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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건 못 참아.

영유아편

by My Way

"어릴 때, 엄마 아빠랑 이곳에 와 봤었는데, 기억나?"

"아니요."


아이가 영유아기 때 다양한 체험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으실 겁니다. 그래서 저도 자주는 아니었지만, 아이를 데리고 이곳저곳 나름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조금 크고 나서 보니, 어릴 때 가봤던 장소들, 함께 했던 활동들에 대한 기억은 엄마 아빠만의 추억과 사진으로 남아있을 뿐 아이에게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럴 거면, 어릴 때 굳이 데리고 다닐 필요가 있나?'


그때는 그런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아이가 그때 느낀 감정(즐거움, 놀라움, 새로움 등)과 지식, 정보, 경험들은 아이의 내면에 차곡차곡 쌓였던 것 같고, 그 시절 엄마, 아빠와 나누었던 교감은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데 분명 밑거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영유아기 아이들에게는 비싸고 좋은 장난감보다는 풍족한 사랑함께하는 즐거움, 새로운 경험이 더 가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 아이는 호기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영유아기에도 마치 '궁금한 건 못 참아.'라고 하듯이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관찰하고, 탐색하는 행동들을 했습니다.


생후 7개월, 카펫 모서리에 붙은 작은 라벨을 만지작거리며 관찰하는 행동에서부터 시작해, 외부 환경뿐만 아니라 자신의 귀를 만지고 손가락을 빨아보는 등 자신의 몸을 탐색하는 행동들도 보였습니다. 비슷한 개월수의 다른 아이들처럼 서랍을 열고 안에 있는 물건 꺼내기, 발꿈치 들고 멀리 있는 물건 잡아당기기 등도 당연히 거쳐간 행동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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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아이가 호기심을 보일 때, 저는 다음과 같이 행동했습니다.


첫째, 안전에 관한 문제, 남에게 피해를 주는 문제만 아니면 일단은 아이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편이었습니다.

TV 리모컨을 작동시키고, 컴퓨터 전원 스위치를 누르고, 키보드를 두드리던 시기(생후 13~14개월)를 지나, 키가 좀 큰 후에는 방문을 열고, 스위치를 켜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것에도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럴 때 저는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아이가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때로는 어른의 시선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생후 23개월)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외할머니 집은 13층인데, 굳이 12층에 내려 한 층은 걸어 올라가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아이 전용 샴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른들 샴푸로 머리를 감겨달라고 요구한다거나 하는 것들이었는데, 그럴 때도 저는 특별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아이가 해달라는 대로 해 주었습니다.


둘째, 아이의 호기심을 확장해 보려는 노력을 했습니다.

예를 들면, 컴퓨터 전원 누르기와 키보드에 관심을 보이는 아이에게 저는 마우스 사용법(생후 23개월)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 당시 포털사이트를 통해 동화와 노래를 보고 들을 수 있었는데, 마우스를 사용해 원하는 것을 직접 클릭하고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었습니다. 물론 정해진 시간 안에 행해지는 활동이었습니다.


27개월 무렵부터 다닌 문화센터에서 알파벳과 영어 노래를 주워듣고는 관심을 보인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우리말도 완벽하지 않던 아이에게 2개의 언어를 접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고민이 생겨 잠시 관망을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관심이 지속(생후 34개월)되자 영어 전공자인 막냇동생에게 부탁해 아이와 영어 놀이 하는 시간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셋째, 아이가 궁금해하면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세돌 전까지는 집안 곳곳을 탐험하며 보고, 듣고, 경험하는 일이 더 많았지만, 그 이후에는 바깥활동을 통해 아이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곳, 직접 만져볼 수 있는 곳,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곳, 직접 타 볼 수 있는 곳들을 찾아다녔습니다. 특히, 아이가 책을 읽고 궁금해하는 것이 있으면 그 궁금증은 꼭 해결해주려고 했습니다.

예를 들면, 책에서 '지구와 태양'에 대한 것을 읽고 궁금해하면, OO 과학관으로 갔습니다. 대신, 방문 전날 반드시 사전 활동을 하고 갔습니다. 아이가 궁금해하는 '지구와 태양'에 대한 다른 책들을 좀 더 찾아보고, 집에 있는 여러 가지 크기가 다른 공들로 태양계를 만들어 보는 놀이 등을 했습니다.

이런 활동들은 전문적이지도 디테일하지도 않았지만, 아이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집중도를 높이는데 효과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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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 모든 행동에 '강요'는 없었습니다.

제 아이는 호기심이 많았지만, 모험심이 강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남자아이치고는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영유아기에는 그런 성향이 더 강해, 새로운 환경이나 낯선 것들에 대해 일단은 관망하고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예를 들면, 생후 8개월, 아이를 데리고 부산 해운대를 간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는 첫 바다 풍경에 겁을 먹었는지, 파도소리에 울었고, 몰려오는 비둘기와 갈매기 때문에 울었고, 모래가 무서워 울었고, 모래가 발가락에 끼었다고 울었습니다. 저는 아이가 바다에 천천히 적응할 때까지 기다려주었고, 결국 조개껍질도 만져보고, 모래도 만져보고 돌아왔습니다.


제 아이가 영유아기에 보였던 궁금증은 호기심으로, 호기심은 "왜?"라는 질문으로 이어졌고, 더 나아가 답을 찾기 위한 탐구 활동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아홉 번째 고슴도치 시선] 생후 18개월, 모자를 쓰고 나가면 "딸이에요?"라는 질문과 "예쁘다."는 소릴 자주 들었습니다. 어른들이 "넌, 누굴 닮아 이렇게 예쁘니?"라고 물으시면 십중팔구 "아빠."라고 대답했고, "어디가 제일 예쁘니?"하고 물으시면 '눈'을 가리켰습니다. 이미 말귀를 다 알아듣는 총명한 아이였던 것 같습니다.




[다음 이야기] 왜? 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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