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 378
장여빈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장여빈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이름: 여진서
제목: 진서의 고백
“야, 진서. 너 또 역할 대타 맡아 줄 수 있어?”
“이번에도?”
여진서는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살짝 내려놓으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7공주’라고 불리는 이들의 그룹에서 정작 진서는 다른 여섯 명을 빛나게 해주는 뒤편의 무대 장치 같았다. 나머지 여섯 명, 즉 세영, 아린, 주은, 소린, 유주, 아현은 언제나 스포트라이트 한가운데 있었다. 예쁘고, 매력적이고, 재능 있는 ‘7공주’ 중에서도 그 여섯 명에게만 끝없는 인기와 고백이 몰려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들의 관심은 단 한 명의 남자에게 쏠렸다. 바로 옆반의 한웅이었다. 문제는, 진서가 알게 된 바로는 한웅이 정작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게 아이러니했다. 모두가 한웅에게 빠져있는데, 정작 한웅은 늘 진서를 둘러맴돌고 있었다.
“진서야, 한웅이한테 얘기 좀 전해줄 수 있어?”
아린이 두 손을 모아올리며 간청했다.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주은, 소린, 유주, 아현까지 일제히 진서 쪽으로 손을 뻗었다.
“나도! 나도!”
“나 이번에 수학 문제 핑계로 접근하고 싶은데, 자연스럽게 좀 만들어줘!”
“난 축구 응원하러 갈 때 따라가게 좀 해줘! 단둘이 가면 어색하니까.”
“체육대회 때 한웅이랑 짝지어서 게임하는 거, 선생님께 네가 살짝 얘기해줄 수 있어?”
여섯 명의 요구가 폭탄처럼 쏟아지자, 진서는 머리가 아파왔다. 더 난감한 건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복도에서 기다리던 다른 남자애들이 매일같이 진서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
“저기, 진서야.”
오늘은 2학년 무리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이거 세영이한테 전해주면 안 돼? 내가 직접 주긴 부끄러워서…”
그가 내민 건 예쁜 포장지에 담긴 초콜릿 상자였다.
뒤이어 또 다른 남자애는 초콜릿보다 더 큰 상자를 들고 왔다.
“아린 선물을 여기 맡길게. 꼭 좀 전해줘.”
그뿐만이 아니다. 수학 공부 열심히 한다는 주은에게는 어제부터 사탕 바구니를 부탁하는 남자애가 나타났고, 농구 동아리 선배는 소린에게 꼭 전달해달라며 예쁜 리본을 단 엽서를 건네줬다. 심지어 유주에게는 편지를, 아현에게는 헤어핀을 전달하고 싶어하는 남자들도 있었다.
결국 진서는 한웅에게 다가가려는 여섯 명의 부탁뿐 아니라, 그 여섯 명을 향한 다른 수십 명 남자들의 ‘고백 대행 서비스’까지 도맡게 된 셈이었다. 이쯤 되니 진서는 ‘7공주’가 아니라 ‘7공주 매니저’나 ‘소통 허브’로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었다.
“진서야.”
유주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다소 내성적인 편이라, 한웅에게 다가갈 기회가 쉽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진서에게 부탁할 게 많았다.
“혹시, 한웅이 이번 주말에 농구장 갈 거라며? 너도 간다는데, 맞아?”
“응. 생각해보겠다고 했는데… 갈까 해.”
사실 한웅이 먼저 제안했다. “주말에 농구장 갈 건데 응원해줄래?”라는 말에 진서는 확답을 하지 않았지만, 이젠 가는 게 당연해진 분위기였다. 그리고 남자애들이 준 초콜릿, 사탕, 선물들을 가방 가득 들고 다니며 ‘7공주 배송 서비스’를 운영하는 꼴이 되었다.
주은이 팔을 흔들며 말했다.
“진서야, 분위기 파악해주면 나중에 나도 그 농구장 갈 때 초콜릿 좀 전해줄래? 한웅이 친구들 중 누구에게 전할 게 있을 것 같아.”
“에이, 그렇게 간접적으로 숟가락 얹지 마. 내가 먼저 부탁했어!”
“나는 공부 핑계로 다가가려고 했지!”
