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 380
윤은혜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윤은혜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이름: 은설희
제목: 걱정은 시간에 말라 버리고
“걱정하지마.”
설희는 모든 걸 잃은 걸 같았지만, 그래도 작은 위로를 해주는 친구로 인해 아직 세상은 끝나지 않았다고 느꼈다.
“고마워.”
고맙다는 말 밖에는 따로 할 수가 없었다. 친구가 설희를 안아주었다. 친구의 따뜻한 품을 느끼며 세상도 이러면 좋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처음 의사가 되기로 결정했던 날, 이런 날들이 많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생각보다는 죽었다.
죽는 사람도 많았지만, 병원에 와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대한민국, 아니 세계 최고의 의사라고 하는 정화영 교수님 밑에서 컨트롤 C, V를 하며 능력을 전수받았다.
화영이 8년의 투병생활을 버티다 결국 하늘로 간, 설희의 환자에 대한 보고를 받은 것도 그쯤이었다.
“설희 선생님은?”
한 때는 그냥 제자, 지금은 존중하는 의사가 된 설희였다. 하지만 걱정이 됐다. 처음 설희를 가르칠 때 가장 먼저 가르쳤지만, 그 부분만큼은 낙제생 수준이었다.
바로 정을 주는 일이었다. 의사는 환자를 정확하게 진단하는 이성이 필요할 뿐이지, 환자를 생각하는 감정은 없어야 한다고 했다.
물론 사람이라면 어떻게 그럴 수만 있을까?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그래도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 차이였다.
설희는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그런 설희를 병원 사람들이 모두 응원했지만, 아직은 설희에게 닿지는 못했다.
환의 웃던 모습이 생각났다.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자신의 스승이었던 화영은 감히 환자에게 괜찮아질 거라는 확신을 함부로 주면 안 된다고 했다.
정말로 괜찮을 수 있을 때, 환자들이 정말로 괜찮아질 때 그때야 그런 말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이건 내 선택이고, 설희와 같은 제자들이 진짜 ‘의사’가 되는 과정 중에 자신의 의사의 길을 선택하면 된다고 했다.
“지금쯤 천국 문 두드리고 계시려나.”
설희는 차오르는 눈물을 닦고,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 전공의를 졸업했을 때 받았던 선물을 받았다.
“어.”
이 선물을 받을 때,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됐던 선물을 오랜만에 꺼냈다. 처음 이 옷을 받았을 때 이래서 그랬구나. 싶었는데 한동안 꺼내입지 않았는데 8년만에 꺼내 입게 되었다.
처음에는 멋진 정장을 보고 마냥 좋아했었는데, 이어지는 화영의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떤 상황이었다.
“장례식장에 입고 갈 옷을 항상 챙겨둬.”
의사가 자신이 수술한 환자의 장례식장에 꼭 가야 하는 법은 없었다. 그리고 시간에 쫓기다 보면 시간을 놓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단순히 수술이 아니라 시간을 오랜 시간 함께 보낸 환자를 떠나 보낼 따가 온다고 했다.
그럴 때는 혼자 울분을 삼키는 것보다 장례식장에 갔다 오는 게 훨씬 좋을 거라고 얘기했다.
설희는 화영이 전공의 졸업 때 사준 정장을 입고 장례식장을 찾았다. 그곳에 적힌 세 글자의 이름. 언젠가 저 자리에 적힐 거라는 건 사람의 운명으로 거부할 수 없는 일이긴 하였지만, 최대한 늦추고 싶었다.
그러나 아직은 자신이 부족해서 그러지 못했다.
설희는 장례식장에 찾아가는데, 왠지 모를 두려움이 있었다. 가족들이 자신을 발견했을 때 원망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오히려 고마워 했다.
“선생님, 와주셔서 감사해요.”
설희의 두 손을 꼭 잡은 환자의 가족들이었다. 그들도 알았다. 설희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 했는 지 알았다. 그들은 설희에게 고마워했다. 마지막까지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줘서 고마워했다.
이미 몸에 수분이 없을 정도로 눈물이 흘렀던 설희는 다시 한번 눈물을 쏟아냈다. 설희의 눈물에 가족들도 다시 울었다.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이 서로에게 오갔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을 만나는 일이었다.
“제가 좀 더 최선을 다했어야했는데.”
미안합니다 라는 말을 하려는 설희에게 가족들은 충분히 최선을 다해줘서 고맙다고, 선우도 다 알 거라고, 선생님에게 늘 고맙다고 말했다고 설희의 등을 토닥거려주었다.
