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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래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캐릭터 - 405

by 라한
정미래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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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래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이름: 민여정

제목: 사투리 연구소


“사투리 연구소?”


간판만 보면 무언가 연구하는 학구열이 가득한 사람들이 있을 것 같지만, 바로 간판 밑의 통판 유리로 안을 들여다 보면 그냥 카페와 비슷했다. 그러나 카페 보다는 또 다른 종합 카페 느낌이 물씬 느껴지는 구조였다.


“어디보자, 여기가 맞네. 사투리 연구소.”


여정이 차린 사투리연수고라는 종합카페를 찾아온 고향 손님이 카페 밖에서 안들 들여다보았다. 다양한 사람들이 카페 안에 있었다.


“어. 근데 여정이는 없는데?”


유리창에 기댄 채 여정을 찾지만, 여정인 보이지 않는데, 그때 그녀의 어깨에 손이 올라오는 촉감을 받았다. 놀라서 뒤 돌아보니 자신이 찾던 여정이 뒤에 있었다.


“나 찾아?”

“어!”

“어!”


자신이 초대한 손님보다 늦게 도착했지만, 그건 바로 사장만의 권리였다.


“한소희!”

“여정아!”


여정과 소희는 중학교때부터 고등학교까지 함께 다니던 친구였다. 그런 여정이 어느 날 나는 서울로 갈 거라고 하면서 짐을 챙기고 떠나버렸다.


“너 대학교 졸업은?”


당연히 대학도 같이 입학을 했으니까, 졸업도 같이 할거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자신을 떠나버린 여정이었다. 그러나 꿈을 향해 쫓는 청년을 머라고 하면서 막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너 서울 올라온 게 카페 차리는 거였어?”


이런 카페는 분명히 부산에서도 차릴 수 있었을 텐데! 약간의 배신감이 들었다. 2년동안 바쁘게 지내느라고 제대로 통화한 번 못하던 여정이, 자신에게 서울로 올라오라고 반 장난으로 말한 한 마디에 바로 올라왔다.


어쩌면 2년간 기다렸던 말일지도 몰랐다. 그랬는데 올라와 보니 자신 보다 늦고. 그러나 여정이 차렸다는 카페는 나름 잘 나가는 듯 보였다.


“카페를 차리는 게 목표는 아니었지만, 이젠 이 카페가 내 꿈이 됐지.”


여정의 말에 소희는 카페를 쳐다봤다. 그냥 평범한 카페 같은데, 뭐가 특별한 게 있나? 그러다 문득 ‘서울에서 꿈을 이루고 나면, 널 제일 먼저 초대할 거야. 한소희! 그때 주저하지 말고 오기다!’ 그렇게 말했던 여정의 모습을 떠올리며 다른 질문은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뭐, 네가 만족하면 그걸로 된거지. 그래서 만족스러워?”

“음. 그럼!”


여정이 차린 카페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여기는 카페 제목 때문인지 몰라도,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여러 있었다.


“아. 맞다 소개해줄 게!”


여정은 소희의 팔뚝을 끌어당기며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어수선했던 도시의 소음이 사그라지고, 대신 활기 넘치는 대화 소리와 따뜻한 조명의 분위기가 두 사람을 반겼다.


“다들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이야. 여기 와서 알게 된 사람들도 있고, 같이 뭘 해보자고 해서 모은 사람들도 있고.”


평소 소희가 알던 여정은 혼자서도 모든 걸 해낼 기세를 가진, 당돌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친구였다. 그런데 이 카페 안에서의 여정은 어떤 면에선 더 여유롭고, 또 어떤 면에선 더 분주해 보였다. 마치 단순한 사장이 아니라, 작은 공동체의 리더가 된 것 같은 분위기랄까.


“이쪽은 도현 오빠. 전주에서 올라왔어. 여기서 만난 지는 꽤 됐고, 원래 요리 배우러 서울 온 거라 엄청 맛있는 음식 잘 만들어. 그래서 우리 카페 주방 쪽 일도 종종 돕고 있어.”