세영이 발끈하고 아현도 나섰다. 그러자 소린이 나섰다.
“체육대회 때 다리 좀 놔줘.”,
“한웅이 친구들에게도 간식 돌려서 분위기 풀어달라.”
아린의 요청이었다.
진서는 점점 골치가 아파졌다. 남자들은 남자들대로 선물을 진서에게 맡기고, 이 여섯 명은 또 한웅에게 다가가려는 밑작업을 진서에게 부탁하고 있었다. 게다가 한웅은 자꾸만 진서에게 호감을 표현하니,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 일단 상호보완적 도움을 강조하자.’
진서는 진지하게 여섯 명과 마주했다.
“알았어, 도와줄게. 대신 너희도 나 도와줘야 해.”
“네가 뭘 필요로 하는데?” 아린이 물었다.
“내가 너희 부탁 들어줄 때마다, 나중에 내가 소개팅을 하거나 이벤트를 할 때 협조해줘. 예를 들면, 받은 초콜릿을 네가 받은 걸로만 하지 말고, 초콜릿 준 남자애한테도 고마운 티 좀 내주고... 그러면 전하는 내가 덜 힘들잖아?”
“소개팅? 진서야, 너도 마음에 드는 사람 있어?”
주은이 놀랐지만, 진서는 능청스럽게 웃었다.
“그야 뭐, 혹시 모르니까. 나도 누군가 나를 좋아할 수도 있고, 나도 그걸 활용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지.”
한편, 한웅은 복도 건너에서 7공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 진서를 주시하며, 어떻게 하면 그녀에게 마음을 고백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었다. 그가 모르는 사실은 진서가 이미 수십 명의 고백과 선물을 중간에서 처리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는 것이다.
며칠 뒤, 강당 옆에서 마주친 한웅이 말했다.
“진서야, 주말에 농구장 갈 거지?”
“응, 갈까 해.”
“친구들도 불러도 돼. 너 편한 대로.”
진서는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몇 명 데려갈게. 대신 너도 나만 신경 쓰지 말고, 내 친구들이랑도 자연스럽게 지내줘.”
한웅은 놀란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저녁, 7공주 단톡방은 또다시 난리였다.
세영: 진서야, 한웅이 농구장 간대? 확실해?
진서: 응, 너희도 와도 된대.
아린: 사랑해, 진서야!
주은: 운동복 예쁘게 챙겨야지.
소린: 응원문구라도 들고 갈까?
유주: 진서가 정말 다리 역할 충실하네.
아현: 끝나고 밥 같이 먹을 수 있을까?
여기에 다른 남자애들의 부탁까지 쏟아지는 바람에 진서는 주말에 갈 때 양손 가득 초콜릿, 사탕, 편지, 선물을 들고 있어야 했다. 마치 크리스마스 산타클로스가 된 기분이었다.
주말이 되자, 농구장으로 향한 7공주 일행 앞에는 한웅과 그의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섯 명은 각자 한웅에게 말을 걸 기회를 얻었고, 진서는 적당히 중재하며 모두를 챙겼다.
주은에게 온 사탕 바구니는 맡아뒀다가 타이밍 봐서 전해주고, 아린에게 온 초콜릿은 경기 뒤 다 같이 나눠먹게 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세영에게 온 엽서는 살짝 바람에 흩뿌려진 척 재미를 주었고, 소린에게 준 응원 리본은 살짝 한웅 옆에 앉아있던 친구에게도 건넸다.
유주와 아현에게 온 편지와 선물들은 깔끔하게 전달해주며 모두가 즐거워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한웅은 그런 진서를 주시하며 한편으론 감탄했다. 모두를 배려하는 진서의 모습은 특별했다. 그녀는 단지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관계를 엮는 힘이 있었다. 그래서 한웅은 경기가 끝난 뒤 용기를 내어 다가왔다.
“오늘 정말 고마워. 네 덕분에 다 같이 즐거웠던 것 같아.”
“나야말로, 고맙지.”
“혹시 다음 주말에… 너랑 단둘이 어디 갈 수 있을까?”
