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 381
송필근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송필근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이름: 권형근
제목: 희망의 전조
“사장님, 제발 한 번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자존심 하나로 살아가던 형근이었지만,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깟 자존심 따위 버려도 그만이었다.
그러나 사장은 형근의 손을 뿌리쳤다. 사실 사장도 형근에게 무릎 꿇고 제발 나 좀 살려줘 나도 좀 살려줘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짓눌린 무게에 깔린 마음이라 그렇게 할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그렇게 해고가 되고, 지나가는 차들의 하향등만 비추는 다리에서 아득하게 심연 같은 강물을 바라보았다.
저 아래에서 떨어지는 게 지금 생각난 유일한 탈출구라니, 정말 갈 때까지 왔구나 싶었다.
다리 난간에서 내려와 기대어 주저앉았다.
눈물이 주룩 내렸다. 그때 하늘에서 이 눈물을 같이 슬퍼한 걸까, 눈도 아니고 비도 아닌 것이 내렸다. 진눈깨비 형근의 옷을 적셔가자 형근은 마치 이 하늘에서 내리는 하얀 깨비들이 자신의 처지와 같다 생각했다.
“제발.”
제발 다시 살아갈 희망을 다시 달라고 하늘에게 빌었다. 이런 진눈깨비가 아니라 구원의 빛을 내려달라고 빌었다.
하지만 하늘에 닿지 않겠지, 그렇게 실패의 연속적인 인생이 끝나길 바랐다. 오죽하면 죽는 것마저 실패한 형근이었으니까.
다음날, 자신은 두려워, 또 남겨놓은 가족들이 아련해 실패했던 죽음을, 자신을 자른 사장은 성공했다는 소식을 알게 됐다.
원망하던 마음이 측은으로 바뀌어 장례식장으로 가는데, 조문객들이 죄다 빚쟁이였다. 자기 빚은 갚고 가야지 왜 이렇게 가버리냐는 원망이었다.
“…”
이렇게 힘든 사정이 있으면서 자신에게 한 마디 안했을까. 10년을 함께 일했는데, 늘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서 사정이 어려워도 곧 괜찮아지겠지 생각하고 버텼는데 그게 안됐다.
사람이 워낙 착해서 사장을 등쳐먹은 쓰레기들이 넘쳐났다. 언젠간 돌아오겠지 싶었는데, 그게 다 같이 힘들어지는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자 도저히 국부가 안됐다.
제 아무리 고무줄이라도 너무 늘어나고, 화재라던지 외부의 요소가 크면 돌아가지 못했다.
나름, 한때마다 존경했던 사장님의 말로가 그랬다.
마치 위인들의 타락을 직접 목격한 것과 같은 충격을 받았다.
“사장님..”
아직 자신의 나이도 2분의 1도 안 되는 어린 아이들이 두려워 떨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1년은 밀린 월급을 받지도 못했으면서 상주 노릇을 하는 형근이었다.
“볕 뜨는 날 올 겁니다.”
이제 사장님은 그런 날이 와도 다시 햇빛을 볼 수 없다. 그래도 그런 날이 올 거라고 희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신은 아직 너희를 버리지 않았다고 그의 피를 이어받은 아이들에게 말했다.
이 작은 아이들과 아내를 두고 세상을 등져야만 했던 사장님의 마음을 이해했다. 바로 어제까지 만해도 자신도 그랬으니까.
그러나 필름처럼 밀려오는 가족들 생각에 형근은 차마 실현하지 못하고 실패했는데, 사장님은 그렇지 못했다.
“…”
네모난 프레임 속에 사장의 웃는 얼굴이 보였다. 무슨 말을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데 전할 말이 없었다.
고맙다는 말은 자신의 처지와 어울리지 않았고, 미안하다는 말도 그랬다.
그렇고 원망만 하기엔 불쌍했다.
“잘 가쇼.”
할 수 있는 말이 이거 밖에 없었다.
형근은 장례식장에서 사장님의 영정에 마지막 인사를 건넨 뒤, 아무 말없이 조문객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낯빛들은 마치 자신을 비추는 거울 같았다. 불과 어제만 해도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려 했던 사람, 마치 내일이 있긴 한 걸까 회의에 젖었던 사람.
그런데 어느새 형근은 사장님이 남긴 가족들과 함께, 다시 살아내야 할 ‘내일’을 고민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세상을 무서워하며 안쓰럽게 우는 모습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자기 집에도 갓 자라나는 새싹 같은 아이들이 있었다. 내가 힘들면 저들도 힘들어질 테니, 지금 할 수 있는 건 버티는 것밖에 없었다.
