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 397
김경남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김경남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이름: 남정열
제목: 재벌 출신 싸움꾼
“어때? 와 보니까?”
“…”
정열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상태였다.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싸움은 목숨을 건 것처럼 치열했다. 과거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벌어졌던 무한대전이 이런 것이었을까? 치열했다. 지면 죽는다는 각오로 싸움을 했다. 주먹이 날라갔고, 날아 차기가 이어졌다.
“저. 저러다 죽는 거 아니예요?”
“왜. 무섭냐?”
정열은 자신을 이곳에 데려온 형의 모습이 두려웠다.
“너도 이런데 한 번 와 봐야지.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아야 할 것 아니야?”
자신에게 어깨동무를 하는 도진의 팔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압박감이 심한 지하 세계였다.
“어때? 와 보니까?”
“…”
정열은 목이 콱 막힌 것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도 모르겠고, 머릿속은 회오리바람이 휩쓸고 간 뒤처럼 어지러웠다. 처음 들어선 지하 격투장의 냄새부터 가 이상했다. 질펀하게 흘러내리는 땀 냄새, 피비린내, 싸구려 담배 연기까지 온갖 자극적인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심장은 두근거리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뛰쳐나올 듯이 쿵쿵대고 있었다.
정열은 미간을 찌푸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곳에서 일어난 싸움판은 TV나 영화에서 보던 액션 신 같은 게 아니었다. 실제로 살점이 부딪히고 뼈가 부서질 것만 같은 육중한 충돌 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해 졌다.
“저… 저러다 죽는 거 아니에요?”
숨소리조차 가쁜 정열은 겨우 입술을 뗐다.
“왜, 무섭냐?”
옆에서 팔을 걸치고 있는 도진이 능글맞게 웃으며 되물었다. 도진은 이곳의 살벌한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유로운 표정을 유지했다. 그 표정이 오히려 더 섬뜩해 보였다.
“너도 이런 데 한 번 와 봐야지. 돈이란 게 어떻게 도는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아야 할 거 아니야?”
정열은 전혀 상상도 못 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따라오지 않았을 텐데.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호기심이 솟구쳤다. ‘진짜 재벌이라면 이런 곳도 와봐야 한다’는 도진의 말을 반박할 수 없었다.
정열은 대한민국 굴지의 재벌 2세로 자랐다. 아버지의 사업이 커다란 성공을 거두면서, 그의 어린 시절은 호화로운 행사와 파티로 매일이 축제 같았다. 주위 사람들은 그에게 도련님이라며 정중하고 조심스럽게 대했고, 한번 기분이 상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마음을 썼다. 자연스레 돈의 무게를 체감할 일이 없었다. 언제나 원하는 것은 쉽게 얻을 수 있었고, 결국 ‘돈’이라는 단어는 생활 속에서 공기의 일부처럼 존재했다.
하지만 정열은 그게 당연한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이런 뒷세계가 있다는 것도 최근 에야 도진을 통해 겨우 알게 된 것이다. 싫든 좋든, 그날은 처음으로 ‘돈’이란 것이 얼마나 무섭고 또 위험하게 굴러다니는지, 그 생생한 단면을 본 날이었다.
그 뒤 몇 년이 지나고, 아버지 사업의 실패와 함께 정열의 삶은 처참하게 무너졌다. 마치 하늘에서 천천히 떨어지던 깃털처럼 부드럽게 내려앉는 게 아니라, 새총에 팽팽히 끼워졌다가 힘껏 튕겨져 나오는 돌멩이처럼 추락했다. 돈이란 게 한순간에 그렇게 사라질 줄이야. 믿고 의지하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등을 돌리는 광경을 보며 정열은 충격에 휩싸였고, 아버지와 가족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평생 들어본 적 없는 ‘빚’이라는 단어가 그의 삶을 잠식해갔다. 누나의 병원비도 마련해야 했고, 이자에 이자를 물려오는 채무를 감당해야 했다. 그래서 그는 닥치는 대로 일했다. 아침에는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을 하고, 저녁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뛰었다. 배달 일을 같이하는 날이면 휴식이라는 단어는 없어졌다. ‘나는 재벌 2세였다.’라는 말은 우스갯소리처럼 들릴 만큼 그의 삶은 남루해졌다.
