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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호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캐릭터 - 365

by 라한
허준호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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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호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이름: 허열문

제목: 시국선언


많은 사람들이 한반도기를 흔들면서 문열의 퇴임식을 축하하고 있었다.


“대통령 허열문의 마지막입니다.”


청와대를 나와 민간인으로 돌아가는 열문을 반기기 위해 수십만의 사람들이 광화문을 찾았다.


“저는 이제, 자연으로 돌아가서, 대한민국의 시민으로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퇴임 직전까지 지지도 40%라는 역대 급 위인이라고 불리는 열문이었다. 열문의 가장 큰 업정으로는 종전선언이 있었다.


“허열문! 허열문!”


열문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대통령이었다. 그가 하지 못한 유일한 아쉬움은 개헌이었다.


“마지막까지 안타까운 건 역시 개헌을 통해 6공화국을 끝내고, 7공화국을 열지 못한 일입니다.”


그는 이렇게 퇴임식 때 담화문에 문구를 적었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했다.


바로 전 날이었다.


“대통령님. 편안하셨습니까?”


3년간 자신의 뒷자리를 지켜준 비서실장이었다.


“글쎄. 후련한 마음이 들면서도 아쉽네.”


북한과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개헌의 문제를 잠시 미뤘다.

마음 같아 선 통일 선언을 하고 북한과 함께하는 개헌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은 그렇게 까지는 문열을 허락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엄청난 성적입니다.”


종전선언 이후, 한국 정부는 북한의 10개구 도시를 특별지정구로 인정해 자치권을 부여받은 채 운영할 수 있게 됐다.


그곳을 전진기지로 삼아 북한의 성장을 어느정도 끌어 올린 이후, 통일까지도 나아간다는 계획에 서로가 사인을 했다.


성공적인 권력을 이양했다.


“후임 대통령이. 대통령님의 뜻을 이어 멋지게 제 7공화국을 열어줄 겁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그렇게 해야지.”


후임 대통령은 이번 열문의 열린국민정부 국무총리 출신이었다.

즉 권력을 완전히 이양했다고 볼 수 있었다.


열문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틀리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이 후임이니 믿고 맡길 수 있었다.


“이제 나는 뒤로 물러가서. 열심히 응원해줘야지.”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비서실장이 허리를 90도로 숙여 열문에게 인사를 했다.

대통령실에서 받는 마지막 인사였다.


청와대에서 3년. 그리고 정치적 동반대로 30년동안 함께한 동료였다.


“실장님도. 차기 대통령을 많이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대부분의 청와대 사람들이 그대로 계승되었다.

말 그대로 권력도 완벽히 이양한 문열정부였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성공한 대통령, 그게 바로 허문열이었다.


그렇게 청와대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에 자신이 원래 살던 집으로 가던 중이었다.


열문의 고향은 서울 안이었다.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 도착했다.


집에는 이제 막 돌을 넘긴 손자까지 와 있었다.


“할아버지~”


손자들은 할아버지를 위해 뛰어왔고, 아이들은 아버지에게 고생했다고 말했다.

보고싶은 아내는 없었다. 그녀의 사진 앞에 선 열문은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가 이렇게 지지도가 높을 수 있었던 건 아내의 희생이 컸다.

그녀가 자신의 암을 숨기고 문열의 선거를 도왔던 소식이 나중에 알려지게 됐다.


도중에 쓰러진 아내로 인해 선거를 이틀 앞두고 후보를 사퇴한 문열이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실망감을 느끼면서도 그를 이해했다.


그렇게 다른 대통령이 당선이 되었고, 그는 아내를 지극히 보살폈다.

그렇게 아내는 암을 극복하고 다음 대선에서 다시 한 번 선거에 나가게 됐고 당선됐다.


지금까지 없었던 가장 압도적인 지지 차이였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 허문열은 앞으로 국민여러분을 위한 삶을 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오히려 5년을 더 준비한 문열은 강력한 개혁으로 대한민국을 이끌었다.

그중 하나가 한파가 물아 닥치던 외교문제였다.


동아시아의 외교를 주도하는 대한민국이 되었다. 북한과의 담판으로 종전을 선언하는 가 하면, 오랜 앙숙이던 중국과 일본, 그리고 대만과 몽골 등을 이끌고, 멀리 필리핀까지도 어려운 외교문제를 풀어헤쳐가며 역사상 가장 위대한 리더라는 호칭까지 걷게 됐다.


세종대왕에 대변되는 유일한 대통령이라는 별명까지 생길 지경이었다.

만약, 대통령 중에 동상을 세울 사람을 뽑는다면 ‘허문열’ 밖에 없다는 말이 돌았다.


그렇게 후회 없이 국정을 살피고 있을 때 아내가 다시 한번 쓰러졌다. 임기 3년 8개월이 지나고 있을 때였다.


단임제를 폐지하고 연임제로 허문열을 대통령으로 계속 밀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을 때였다.


그렇게 문열은 하야를 선언했다. 그러자 보통은 하야를 하면 바로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지만, 문열이 문제가 생긴 게 아니기 때문에 끝까지 남아달라는 국민과 국회의원들의 청원이 있었다.


