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 409
마카마카 디아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디아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이름: 민관영
제목: 다시, 대한민국
“어떻게 맞나 봐.”
관영은 마지막 남은 휴지 한 장을 뽑아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다. 새로운 화장지를 꺼내면서 TV 속 화면을 한 치라도 놓칠 까봐 계속해서 뒤돌아보았다.
“어떻게.”
TV속에서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지만 외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내용을 담은 다큐멘터리였다.
“어떻게.”
어떻게를 연발하며 그들이 열심히 잘 살고 있으며, 기억에도 남지 않은 대한민국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이들이 울 때도 마찬가지고 자기가 삼촌이나 이모라고 불러야 할 사람들이 눈물을 보일 때도 바로 눈물이 났다.
어렸을 때 남한과 북한 사람들이 이산가족 상봉을 한 영상이 방영된적 이있다고 하는데, 그때 이런 감정들을 사람들이 느꼈을 까 싶은 관영이었다.
“아, 정말, 어떻게.”
관영은 잠깐이나마 가족들을 보지 못한다는 상상을 해봤다. 지금도 사실 독립해서 떨어져 살고는 있지만, 보고 싶을 때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살아 있는 지, 소식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이야기였다. 자신이 그리워 하는 게 어떤 건지도 잘 모르는, 추측으로 만들어진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 정말 어떡해.”
그런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나니. 평생 쏟을 눈물을 다 흘린 느낌이었다. 코가 맹맹해서 세수를 하는데, 갑자기 휴대폰에 알람이 왔다.
관영은 최근 졸업 유예를 하면서 취업을 위해 자소설을 쓰고 있었다. 부모님의 손을 최대한 벌리고 싶지 않아서 근근히 알바자리를 찾아보고 있었는데, 그에 대한 알바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 마치 자신을 감시라고 하고 있는 걸까 싶은 알람이었다.
“이런 알바가?”
관영은 바로 클릭했다. 그 알바는 바로 자신이 방금 전까지 보던 내용과 너무나 일맥상통한 알바자리였다.
동행 알바라고 하고 코디네이터라고 불리기도 하는 일이었다. 한국에 방문하는 해외 입양자들과 여행을 도와주는 스태프 알바였다.
“이게 바로?”
관영에게는 바로였지만, TV에 방영된다는 건 편집까지 마쳤다는 거고, 그만큼 이미 준비된 이야기였다. 방송에 거부감이 없는 사람들을 찾았다. 여러 사람들을 뽑는 것 같았다. 실제로 해외 입양자들이 얼마나 참여할 진 알 수 없으나 최소 20명 이상으로 보고 있었다. 그들이 함께 여행을 하면서 과거의 한국에서의 기억을 되살리는 추억지를 함께, 그리고 가능하면 가족들까지 찾는 이야기를 담는 것이었다.
이를 방송 프로그램으로 제작하면서, 또한 이를 도와줄 스태프를 구하고 있었다. 최근 어떤 프로그램에서 무료 봉사 알바 논란이 있어서 유료 알바로 진행되는 모양이었다.
“해야지!”
관영은 고민하지 않고 바로 링크를 클릭했다. 바로 신청서가 떴다.
관영은 잠시 숨을 고르며 신청서 양식을 훑어봤다. 예상대로 방송 출연 동의 항목, 개인정보 제공 내용, 어떤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지, 장기간 촬영에 참여해도 괜찮은지 등을 묻는 질문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쭉 내려가니, ‘왜 이 프로그램에 지원했는지’에 대한 서술형 문항이 있었다. 망설임 없이 커서를 깜빡이기 시작했지만, 정작 무엇부터 적어야 할지 막막했다.
“왜 지원했나… TV를 보고 그냥 마음이 동했는데.”
그러나 방송사 입장에서 ‘그냥 마음이 동했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어 보였다. 관영은 잠깐 고민하다가, 평소 자신이 해외 입양인들의 사연을 보며 느낀 감정, 그리고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가족이란 존재가 얼마나 소중하게 다가오는지를 솔직하게 적었다. 글을 쓰는 동안에도 눈가가 촉촉해지는 걸 느꼈지만, 이번에는 애써 울지 않았다. 마침내 긴 문장을 마무리하고 제출 버튼을 눌렀다. 화면에 ‘제출되었습니다’라는 안내가 뜨자,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치 자신의 마음이 '제출'된 느낌을 받았다. 마음이 제출되었습니다. 그렇게 읽혀지는 알람글 같았다.
