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세상에 눈뜨기에는 너무나 어린 나이. 축구라는 개념 자체도 잡혀있지 않은 그런 세월이었다. 그때 들었던 “축구는 12명이 하는 것”이라는 말이 진실인지 알고 친구들에게 나섰다가 11명이 하는 스포츠라는 사실을 알고 절망을 맛봤던 아이.
*축구는 11명이서 하는 것이지만 응원하는 팬들이 중요하다는 명언.
인스타그램에 스토리를 박제한 부분이 몇 년간 단 하나였다. 2018년 월드컵에서 일어난 어느 기적에 순간이었다.
드라마 도깨비에서는 이런 내용이 나온 적이 있다.
“기적을 맛본 이는, 그 기적을 잊지 못하고 기적을 쫓는다”는 내용이었다
2002년. 아직 어린아이에 불가했던 나는, 기적이라는 개념도 접하지 못한 채로 기적을 맛봤다. 4강 신화라고 불라는, 월드컵만 되면 찾아오는 ‘Again 2002’ 라는 캐치프라이즈처럼.
처음으로 사람들이 놀랐던 건 우리나라가 2:1로 프랑스에게 이기고 있었던 월드컵 직전 친선경기 마지막 경기였다. 후반전 2골을 실점해 결굮 2:3으로 패배했지만 엄청난 저력을 보여준 경기였다. 프랑스는 당시 2002년 월드컵이 열리기 직전, 자국에서 열린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우승했던 팀이었다. 19세기 마지막 월드컵 우승팀이었고, 당시의 챔피언이었다. 그런 상대로부터 리드까지 한 것이었다. 몇 개월 전만해도 별명이 오대여잉었던 히딩크 감독이었다. 패배만 하면 5점차 이상으로의 패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었다.
그런데 그 별명이 무너지고 있었다. 프랑스를 만나기 전, 축구종가 잉글랜드를 상대로 1:1 무승부를 기록했고, 같은 영미권 팀인 스코틀랜드를 상대로는 4:1 대승을 거두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기적의 전초전이었고, 프랑스와의 친선경기가 끝난 직후. 당시 대한민국을 이끌던 히딩크 감독은 “기적을 보여주겠다”라는 인터뷰를 했다. 월드컵에서 단 한 번도 승리해보지 못한 대한민국의 감독으로의 인터뷰였다.
며칠 후 한일월드컵이 개막되었고 대한민국의 첫상대는 ‘폴란드’였다. 30대 후반의 공격과 수비의 핵심이었던 황선홍과 홍명보가 이끄는 선수단은, 유상철 선수와 황선홍 선수의 골로 2:0으로 승리했다. 54년. 헝가리(당시 준우승팀)에게 당한 9:1 패배 이후. 월드컵 본선 진출 48년만의 쾌거였다. 이후 미국과 1:1 무승부, 그리고 우승후보 포르투갈을 1:0으로 이기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이때부터 군면제가 추진되었다. 군 면제에 관한 이야기가 신성불가침 조약과 같은 우리나라에서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유추할 수 있었다. 16강 진출 직후 히딩크 감독은 기자들 앞에 섰다. 그리고 지금까지 전설처럼 내려오는 한마디를 했다.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라는 한마디였다. 16강도 이미 기적인데, 그 이상의 기적을 노린다는 말 한마디였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4년 후, 독일 월드컵에서는 이탈리아가 우승했다. 그리고 다시 4년후 열린 2010 남아프리카 월드컵에서는 스페인이 우승했다. 그리고 다시 4년 후, 축구 최강국 브라질에서 열린 월드컵은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독일이 우승했다.
2002 한일월드컵 대한민국은 16강에서 2006년 월드컵 우승팀 이탈리아를, 8강에서 2010년 월드컵 우승팀 스페인을, 4강에서 2014년 월드컵 독일을 차례로 만났다. 아시아 최초의 준결승전(4강전) 진출이었다. 당시 한국 땅을 밟으면서 “이곳이 차붐의 나라입니까”라는 말로 차범근을 존경함을 보여줬던 발락의 골로 우리나라는 독일에게 1:0으로 패배해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우승후보팀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을 무너뜨리며 준결승전을 진출했다.