그렇게 형근은 아이들의 작은 손을 잡고 사장님의 아내 곁에 서 있었다. 장례가 끝나자 형근은 무너진 듯 주저앉았다. 이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 하나 이 혼란을 대신 책임져줄 사람은 없었다. 사장님의 몫까지 부담을 지게 된 형근이 선택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살아야죠.”
장례가 끝나자마자 형근은 마음을 다잡았다. 공사판부터 청소용역, 심지어 심야 택시 운전까지 닥치는 대로, 24시간을 쪼개어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남들은 미쳤다고 비웃었지만, 그 조롱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일해야만 했다. 사장님의 수십억 빚까지 덤으로 껴안고, 그 가족들조차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새벽 3시가 되면 시멘트 자루를 들쳐 메고, 아침 9시부터는 택시 운전을 했다. 짬을 내 쉬는 건 차를 주차한 뒤 잠깐 차에서 눈을 붙이는 게 고작이었다.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피로감에 눈도 제대로 못 뜰 때가 많았지만, 그럴수록 아이들 생각을 떠올렸다. 그때마다 기묘하게 힘이 났다.
그런 형근의 사정을 알고 누군가 인터뷰를 따고 싶다고 찾아왔다. 어느 지방 케이블채널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며, 형근의 ‘두 가족 부양기’를 담아내고 싶다고 했다. 그 제작자는 처음에 서로 예의를 갖추느라 어색해 했지만, 점차 진심으로 형근을 응원했다.
“제 다큐가 방송에 나가면, 형근 님의 이야기가 많은 이들에게 힘이 될 거예요.”
그 말이 헛소리처럼 들리지 않았다. 사장님처럼 무너져버린 이들이 한 사람이라도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희망을 얻길 바랐다. 그렇게 촬영이 시작되었고, 사람들은 형근을 ‘희망을 놓지 않은 사내’라 부르며 응원해주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방송 편성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연락이 왔을 때였다. 형근은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촬영 감독이 병원에 실려갔다더니, 결국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그토록 열정적으로 취재를 하던 사람, 형근에게 “희망을 팔아보자”라며 비유적 농담을 던지던 사람.
그는 끝내 방송을 세상에 내보내지 못했다.
형근은 혼란스러웠다. 죽음을 또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왜 또 이런 일이.’ 만약 하나님이 있다면, 이건 너무 가혹하지 않나. 그는 다시 한번 실낱 같던 의지를 부여잡고 눈을 감았다. 다음 날, 아니 그 다음 날은 어떻게 버텨야 하나. 하고 싶은 생각이 다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하지만, 마치 촛불을 이어받는 것처럼 그 감독의 아들이 형근을 찾아왔다.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는 그 청년은 아직 서툰 카메라를 고쳐 잡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가 못 마친 다큐, 제가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아버지 말 대로 형근 아저씨가 꼭 세상에 희망이 될 거라고 믿어요.”
형근은 그 아이를 보며 사장님의 아이들을 떠올렸다. 아직 너무 어려서 세상이 무섭고, 또 막연한 희망이 뭔 지도 잘 모르는 아이들. 그래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렇게 형근의 다큐멘터리는 다시 기획되었다. 심야 택시에서 손님을 태우는 모습, 공사 현장에서 자루를 나르며 땀에 젖는 모습, 아이들을 재우고 사장님의 부인에게 용돈을 쥐여주며 “걱정 말라”고 무표정하게 말하는 모습까지. 카메라는 형근의 하루를 빠짐없이 담았다. 고단한 삶이었지만, 하루하루 통장에 꽤 큰 빚이 조금씩 줄어드는 걸 보며 형근은 ‘적어도 걸어가는 중’이라는 사실에 스스로 위안받았다.
그러던 중, ‘희망재단’이라는 곳에서 연락이 왔다. 재단 이사장이 방송 관계자를 통해 미리 편집된 영상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말하길,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사람들에게 진짜 ‘희망을 선물’하는 것이라고 했다.
“저희가 형근 씨를 정식으로 고용하고 싶습니다. 직접 할 일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함께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줄 방안을 찾고 싶어요.”
형근은 그 제안에 쉽게 답하지 못했다. 남을 돕고 싶다는 마음은 있지만, 지금도 하루가 48시간이면 좋겠다고 바라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재단 이사장은 오히려 형근을 ‘그 자체로’ 원했다.
“형근 씨는 이미 다른 사람들의 희망이 되고 있잖아요. 그냥 그 사실을 사람들이 더 잘 알 수 있게 도와주세요.”
형근은 자신이 사람들에게 희망이 된다는 말이, 솔직히 아직도 잘 실감 나지 않았다. 그러나 생전에 사장님도, 또 곁에서 함께 울던 동료들도, 지금 그가 걸어가는 길을 지켜보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그냥 마다하기엔 거절이 되지 않았다.
