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 401
나훈아의 연기를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나훈아의 연기를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이름: 나장세
제목: 캡틴
길을 잃고, 뜻을 잃은 사람들은 장세를 찾아와 자신이 가야할 길을 묻고는 했다. 장세는 비록 신내림을 받거나 하늘의 점을 본다거나 관상, 사주, 풍수지리와 같은 명리학에 능하진 않았지만 지혜가 깊은 건 심해와 같았고 넓은 건 하늘과 같다고 소문이 났다.
“음.”
오늘도 자신을 찾아온 청년을 보고 장세는 그 청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러니까. 네 말은.”
그는 학교에서 폭력을 당하고 있던 자식이 처음으로 학생에게 분노하여 복수하였는데, 그만 그 학생의 한쪽 눈이 실명했다고 했다. 순식간에 피해자에서 피의자가 되어버린 아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 질문이었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어서 나를 찾아왔느냐.”
보통의 사람들은 답을 몰라 찾아오는 게 아니었다. 답을 알아도 그것을 실천한 능력이 없었기에 장세를 찾았다.
“흐으으윽.”
차마 자기 입으로는 내뱉지 못했다. 두려워하는 인간을 보며 장세는 혀를 찼다. 이리도 약하니까 그렇게 당하고 사는 거 아닌 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지만 굳이 그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장세는 오래전부터 ‘기이한 도움’을 주는 인물로 소문나 있었다. 누군가가 길을 잃고 해답을 찾지 못할 때, 괴로운 상황에 처했을 때, 뜻밖에도 장세를 찾아오면 문제가 해결되곤 했다. 물론 장세가 무슨 신통한 점괘를 보거나, 하늘의 계시를 받는다거나, 명리학에 능통한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처음엔 장세를 보고 황당해했다. 다만 장세는 사람을 쓰는 법과, 상황을 뒤집어 보는 지혜를 알고 있었다. 그런 힘은 말하자면 육체적인 강함이나 권력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과 그를 밑받침해 주는 자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아버지는 처음부터 장세를 찾아온 건 아니었다. 누구나 그렇듯, 우선은 학교에도 얘기하고, 경찰에도 문의해 보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확실한 증거가 없어 처벌하기 어렵다’, ‘학생들 사이의 갈등은 대화로 풀어야 한다’ 같은 원론적인 말뿐이었다. 답답한 마음을 안고 있다가, 소문을 전해 들은 누군가의 소개로 장세를 찾아오게 된 것이다.
아버지는 혹여나 아이가 더 큰 폭력을 당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장세 앞에서 무릎을 꿇기까지 했다.
“제 아들이 더 이상 다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제발 아이가 안전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 아이에게 ‘힘’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라”
그 절박함을 본 장세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곧 특이한 조언을 내놓았다. 아버지는 그게 무슨 뜻이냐고 되물었지만, 장세는 구체적인 계획을 이미 머릿속에서 그리고 있었다.
장세는 천하장사 같은 신체적 무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주변 어른들을 움직였다. 학교 이사장과 알고 지내던 사회복지 재단 관계자, 지역 신문 기자, 동네 사업가들을 설득하여, 해당 학교 폭력 문제를 크게 다루도록 하였다. 동시에 이슈가 커지자, 학교는 뒤늦게서야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 중이라는 태도로 급변하였고, 자칭 ‘가해 학생들’ 역시 명분을 잃고 위축되었다. 그렇게 상황이 역전되자 피해를 입은 아들에게 의외로 든든한 배후가 있는 것처럼 그림이 그려졌다. 학교와 지역사회가 연대하여 지켜보는 상황에선, 누구도 섣불리 폭력을 행사하기 어려웠다.
“학생은 직접 주먹을 휘두르지 않아도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 학생이 힘이 없다는 사실을 역으로 활용할 겁니다.”
장세는 차분하게 아버지에게 설명했다. 이처럼 장세가 쓴 방식은 단순했지만 강력했다. 아이에게 직접 싸우라고 하거나 일진들과 맞짱을 뜨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을 움직임으로써 아이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장세의 지혜였다.
장세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계속 늘어났다. 권력자나 거부들처럼 물질적 자원과 배경이 넉넉한 사람도 있었고, 빚더미에 올라앉아 전전긍긍하는 이도 있었다. 누군가는 단순히 마음의 위안을 찾기 위해 장세에게 왔고, 누군가는 자기가 이미 알고 있으나 실행하지 못하는 해답을 실현시켜 주길 바라며 문을 두드렸다
“나는 그저 사람들의 약함을 보듬고, 그들에게 맞는 열쇠를 찾아줄 뿐”
어느 날, 바쁜 일정 속에서도 시간을 내어 새벽 산책에 나간 장세는 갑작스럽게 쓰러지고 말았다. 아직 해조차 뜨지 않은 차가운 공기가 그의 쇠약해진 몸을 단번에 압박한 듯했다.
늘 건강해 보였던 그가 길 위에 쓰러졌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사람들 사이로 번져 나갔다. 장세가 쓰러졌다는 말을 듣고 달려온 이들은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간 그의 곁을 지키며, 한껏 불안에 떨었다.
