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9일

-2

by 라한

'나는 네게 그리움이 되고 싶지는 않다.'

한 문장을 쓰고는 펜이 멈췄다. 더 써야했는데, 그러질 못하고 있었다.

명수는 머리를 옭아매며 쓰여지지 않는 문장만을 바라보았다.

그때, 스마트폰에 슬혜의 이름이 뜬다.

명수는 아랫입술을 깨문 채 슬혜의 이름을 바라본다.

"나는 네게, 그리움이 되고싶지는 않다"

자신이 쓴 문장을 중얼거린다.

그리움 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

있는 그대로 이고 싶다.

과거의 어느 지점에 머무르고 싶지도 않고,

미래의 어느 공간에서 기다리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상황은,

현실이란 냉혹해서 이런 마음을 지워야한다고 한다.

자신이 받지 않은 수화기 속 넘어 슬혜.

그 모습을 지금의 명수는 알지 못한다.

그러다, 슬혜의 전화가 끊기고, 문자가 떠오른다.

"그만하자."

끝내 피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수화기를 넘어 올라왔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예측하는 것과 실제로 벌어지는 일의 무게는 다르다.

"..."

나는 너의. 그리움이 되고싶지는 않다.

명수는 자신이 쓴 문장이 그대로 자신에게 전해져 내려오자 가슴이 답답했다.

"..."

착각이었던 거 같다.

이미 슬혜에게는 그리움조차 되지 못하는 존재일텐데.

바람이었을까. 자신만을.

만났다면, 달라졌을까. 이렇게 피하지도 못한, 피하기만 했던 탓일까.

명수는 그대로 의자에서 일어나 침대로 자신의 몸을 던졌다.

자신이 몸을 던진 곳은 침대였지만, 심연과 같았다.

오랜 가라앉음으로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눈이 스르르 감긴다.

마치 죽음을 묵도하는 느낌처럼.

- -

꿈이었을까.

그날은 겨울과 봄이 바톤을 터치하는 시간이였다.

꽃의 이름을 딴 추위가 몰려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곧 이 추위가 끝나고, 봄날의 향기를 맡을 것을 기대하기도 하는 날이었다.

명수는 이제 3월의 첫날이라고 생각했던 그 날, 아직 2월이 끝나지 않았던 2월의 마지막 날이었던 그 날.

두 사람은 우연히 만났다.

운명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담았고,

서로가 서로를 닮고자 했다.

심연으로 흘러가던 명수의 눈이 조심스럽게 페이드 아웃되면서 떠진다.

이미 젖어버린 침대보 사이에. 문득 들어온 숫자.

0229.

명수와, 슬혜의 모든 비밀번호.

그리고. 탁. 탁. 눌러지는 네 개의 비밀번호.

명수가 누워있는 방문을 여는, 오랜, 낯설지 않은 시선.

"바꾸지 않을 거면서. 왜 안 받았어"

바꿀 수 없었으니까.

"진짜 끝낼거야?"

끝내자면서.

"끝내기 싫은 사람이, 끝내기 싫기 때문에 끝내자고 말하게 할거냐고"

명수의 젖은 침대보에도, 집안 곳곳의 물건에도 붙어 있는. 노란 딱지.

삶이 끝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모든 걸 끝내려고 했는데.

결코 끝낼 수 없었던 이유.

"이제 그만하자 우리. 그만하고, 다시 일어서자."

눈물로 인해 물길 속의 시선으로 슬혜를 바라보는 명수였다.

"안 올 거 같았던 그날이야. 우리가 처음 만났고, 우리가 계속 만날.."

우리 둘의 비밀번호이자,

우리 둘의 시작이었던 날.

"그런 날 끝내는 게 말이 돼? 시작해야지.."

우리의 시작이었던 날..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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