“자,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진짜 쉼을 줄 수 있을까.”
형근은 고민에 빠졌다. 방송으로 보여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카메라 앞에서, 방송 프로그램처럼 “이분을 도와주고 싶습니다!”라고 외친다면, 분명 일시적으로는 반짝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금세 잊힐지도 모른다. 게다가 형근은 쇼맨십이 강한 타입도 아니었다.
그리하여 그는 결정했다. 그의 삶처럼, 힘든 이들과 현장에서 함께 부딪치며 진짜 쉼을 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 낮엔 일하고 밤엔 함께 잠자리를 나눌 수 있는, ‘희망쉼터’ 같은 곳을 떠올렸다. 단순히 밥 한 끼를 나눠 먹는 게 아니라, 서로 누군가가 자신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 시작은 미미했다. 어디서 후원을 받거나 큰돈이 들어온 것도 아니었다. 형근이 스스로 몸을 더 움직여 일을 하며, 조금씩 모은 돈으로 조그마한 하숙집을 얻었다. 그리고 그곳 간판에 ‘희망쉼터’라고 써 붙였다. 처음엔 찾아오는 이가 없었다. 아무도 ‘무료로 남을 돕는다’는 말에 믿음이 가질 않은 모양이었다. 괜히 사기 아니냐며 지나가버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때, 형근의 다큐멘터리가 뒤늦게 나마 방송을 타게 되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촬영 감독의 유작이나 다름없는 작품이었기에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다큐 속 형근은 화려하지 않지만 묵묵히 걸어가는 ‘노력의 얼굴’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 방송을 본 사람들이 하나 둘 ‘희망쉼터’를 찾아오더니 형근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저도 빚이 많아 매일같이 힘드네요.”
“가족에게 잘못한 게 많아 이런 데 올 자격도 없는데… 그래도 이곳에선 아무 말없이 받아주는 건가요?”
형근은 그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건네며 말했다.
“여기선 자격 같은 거 묻지 않아요. 다만, 다시 마음을 붙잡고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의지’만 있다면 충분합니다.”
마치 과거 자신에게 건넸으면 좋았을 말을, 이제는 형근이 직접 전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두 사람씩 쉼터에 머물며 삶을 재정비했고, 다시 밖으로 나가는데 힘을 냈다. 어떤 이들은 초라한 월급봉투를 형근에게 내밀며 고맙다고 인사하기도 했다.
“덕분에 다시 시작할 수 있었어요.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형근은 고개를 조용히 숙였다. 자기는 그저 아주 작은 도움을 줬을 뿐이라고, 오히려 빚더미에 헤매던 자신에게 사람들의 응원이 더 큰 버팀목이 되었다고 말했다.
시간은 흐르고, 희망쉼터엔 점점 더 많은 사연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연 중엔 사장님을 떠올리게 하는 이들도 있었고, 예전 자신처럼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살아온 사람들도 있었다. 그 모두를 품어주기 위해 형근은 여전히 하루를 24시간보다 더 길게 쓰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제는 그 피로가 예전만큼 괴롭지는 않았다. 사장님의 가족들과 자신의 가족들이 모두 모여 짓는 웃음소리가, 한 사람이 마음을 다잡고 다시 세상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는 기쁨이, 형근에게 더 큰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그날도 누군가 다급하게 문을 두드리며 들어왔다. 어디선가 희망쉼터 소문을 듣고 왔다며, 형근에게 말하길
“기댈 곳이 없어 제발 왔어요, 정말 여긴 저 같은 사람 받아준다는 게 사실인가요?”
형근은 문간으로 걸어 나가, 그를 조용히 안아주었다. 그리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럼요. 여기선 누구든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희망을 놓지만 않는다 면요.”
춥고 배고프던 날, 다리 위에서 끝을 생각하던 자신에게 누군가가 이런 말을 건네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제 그 말을 건네는 사람은 바로 형근 자신이었다. 그렇게 또 한 명이 희망쉼터의 문턱을 넘어섰다.
형근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인지 비인지 모를 진눈깨비가 내리던 그 다리 위의 시간을 떠올리면서, 이제는 다른 이들의 빗속을 함께 걸어줄 수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 대로라면, 사장님이 보지 못했던 볕 뜨는 날도, 그리고 스스로도 놓아버릴 뻔했던 그 ‘희망의 전조’라는 것의 실체도, 언젠가 눈앞에 펼쳐질 것만 같았다.
“사장님, 그리고 언젠가 이 길을 걸을 누군가… 우리 아직 포기하긴 이릅니다.”
희망은 이미 시작되었고, 형근은 조금씩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