“과로가 겹쳐서 일시적으로 기력이 쇠진한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상태를 지켜봐야 합니다”
장세의 생명에 지장이 생길 정도는 아니라고 했지만, 사람들이 보기엔 분명 장세가 늘 지내던 강철 같은 생활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 상태로 의식을 잃은 장세는 마치 아주 깊은 잠에 빠져든 것처럼 깨어나지 않았다.
그때 장세는 꿈속에서 어떤 풍경을 마주했다. 희뿌연 안개 속에서 누군가가 다가오더니, 그것은 바로 자신의 어머니였다.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된 어머니를 본 장세는 꿈이라는 사실도 잠시 잊을 만큼, 그리움과 반가움에 휩싸였다. 어머니는 아무 말없이 장세를 바라보았고, 장세는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머니… 이렇게 오랜만에 뵙네요. 제가 많이 그립죠?”
장세는 꿈인 듯 생시인 듯, 어머니 앞에서 순식간에 어린 아이처럼 작아졌다. 한때 자신도 무척이나 약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청년 시기가 있었다. 그때 어머니가 보여준 사랑과 헌신이 지금의 그를 만들어 주었다는 사실을 장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말들을 전부 쏟아 내기 시작했다.
“고맙습니다, 어머니. 제가 명예와 권력을 쌓게 된 건 제 능력도 있었지만, 사실 어머니의 힘이 컸죠. 장례식 때 많은 이들이 보내 준 부조금과 보험금으로 재산이 마련되어 버렸어요. 전 그냥… 그걸 발판 삼아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게 되었지만, 사실 모든 시작은 어머니에게서 비롯되었어요.”
꿈속의 어머니는 그대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고맙다는 말도, 수고했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미소를 머금은 채 장세를 바라보았다. 마치 언제나 곁에서 지켜보겠노라 약속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장세는 울먹이며 중얼거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미안해요. 조금 더 잘해 드릴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어머니가 저한테 베풀어 주신 도움을 다시 돌려 드릴 기회가 없었다는 게 평생 한이 돼요.”
여전히 어머니는 묵묵히 머리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장세의 가슴이 터질 듯 벅차오르는 동시에 왠지 모르게 편안함도 느껴졌다. 이윽고 어머니는 돌아서서 자리를 뜨려고 했다. 장세는 안타까움에 황급히 어머니의 손목을 붙잡았다.
“가지 마세요. 아직… 아직 전 할 말이 많아요.”
그러나 그 순간, 꿈이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눈을 뜨자, 장세는 병원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저마다 울상인 표정으로 그의 곁을 지키던 아이들, 그리고 장세를 따르는 인물들이 눈물을 훔치며 장세가 깨어났음을 확인했다. 병실 안에는 긴장과 안도가 뒤섞인 이상한 공기가 흘렀다.
“심각한 문제는 아니지만, 과로와 누적된 피로로 인한 실신이었습니다. 이제부터는 회복과 안정을 위해 조금 더 쉬셔야 할 것 같습니다”
“어머니께서 또 날 살려주신 거야.”
장세는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꿈 속에서 어머니를 만난 그 따뜻함이 마음을 지탱해 주고 있었다. 혼잣말처럼 내뱉는 그의 목소리를 들은 주변 사람들은 잠시 서로의 눈을 마주쳤다. 장세가 평소엔 좀체 내보이지 않던 말투였기 때문이었다.
그날 저녁 무렵이었다. 장세가 회복을 위해 조용히 병실 창가에 앉아 있을 때, 낯설면서도 묘하게 익숙한 얼굴의 젊은 청년이 방문했다. 마스크를 벗자, 이미 장세와 함께 있던 몇몇이 그를 금세 알아봤다. 바로 과거, 학교 폭력에 시달리던 그 아이였다. 이제는 성장해 어엿한 청년이 되었으며, 예전처럼 두려움만 가득해 보이지 않는, 단단한 눈빛을 갖고 있었다.
“선생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오래전 도움을 주신 덕에, 제가 이렇게 건강히 성장할 수 있었어요”
청년은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지만, 담담하고 똑바른 자세였다. 장세는 그 청년의 목소리를 듣자, 자신도 모르게 왈칵 목이 메었다. 많은 사람들을 도와 왔지만, 특히 그 일을 계기로 사람을 쓰는 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깨닫게 된 기억이 떠올랐다.
“그동안 잘 지냈니. 네 소식을 듣긴 했어. 이제는 더 이상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고, 오히려 이웃을 위해 봉사한다는 소문도 들었다.”
“제가 받은 도움을 그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되갚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약해 보이더라도 혼자가 아니라 함께라면, 세상은 충분히 바뀔 수 있다는 걸 알려주신 분이 선생님이니까요.”
장세는 묵묵히 청년의 손을 잡았다. 병실에 따스한 기운이 감돌았다. 마치 꿈 속에서 어머니가 지어주던 미소처럼, 장세 역시 그 청년에게 너그러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를 보니, 내가 이제 좀 더 쉬어도 되겠다 싶기도 하구나. 하지만 아직 나는 해야 할 일이 많지. 사람들의 약함을 보듬어 줄 사람, 지혜를 나눠 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니까.”
