 강미남. 그는 내 친구이다. 스스로 내 부하처럼 하고 다니는 건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나의 유전자를 거의 비슷하게 가져있는 누나 때문이다. 미남이는 어렸을 때부터 우리 누나를 짝사랑했다. 


누나가 나를 돌보면서 자연스럽게 언제부터인지 나와 친구가 된 불알친구인 미남이를 돌보았는데, 그때부터 미남이는 누나를 좋아했다.


사실 짐작만 하고 있었는데.. 


“알았지..? 석훈아, 나.. 서윤이 누나가 너무 좋아. 20년을 짝사랑했어. 드디어 내게도!! 기회가 온거라고, 하늘이 내 마음을 드디어 알아주셨다고, 이번 기회 절대로 안 놓쳐”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큰 소리로 말한다. 나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회피하며 째려보지만, 이미 내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이렇게 취했다니. 누나가 이혼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술을 그렇게 드리킹 하더니, 이렇게 고백한다. 나보고 어쩌라고, 하필이면 또 돌싱을..


“...”


나는 빈 술잔과 열 개가 넘는 빈 술병을 쳐다보았다. 나는 대략 2병 정도 마신 거 같은데. 나머진 저놈이 올-샷을 때렸다. 


미남. 이놈 때문에 내가 대신 전달받은 초콜릿이며, 사탕이며, 빼빼로면 마트를 하나 가득 채우고도 남을 지경일 텐데. 


“서윤 누나, 사랑해”


뭐라는 거야? 20년 동안 이런 진상을 한 번도 부리지 않았던 놈이라 적잖게 당황스럽다. 이런 모습을 보니 부끄럽다. 미남이 놈의 진상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고 보고 있는 건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마치 장동건이, 원빈이, 현빈이, 드라마의 멋진 주인공이 사랑앓이를 하는 모습을 라이브로 관람하는 모습처럼 사람들은 미남이를 보고 있었다. 어이가 없어서 정말. 이거 완전 외모지상주의자나? 


휴지로 자신의 눈가에 젖은 촉촉한 물기를 닦는 저 여자는 설마, 미남이 때문에 눈물을 닦는 건 아니겠지? 

미친 게 아니라면, 왜?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이 들 때, 미남이가 바닥으로 고꾸라지기 직전 마치 번지점프라도 하듯 엄청난 속도로 여자 두셋이 다가와 미남이를 부축한다.


“이봐요! 친구 넘어지잖아요!”


내가 안 잡아줘도 당신이 잘 잡아주고 있네! 이게 뭐람. 


“괜찮아요??”


미남이에게 괜찮냐고 묻는 여자. 미남이가 실눈을 뜨며 그 여자를 보았다. 두 눈을 똑바로 본다. 여자가 돌덩이가 된다. 미남이가 작은 숨을 쉰다. 여자의 심장이 크게 뛰는 게 느껴진다. 


“..어.. 어머..”


미남이가 바닥으로 눈을 깔아 주변을 본다. 그리고 자신을 부축하고 있는 두 여자를 한번씩 천천히 쳐다본다. 


“어머..”


미남이가 두 사람의 손에 살며시 자신의 손을 올려놓고 자신의 몸에서 밀어낸다. 


“어.. 네..”


미남이가 비틀 거리면서 나에게 걸어오는데, 나는 안 받아주고 미남이는 다시 넘어진다. 나의 허리쯤에 손을 잡고 간신히 버티다 넘어지는데, 여자들이 나보고 뭐하냐며 나무란다. 미남이는 다른 여자들의 손길은 거부하며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나는 밟아버리고 싶은 마음이 더 들어서 그냥 둔다. 


배고픔을 못이겨 의심하지 않고 낚시 바늘을 덥썩 문 참돔처럼 팔딱 거린다. 주변 여자들이 다가가 미남에게 괜찮냐고 물으면, 미남은 대답없이 나를 바라본다. 우수에 찬 눈빛이었다. 그 모습에 여자들이 자신들의 얼굴을 가리고 어떡해 어떡해를 반복한다. 