그로부터 삼일쯤 지났을까. 자격 요건이 맞아야 뽑히는 일일 텐데, 연락이 영 오질 않아 관영은 점차 기대를 접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른 아침에 걸려 온 낯선 전화 한 통이 무심하게 그의 일상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민관영 님 되시나요? 저희는 ‘다시, 대한민국’ 입양인 동행 코디네이터 관련해서 연락드리는 방송사 제작진입니다.”
관영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려 심호흡을 했다. 아직 잠에서 덜 깬 상태라 머릿속이 멍했지만, 목소리는 어떻게든 또렷하게 내보았다.
“네, 저 맞습니다. 저 지원했었는데… 합격인가요?”
그 물음에 상대는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답했다.
“일단 구두 면접을 진행해 보고자 연락드렸어요. 기본적인 걸 더 여쭤보고, 필요하다면 대면 인터뷰를 할 수도 있고요. 간단히 시간 괜찮으실까요?”
새벽같이 온 전화였지만, 도저히 ‘안 된다’고 할 수 없었다. 관영은 이불을 대충 차내리고 리모컨으로 TV를 꺼버리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네, 말씀하세요.”
휴대폰 건너로 들려오는 질문들은 대체로 예상 범위 내였다. 과거에 비슷한 봉사나 아르바이트를 해 본 경험이 있는지, 해외 입양인들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는지, 심리적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을 대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 등이었다. 관영은 최대한 진솔하게, 또 자신 있게 대답하려 애썼다. 무엇보다, 방송사 측에서 원하는 건 ‘부드럽고 따뜻한 에너지’라는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건, 민관영 님은 이런 프로그램에 출연하시면서 개인적으로 기대하는 점이 있나요?”
“음, 사실 제가 다큐멘터리를 보고 느꼈던 감정들이 너무 강렬해서… 누군가는 무심하게 넘길 수도 있겠지만, 저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요. 그분들이 한국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조금이라도 채우게끔 돕고 싶기도 하고요. 그리고 제 자신도… 가족이라는 게 참 큰 울림이 있다는 걸 다시 깨닫고 싶어요.”
상대방은 잠시 침묵되었다.
“좋습니다. 이틀 뒤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통화가 끝난 뒤부터 관영은 이틀간 줄곧 안절부절못했다. ‘내가 괜히 과하게 감상적이었나, 제작진이 이런 부분을 좋아할까, 아니면 오히려 전문성이 떨어져 보였을까’ 같은 자잘한 걱정들이 가슴 속을 누볐다. 그러다 약속대로 이틀째 오전, 전화가 울렸다. ‘미정 CP’라는 발신자 이름이 뜨자마자, 관영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안녕하세요, 관영 님! 지난번에 통화했던 미정 PD입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게요. 저희가 함께 하시겠냐고 제안을 드리고 싶은데, 괜찮으시겠어요?”
“정말요? 너무 감사합니다. 저 정말 할 수 있어요?”
“네, 사실 지원하신 분 중에서 생각보다 관영 님처럼 진심 어린 답변을 해 주신 분이 많지 않았어요. 다른 스태프 면접도 있는데, 그 전에 저희가 코디네이터 팀을 우선 꾸려야 해서요. 내일 모레쯤 사무실에 오실 수 있을까요? 이제부터는 구체적인 서류와 교육 일정이 있으니까요.”
관영은 격앙된 목소리를 간신히 추스르며 알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마음속에는 기대 반, 두려움 반이 뒤섞였다. ‘일이 잘못되면 어쩌지? 그래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고개를 들었다.
이틀 뒤, 방송국이 입주해 있는 빌딩을 찾아간 관영은 열심히 옷차림을 신경 썼지만, 왠지 모르게 여전히 ‘이게 꿈이 아닐까’ 싶었다. 로비에서 신분증을 맡기고 임시 출입증을 받은 뒤, 안내 데스크의 안내를 따라 12층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유리문 너머로 <다시, 대한민국> 로고가 붙어 있는 제작진 사무실이 보였다.