여정이 가리키는 곳엔 키가 훤칠한 남자가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짧게 깎은 머리가 단정했고, 편안한 티셔츠 차림이지만 손목에는 요리에 자주 쓰는 도구 자국이 옅게 남아 있었다.


“아이고, 반가워. 나는 김도현이라고 해.”

“안녕하세요, 한소희예요.”


소희가 인사를 건네자 도현은 시원스레 웃었다.


“소희라. 이름 참 예쁘네. 혹시 배고프면 말해. 그냥 지나쳐갈 수 없제.”

“네...!”


도현이 전라도 말투를 은근히 섞어 쓰는 게 귀에 새롭게 들렸다. 경상도 출신인 소희에겐 익숙하지 않은 억양이라, 왠지 재미있고 반가웠다.


“자, 이쪽으로 가자. 도현 오빠 말고도 소개할 사람이 많으니까.”


여정이 소희를 이끌고 이번에는 카운터 옆 긴 테이블로 갔다. 무언가를 작업 중인 듯, 펜을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긴 머리의 여자가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바라봤다.


“은주! 인사해. 내가 맨날 말했던 고향 친구야.”

“안녕하세...요?”

“어, 그래, 안녕.”


여정이 ‘박은주’라고 부르는 이 친구는 대구 출신이라고 했다. 탁자 위에는 예쁜 손글씨로 장식된 카페 메뉴판과 다이어리 같은 것이 놓여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만년필과 각종 스티커, 형형색색의 펜이 가득했다.


“나 디자인 쪽으로 공부하러 서울에 왔는데, 맨날 카페 구상이며 행사 기획이며, 바쁘게 지내다가 여정이 소개로 여기서 일해. 메뉴판 꾸미는 것도 좋고, 이 카페 분위기에 맞춰 행사 포스터도 종종 만들고 있어.”


부끄러운 듯 살짝 웃어 보이는 은주는, 사투리 억양이 약간 옅었지만 말끝마다 특유의 리듬감이 배어 있었다. 소희는 한 번 더 가볍게 목례를 했다.


“아, 그래? 너무 멋있다. 카페 분위기랑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많이 도와줘. 나도 아직 서울 생활이 익숙하진 않거든.”


은주는 다소곳한 듯하면서도 시원시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대구 사람 특유의 스트레이트함이랄까, 소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혹시 카페에서 일할 생각 있어? 여정이가 고향 친구가 온다고 해서 반가운 마음이었거든.”

“어? 그건 일단 좀 있다가 여정이랑 이야기 해볼게.”


소희는 살짝 당황했지만 또 동시에 흥미가 동했다. 여정이 서울에서 알음알음 만든 이 공간이 왠지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오래 멀어져 있던 친구와 다시 뭘 함께 해보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잠깐, 아직 소개가 하나 더 남았지?”


여정이 일부러 장난스럽게 목소리를 높였다. 소희가 무슨 말이냐고 묻기도 전에, 뒤쪽 구석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조용히 분위기를 살피고 있었는데, 슬며시 미소 지은 그의 얼굴이 카페 조명 아래 서서히 드러났다.


“얘가 강민혁이야. 작년 겨울쯤부터 이 근처에서 같이 지내고 있고, 카페에서도 자주 볼 수 있을 거야. 소희야, 이쪽으로 와서 인사해봐.”


민혁은 긴 팔다리 덕에 큰 키가 돋보였고, 머리는 자연스럽게 살짝 뻗친 스타일이었다. 무뚝뚝하게 생긴 첫인상과 달리, 말투는 부드러워 보였다.


“안녕. 강민혁이라고 해. 강원도 쪽에서 와서 처음엔 적응이 좀 힘들었는데, 지금은 여정 덕분에 재미있게 지내고 있어.”

“어… 안녕하세요. 저… 한소희라고 해요.”


순간 소희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왜 그런지 본인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덜컥 가슴 한구석이 묘하게 두근거리는 느낌이 들었고, 뒤늦게 스스로 놀라서 헛기침을 했다.


민혁은 그런 소희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그러나 무슨 마음이든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소희와 시선을 잠시 마주쳤을 뿐이다. 어쩐지, 말 한 마디 없이도 공간이 잔잔해지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가끔 ‘플로킹 모임’도 하는데, 민혁이가 그걸 주도해. 도시에서 운동도 하고, 환경도 지키고, 같이 낯선 동네도 구경하고 싶어서 시작했어.”


