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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로사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캐릭터 - 394

by 라한
조로사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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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로사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A character who imagines Zorosa's appearance

想象着佐罗莎的出演而塑造的角色

想象着佐羅莎的出演而塑造的角色

赵露思(ZhàoLùsī), Zhao Lus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이름: 장 샤오위(장하율)

제목: 돌아오는 중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장 샤오위. 한국이름으로 장하율로 살고 있는 하율은 자신과 처지가 같은 문구를 조심스럽게 읽어 나갔다.


“그렇네. 낙원은 없네.”


비가 내리고 있는 창밖을 바라본 하율이었다. 잃어버린 고향이 기억들이 가끔은 꿈처럼 찾아오고는 했다. 곳곳에 구멍이 나서 이제는 그런 부분은 모두 상상으로 밖에 채울 수 없었다.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하율이 살고 있는 곳은 생존자들이 있는 곳이었다. 한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미국으로 여행을 갔는데, 미국에서 일어난 재난으로 인해 어딘 지도 모르는 곳에 갇혀버렸다. 처음에 목표는 시애틀이었다. 그러다가 LA로 가고, 워싱턴도 가는 일정이었는데 그 어딘가 에서 조난을 당했다.


“하율, 오늘 불침번은 세 번째야.”


그곳에서 세계 곳곳에서 모인 사람들과 생존을 위해 살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하는 좀비 바이러스로 인해 죽어가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죽지 않았다. 죽어서도 산 채 살아가고 있었다. 아직 좀비화가 되지 않은 사람들을 세상은 생존자가 불렸고, 미국은 그렇게 좀비 바이러스가 덮친 나라가 됐다.


어떤 나라가 살아남았는지 소식은 끊겼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서로 고향은 달랐다. 한국으로 유학으로 갔던 곳에서 만난 남자친구 ‘민우’가 조용히 하율을 끌어안았다. 처음 하율을 본 순간 반해서 몇 개월만에 고백을 했다. 처음부터 하율, 그러니까 중국이름으로 샤오위를 지키기 위해서 모든 걸 다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샤오위?”

“응. 내 이름은 샤오위야.”

“한국 이름도 만들었어?”

“한국이름? 굳이 필요한 가?”


그러나 한국에 살고 있으니까, 한국 이름도 필요한 것 같았다.


“음. 그러면 뭐가 좋을까.”


그때 어제 본 영화에서 사랑받는 여자 등장 인물의 이름이 ‘하율’이었던 것 같고, 샤오위의 뜻도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민우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때는 연인이 아니었지만, 그때부터 샤오위도 민우를 마음에 들어했다.


“하율?”


그렇게 한국에선 조하율로, 그리고 고국 중국에서는 조 샤오위로. 그리고 미국에서는 굳이 세번째 이름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조’로 살고 있는 조 샤오위/하율이었다.


“무슨 생각해?”


가끔 이렇게 암울한 미래 보다는 좋았던 과거를 떠올리는 하율이었다.


“그냥, 조금.”


하율은 손에 들어온 돌을 만지작거리며 민우를 쳐다봤다.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가족들이나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된 줄 몰랐다.


두 사람은 원래의 일행과 떨어진 상태였다. 도심에서 겨우 살아났다. 그 도시가 시애틀이었는지 LA였는지 기억도 희미했다.


비 내리는 폐허 위로 밤이 깊어질 무렵, 하율은 무너진 건물 옥상 난간에 기대 앉아 어딘가 무심하게 빛나던 먼 도시 불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곁에서 민우가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이미 정처 없이 이곳저곳을 떠돈 지가 꽤 되었음에도, 이 땅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는 무력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율, 내일 아침엔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 보자. 도시가 완전히 막혀 있으면… 돌아가야 할 길을 찾아봐야 하고.”


하지만 '돌아갈' 곳이 정해진 사람은 얼마나 될까. 하율은 자신의 고향(중국)도, 한국에서의 집도, 이 미국 땅에서의 본래 목적지도 모두 잃어버렸다. 그 기억들은 파편처럼 조각나 머릿속에서 하염없이 흩어졌다.