“예, 선생님. 제가 조금이나마 선생님의 마음을 함께 짊어지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제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 꼭 선생님께 전해 드리라고 하셨어요.”
청년은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그 안에는 낡은 사진과 짤막한 편지가 들어 있었다. 편지에는 ‘당신 덕분에 내 아이가 살았습니다. 당신에게 받은 빚은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구절이 적혀 있었다.
장세는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청년의 아버지와 어린 청년의 모습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편지를 한 글자 한 글자 곱씹으며 되새겼다. 이윽고 그의 마음속에는 여러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아이와 아버지의 사연, 그리고 지금껏 자신을 찾아와 도움을 청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병실 밖에는 이미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그러나 장세에게 있어 지금의 어둠은 결코 두렵거나 막막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꿈속에서 잠시나마 보여 주었던 따스함과, 청년이 선사한 진심 어린 고마움이 어우러져, 오히려 세상 모든 곳에 자신을 필요로 하는 빛들이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의사는 장세에게 몇 주간의 휴식을 권고했다.
“과로와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언제든 다시 쓰러질 수 있으니, 조금 더 몸을 돌보셔야 합니다.”
“네, 과연 우리 어머니께서도 같은 말을 하셨겠죠.”
그렇게 짧은 대화를 마친 뒤, 장세는 조용히 병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찬 공기가 들어오자, 그는 폐 깊숙이 숨을 들이마시며 아직은 살아 있음을, 그리고 여전히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실감했다.
그러자 문 밖에서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가 들렸다. 간호사가 말과 함께, 문 앞에서 대기 중이던 두 사람이 천천히 병실로 들어왔다. 그들은 지역에서 소규모 식당을 운영하는 부부였다. 최근 매출 부진과 빚 독촉 등으로 너무 힘들어, 결국 장세에게까지 사정을 물어보러 온 것이었다. 장세는 피곤한 기색을 띠면서도, 이들을 반갑게 맞았다.
“이리 앉으세요.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제가 도울 수 있다면, 방법을 함께 찾아봅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장세는 잠시 어머니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본인조차 한때는 몰랐지만, ‘약하다’는 것은 곧 서로에게 의지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약함을 스스로 깨닫는 순간, 사람은 함께 손을 맞잡을 수 있고, 지혜를 모아 극복해 나갈 수 있었다. 장세가 제공하는 건 사실 그의 재산이나 권력의 일부일지도 모르지만, 본질적으로는 ‘사람 간의 연결고리’를 제시하는 것이었다.
“내가 가진 힘은 천하장사의 근육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이을 줄 안다는 점입니다.”
장세가 예전에 했던 말이 다시금 귀에 맴돌았다. 이제 장세 역시 알았다. 어머니가 자신에게 남겨 준 것은 돈이나 유산 따위가 아니라, 그보다 더 본질적인 ‘사랑’과 ‘돌봄’이라는 힘이었다. 그리고 그 힘 덕분에 자신 역시 이렇게 살아남았고,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었다.
언젠가 세월이 흘러 장세가 다시 어머니를 만날 때면, 그는 그때 하지 못한 말들을 전부 전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정말 고마웠고, 지금 내가 베푸는 모든 따뜻함은 어머니에게 받은 것을 조금씩 돌려 주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장세는 다시금 병실 침대에서 몸을 추슬러 일어섰다.
창밖으로 희미한 아침 햇살이 들어오며 병실 안을 밝히고 있었다. 문득 장세는 한때 자신에게 의존하던 ‘그 아이’ 이제는 다 자라 훌쩍 어른이 된 청년의 굳은 의지를 떠올렸다. 그리고 바로 옆에서 도움을 청하는 식당 주인 부부의 얼굴, 또 이 소식을 들으면 달려올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하나씩 상상했다.
그 사람들과 함께라면, 장세가 굳이 천하장사의 힘을 갖지 않아도 세상을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으리라.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기꺼이 보살펴 줄 듯한, 꿈 속에서의 어머니 미소가 다시금 장세의 가슴 한 켠에 맺혀 왔다.
그렇게 장세의 병실 문은 어느 때보다 분주하게 열렸다 닫혔다. 누군가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상담을 청했고, 누군가는 이미 받은 도움을 되갚고 싶다며 찾아왔다. 장세는 때때로 숨이 벅찰 정도로 피곤했지만, 그럼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꿈속에서 잠시나마 어머니를 만난 그날 이후로, 더는 마음 한구석이 허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시 살아난’ 새로운 하루하루를 만끽하며, 그는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언젠가 모든 일을 마친 후, 또 다른 새벽에 홀연히 어머니와 재회하는 순간이 올 테지만, 그 전까진 살아야 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그들의 약함을 강함으로 변화시키고, 서로 손을 잡아 지혜를 나누며. ‘캡틴 장세’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남겨 준 사랑을 힘삼아, 장세는 오늘도 누군가의 길을 찾아 주는 진정한 ‘캡틴’으로 거듭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