문을 열자 아담한 회의실로 안내받았고, 그곳에는 이미 두세 명의 스태프가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가운데 앉은 키가 큰 여성이 관영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안녕하세요? 미정 PD예요. 직접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두 사람이 간단한 인사를 나누자, 미정 PD가 바로 회의실 안쪽 테이블로 그를 안내했다. 다른 스태프들도 자연스럽게 둘러앉았다. 바로 교육 이야기가 시작됐다.
“저희가 일주일 정도 코디네이터 교육을 진행할 거예요. 입양 관련 전문 상담가분도 오시고, 저희가 방송을 어떤 방식으로 만들지, 이분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다 안내해 주실 겁니다. 실제 일정은 약 두 달간 진행되는데, 괜찮으시죠?”
“네, 괜찮습니다. 길어질 수도 있다고 들었는데요…?”
“네, 해외 입양인들이 20명 이상인데, 연령대도 다양하고, 각각 한국에서 찾고 싶은 사람이나 지역이 달라요. 어떤 분은 광주에 부모님이 계실 수도 있고, 또 어떤 분은 자신의 출생기록조차 불분명해 수도권 병원을 뒤져야 할지도 몰라요. 일정이 길어지고 복잡해질 수밖에 없어요.”
관영은 마음이 살짝 무거워졌다. 잘해 낼 수 있을지 막연히 걱정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여정에 함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묘한 흥분이 일었다.
“그래서 이 모든 걸 다 기록하는 건가요?”
“네, 기본적으로 다큐 형식으로 기록할 거예요. 근데 예능적인 요소도 가미할 생각이죠. 너무 무겁기만 한 방송이 아니라, 이분들이 한국을 즐기고, 약간은 유쾌한 시간을 보내는 장면도 담고 싶어요.”
이야기가 꽤 구체적이었다. 곧이어 서류 몇 장에 서명을 하고, SNS 홍보용 초상권 관련 동의도 마쳤다. 방송국 특유의 체계적 시스템이 놀라웠고, 한편으로는 ‘방송 출연’이란 사실이 새삼 실감나서 뱃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내일부터 교육이니까, 오전 아홉 시까지 이 회의실로 오시면 돼요.”
그렇게 첫날 공식 일정을 마치고, 관영은 계단으로 내려오며 창문 밖 풍경을 보았다. 도심 한복판이라 빌딩 숲이 빼곡했지만, 저 멀리 파란 하늘이 한 줄기 보였다. 꼭 자기가 그 하늘 아래 한 걸음씩 나아가는 기분이 들어, 괜히 마음이 들떴다.
다음날 아침, 관영은 평소보다 훨씬 일찍 일어났다. 잠이 부족했지만, 긴장감에 정신만큼은 또렷했다. 지하철 안에서 허겁지겁 도시락을 먹고, 약속 장소인 회의실에 도착했다. 이미 낯선 얼굴들이 둘러앉아 있었고, 그중에는 관영과 같은 ‘스태프 알바’로 지원한 이들도, 제작진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처음 30분가량은 아이스브레이킹 시간이었다. 모두가 둥글게 앉아 자기소개를 나누며, 한국에 대해서, 그리고 입양인들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들을 자유롭게 이야기했다. 어떤 이는 유창한 영어를 선보였다. 이쪽 분야에서 일했다는 자랑이거나 다른 사람은 내가 직접 입양인 친구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관영은 차례가 돌아오자 조용히 저는 방송 보면서 마음이 움직여서 지원했다고만 짧게 말했다. 예상치 못한 감정의 복받침이 다시 올까 봐 솔직히 더 길게 말하기가 두려웠다. 대신 쑥스러운 미소로 말을 마쳤다.
이내 전문 강사가 들어와 ‘입양인의 심리 이해’ 세미나가 시작됐다. 다른 스태프들이 한두 명씩 하품을 참으려 애쓰는 동안에도, 관영만큼은 필기를 부지런히 했다.
“입양인들이 느끼는 정체성 혼란, 가족에 대한 애증, 그리고 모국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있습니다.”
자칫 지루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이야기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러면서 코디네이터들이 명심해야 할 점으로 ‘감정에 너무 치우치지 않기’와 ‘이들의 이야기를 뻔한 동정심만으로 대하지 않기’를 강조했다.
“어쩌면 어떤 입양인은 부모를 찾는 것을 전혀 원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한국이 싫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목표와 감정을 먼저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절대 ‘당연히 고향이 그리울 것’이라는 전제를 갖지 마세요.”