민우는 그런 하율을 바라볼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복잡한 마음이 교차했다. 어디든 함께 가겠다고 다짐했지만, 이곳이 언제쯤 끝날지조차 알 수 없었다.


다음 날, 새벽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간에 두 사람은 도시 외곽으로 나갔다. 어느 초소처럼 보이는 군 막사가 보이기에, 혹시나 물이나 식량을 구할 수 있을까 싶어 가까이 다가갔다. 그런데 눈앞에 보인 것은 흔히 보는 경찰이나 군대가 아니었다.


“스톱! 더 다가오지 마라!”


유난히 험악한 표정의 군인들이 총구를 겨누었다. 미군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마크가 조금 달랐다. 민우는 손을 들어 보이며 조심스럽게 외쳤다.


“우린 민간인이에요! 무기가 없습니다!”


그제야 군인들이 총을 내렸다. 헝겊에 그린 듯한 국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아슬아슬한 느낌이 온몸을 휘감은 채, 두 사람은 막사 안으로 안내되었다. 주방위군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한 이들은 연방군과 갈라져 있었다. 이미 이 지역을 독립 구역으로 선포했다고 했다.


“연방 정부는 우릴 버렸다. 저 좀비 바이러스를 통제하지 못한 것도 모자라, 보급품 하나 제대로 주지 못했지. 그래서 이제부턴 우리가 스스로 지킨다.”


주변을 둘러보니, 군인들과 함께 지내는 민간인들도 더러 보였다. 적잖이 지친 얼굴이었지만 어쨌든 최소한의 안전은 보장되는 듯했다. 하율과 민우는 잠시 이곳에서 머물며, 수분과 휴식을 취해볼까 싶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막사 바깥으로는 다시 총성이 울리고, 전투기는 저공비행으로 돌아다녔다. 그리고 곧이어 알게 되었다. 연방군이 이 독립을 용납하지 않고 무장 해제를 위해 들이닥쳤다는 사실을.


“여기 있으면 위험해. 우릴 끼워 주긴 했지만, 결국 총알받이가 될지도 몰라.”


민우가 낮게 속삭였다. 불안감이 하율의 뇌리를 스쳤다. 주방위군 지휘관은 이곳이 안전하다고 장담했지만, 밖에서는 이미 헬리콥터 소리가 크게 맴돌았다. 주방위군에서도 최후의 전투를 준비하는 듯 분주히 움직였고, 일부 병사들은 부대를 이탈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그런 불안한 기운이 절정으로 치달을 때, 갑작스러운 포성이 캠프 지붕을 통째로 날려 버렸다. 연방군의 폭격이었다. 막사 안으로는 연기와 파편이 들어오고, 주방위군은 필사적으로 반격하기 시작했다. 애먼 민간인들도 비명을 지르며 복도를 헤매었다.


“여기서 빨리 나가야 해!”


민우가 하율의 손을 잡고 우르르 달렸다. 총격전 사이로 몸을 낮추고, 쓰러진 가림 막을 뛰어넘었다. 그러자 사방에 좀비들도 몰려드는 소리가 들렸다. 폭발음에 이끌린 괴물들이 무더기로 다가오고 있었다.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그 틈에서 둘은 울타리를 넘어 구사일생으로 탈출했다.


그 뒤 며칠 동안, 하율과 민우는 이제 더 이상 군대나 큰 조직을 의지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보호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을 구속하거나 전투에 휘말리게 할 수도 있었으니까.


어느 날 노을이 질 무렵, 지치고 허기진 채 들어간 마을에서 의외로 잘 정비된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바리케이드가 둘러쳐 있고, 사람들이 가축을 키우거나 텃밭을 가꾸며 살아가고 있었다.


마을 대표인 남자는 아주 반가운 기색으로 두 사람을 맞이했다.


“환영합니다. 여기서는 함께 지내면서 서로 도울 수 있으면 좋지요.”