어떤 날은 생각했다. 돈이라는 게 이렇게까지 사람을 망가뜨릴 수 있나? 또 어떤 날은 차라리 죽으면 편하겠지라는 어둠 어린 생각이 고개를 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누나는 그에게 마지막 이유이자 의무였다. 그녀가 아프게 누워 있는 이상, 정열은 어떻게든 돈을 벌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절망 끝에서 떠오른 기억이 바로 이 뒷세계 격투장이었다. 과거 도진이 데려갔던 그 살벌한 곳, 싸우는 사람들, 배팅하는 관객들, 그리고 오가는 거대한 돈의 규모가 컸다.
“그곳에서는 억 단위 배팅이 오갔지… 나도 할 수 있을까?”
정열은 고심 끝에 결국 그 뒷 세계로 다시 발을 들이기로 결심했다. 그래봤자 잃을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바닥에 떨어진 인생, 더 내려갈 곳도 없다고 느껴졌으니까.
처음으로 참가한 뒷세계 싸움판은 무섭도록 익숙한 냄새를 풍겼다. 비밀스럽고 음습한 느낌, 그곳에는 늘 단물만 챙겨 가려는 사람들과 그들을 등에 업은 깡패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좁은 곳에 사람들이 빽빽하게 모여들어 환호를 지르고, 쉼 없이 배팅 금액을 외쳤다. 주먹이 오가고, 피가 흩뿌려지는 와중에도, 오로지 그들은 돈이 어떻게 굴러가는 지만 관심이 있었다.
정열은 두려웠지만 동시에 체념했다. ‘여기서 못 살아남으면 누나의 병원비도 못 내.’ 그는 싸움판에 올라섰다. 겨우겨우 과거 비서에게 배운 기본적인 호신술, 그리고 어릴 적 태권도장 다녔던 기억을 총동원해 상대와 맞섰다. 이길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은 없었다. 그러나 도망갈 곳은 없었다. 그는 어떻게 든 살아남아야만 했다.
첫 경기는 말 그대로 간신히, 오로지 간절함만으로 승리했다. 상대는 키도 크고 몸집도 좋아 보였지만, 한번 큰 펀치를 놓친 뒤에 순간적으로 방심한 틈을 정열이 파고들어 무너뜨렸다. 초반 몇 대를 제대로 얻어맞아 머리가 띵했지만, 그 순간 떠오르는 건 누나의 얼굴, 그리고 빚쟁이들의 협박뿐이었다.
경기장을 내려올 때쯤, 관객들 사이에서 눈에 띄게 화려한 옷을 입고 배팅을 즐기던 사람이 다가왔다. 아니, 다가오는 중이라 기 보단 그가 먼저 손을 흔들었다.
“야, 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한때 재벌 도련님이 여기까지 떨어지다니.”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정열은 분명히 알아차렸다. 최도진. 그의 얼굴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능글맞고 여유로운 표정이다. 다만, 과거에는 재벌 2세 정열에게 살갑게 굴던 도진이, 이제는 어딘가 달라 보였다.
“…오랜만이네, 도진아.”
도진은 눈꼬리를 치켜세우며 웃었다.
“너 설마 여기서 닥치는 대로 싸우고 있을 줄이야.”
정열은 고개를 숙였다. 창피하기도 했고, 도진의 조롱 같은 말투가 씁쓸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도진은 마냥 무시하진 않았다.
“그래도 봐, 실력 좀 있네? 첫 경기부터 이기다니.”
마치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찾은 듯, 도진은 흥미로운 눈빛을 보냈다.
“이렇게 된 거, 나랑 같이 한탕해보면 어때?”
정열은 아직 그 제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그저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랄까. 뒷세계를 조금이라도 아는 도진이라면, 그를 통해 돈을 벌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후, 정열은 싸움판에서 차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으니, 주먹만으로 돈을 버는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벌이가 형편없었지만, 경기를 치를수록 몸값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상대는 점점 더 강해졌지만, 그 역시 지지 않았다.
어떤 날은 경기를 마치고 돌아온 뒤, 피투성이가 되어 길가에 주저앉기도 했다. 그러나 빚과 병원비는 하루하루 더 쌓여만 갔다. 이 싸움에서 벗어나면 또다시 굶주린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런 그에게 최도진은 종종 찾아와서 부추겼다.
“넌 진짜 잘하는 것 같다니까. 어차피 시작한 거, 더 크게 벌어야지. 네가 좀 더 유명해지면 억 단위 배팅이 걸릴 거야.”
도진의 말은 달콤했고, 그 달콤함은 정열의 힘겨운 현실을 잠시 잊게 해줬다. 결정적인 계기는 도진이 내민 한탕 큰 사기 제안이었다.
