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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 T와 T사이에서

ISTJ ♥ ISFJ ≠ ENTJ

by My Way

아들 엄마로 산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엄마 품에서 먹고, 자고, 놀던 때를 지나 자아가 형성되는 순간, 이해가 안 되는 것투성이다.


"아니, 저긴 왜 올라가는 거야?"

"하지 말라고 말하는데, 눈치 보면서 하는 건 도대체 무슨 심보야?"


영유아 때는 그래도 다소 잔잔한 거리들로 엄마 속을 긁어놓지만, 힘으로 제압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것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뿐이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는 엄마보다 힘이 세지면서 이젠 힘으로도 이겨낼 재간이 없다.

그러면, 엄마들은 말로 아이를 이겨먹으려고 한다. 대부분의 남자아이들은 엄마의 잔소리를 너무 싫어하지만, 말솜씨가 좋지 못하니 제대로 된 대꾸를 하지 못한 채 버럭 소리부터 지른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공부해"라는 잔소리와 합쳐지며, 고등학교 입시가 끝날 때까지 보통은 이어진다.


여기까지는, 내가 주변에서 흔히 본 남자아이 엄마들의 모습이다.

내 모습이 아니다.


그럼, 나는?!


나는 늘 FM으로 살아왔다.

기억에 없던 어린 시절부터 그래왔고, 성인이 되어서도 사회적 '금기'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랬던 내게 아이의 변화무쌍한 성장과 끊임없이 발생하는 변수는 감당이 힘든 영역이었다.

그래서 육아서를 논문 읽듯 정독했고, 거기에 맞춰 아이도 FM처럼 키워보려다 시행착오를 많이도 겪었다.


그중에서도, 아이의 성향과 기질을 파악하고, 아이가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나도 아이가 어떤 성격인지,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를 찾아보기보다, 내 기준에서 아이를 판단하고 키웠다.

물론, 나를 주입하려고 했다기보다는 '혹시 나라면 이랬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했던 것이긴 하다.


아이가 낯을 가리면, 나처럼 소심해서.

아이가 모험을 싫어하면, 나처럼 소극적이라서.


그래서, 내가 살아오며 상처받지 않으려고 했던 방법들을 총 동원해서, 신중하게 접근하고, 천천히 적응시키고, 느리게 함께 걸었다.


그랬는데... 그렇게 키웠는데...


사실, 내 아이는 나와 같지 않았다.

아들이라서 조금 다른 줄 알았더니, 그냥 달랐다.

나처럼 소심하지 않았고, 나처럼 세상을 어려워하지 않았고, 나처럼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말도 논리적으로 잘해, 어느 순간 힘도, 말도, 아이를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어렸을 때 그랬던 건, 그냥 어렸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와 많이 다르다는 건 아이가 '내가 할 거야 증후군'을 보일 때부터 이미 예견했던 일인지도 모른다. 내가 강하게 나가면, 강하게 맞받아치는 26개월 꼬맹이를 보면서, 이미 육아와 교육의 주도권이 아이에게로 넘어갔던 건지도 모른다.

사실상, 그때부터 나는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낸다거나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덕분에, 아들 엄마들이 흔히들 겪는 목소리의 변형 부작용을 겪지 않은 채 육아와 교육을 마칠 수 있었다.

어쩌면, 아이가 내게 '내려놓음'과 '인내'라는 육아교육의 쌍두마차를 오히려 가르쳤던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겉으로는 평화로웠지만, 나는 도를 닦으며, 아이의 학창 시절을 곁에서 서포트해 주는 엄마로 살아갔다. 그리고 성인이 된 지금은 '님'과 '남' 사이의 경계 어디쯤에서 '넘'으로 선을 유지한 채 자신의 삶을 개척 중이다.

그래도, 아직은 삶을 배워나감에 있어, 부모의 조언을 경청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주는 나름 괜찮은 아이로 자라는 중이다.


그런데, 아들이 커갈수록 점점 아빠를 닮아가는 것 같다.

외형적인 건, 이미 어릴 때부터 '붕어빵'이었으니 제쳐두고라도, 성격, 말투, 생각까지 비슷해지고 있다.

그 두 남자 틈에서 나는 가끔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에피소드 1]


몇 달 전, 아이가 종합소득세를 신고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을 가족 단톡방에 올렸다.

아이 아빠는 종합소득세에 대해 왜 질문하는지 물었고, 대학원생이 되면서 받은 인건비 등을 정산을 해야 한다는 아이의 대답을 듣고 명쾌한 해답을 내려주었다.

우리의 단톡방 대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아빠 : 작년엔 학부생 신분이었으니, 제대로 된 인건비를 받지 않았을 텐데...
아들 : 네, 그랬던 것 같아요.
나 : 와, 우리 OO이가 이제 이런 것도 해야 하다니...
아빠 : 그럼, 올해는 할 필요가 없고, 내년에 할 때, 아빠가 도와줄게.
아들 : 넹. 감사합니다.


아들의 '첫' 종합소득세 신고라는 것에 포커스가 맞춰진 나의 문장은 읽씹으로 처절한 최후를 맞이했다.



[에피소드 2]


오랜만에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던 아이가 갑자기 이런 질문을 했다.


아들 : 엄마, 아빠는 우리 가족 중에서 누가 제일 중요해요?
아빠 : 나.
나 : OO이.


이 어긋나 버린 사랑의 작대기 시추에이션은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아이 아빠의 대답에 적잖이 당황을 했다. '나'라고 대답하리라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애 앞에서는 'OO이'라고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본인이 제일 중요하다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물론, 부연 설명을 했고, 머리로는 이해를 했다. 본인을 가장 소중히 여겨야, 우리 가족의 행복을 위할 수 있다는 뭐 그런 내용이었다.

아이는 아빠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하지만, 내가 아이의 입장에서 아빠의 저 대답을 들었다면, 너무 섭섭해 눈물이 왈칵 쏟아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쿨한 남자들...

만약 아이의 질문이 '누가 제일 소중해요?'라고 물었다면 대답이 달랐을까?




최근, 아이는 나보다 아이 아빠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 같다.

이젠 일상을 살아가는 지혜보다는 지식에 대한 조언이 더 필요한 시점이라 그런지, 전공이 비슷한 아빠와 더 말이 잘 통하는 듯하다.

둘 사이의 대화는 심오한 문제와 해결방안이 주를 이루고, 나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끼어들 틈이 없지만, 가만히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가끔은 매정한 것 같은 두 남자의 성향은 'T라서 그래'라며 애써 외면 중이다.

T와 T 사이에서 나는, 그래도 행복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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