당시의 순간은 기적과도 같았다. 오죽하면 장례식장에서도 월드컵이 생중계되며 모두가 환호하는 사진이 전설의 순간포착으로 남아있을 정도였을까.
어린 나이였기에 모든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열기와 열정. 그리고 하나가 되는 듯한 거리응원은 어린 나에게 엄청난 영감을 주었다.
스무살, 가장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거리응원이었다. 그리고 2010년. 나의 첫 번째 거리응원이 시작되었다.
첫 경기는 거리응원이 아닌 지인이 응원하는 펍이었다. 우리나라가 그리스를 제압하며 승리했다. 두 번째가 첫 번째 거리 응원이었다. 시청이었는데, 내가 화장실을 간 사이에 이청용이 골을 넣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루과이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나이지리아전이 끝나고 사람들은 열광했다. 두 번째 16강 진출이었다.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내게 가슴설레게 다가온다. 이동국의 회전회오리 슛은 아직도 가슴 아프게 기억하고 있다. 비가 조금만 덜 내렸어도. 2:2 상황이 되었을테고. 어쩌면 역전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황선홍 선수처럼 다시 월드컵에 나가 역적에겨 영웅이 되길 바랐지만, 지난 해 은퇴를 선언한 이동국선수가 다시 그라운드를 밟을 일은 없어졌다. 2014년도 당연히 거리로 나갔다. 한국은 광속 탈락해버렸지만.
그리고 다시 4년 후. 다시 거리로 나갈 시간이 왔다. 2018년이었다. 우리나라는 스웨덴과 멕시코, 그리고 독일과 한 조였다. 독일은 당시 피파 랭킹 1위였다. 우리나라는 스웨덴전에서 패배. 멕시코에게 다시 패배하며 0승 0무 2패가 되었지만 독일에게 승리하면 16강의 꿈은 어쩌면 다시 재현될 수도 있었다. 멕시코가 스웨덴에게 승리하고, 우리나라도 2점차 이상으로 독일에게 승리하면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물론 그 확률은 1%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런데 기적은 항상,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신의 선물인 걸까? 당시 거리응원으로 광화문으로 갔는데, 여러 사람들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 그때마다 이미 떨어진 거. 패배가 확정인 경기를 왜 보러 가느냐는 얘기가 들려왔다. 그때 나는, 2002년 포르투갈의 어린 선수가 있었는데, 우리나라에게 패배해서 새벽내내 울었다고 한다. 그 선수의 이름은 호날두다 라고 말하면서, 내일 독일의 유망주들이 그렇게 될 것이다. 라고 호언장담하였는데. 정말로 우리가 이겨버렸다. 무적의 전차군단 독일을, 지금도 세계 최고라고 불리는 최고의 골키퍼 노이어가 지키는 독일을 2점 차로, 2:0으로 이기는 기적 같은 저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멕시코가 스웨덴에게 패배하며 끝내 우리는 16강의 문턱을 넘지는 못했다. 하지만 독일보다 높은 순위표로 월드컵을 끝마쳤다. 독일은 조별순위 4위. 우리나라는 3위였다. 당시 독일의 세계 랭킹은 몇 년간 지속된 부동의 1위였다.
그리고 올해가, 그로부터 4년후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이 올해 열린다. 원래는 6-7월 월드컵이 열리지만, 카타르의 뜨거운 기후 때문에 몇 개월 미루어져 10월달 열린다.
나는 그때가 오면, 당연히 시청이든, 광화문이든, 또는 어디든, 함께 응원하는 우리가 있는. 거리로 나갈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승리를 위해, 승리의 함성을 외칠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자부심아래, 승리의 도약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의 국가대표 선수들을 위해 목이 터져라 외칠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우리의 함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