그렇게 국무총리가 권한 대행을 했어야 했지만, 직접 권한을 행사하며 다음 선거까지 준비하고 권력까지 이양했다.


그렇게 후임 국무총리에게 대통령의 자리를 선거를 통해 넘기면서 대통령을 그만 둔 그였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아이들을 보고, 그 아이들과 함께 중환자실에 의식을 잃은 아내의 곁으로 갔다.


“여보. 내가 왔소.”


아내를 위해 대통령직을 던질 수 있는 남자.

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계엄령을 선포하는 사람이 있지 않는 한 넘을 수 없는 업적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 더 허문열을 좋아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라는 칭호로 까지도 불렸다.


아내의 손을 꽉 잡은 문열이었다. 이제 그녀가 이 세상에 남아 있을 날이 얼마일지 몰랐다. 그런 만큼 그녀의 곁에서,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대통령이었던 허문열의 아내를 위한 간호가 시작됐다.

그녀가 평생 자신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했던 것처럼. 이제 자신이 당연하게 그녀를 위해 모든 걸 다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문열은 아내를 위해 나머지 인생을 다 쓰기로 했다.

부디 아내가 자신을 먼저 떠나지 않기 만을 바라왔다.


“여보. 그때 기억나?”


대답 없는 질문은 계속되었다. 기다렸다 그녀가 대답해줄 때까지.

비록 대답은 없었으나 그녀는 끈질기게 살아 남았다.


3개월 안에 죽는다던 그녀의 투명도 어느새 5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대통령 퇴임식 때처럼 온 가족이 모였다.


“엄마.”

“할머니!”

“장모님!”


모두가 자신의 위치에서 그녀를 불렀다.

이곳에 오지 않은 전국민도 전 영부인을 애도하기 시작했다.


장례식이 국장으로 열렸다. 비록 전임 대통령이 너무 위대해 차기 정권을 빼앗긴 현재의 대통령. 전 대통령 정부의 국무총리 출신의 배려였다.


“오랜만입니다.”


예전에는 권 총리라고 불렀지만, 이제는 권재만 대통령 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자신의 동반자였다.


재만은 문열의 손을 꼭 잡았다.


“고생많으셨습니다. 대통령님.”

“아닙니다. 역시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대통련님.”


그렇게 전현직 대통령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이별에 대한 위로와, 정권을 제대로 이양하지 못한 책임에 대한 위로였다.


그리고 얼마 후 자신의 후임 대통령도 퇴임했다.

비록 문열이 만들어 놓은 세상이 온전히 전해지지 않았지만 발전시켜 놓은 걸 헤집을 수는 없었다.


남은 건 남은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선택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문열이었다.


이미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면서 많은 에너지를 쓴 문열은 이제 여생을 천천히 느긋하게 보내려고 했다.


그러나 그에게 자문을 구하러 오는 여러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한 청년이 문열과 같은 인물들이 나라를 이끌어 줘야 이 세상이 조금 더 살기 좋은 게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처음엔 그 질문에 허허 웃으면서 거절하는 문열이었다.


“여러분이 이 세상의 주인입니다. 민주주의는 여러분이 정답이라고 말해주고 있어요.”


그러나 그들은 그럴수록 문열을 찾았다.

현 대통령에게 있어서 문열은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문열은 시국에 대해서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끝내 계속 찾아오는 후배들과, 사랑스러운 아내의 흔적이 있는. 그녀가 자기 보다 말년엔 더 사랑한 손녀의 부탁으로 인해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허문열이라고 합니다.”

“와!! 교수님! 팬이예요!”


자신의 시대에 아직 10대였던 학생들이 이제는 자신의 제자가 되기 위해 학생으로 왔다.

허문열은 어느새 대통령보다 교수 생활이 천직에 맞다고 생각했다.


끊임없이 토론하여 많은 학생들에게 대학원생의 낙인을 찍고 싶어 졌다.


“자네. 오늘 교수실로 좀 오지?”

“네?”


예전에 문열이 부르면, 청와대 입성이었기에 모두가 좋아했지만, 지금은 벌벌 떨게 만들었다. 마치 교도소에 끌려가는 그런 기분을 만드는 것이었다.


“교수님 저는. 대학원생이.”

“될 자질이 있어.”


문열의 말에 거절하는 사람은 몇 없었다. 그렇게 문열은 뿌듯하게 자신의 훌륭한 제자들을 일찍 사회로 내보내기 보다는 조금 더 품는 쪽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게 몇 년이 지났는데, 어느새 세상은 빠르고 많이 변해 있었다.

학교 밖 세상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고 모두 거절하자 애써 자신을 찾아오는 기자들도 이제는 없었다.


그래도 아직 잊히지 않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인 허문열이었다.


오랜만에 뉴스를 보니까, 입맛이 쓰려 졌다.


기사 첫 장에는 마지막 남은 최후의 보루가 된 동서의 개성과 원산.