오래전 쭈뼛쭈뼛한 모습으로 장례식장을 찾았던 그 날의 다짐을 실패했다. 다시는 자신의 환자를 잃지 않겠다고 맹세했었는데, 결국은 8년만에 다시 환자를 잃고 말았다.
사실 이 기록만으로 대단한 기록이었지만 설희는 그걸로 만족하지 못했다.
설희가 장례식장에서 나오자 화영이 설희를 찾았다.
“그 옷은, 오래됐는데.”
“아직, 입을만해요.”
24시간이 모자라게 바쁘게 지내다 보니까, 살이 붙을 일도 없었다. 오히려 체중이 줄었는지 옷이 커 보였다.
“새로 하나 사야지.”
“아직은 괜찮습니다.”
“쓸데없는 고집은, 늘.”
“누구한테, 배웠는데요.”
화영에 있어서도 설희는 영향력이 엄청났다. 원래는 의사가 수술만 잘하면 돼지, 이런 생각으로 윗대와 충돌하며 교수자리도 거의 위태위태했다.
그러나 화영은 설희를 만나고, 설희 같은 의사가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이지 않기 위해 길을 닦아 놓기 위해 정치를 시작했을 정도였다.
“그래, 잘 배웠으면 됐다. 그래도 옷은 하나 사자.”
화영은 멋대로 설희를 데려가 새로운 옷을 사줬다. 한 벌이 아니라 여러 벌이었다. 정장 뿐만 아니라 여행 갈 때 입을만한 옷도 함께 였고, 캐리어도 큼직하게 하나 사줬다.
“고향이 강릉이었나?”
“강릉 위에 양양..이요.”
“좋은데네, 요새 핫하잖아?”
“그런 것도 아세요?”
“내가 너보다 세상 물정 더 잘 알 거 같은데.”
커피 잔을 내려놓는 화영은 설희에게 오랜만에 쉬다 오라고 권했다. 2개월 정도만 쉬다 오라고 했다. 그동안 너무 쉼 없이 달렸다고 의사도 사람이라고 쉼이 없으면 안 된다고 했다.
“어, 그 저 좌천당하는 거예요?”
“풉. 웃기네. 설희 니가 그런 애기도 해?”
화영은 설희가 어렸을 때 자신을 꼭 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혀 그런 얘기를 할 줄 몰랐다. 자신이 정치에 관심을 가질 때도 부원장의 이권 다툼에 억지로 끼여 누구를 수술할지를 정해야 하는 일에서 자신에게 배정된 환자가 아닌 당장 수술이 필요한 환자를 맡았을 때 처음 알았으니까.
지금의 설희는 화영 덕분에 그런 일을 전혀 겪지 않고 있었다. 화영은 현재 다음 부원장 후보급으로 떠오르는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네. 발 없는 말이 예전엔 천리만 갔지만 요즘에는 높이 오르기도 하더라고요.”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을 다투는 이슬병원이었다. 현재 화영과 설희와 같은 인재들뿐만 아니라 엄청난 투자로 2위를 다지고 있었고 곧 1위를 넘보고 있었다.
“좌천은 아니고, 더 힘내서 더 높이 더 멀리 가라고 잠시 숨을 고르라는 거야. 말 그대로.”
“하지만, 그럼 제 환자들은 요?”
“그 말 나올 줄 알았다. 네가 믿는 동료들과, 나한테 맡겨.”
“음.”
“지금 당장 메스 들 수 있어?”
“당연하죠, 저 의사인대.”
“그래. 의사지, 그전에 사람이잖아. 8년동안 하루도 안 쉬고 일하는 의사.”
설희는 문득 화영의 말을 듣고 자신이 그렇게 오랫동안 쉼없이 달려왔구나 느꼈다. 하지만 지친다는 느낌은 잘 몰랐다.
살리고 싶었으니까. 아파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아팠으니까.
그래서 더 노력할 시간이 없다는 게 아쉬웠다.
“그러면. 일을 하자. 양양이면 딱 좋네. 거기 강릉에 우리 이슬대학 연구실 있는 거 알지?”
연구를 왜 강릉에 짓냐라는 의사들의 불만이 있었던 때가 5년 전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휴가도 그렇고 여러가지로 의사들을 만족시키는 결과물이 되었다.
“어. 네.”
“거기 조교로 잠깐 가 있어.”
“네?”
이건 좌천이 아닌 승진이었다. 처음에는 아무도 가지 않겠다고 지방에 내가 왜 가냐고 말했지만, 그곳에 한국 병원뿐만 아니라 세계 굴지의 의료업계, 그리고 의사들이 종합하여 연구에 참여하면서 이제는 의사들의 꿈이 되기도 한 장소였다.