여정이 즐겁게 말을 이어갔다. 카페라는 장소가 주는 편안함과, 지방 출신 청년들이 갖고 온 다양한 개성들이 자연스레 섞여 만들어지는 커뮤니티가 뿌듯한 듯했다.


“플로킹 모임이 뭔데?”


소희가 관심을 보였다. 전에는 들어보지 못했던 용어였다.


“달리면서 쓰레기를 줍는 활동이야. 조깅하듯 뛰거나 걸으면서 주변 쓰레기도 줍고, 시간 나면 근처 맛집도 들르고… 간단하지만 의미 있는 활동이지.”


민혁이 직접 설명을 덧붙였다. 말투는 조용했지만, 하는 말 속에는 뭔가 뿌듯함 같은 게 베어 있었다. 소희는 그 목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였다.


“괜찮다. 운동도 되고, 환경 보호도 되고…”

“응, 꽤 좋아. 함께 뛰다 보면 다들 금방 친해지고… 끝나면 깨끗해진 길을 보면서 뿌듯하기도 하고.”


그러다 다시 민혁과 시선이 마주쳤다. 소희는 왠지 모르게 얼굴이 조금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그냥 처음 봤는데, 어쩐지… 묘했다.


“소희야, 그래서 서울에 올라온 김에 뭘 할거야? 일단 며칠 머무르면서 구경도 하고 갈 거지?”


여정이 짓궂은 표정으로 묻자, 소희는 대충 대답하려다가 망설였다. 사실 부산에서 쭉 살다가, 지난 2년간은 따로 바쁘게 지내면서도 늘 무언가 아쉬움이 있었다. 여정과 서울에서 다시 만난다면, 여러 가지 새로운 일들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음… 일단은, 여기서 잠깐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 혹시 자리 있어? 아르바이트든 뭐든.”


여정은 빙그레 웃으며 소희를 쳐다봤다.


“그럴 줄 알았어. 사실은 나도 손이 좀 부족해. 도현 오빠랑 은주, 민혁이 다들 많이 도와주고 있지만, 카페가 커지고 있어서 일손이 더 필요하긴 해.”


그러면서 은주와 민혁을 번갈아 보더니, 은근슬쩍 묻는다. 은주는 이미 환한 웃음으로 대답했다.


“어때? 소희가 여기서 일하면 좋지 않아?”

“나는 찬성이야. 이렇게 활기찬 친구가 있으면 카페가 더 밝아질 거 같아.”

“응, 같이 하면 좋지.”


도현 역시 우렁차게 맞장구치며, 메뉴 개발도 같이 해보자고 덧붙였다. 민혁은 딱히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반대하거나 싫어하는 기색도 아니었는데, 그냥 고개를 살짝 끄덕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소희는 그 작은 반응에도 마음이 살짝 떨렸다. 이게 무슨 기분인지 잘 모르겠지만, 새삼 이 낯선 카페에서 지내보고 싶다는 의지가 솟구쳤다.


“그래, 그럼 일단 소희부터 일주일 정도 체험해보고 결정해. 밥은 도현 오빠가 맛있는 거 해줄 거고, 은주는 디자인 쪽으로도 이것저것 알려줄 거야. 그리고…”


여정이 일부러 말을 끊고, 살짝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민혁을 보았다.


“플로킹 모임도 있잖아. 소희, 혹시 운동 좋아해?”


소희는 운동을 특별히 좋아한다기보다, 무엇이든 함께 어울려서 하는 건 괜찮다는 생각이었다. 게다가… 일주일에 한 번씩 모인다는 그 모임에 민혁이 있다고 하니, 괜히 호기심이 생겼다.


“어… 좋아는 해. 잘 못 뛰지만, 그래도 열심히 해볼게!”


민혁은 그 대답에 살짝 웃었다. 그러곤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카페 창 너머로 부드러운 오후 햇살이 스며들고, 북적이던 손님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는 타이밍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카운터나 홀 돌아보면서 일 좀 배워볼래?”