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필기 노트를 다시 확인했다. ‘당연히 그리워할 것이다’라고 여겼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사람마다 사정이 다르고, 감정이 다르다. 그런 사실을 머리로만 알던 자신이 부디 현장에서 실수하지 않길 바라며, 마음에 새겼다.
교육이 끝나고 점심 무렵이 되자, 스태프와 지원자들은 삼삼오오 식당으로 향했다. 관영은 아직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 살짝 어색했는데, 다행히 옆에 있던 한 남자가 먼저 말을 걸어 왔다. 이름은 기민우, 자신도 같은 코디네이터 지원자라고 소개했다.
“혼자 왔어요? 다들 어색하죠? 저는 아침부터 몇 명이랑 얘기 나눠봤는데, 그래도 대부분 좋은 분들 같아요.”
민우의 활달한 말투는 곧장 분위기를 밝게 만들었다. 관영은 어색함이 조금 사라져서, 자신도 서투른 농담을 꺼냈다.
“그러게요. 혹시 다들 너무 능력자라면 어쩌나 했는데, 생각보다 다들 긴장한 얼굴이더라고요.”
둘은 함께 방송국 근처 식당에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메뉴를 고르며 이것저것 대화를 이어가던 중, 민우가 입양인들과 이전에 함께 일한 적이 있다고 했다. 짧은 봉사 활동이었지만, 그 덕분에 이번 프로그램에도 관심이 생겼다고 했다.
“저도 그때 많이 울었어요. 막상 그분들 앞에서는 티 안 냈는데, 집에 와서 혼자 펑펑 울었거든요. 그래서 관영님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 특히나 방송 다큐 같은 거 보면 감정이 쉽게 폭발하잖아요.”
관영은 괜히 마음이 편안해져서, 자신도 TV 다큐멘터리를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솔직히 털어놓았다. 민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아마 되게 힘들 거예요. 보람은 크겠지만, 중간에 번아웃 올 수도 있고. 아까 강사님도 말했듯이, 우리도 감정이 과하게 흔들려선 안 되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죠.”
둘은 서로 격려하며 식사를 마쳤다. 아직 첫걸음이지만, 같은 마음을 공유할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교육 마지막 날에는 참가 예정인 입양인들의 대략적 정보가 공개됐다. 이름, 나이, 국적, 그리고 한국에 오게 된 목적 등이 간단히 소개된 문서였다. 예를 들어, 어떤 이는 10대였고, 양부모와 동행해 한국을 찾는 경우였다. 또 다른 이는 40대 초반으로, 결혼해 아이가 있지만 ‘아이가 자신의 뿌리를 알았으면 좋겠다’고 해서 함께 올 예정이라는 내용도 있었다.
문서를 읽던 관영은 하나하나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들이 어떤 배경에서 태어나, 어떤 경로로 해외로 입양되었는지는 아직 상세히 알 수 없었으나, 그 ‘짧은 소개’만으로도 많은 이야기가 함축되어 있었다. ‘이 사람을 실제로 보면 어떤 표정일까? 어떤 말을 하고 싶어 할까?’
미정 PD가 회의실 앞쪽에서 입을 열었다.
“우선 첫 만남은 공항에서 예정돼 있어요. 대부분 같은 날짜에 들어오긴 하지만, 일부는 직항편이 없어서 하루 정도 늦게 들어오게 됩니다. 코디네이터 팀이 나눠져서 공항을 여러 번 오가야 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바로 이어서 서울 시내에서 오리엔테이션을 가질 거고요.”
그 뒤에는 지방 촬영 일정, 가족 찾기 절차, 출생기록 열람 등등 계획이 꽤나 긴 목록으로 이어졌다. 관영은 복잡해 보이지만 체계적으로 짜인 스케줄에 이걸 정말 다 해내야 하는구나라는 실감이 났다. 교육은 그날로 끝났다. 이제 다음 주부터는 진짜로 입양인들을 맞이해야 했다.
며칠 후, 드디어 공항에 가는 첫날 아침이 밝았다. 관영은 푹 자려 했지만, 긴장 탓에 잠을 설치고 말았다. 그래도 약속 시각보다 한참 일찍 도착해, 민우를 비롯한 다른 코디네이터들과 인사를 나눴다. 이미 여러 명이 ‘반가워! 다시, 대한민국에 와줘서 고마워’라는 문구가 적힌 환영 패널을 들고 서 있었다.
