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 373
조병규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이름: 유관장
제목: 퍼즐 삼국지
“어제도 밤샜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건 관장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아, 어제 그러니까~.”
특히 어제 같은 경우는 밤을 안 샌다는 전제는 있을 수가 없었다. 바로 오랜만에 삼국지 게임 신작이 나왔다.
삼국지 게임은 여러 회사에서 내놓는 게임이었다. 그 중에서 관장은 전통의 삼국진영게임과 삼국의 뜻이라는 두 게임 프렌차이즈를 가장 좋아했다.
책에서 살짝 떠오르지 않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모습을 두 게임을 통해 얻기도 했다.
“그래서, 게임은 클리어했어?”
“아, 나 클리어 하려고 했는데.”
어제 나온 게임은 삼국진영도, 삼국의 뜻도 아닌, 초절정 난이도를 자랑하는 난세삼국지였다.
“에피소드 5까지 갔다. 그래도.”
“와. 5가 있어?”
인터넷 정보가 홍수처럼 밀려오는 시대는, 누구나 정보를 올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즉 게임을 공략한 사람은 자신의 공략법을 커뮤니티에 올렸고, 사람들은 빠르게 게임을 공략하기 위해서 그 공략대로 게임을 클리어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올라온 게임 공략법 최고가 4-5였다.
“에피5까지 갔어? 공략법도 없던데.”
“야. 그 공략법 보다 내 공략이 더 좋아.”
관장은 으쓱했다.
“하긴, 넌 이름부터 유관장인데.”
다만 관장은 대대로 이어온 삼국지 사랑 때문에 ‘유관장’이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이 이름을 싫어했다.
“아, 그러니까 나는 유관장이 아니라, 유조조가 됐 어야 했는데.”
관장은 아이러니하게, 아니 자신의 어렸을 때부터 별명 때문인지 촉나라를 싫어했다. 촉나라 보다는 오나라를, 오나라 보다는 위나라를, 그리고 정말 뜬금 없게도 위나라 보다는 진나라를 좋아했다.
사마씨야 말로 삼국의 영웅. 난세를 끝나고 평화를 가져오는 척 하다가 더 큰 난세를 부를 불굴의 영웅들이라고 생각하며 칭송하는 관장이었다.
“나는 삼국의 전쟁, 팔왕의 난이 진짜 최고라고 생각하거든?”
모든 삼국지 팬들 중에서 가장 이를 아는 사람은 1%가 될까 말까하는, 진정한 오타쿠의 세계에 입문한 사람만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삼국지는 황건의 난부터 시작되는데, 보통은 오장원에서 제갈공명이 죽으면서 이후의 이야기는 잘 모른다. 그런데 그후부터 30년은 더 지난 이야기. 그 이야기가 바로 팔왕의 난이었다.
제갈공명의 라이벌이었던 사마의의 후손이 위나라가 한나라한테 그랬듯이, 다시 위나라 황제의 권위를 찬탈하여 세워진 진나라.
그 진나라의 왕족들이 자신이 진정한 황제라고 칭하며 서로 죽고 죽이는 가족싸움이라 할 수 있는 게 바로 팔왕의 난이었다.
“그게 무슨 삼국지냐. 그건 삼국지가 아니야.”
친구는 그런 관장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삼국지는 아무리 잘해도, 강유의 촉한 부유운동까지. 아니 오나라의 멸망까지가 삼국지라고 했다.
한 세기가 넘어가는 팔왕의 난은 아니라는 주장이었고, 이런 토론을 매일 같이 이어가는 관장이었다.
그리고 관장보다 삼국지에서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
“절대 인정 못해!”
비록 아는 건 적다고 해도, 팔왕의 난까지는 삼국지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친구의 말에 절대로 꺾이지 않는 관장이었다.
마치 자신의 체육관을 잃은 무도관장처럼 불굴의 영웅으로 토론에 임하는 게 관장이었다.
“왜 팔왕의 난이 삼국지에 포함되는지. 그리고 마지막인지는 내가 확실하게 말해줄 게.”
팔왕의 난 이후로, 다섯 오랑캐가 세운 열 여섯 나라로 중국은 분열되었다. 그래서 오호십육국이라고 부르는데, 그런 역사를 읊기 시작하자 수업을 핑계로 자리로 돌아가버리는 친구였다.
“흥! 바 오늘도 내가 이겼다.”
그렇게 이겨도 이긴 게 아닌, 사실상 승자 없는 싸움의 승리를 하게 된 기쁨으로 다시 삼국지 속 인물을 떠올렸다.
“자자.”