“그렇게까지 발전할 줄은 몰랐는데, 대학원을 그곳에 짓는다고 최근에 정부도 그렇고, 우리 병원도, 재단도 힘을 주고 있는 거 알지? 대한민국 10대 의사라고 불리는 차기 유망주인 네가 그곳에 힘을 좀 보태줘라.”
“어…”
설희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지만, 곧 화영의 제안에 승낙하고 양양으로 가게 됐다. 그곳에서 조교로 연구를 하면서 잠시 휴식을 가지러 왔다.
그래도 가끔 급한 환자가 있을 때, 언제든 실무 감각을 놓지 않기 위해 수술에 불러 주기도 했다.
양양에 오랜만에 도착하자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설희를 맞아주었다.
“설희야! 오랜만이다. 더 예뻐졌네?”
이제는 아이의 엄마가 되어버린 친구들도 있었다. 시간의 흐름이라는 게 이토록 치열했다.
마침 전문의 합격소식이 들렸다. 이제 양양에서 개원을 해도 됐지만 연구시설에 연구를 하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야. 우리 지역에서 의사 선생님이 나오다니. 그것도 외과! 멋지다!”
설희는 친구들의 환호를 받으며 양양에서 다시 적응을 시작했다. 오랜만에 오니 낯설었따.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거의 20년만에 찾아온 양양은 참 많은 것들이 변했다.
특히 여름이면 전국적인 명소가 되어 젊은 남녀가 찾아온다고 했다.
그런 효과 때문에 연구시설도 핫 하게 된 걸까 추측해봤다.
“역시 사람이 모여야 하나.”
자신이 다닐 연구시설에서도 인사를 하는데, 새롭게 짓고 있는 건물들이 거의 새로운 신도시를 만드는 규모였다.
이곳에 새로운 의료관련 연구시설이 들어선다고 하는 게 실감이 났다. 세계적인 규모라고 하니까 신기했다.
“왜 양양일까?”
“그것이 우리도 궁금해.”
많은 이들이 왜 세계 최대 규모의 의료연구 시설을 양양에 지을 까는 의문이었다. 아무도 그 답을 알지 못했다.
문득 책에는 늘 답이 있다는 생각이 떠올라 자신이 어렸을 때 다녔던 도서관에 가봤다. 이전에 설희가 알고 있는 도서관은 없었다.
“어, 완전히 바뀌었네.”
전혀 새로운 건물로 새롭게 바뀐 도서관이었다. 양양국제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거의 대학교급 수준으로 크게 변해 있었다.
아무래도 의료연구시설이 옆에 있다 보니까 그 영향이 큰 것 같았다. 일년에 만 명이상 나오는 의료생들이 거의 이곳에 와서 연구를 했다.
처음 2년은 공통된 연구를 통해 배우고. 이후 각 대학교로 흩어졌다. 처음부터 대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이들도 있었지만, 이곳의 힘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음.”
자기가 처음 의사가 될 때만 해도 의대생은 3천명 정도의 수준이었는데 이제는 그 3배에 달하는 의사가 탄생하고 있었다.
때문에 의사들끼리의 외부로 발설하지 못할 많은 것들이 생기긴 했지만, 사람들이 살아가기에는 더욱 좋아진 측면은 분명했다.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거겠지.”
자기도 화영처럼 슬슬 정치를 배워야 하는 걸까 싶었다. 일단 전문의부터 따고 생각해보자고 했는데, 막상 이렇게 쉬게 됐을 때 전문의가 되었다.
여기서 이제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한 번 살펴보고 이제는 어떤 길을 걸을 지. 또는 뛰어갈지 고민해보게 되는 계기가 됐다.
그때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어.”
설마 했는데, 늘 설마는 정말이 됐다.
황급히 자신의 모습을 벽 뒤로 숨기는 설희였다.
“정우?”
얼마전 친구들을 만났을 때, 정우도 얼마전에 양양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접했다고 했다. 이혼 후 다시 양양에 어린 딸과 돌아왔다는 소식이었다.
“너도 괜찮으면 같이 들을래?”
정우와 함께하는 독서모임이 있다고 친구가 소개했는데, 됐다고 거절했는데, 저렇게 마치 중고등학교의 그때처럼 책을 읽는 모습을 보니 다시 붉어진 볼이었다.
독서모임, 들어볼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딸?
뭐 어때 정우 닮으면 예쁘겠지 하는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