“오, 관영 님! 여기 계셨네요.” 민우가 손을 흔들었다.
관영은 이제서야 실감이 났다. 이곳에서 곧 해외 입양인들이 나올 텐데, 그들을 맞이하는 순간이 어떨까. 아마 서로가 낯설겠지만, 어쩌면 서로가 기대어야 할 동반자가 될 수도 있으리라. 곧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인천공항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곧 미국 LA발 항공기가 도착 예정입니다.”
스태프들이 일제히 환영 패널을 높이 들었다. 누군가는 꽃다발을 준비해 두었고, 누군가는 카메라팀과 눈짓으로 신호를 주고받았다. 관영은 목이 바싹 말랐다. 조금 전까지는 이들이 내 가족이 아니니, 내가 왜 이렇게 떨지’ 싶었는데, 지금은 그저 뜨겁게 올라오는 감정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출입문이 열리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왔다. 먼저 카메라가 돌아가며, 제작진이 다가가 안내를 시작했다. 이어서 이름표를 단 이들이 조심스럽게 혹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그중 한 중년 여성이 눈가를 닦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그 옆에 있는 10대 소년은 피곤한지 하품을 참느라 입을 가렸다.
“저 사람들인가 봐.”
“네, 맞아요. 참가자 명단에 있던 분들이에요.”
민우와 관영은 곧장 다가가 어서 오세요! 하고 큰 소리로 환영 인사를 건넸다. 영어로, 그리고 필요하다면 서툴지만 한국어로도 몇 마디 건넸다.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던 입양인들도 곧 환한 미소를 보였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시선 속에서, 자신들을 향해 두 팔을 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도 몰랐다.
한참 인사를 나눈 뒤, 모두가 간단한 소개와 환영을 주고받았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출생의 땅’ 한국에 발을 디딘 사람들이 보여 주는 표정은 복합적이었다. 기쁨과 두려움, 설렘과 어색함이 엇갈리는 얼굴들을 지켜보니, 관영의 가슴마저 벅차올랐다.
이후 무리 전체가 공항 버스를 타고 서울 시내의 숙소로 이동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입양인들은 신기해하거나, 어떤 이는 자기 스마트폰으로 연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한국도 건물이 엄청나게 많네요!라고 웃는 사람도 있었고, 부모님이 여기 어딘가 계실지 모르겠네요 라며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버스 안, 관영은 민우와 자리 옆자리에 앉았다. 차가 시내 쪽으로 들어서면서, 드문드문 고층 아파트나 상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오늘이 이들에게는 두근거리는 시작일지 모른다. 관영은 슬쩍 창밖을 바라보다 문득 가족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낯선 여정에 함께 발을 디딘다는 사실에 묘한 설렘을 느꼈다. 어쩌면 자신도 이 과정을 통해 ‘진짜 한국이란 뭘까, 가족이란 뭘까’라는 질문에 대해 조금씩 답을 찾아가게 될지도 몰랐다.
버스가 숙소 앞에 도착했을 때, 이미 카메라팀과 다른 스태프들이 대기 중이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짐을 챙겨 내렸다. 이제 숙소에서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될 것이다. 오늘은 길고 긴 촬영과 만남의 처음이자, 이들에게 ‘다시 찾는 대한민국’의 첫 장면이 될 것이었다.
관영은 마음 한구석의 떨림을 애써 가라앉히며, 입양인들을 반갑게 이끌었다. 카메라 셔터가 연신 터지고, 스태프들이 오가며 지시에 맞춰 움직였다. 그 속에서 관영은 분명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쪽으로 오세요! 오늘 일정 소개해 드릴게요!”
여러 시선이 관영에게 꽂혔고, 그 순간만큼은 왠지 모를 책임감이 솟아났다. 떠밀리듯 시작된 알바였지만, 이제 그는 진심으로 이들이 한국에서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찾고, 또 행복해지길 바라고 있었다. 그 마음이 통하기를 바라며, 관영은 두 손을 꼭 쥐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를 들은 입양인들과 가족들이, 수십 가지의 표정을 품은 채 그를 향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럼 오늘 일정부터 소개해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