선생님이 들어오고, 또다시 지루한 수업이 시작됐다.
“하. 삼국지 하고 싶다.”
관장의 머리속에는 삼국지밖에 없었다. 어서 집에 가서 삼국지를 하고 싶었다. 그렇게 일년 같은 하루가 지나고 학교를 마치는 종이 울렸다.
“유관장! 너 오늘 당번이야!”
“아!!”
1초라도 먼저 뛰어 집으로 향하고 싶은데, 이럴 때 당번이라니 어쩔 수 없었다. 초고속으로 청소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야, 내가 당번 바꿔줄까?”
그때 다른 친구가 당번을 바꿔준다는 말에 ‘그래’라고 인정하려는 때였다. 이를 제지하는 반장이었다.
“당번 마음대로 바꾸지 말라고 선생님 말 못 들었어?”
항상 반장과 당번이 되는 관장, 그런 관장과 늘 당번을 바꾸는 학우들이었다. 모두 편법이었다. 반장이 관장과 당번이 함께 되는 것도, 그리고 그런 당번을 다른 친구와 바꾸는 관장도 마찬가지였다.
“아. 반장 너무하네.”
“뭐가 너무해. 너무한 건 뭐지.”
반장은 관장을 째려보았다. 다가가고 싶어서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당하면서도 늘 자신과 당번을 붙어 있게 하는데, 관장은 그런 마음은 몰랐다.
그런데 반장은 몰랐다. 자신이 삼국지라는 걸 파게 되면 자연스럽게 친하게 지내질 거라는 걸.
“아. 얘가 한다고 하는데.”
“선생님한테 이를꺼야.”
“너무해. 알았어 한다고 해.”
그렇게 반장과 당번일을 하게 된 관장이었다.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려고 하는데, 혼자 빨리 청소를 하려고 하는데, 당번은 느긋하게 청소를 했다.
“나 이거 먼저 버리고 올 게.”
“아직 청소도 안 끝났는데 왜 버려! 같이 가!”
어떻게 든 관장과의 시간을 늘리려고 하는 관장과, 청소 시간을 어떻게 든 줄여서 빨리 집으로 가 삼국지를 하려고 하는 관장과의 이상한 기싸움이 시작됐다.
다른 친구들이 반장의 일을 돕겠다고 손수 나섰으나, 반장은 다 돌려보냈다. 관장은 다른 친구들이 도와주면 쉽게 일이 끝날 텐데 왜 저렇게 난리야 하고 불만이었지만 조용히 참았다.
관장도 속으로는 삼국지의 초선의 외모가 반장과 닮지 않았을 까 생각했다. 그렇게 예쁜 애니까.
“끝났다!”
드디어 청소를 끝내고 얼른 집으로 가 삼국지를 할 생각에 너무 기쁜 관장이 소리를 질렀다. 그런 관장의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는 반장이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청소를 하면서 싹트는 그런 로맨스, 그런 걸 기대하고 있었는데 정말로 청소를 열심히 하는 관장의 모습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집에 뭐 여자친구라도 숨겨 놨어?”
장난으로 내뱉은 말이지만 절대로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었는데, 그러나 그런 마음도 모르고 관장은 히죽 웃으면서 얘기했다.
엄밀하게 따지면 자신의 여자친구는 아니었다. 오늘 자신이 플레이 하는 캐릭터가 오나라여서. 그 오나라의 손책을 플레이 하기에 대교가 손책의 연인으로 나올 뿐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캐릭터가 손책이니 대교가 자신의 여자친구라고 생각하면서 웃으면서 얘기했다.
“맞아. 그래서 빨리 보러 가려고.”
관장의 말에 눈물이 핑 돌면서 얼굴이 빨개지는 반장이었다.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나가던 관장이 자신의 대답 이후 가만히 있는 반장을 마침내, 겨우 발견했다.
“반장? 무슨 일이야? 아까부터 왜 그렇게 서 있어.”
정말로 여자친구가 있는 거라면, 그걸 못 가게 하려고 자신이 이랬던 걸까 싶어서 죄책감과 더불어 부끄러워지는 반장은 자신에게 질문해오는 관장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아니. 아니야. 너 근데 정말 여자친구 있어?”
“어? 아니. 그러니까. 여자친구. 진짜 있는 건 아니고.”
반장의 말에 당황한 관장이었다. 게임 속 인물을 여자친구라고 말했다는 걸 들키면 더 부끄러울 거 같아서 얼버무리고 싶은데 계속 캐묻는 모습에 당황했다.
“그럼 없는 거야?”