“이제 좀 이름도 알렸고, 몸값도 꽤 오르지 않았냐? 이거 봐. 이번 경기 배팅 규모가 억단위야. 한 번만 승부 조작하면 우리 둘이 해외로 튈 수 있을 만큼 돈을 벌 수 있어.”
도진은 어느 날 비밀스러운 사무실에 정열을 불러내더니, 몇 장의 종이를 탁 내밀었다. 정열은 종이에 적힌 금액을 보고 눈이 돌아갈 뻔했다. 이 정도면 빚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누나 병원비도 제때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방법이라는 것이 정열이 일부러 져주어서 판돈을 도진이 먹도록 만드는, 즉 대놓고 사기를 치는 일이었다.
“이건 단순한 싸움이 아니잖아. 사기를 치라는 거잖아.”
정열은 당연히 갈등했다. 불법 격투장에 뛰어든 것도 이미 위험한 길이지만, 그래도 그동안은 정당하게 싸운다는 최소한의 자존심만은 지켜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마저도 내려놓으라니.
“뭐가 문제야? 너도 지지리 궁상 떨지 말고 돈 좀 만져봐. 너희 누나는 하루하루 병원비가 엄청나게 들 거 아니야. 시한부 인생이면 너만 고생하다 끝날 텐데, 이 기회를 왜 걷어차?”
결국 정열은 흔들렸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거부할 힘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갈등과 죄책감이 머릿속에서 뒤엉켰지만, 누나 생각이 제일 컸다. ‘잘못된 줄은 알지만, 그래도 방법이 없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지.’
그렇게 마지막 대형 경기를 준비하던 중, 정열은 뜻밖의 인물을 만났다.
정나연. 그녀는 이 뒷세계 격투장에서 정보를 파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무엇이든 팔고 사는, 어찌 보면 완벽한 중립자 같은 인물이었다.
“이봐, 남정열.”
낯선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날렵한 분위기의 여성이 서 있었다. 머리는 짧게 잘렸고, 눈빛은 예리했다.
“누구세요?”
“난 정나연이라고 해. 여기서 정보 좀 파는 일을 하고 있어.”
나연은 정열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웃지도 않는 표정으로 직설적으로 말했다.
“너, 도진이랑 한탕 하기로 했지?”
정열은 깜짝 놀랐다.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계획이었는데, 다 들켰다. 그녀는 어딘가에서 이미 정보를 얻은 모양이었다.
“…그걸 어떻게 알죠?”
“내 귀는 꽤 밝거든.”
나연은 쿡쿡 웃고는, 이내 진지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근데 알아둬, 도진은 널 이용만 하고 버릴 가능성이 높아. 그 사람, 그런 식으로 돈 버는 거 즐기는 인간이야.”
정열은 내심 불안했던 예감이 적중하는 것 같아 소름이 돋았다.
“그렇다고… 난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빚쟁이들이 날 그냥 둘 리도 없고, 누나는 하루가 급하고…”
나연이 잔뜩 상심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러곤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세상에 답이 하나만 있는 건 아냐. 사기를 칠지 말지, 그건 네 선택이겠지만… 도진은 널 배신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만 알아둬.”
그녀는 조용히 정열에게 명함 같은 걸 건넸다.
“만약 정말 도망칠 생각이 있으면 날 찾아. 난 너에게 다른 선택의 가능성을 열어줄 수도 있어.”
정열은 혼란스러웠다. 사기를 치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 뒤에 도진이 정말 자기를 배신한다면? 혹은 그 이후의 미래는? 혹시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더 큰 위기에 빠지게 되지 않을까?
드디어 마지막 경기 날, 억 단위 배팅이 걸린 경기장에는 전에 없이 사람이 몰려들었다. 모두들 정열이 이번엔 지겠다는 듯이 큰돈을 걸고 있었다. 도진은 관객석 한쪽에서 위스키잔을 들고,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아마 이미 그가 세운 시나리오로는 정열은 이번 경기를 일부러 져주게 되어 있었다.
경기가 시작됐고, 정열은 처음에는 정말 밀리는 듯이 보였다. 상대가 더 크고 강했기에, 정열이 일부러 공격을 빼면서 맞기만 해도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도진은 잔을 기울이며 흐뭇한 표정으로 배팅 창구 직원과 뭔가를 수시로 주고받았다.
그러나 그 순간, 정열의 눈앞에 문득 떠오른 것은 도진의 야비한 웃음과 나연이 말했던 경고였다. ‘결국 너 버려질 거야.’ 이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정열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마치 지난날의 비겁함을 모두 떨쳐버리고, 이제 진짜 자신만의 선택을 하고 싶다는 듯이. 그리고 곧 상대의 빈틈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갑작스러운 역습에 상대가 비틀거렸고 뒤이어 강력한 펀치가 꽂히면서 상대의 턱이 꺾였다. 순식간에 경기가 뒤집혔다.