북한이 문열과 함께 종전선언을 통해 개방한 열 개의 한국 정부지도 자치 도시 중에서 8개를 폐쇄 조치한 것이었다.


그나마 2개만 남아 있었다.


“그래도. 참아야 한다.”


마음속에는 사실 정치욕구에 대한 가슴이 뜨겁게 타올랐다.

언제부터냐고 묻는다면 대통령 퇴임식 때부터였다.


그러나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에 아내를 선택한 문열이었다.


“정국이 많이 어렵구나.”


문열은 어느새 찾아온 겨울을 바라보았다.

밤새 찾아온 눈이 너무나 수복 히 쌓였다.


자연재해는 이제는 자연스러운 증상이 되어서 재해로 뽑히지도 않았다.

겨울이 되면 1미터의 눈이 쌓이는 게 기본이 된 대한민국이었다.


환경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대에 만든 법칙도 많이 깨졌다.

대형 원자로는 폐쇄하고 관리하기 쉬운 소형 원자로 연구에 더 많은 연구비를 투자하고, 초전도체를 위한 연구비를 아낌없이 쏟았던 문열이었다.


특히 종전선언 이후로 한국 주가는 무려 6배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추락 중인 나라였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교직에서 학생들을 위한 지도적인 말만 할 뿐이었다.


자신의 총리였던, 후임 대통령은 이미 현직 대통령과 엄청난 논쟁을 하는 중이었다.

사람들은 문열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새로운 대통령이 뽑혔다.

이제는 좀 나아지겠지 싶었지만, 정치는 혼란스러워졌다.


그래도 애써 눈을 돌리고 학생들의 지도에 앞장서는 문열이었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재만이 다시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하겠다는 인터뷰를 봤다.

-전직 대통령의 국회의원 선거. 법정으로 문제되는 점은 없나?


많은 매스컴이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인터뷰를 따기 시작했다.

당연히 문열에게도 왔다.


자신이 가르쳤던 학생이 기자가 되어서 찾아왔다.


“교수님. 아니 허문열 대통령님. 권재만 전직 대통령의 국회의원 선거 출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문열은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의 뜻을 인간이 어찌 알까.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하여 나이 50이 넘으면 하늘의 뜻을 안다는 말이 있었지만 이미 50살을 넘은 지 오래지만 아직 하늘의 뜻을 모르겠는 문열이었다.


“이 나라는 민주주의 아닙니까.”

“네?”


제자이자, 기자가 당황했다.


“대통령이었지만, 다시 시민이 되었고. 그 시민이 무엇을 하든. 그건 시민의 뜻이고 의지입니다. 제가 뭐라고 평가할 일은 아니지요.”


그렇게 문열은 침묵으로 지지하는 쪽을 선택했다.

자신의 정부에 후임이었다.


약세를 보이던 문열의 오래된 동료들이 있던 정당은 재만의 합류로 거대 야당을 만들었다. 전직 대통령이 이끄는 거대 야당은 현재의 여당과 정부를 식물정부로 만들었다.


그렇게 정국이 양극으로 나눠지고 있었다.


문열은 예전보다 오랜 시간을 들여 이 정국을 해독하고 있었다.

그때 현직 대통령이 제6공화국 헌정사상. 최초의 계엄령을 선포했다.


국회는 헌법기간으로 계엄령이 선포된다고 해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기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고령을 바탕으로 계엄령은 국회를 장악했다.


이에 전국의 학생들이 시국선언을 하기 시작했다.

교수들의 연합도 모였는데, 한국대 교수들의 대표를 맡아 주기를 교수들이 청해왔다.


한 때 이 나라의 대통령이, 우리 학교의 교수인데. 감히 다른 교수가 교수들을 대표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문열은 고민 끝에 펜을 들었다.

직접 시국선언문을 작성하고. 낭독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벌어진 계엄 시국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였다.

문열의 시국선언을 보고 계엄 기간 불법으로 간주하여 계엄군이 들이닥쳤다.


이 정보를 먼저 접한 군인이 계엄군으로 가장해 문열을 찾았다.


“너는.”


제자 중 하나였다.

그는 계엄군에 속한 군인이지만 체포조는 아니었다.


그런데 체포조로 위장해 문열을 찾아 빼돌리려고 했었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반역이었다.


“괜찮겠어?”

“저랑 뜻이 같은 군인들이 많습니다. 대통령님.”


교수님이란 칭호로 불렸는데, 이제는 전직 대통령의 칭호로 불리고 있었다.

그들이 보내는 희망이란 걸 알았다.


문열은 계엄군에 반대되는 혁명군이 되어야 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곧 제자를 통해 계엄에 반대하는 군인들과 함께 갇혀 있는 국회의원들을 탈출시키고, 문열의 큰 성과였던 외교를 통해 계엄을 해체하고 다시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준비하는 문열이었다.


문열 정부의 전 장관과, 청와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계엄군은 어떻게 든 문열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서울 도심에서 총포가 울렸다.

공포 정치에 대한 시작이었고, 문열은 그에 반해 다시 민주주의를 시작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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