그 순간, 진서는 뒤편에서 여섯 명의 공주들이 자신을 지켜보는 걸 느꼈다. 동시에 가방 안에는 여전히 전달하지 못한 소소한 선물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친구들, 그리고 수많은 남학생들 사이에서 메시지와 마음을 전하느라 분주했던 자신을 떠올리며, 진서는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글쎄, 한웅아. 다음 주말 일은 천천히 생각해보자. 오늘은 모두가 즐거웠으니, 그걸로 충분해.”
한웅은 약간 아쉬워했지만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섯 명의 공주들은 안도하는 동시에 신기해했다. 모두가 진서를 거쳐가며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진서는 그 사이에서 온갖 감정과 관계를 조율하고 있었다.
다음번엔 어떤 고백이나 부탁이 올지, 어떤 초콜릿이든 사탕이든 선물이든 다시 진서의 손에 쥐어질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진서는 더 이상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라, 수많은 마음들이 오가는 장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주인공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진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날도 멀지 않았으리라.
얼마 지나지 않아 진서는 스스로도 예상치 못한 감정을 깨닫게 된다.
"어, 우리 학교에 저런 애가 있었나?"
처음 느껴지는 마음이었다. 그동안 한웅의 마음을 몰랐던 게 아니라 한웅이 멋있다고는 인정하지만 느껴지지 않았던 마음. 그걸 한웅과 함께 다니는 친구로부터 느꼈다.
바로 한웅의 절친인 영찬에게 마음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영찬은 조용하고 배려 깊은 성격으로, 한웅이 경기에 집중할 때 뒤에서 물병을 챙겨주고, 다친 친구를 대신해 응급처치를 해주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거 어떡하지?’
진서는 혼잣말을 삼켰다. 자신을 좋아하는 한웅과, 그 한웅의 친구를 좋아하게 된 자신. 더 골치 아픈 건 이번엔 진서가 여섯 명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도 도와줬잖아!"
진서는 그동안 자신이 도와줬던 일들을 주마등처럼 떠올렸다. 엄청나게 많았다!
"안 도와주면 7공주 탈퇴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마음에서 꺼내와 입밖으로 꺼낸 다는 게 쉬운 게 아니었다. 그동안 친구들은 굉장한 용기를 냈다는 걸 느꼈다.
"음."
그런 우물쭈물하고 있는 진서를 평소 눈치가 빠른 편인 주은이 먼저 눈치를 챘다.
“진서야, 요즘 왜 그렇게 영찬이 쪽을 자주 봐?”
“설마, 네가 영찬이 마음에 드는 거야?”
아린은 생긋 웃으며 물었다. 세영, 소린, 유주, 아현 모두 놀랐다.
“뭐야, 진서도 연애할 사람이 생긴 거야?”
장난스레 진서를 쿡쿡 찌르는 친구들이었다.
진서는 얼굴이 달아오른 채 작게 대답했다.
“어... 그러니까, 나도 좀 도와주면 안 될까?”
에이 모르겠다라는 생각으로 질러버렸다.
이번에는 여섯 명이 서로 눈길을 주고받았다.
지금까지 진서는 항상 자신들을 위해 다리를 놓아주었는데, 이제 진서가 도움을 청하는 입장이 되었다. 여섯 명이 미묘한 웃음을 교환했다. 이건 또 다른 로맨틱 코미디의 시작이었다.
“좋아, 진서야. 우리도 너 도와줄게.”
“너도 우리 도와줬잖아. 이젠 우리가 갚을 차례야.”
그렇게 ‘7공주’는 새로운 작전에 돌입했다. 이번엔 진서가 영찬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여섯 명. 한웅에게 다가가는 것도 중요했지만, 이제는 진서의 사랑을 이뤄주는 새로운 미션이 생긴 셈이다.
모두가 진서 덕분에 기회를 얻었듯, 이번엔 진서를 위해 기회를 만들 차례였다. 꼬이고 꼬이는 관계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들어주는 이들은 다시 한번 힘을 합쳤다. 더더욱 복잡해진 로맨틱 코미디 속에서 진서는 비로소 자신도 한 명의 당당한 주인공으로서 무대 위에 서게 되었다.
“어쩐지, 실패하면 죽을 것 같아.”
이토록 마음이 뛰는 날이 자신에게 찾아올지 몰랐다. 이왕 낸 용기, 성공까지 시켜서 환희까지 즐기기로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