“...”


나는 참다 못해 계산을 하고 나가려는데, 


“저분이 계산하셨는데요?”

“어머어머”


나는 짜증을 한 가득 안고 미남이를 쳐다보다가 그냥 나가려는데 여자 한 명이 앞길을 막아선다. 


“친구 저대로 두고 갈거예요?”

“그럼 그쪽이 책임지시던가요”


하고 훅 나가는데 여자가 내게 “정말요?” 라고 하는 것 같았다. 아우 짜증나. 나의 첫사랑부터 시작해서 내가 좋아하던 여자들은 모두 미남이를 좋아했고, 그런 이유로 내 친구가 되었다. 그때부터 미남이를 좋아하는, 그러나 미남이는 관심이 없는 모습만 보면 화딱지가 오른다. 


나는 그냥 그 길로 집으로 향했다. 생전 처음 보는 장면이라 걱정이 됐지만 오른 화가 훨씬 크고 방대했다.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었다. 아직도 헤어진 그녀와 미남이가 SNS상에서 댓글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는 모습이 갑자기 떠올랐다. 콱 그냥 기회인데 죽여버릴까. 아니다. 후.


-


자신을 버려두고 가버리는 친구로부터,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 서연을 떠올리는 떠올린 미남은 주변에 기대 앉아 한쪽 다리를 들어 올렸다. 그러면서 한 쪽 팔을 의자에 기댄 채로 허공을 응시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주변의 여자들이 안절부절한다.


“저기요. 이름이 미남시죠? 괜찮아요..?”


미남의 시선에 눈물로 가려져 자세히 보이지 않는 괜찮냐는 질문을 하는 처음보는 여자들, 미남에게는 낯선 광경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마음은 낯설지 않은 상황에 처해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버리고 떠나는 모습.


눈물이 흘러나와 뺨을 타고 바닥으로 떨어진다. 처음 자신의 눈물을 닦아 주었던 존재, 그러나 이젠 눈물의 이유가 되어버린 서연을 계속 떠올린다. 


“축하해 줄거지?”


기억의 한순간에, 얼어버린 채로 영원히 간직되어버린 한 장면이었다. 청첩장을 자신에게 보여주는 서연. 미남은 그 청정장을 받으며 억지로, 그러나 들키지 않게 최선을 다해 웃으며 박수를 쳤다.


“오, 그럼요 누나! 축하해요!!! 석훈이도 좋아하겠네요!”


미남을 바라보는 서연이의 뜻을 알 수 없는 미소. 


-


도중에 들린 편의점에서 산 소주를 한사발 들이키며, 불이 꺼진 방 안에 도착한 석훈. 서연이가 문을 연다. 잠시 석훈의 집에 들려있다. 


“이제 와? 미남이 만난거야?”


말없이 누나의 손길을 뿌리치며 자신 방으로 들어간다. 서연이는 그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석훈의 방은 어두웠으나, 서연이 켜놓은 거실의 불빛이 새어들어와 방한 가득 채워져 있는 미남과의 추억사진이 가득하다. 


침대에 누워 눈물을 흘리는 석훈. 


미남을 자신 곁에 있게 하기 위해서, 자신의 마음을 자신에게도, 미남에게도 속여야했던 석훈이었다. 그런 석훈의 마음을 유일하게 아는, 그러나 석훈은 이 사실을 모르는 서연이었다. 서연은 열린 문을 닫는다. 방안은 이제 어두워지고, 석훈의 눈물과 마음은 이제 다시 누구도 볼 수 없게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 않게 된다. 


서연은 방문을 닫고 그 앞에서 서서 크게 한숨을 쉰다. 미남의 모습은 남자도, 여자도,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모습이다. 미남은 누구에게나 위아래가 촉촉하게 젖히게 만드는 신의 완벽한 창조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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