겉보기에는 평온해 보였으나, 마을 사람들의 눈빛은 결코 한결같지 않았다. 누군가는 의심으로, 누군가는 경계로 둘을 바라봤다.


며칠을 지내보니, 두 사람을 호의적으로 대하는 이도 있었지만 묘하게 하율만을 주시하는 어떤 남자가 있었다. 힘 깨나 쓰는 세력의 일원 같았다. 그는 불쑥불쑥 나타나 말 한마디씩 걸며, 민우가 없는 자리에서 하율을 노골적으로 위협하거나 껄끄럽게 대했다.


“이 마을에서 제대로 살려면 누군가의 보호가 필요할 거야. 네 남자친구 하나로는 힘들지 않겠어?”


그의 시선은 하율을 향해 좋지 않은 욕망을 드러내고 있었다. 심지어 민우를 없애 버리면 하율이 자신 쪽으로 올 거라는 망상마저 비치고 있었다.


위협은 곧 행동으로 번졌다. 그 남자는 몰래 좀비가 득실거리는 뒷길로 민우를 몰아가거나, 식량에 뭔가 이상한 것을 타려 시도하는 등 은근한 계략을 꾸몄다. 하지만 하율과 민우가 늘 함께 움직였기에 큰 피해는 보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밤중에, 민우가 혼자 밖에서 물을 긷다가 그 남자 일당의 습격을 받았다. 너무나 어둡고 적막한 골목에서, 무거운 둔기가 민우의 등을 세차게 가격했다.


“네가 사라져야 그녀가 내 것이 되겠지.”


귀에 거슬리는 비웃음이 이어지려는 순간이었다. 불현듯 날렵하게 뒤에서 뛰어든 하율이 머뭇거림 없이 남자의 손목을 움켜쥐고 비틀었다. 동시에 발길질로 그를 쓰러뜨리고, 민우를 보호하려는 듯 그의 품을 붙들었다.


“다신, 이런 짓 하지 마!”


하율이 힘껏 그 남자를 밀쳐냈다. 지독한 몸싸움 끝에 남자는 쓰러졌고, 주변인들이 몰려와 사태를 수습했다. 마을 대표도 더 이상 눈을 감을 수 없었는지, 그 남자를 끌어내 구석방에 가둬 버렸다. 하지만 이 것으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율과 민우는 결국 이 마을을 떠나기로 결정한다. 우호적인 노인 한 사람이 낡은 지도를 꺼내 주며 조용히 말했다.


“비록 여긴 떠나지만, 너희가 가야 할 길이 있을 거야. LA가 남아 있다면… 조금이라도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지.”


민우가 그 지도를 받으며 작게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뱉어졌다. 그렇게 밤이 되자 둘은 살금살금 마을을 빠져나왔다. 지도에 적힌 길을 따라, 하염없이 발걸음을 옮기던 어느 날 해가 머리 위에서 이글거릴 즈음, 수많은 캠핑카와 RV들이 모여 있는 ‘이동식 마을’을 발견했다. 폐차가 즐비한 주차장 같은 곳에서 아이들이 뛰놀고 어른들이 모닥불 주위를 지키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이곳은 떠돌이들이 모여 만든 임시 정착지 같았다. 두 사람은 혹여 물과 식량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의외로 여기서 한국어가 들렸다. 한 중년 남자가 어설픈 영어로 동네 사람들과 대화하고 있었는데, 두 사람을 보자 반가운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어, 혹시… 한국 분이세요?”


민우와 하율은 서로의 얼굴을 보고 어쩔 줄 몰라 하며 끄덕였다. 이 낯선 땅에서 듣는 자국어는 너무나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 남자는 가족과 함께 이 캠핑카 마을에서 머무르며, 여기 사람들의 차를 수리해 주고 있다고 했다. 소박하게라도 서로 나눠 먹으며 살아간다는 얘기였다.


하율과 민우가 이곳 사정을 물어보니, 그 가족이 이렇게 답했다.