결국 정열은 이겨버렸다. 아니, 의도적으로 이긴 것이었다. 경기장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도진이 분노하는 목소리는 뇌성을 내리치는 것처럼 경기장 전체에 울렸다.
“너 지금 무슨 짓 한 거야? 네가 나를 배신할 줄은 몰랐는데?”
“배신? 처음부터 우리, 그런 관계도 아니었잖아.”
. “네가 날 이용해먹으려고 했던 것, 몰랐을 것 같아? 누나 병원비만 아니었으면 시작도 안 했을 거야.”
정열은 기진맥진하면서도, 그동안 꾹 눌러온 화가 폭발했다. 이미 경기장은 혼돈의 도가니였다. 배팅이 뒤집혀 수많은 이들의 돈이 날아갔고, 도진이 거둬들이려던 이익 또한 물거품이 되었다. 화가 치민 도진은 조직에 연락해 깡패들을 불러모았다.
, “빨리 여기서 나가야 돼. 도진이 조직에 전화 돌리고 있어.”
정열은 격투장 뒤편에서 나연을 만났다. 나연은 그를 보자마자라고 소리를 질렀다. 정열이 가방을 챙기는 것도 잠시, 이미 쇠파이프를 든 무리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어디로 도망가든, 난 널 찾아낼 거야!”
뒤에서 도진의 분노에 찬 고함소리가 메아리쳤다. 그러나 정열은 더는 예전처럼 도진의 그 소리에 주눅들지 않았다.
“난 이제부터 나만의 길을 갈 거야. 더는 누구의 장난감도 아니야.”
정열과 나연은 목숨 걸고 뛰었다. 혼란스러운 경기장 바깥길부터 지하 통로까지, 조직원들이 쫓아와 대치하는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경기에서 다져진 실전 경험과 절박함을 무기로, 그들은 간신히 뚫고 나올 수 있었다.
결국 마지막 결전에 가까운 충돌이 찾아왔다. 철제 문 뒤편, 도진이 직접 나타났다. 허수아비처럼 깡패들만 내세우는 줄 알았던 도진이 직접 얼굴을 드러냈다.
“좋아. 배신자. 네가 이 사단을 일으켰으니, 직접 책임져야겠지.”
“책임질 건 책임지겠지만, 난 더 이상 당하고만 있진 않아.”
도진은 흉포한 표정으로 쇠파이프를 휘둘렀고 정열은 그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재빨리 주먹을 날렸다. 한때는 파티장에서 웃으며 어울렸던 형 같은 존재였지만, 지금은 적으로 마주쳤다. 세상이란 게 이렇게 비정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이제 돌아갈 곳은 없다.
그 싸움에서 정열은 온 몸의 근력을 끌어올려 도진을 제압했고, 도진의 조직원들도 하나둘 쓰러뜨렸다. 숨도 제대로 쉴 틈 없이 폭풍처럼 지나간 뒤, 결박된 도진을 바라보는 정열의 눈에는 더 이상 두려움이 없었다.
“이제 됐어. 넌 끝이야.”
그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 고개를 떨군 도진의 얼굴은 충격과 분노가 뒤섞여 일그러져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정열은 그 싸움에서 얻은 보상금을 활용해 빚을 모두 정리했다. 가장 시급했던 누나의 병원비도 해결할 수 있었다. 나연의 도움으로 해외로 나갈 수 있는 안전한 루트도 마련되었다.
마지막으로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밟으며, 정열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승리와 도망이란 말은 어쩐지 격이 맞지 않는 듯싶었지만, 어쨌든 그는 도진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이제부터는 제 힘으로 길을 개척해 나가고 싶었다..
“이제 끝난 거야. 새로운 인생, 잘 시작해야지?”
“그래. 더는 돈에 끌려다니지 않고,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을 거야.”
두 사람은 해외로 떠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한번 ‘남정열’이라는 이름으로서의 삶을 시작하기로 했다. 재벌 도련님도, 뒷세계의 파이터도 아닌, 그저 자신의 삶을 지켜내는 사람으로서.
그러나 도진은 물불가리지 않고 정열을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도진에게도 인생을 걸 정도로 마지막 거액이었다. 만약 정열을 찾지 않으면 자신에게 돈을 배팅했던 다른 검은 손들에게 자신이 당할 위기였으니, 반드시 정열을 찾아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