여정이 본격적으로 소희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주문 시스템, 음료 레시피, 테이블 정리 방법 같은 것들을 빠르게 훑어주고, 도현이랑 은주는 틈틈이 자기 손길이 필요한 곳에서 설명을 곁들였다.


그렇게 분주하게 몇 시간을 보낸 뒤, 해가 거의 넘어갈 무렵이 되어서야 다들 잠시 한가해졌다. 소희는 가벼운 한숨과 함께 카운터에 기대섰다. 시원한 물 한 컵을 마시면서 쭉 둘러보니, 어쩐지 이곳이 벌써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괜찮아? 힘들지 않아?”


민혁이 어느새 옆에 서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눈매가 조금 부드러워 보였다.


“아니, 괜찮아. 오히려 재미있어. 카페 일도, 이렇게 사람들 만나는 것도.”


그 말에 민혁은 작은 미소를 지었다. 마치 비밀스럽게 안심한 듯한 표정이었지만,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고 금방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저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는데, 소희는 순간 괜히 심장이 조금 빨리 뛰었다.


“하아… 이게 무슨 일이람.”


소희는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뱉고 있었다. 아무도 들은 사람은 없을 것 같았지만, 바로 뒤에서 은주가 조용히 귀에 대고 물어왔다.


“아, 아니야. 아무것도.”


괜스레 얼굴이 달아오른 소희는 별것 아니라며 얼버무렸다. 이런 기분을 들킨다면 혹시나 놀림받지 않을까 살짝 걱정도 됐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또 다른 호기심과 설렘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여정아, 여기 음료 주문 들어왔어. 새로 온 아르바이트생한테 시켜볼까?”


마침 테이블에 앉은 손님 몇몇이 음료를 추가로 주문하는 바람에, 여정이 카운터 뒤에서 소희를 불렀다. 바쁘고 분주한 시간이 다시 시작되는 듯했다.


“소희야, 직접 해볼래? 은주랑 내가 옆에서 봐줄게.”


소희는 마침 잘 됐다 싶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커피 머신 조작법을 배운 대로 하나씩 차근차근 해나갔다. 꼼꼼하게 레시피를 맞추고, 예쁜 컵에 정성껏 담아서 손님 테이블에 가져다 주자, 손님들이 고맙다며 미소 지었다. 그 짧은 칭찬에 뿌듯함이 느껴졌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민혁은 곧 무언가를 떠올린 듯, 살짝 여정에게 다가가서 귓속말로 말을 건넸다. 무슨 얘기인지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여정은 씩 웃으며 민혁의 팔을 툭 쳤다.


“오, 괜찮은 생각인데?”


둘은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소희가 궁금해서 눈짓을 보냈지만, 여정은 비밀이라 말하며 입술을 가볍게 내밀었고, 민혁은 딴청을 피우듯 주위를 둘러봤다.


분명 두 사람 다 숨기는 게 있는 듯했지만, 그 분위기는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마치 작은 이벤트라도 계획하는 기분으로 보였달까. 소희는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면서도, 저들이 무슨 말을 나누는지 묻고 싶은 마음은 꾹 참았다.


문득, 이 카페 ‘사투리 연구소’가 주는 묘한 온기가 크게 느껴졌다. 각자 다른 곳에서 출발해 서울에 모여든 청년들이, 어쩌면 각자의 꿈과 이유로 이 자리에 섰을 것이다. 그리고 서로가 낯선 도시에서 점점 익숙해지도록, 이렇게 함께 어울리며 다정한 분위기를 만들어 간다. 소희는 그 중심에, 어느새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여정이가 이렇게 고민해서 만든 공간이니, 여기서 뭔가가 생겨나도 이상하진 않아.’


소희는 구석 테이블에 놓인 메뉴판을 정리하다가 무심코 민혁 쪽을 다시 바라봤다. 민혁은 테이블 위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아마도 플로킹 모임에 대한 일정이거나 준비물 리스트 같은 거겠지. 그런데 그 옆얼굴이 순간 너무 따뜻해 보였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는 곧 민혁이 고개를 들어 소희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 소희는 놀라서 재빨리 메뉴판에 시선을 돌렸다. 가슴이 들뜬 것 같아 괜히 움츠러들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상하게도 편안함이 감돌았다.