“아직까지는 좀비들 습격이 덜한 편이라 운이 좋은 거죠. 대신 차들이 전부 낡았고, 부품도 부족해요. 정비를 제대로 못 한 차가 많아요.”


민우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저희… LA로 갈 생각인데, 혹시 이동 수단을 얻을 방법이 있을까요?”


그 말을 듣자 가족의 아버지가 구석에 방치된 SUV를 가리켰다. 시동이 고장 난 차라며, 부품만 구해 끼우면 어떻게 든 돌아갈 거라고 했다.


“이 차 손 좀 보면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으니 기다려 보소, 동포를 보는 게 반가워 보내는 건 아쉽지만, 젊은이의 뜻을 꺾는 늙은이가 되면 안 되지.”


이 차를 고쳐서 내주겠다고 한 것이다.


오랜만에 느끼는 동포의 온정이었다. 그날 밤, 민우와 하율은 한국인 가족이 준비해 준 따뜻한 음식과 모닥불 앞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 얘기도 하고, 이 끝나지 않는 재난 속에서의 희망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SUV가 수리되어 시동이 걸리는 순간, 마치 기적 같은 소리가 났다. 두 사람은 작은 손전등과 물, 그리고 약간의 식량을 챙겨 다시 길을 나설 준비를 했다.


“조심해서 가요. LA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혹시나, 그래도 그 큰 도시엔 뭔가 남아 있을 거예요.”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휴대용 컵라면까지 챙겨 준 뒤, 한국인 가족은 눈물을 머금고 두 사람을 배웅했다. 명확한 목적지라고 할 만한 곳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LA라는 이름은 두 사람 마음에 불씨를 피우는 것만 같았다.


SUV가 움찔거리며 출발하자, 민우는 운전대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의자가 푹신하지도 않고, 차창 밖은 폐허나 다름없지만 그래도 바퀴가 도로 위를 달리는 그 감각이 기분 좋았다. 하율이 옆자리에서 구겨진 지도를 펼쳐 들었다.


“왼쪽 고속도로를 타면 LA 방면으로 이어진다고 표시돼 있어. 중간에 다리가 끊겼을 수도 있고, 고속도로가 좀비들로 막혔을 수도 있지만… 일단 가 보자.”


민우가 의지를 다지듯 작게 웃었다.


“그래, 도망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직접 가 보는 거야. 지도가 맞다면… 분명 길이 있을 거야.”


엔진이 힘겹게 으르렁대며 달리기 시작했다. 둘은 뒤창에 비치는 캠핑카 마을을 마지막으로 바라봤다. 밤이 깊으면 언제 또 좀비들이 몰려올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사람들은 거기서 함께 의지하며 살아갈 것이었다.


창문을 열고 들어오는 바람에 하율의 머리칼이 휘날렸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그 문장을 처음 봤을 때만 해도 한없이 무겁고 암울하기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꼭 그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스스로 다짐하고 싶은 마음이 스쳤다.


이대로 무엇도 보장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 길의 끝에서 두 사람만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둠이 깔린 고속도로 위로 차량 헤드라이트가 긴 빛의 궤적을 그리며 쭉 뻗어 나갔다. 먼발치에 보이는 도시의 불빛이 어디서 새어 나오는 건지, 혹은 누구를 위해 켜져 있는 건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앞으로 함께 걸어갈 이 시간이 바로 두 사람에게 작은 ‘낙원’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SUV가 다시금 속력을 내자, 붉게 물든 노을 아래로 잿더미 같은 풍경이 서서히 뒤로 밀려났다. 그리고 하율은 민우의 손을 꼭 잡고, 고개를 들었다. 지도 위에 손가락을 얹으며, ‘LA’라는 한 점에 시선을 고정했다.


“잘못된 길이면 어때. 우리, 함께라면 괜찮아. 그게 낙원이니까. 또 위험하면 다시 돌아갈 수도 있으니까.”


바람이 차창 틈으로 스며들어왔고, 민우는 운전석에서 작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가슴 속에 희미한 기대를 품고, 캄캄한 도로 너머로 이어지는 아직 끝나지 않은 여정을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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