“그러니까, 뭐, 여자 캐릭터니까. 여자친구 긴하지.”
“캐릭터?”
어찌저찌하여 분명히 청소를 끝내고 헤어졌어야 했는데, 두 사람은 같이 걷고 있었다. 반장과 관장은 방향이 같았다.
“반장 너 이 길로 다녀?”
“원래 큰길로만 다녔는데 오늘은 너랑 같이 있으니까 괜찮아서.”
그에 반대로 항상 집에 빨리 도착하고 싶었던 관장은 샛길로만 다녔다.
“아. 나랑 같이 걸으려고?”
반장은 훅 들어오는 멘트에 당황했다.
“뭐, 꼭. 아니 뭐 왜? 어쩌라고.”
당황한 반장의 갑작스러운 공격 같은 말투에 황당한 관장은 갑자기 멈춰 섰다. 그러자 반장이 역으로 당황해서.
“아니, 나는 그러니까.”
자신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관장의 모습에 다시 두 볼이 붉어졌다.
쿵.
쿵쿵.
심장이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하자 반장은 어찌해야할지 모르는 상태가 됐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관장은 자신이 아닌 반장의 뒤에 있던 문구점 광고문구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뭐야. 나 보는 거 아니었어?”
“어?”
“아. 아니야. 저게 뭔데? 삼국지?”
새로 나온 삼국지 게임 홍보 문구였다.
“이게 뭐야.”
관장보다 먼저 반장이 앞에 나서서 봤다. 관장이 이런 걸 좋아했구나 싶었다.
“삼국지 좋아해?”
“사랑해.”
순간 겨우 잡고 있던 마음을 놓쳐버린 반장이었다. 홍당무 그 자체가 되어버린 반장은 자신의 얼굴이 분명 얼굴뿐만 아니라 손도 발도 다 빨개졌을 거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건 누가 봐도 그랬고, 관장이 봤을 때도 그랬다.
“어 반장 괜찮아? 왜케 빨개져서. 혹시 너도 삼국지 좋아해?”
반장은 이제서야 어쩌면 관장은 조금은 멍청한 과에 속하는, 왜 소년물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그런 순진무구한 바보새끼라는 게 짐작이 갔다.
그전까지는 절대로 벗겨지지 않는 절대방어 콩깍지가 씌어서 그런 게 안보였다. 그런데 그런 관장이라고 해도 싫아지거나 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신기했다.
하필 내가 좋아하는 애가 그런 바보라니,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오. 이런 스타일은 어떻게 꼬셔야 되는 거야? 싶었다.
“삼국지?”
삼국지의 삼자도 몰랐던 반장이었다.
“어. 좋아해.”
하지만 좋아한다고 말했다. 관장을 보고서 또 말했다. 관장의 두 눈을 똑 바로 바라보았다. 두 눈에는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저 눈에 박힌 자신의 모습이 관장의 마음에도 박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반장이었다.
“좋아해. 아주 많이.”
“오. 언제부터?”
언제부터라는 말을 들으니 언제부터인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본다. 그러면 항상 처음 첫 순간에 닿게 된다.
“처음부터.”
“오. 나돈 대. 나는 처음부터가 아닌가? 태어나기 전부터니까?”
모태 삼국지 오타쿠. 그게 바로 관장이었다.
아닌 걸 알지만, 관장의 말에 나도 너 좋아해. 라고 들리는 반장은 관장의 손을 잡고 싶어지는 욕심을 겨우 끊어내고 있었다.
“우와. 그럼 우리 이거 같이 해 볼래?”
관장은 새로 나온 게임, 퍼즐 삼국지를 가리켰다.
최초 온라인 서바이벌 삼국지.
수백조각으로 나눠진 삼국지 한나라. 대륙.
그 조각 하나로 중국을 통일하는 게임이었다.
너무 설렘에 미쳐버린 채 나대는 심장을 부여잡기 벅찬 반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자 운동처럼 끄덕이는 고개를 하는데 관장이 반장의 손을 잡았다.
“좋아. 우리!! 천하 통일의 대업을 함께 이뤄보자!”
조각을 모아 대륙을 통일하는 온라인 삼국지.
그 안에는 두 사람의 꿈이 있었다.
천하 통일의 꿈과, 그리고 그 천하를 위해 오래전 인물들이 유비나 조조, 손권 등을 따랐던 충심과 같은 마음인, 관장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반장의 마음이었다.
약간 다른 동상이몽이었으나. 과정과 결과를 함께 공유하며, 두 사람은 온라인 퍼즐 삼국지의 천하통일을 위해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