그렇게 카페에 잔잔한 음악이 깔린 가운데, 시간은 어느덧 밤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손님이 줄어들기 시작하자, 도현은 주방에서 간단한 야식 거리를 준비했고, 은주는 메뉴판 글씨체가 잘 보이는지 조명 각도를 바꿔보느라 분주했다. 여정은 소희가 어색하지 않도록 계속 말을 걸어 주었고, 민혁은 필요한 일을 척척 해내면서도 틈틈이 창밖을 바라봤다.


소희는 이 새로운 세계에 들어온 지 고작 몇 시간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서울에서 꿈을 이루고 나면, 널 제일 먼저 초대할 거야. 그때 주저하지 말고 오기다!’


2년 전, 여정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문득 떠올랐다. 그리고 이제 현실이 되어 만난 이곳은, 소희가 상상하던 것보다 더 다채롭고 따뜻했다. 낯선 타지에서 만난 사람들이 이렇게 화합하며 각자 자리에서 빛나고 있었다.


“소희야, 여기 앉아서 좀 쉬어. 처음이라 힘들지?”

“응, 근데 힘들긴 해도 좋아. 나 여기서 일해보고 싶어. 더 오래.”


소희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바로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서울에 오자마자 다시 부산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었는데, 여정의 카페에 발을 들이자마자 마음이 바뀌었다.


“그래, 그럼 결정났네. 우리랑 좀 오래 지내자. 나도 기뻐.”


여정과 소희는 아이컨택 후에 밝게 웃었다. 두 사람 다 옛날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민혁은 살짝 미소를 지었고, 도현과 은주는 장난스레 호응했다. 작은 카페 안에 가볍게 웃음소리가 퍼지더니, 그곳의 공기가 조금 더 포근해지는 듯했다.


그러나 아무도 모르는 것이 있었다. 바로 민혁의 마음이었다. 투박하지만 자상한 그의 시선이, 어느 순간부터인가 소희에게 머물기 시작했다는 걸. 그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지만, 그 미세한 떨림이 하나둘씩 번져 가고 있다는 걸. 그래서 은주가 소희에게 다가갔듯, 누구도 직접적으로 캐묻거나 내색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렇게 서울 한복판의, 이름부터 독특한 ‘사투리 연구소’ 카페에서는 오늘도 새로운 인연들이 만나고, 서로의 꿈과 사소한 설렘들이 이야기가 되어 번져 나가고 있었다.


소희는 언젠가 플로킹 모임에 참여해 달리며, 이 설렘의 정체를 조금씩 알아가게 될지도 몰랐다. 아니면 도현이 만들어 준 요리를 맛보며, 또 은주가 디자인한 포스터를 보며, 문득 떠오르게 될 수도 있었다. 여정이 말없이 뒤에서 지켜봐 주는 중에, 어느 날 문득 알게 될 수도 있고.


그러나 아직은 누구도 서두르지 않았다. 지금은 그냥, 간판에 쓰인 ‘사투리 연구소’라는 이름처럼, 서로 다른 이야기와 억양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이 공간을 함께 누리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렇게 밤이 깊어 갔지만, 소희가 느끼는 새로운 시작의 기운은 점점 더 또렷해지기만 했다. 그때 카페문을 열며 알바구함이라 적힌 전단지를 들고 오는 친구가 있었다.


아직 일을 제대로 시작한 것도 아니었던 소희였지만 어쩌면 라이벌, 아니면 동료가 생길 분위기였다.


여정이 먼저 그를 반갑게 맞았다. 소희가 민혁에게 느낀 마음을 그 뒤로 또 들어오는 한 손님에게 향하게 됐다.


손님은 앞에서 전단지를 들고 있는 소녀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따라 들어왔다. 알바구함 전단지를 떼가던 그녀가 이곳에서 알바를 할생각인가?


그렇게 여러 사람들의 동상이몽이 펼쳐지고 있던 곳의 이름은 '사투리 연구소'라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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