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편
얼마 전, 집 앞에 학원 현수막이 붙었습니다.
의치약학대를 위한 초등 입시반 개설
처음에는 '초등'이라는 단어에 제 눈을 의심했지만, 한편으로는 7세 고시와 4세 고시가 판을 치는 지금의 대한민국 사교육 현장이라면 '초등학생도 많이 늦은 편인가?'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아이의 첫 사교육은 생후 27개월 문화센터 수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어른들 틈에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반드시 익혀야 할 바른 습관 들이기 외에는 정형화되지 않은 다양한 놀이 육아를 하며 지내던 어느 날, 문득 아이가 곧 4살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위기감이 느껴졌습니다.
개월수로 따진다면야 한없이 어리지만, 12월생이다 보니 두 돌이 지나자마자 한국 나이로 4살이 되었고, 5살쯤에는 사회성, 그러니까 친구들과의 관계를 배우기 위해서라도 어디든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디든 보내기 전 적응단계로 문화센터부터 보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 당시 저는 사교육과 공교육에 대한 개념 자체가 머릿속에 없었고, 그 경계도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니 지금에 와서야 '첫 사교육은 문화센터 수업'이라고 말하는 것이지, 그 당시에는 그저 아이의 나이와 사회 분위기에 맞춰 아이를 키워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사교육 청정구역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사교육 맛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제가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박사 학위 논문 심사 중이었습니다.) 친정부모님께 부탁을 드렸는데, 1주일에 한번 가는 그 하루가 친정부모님께도, 아이에게도 활력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사교육 맛보기를 함에 있어 제 원칙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아이가 재미있어할 것.
생후 28개월, 문화센터를 다닌 지 약 한 달 반 만에 아이가 갑자기 문화센터 수업을 거부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왜 가고 싶지 않을까?"
"할머니 말고, 엄마와 같이 갈래.*"
그래서 제가 시간을 쪼개 아이와 함께 문화센터 수업을 들으러 갔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제가 함께 갔음에도 문화센터 수업에 집중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고, 재미없어하는 것 같았습니다.
"OO이는 문화센터 수업이 재미없어? 어떤 부분이 재미없을까?"
문화센터 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저는 아이의 마음을 알고 싶어, 이것저것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한참을 망설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춤이 너무 시시해."
당시 춤에 일가견(?)이 있던 아이는 문화센터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시는 율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우리 OO이 정도의 실력이라면, 시시할 수 있지."
저는 그렇게 아이의 마음을 달래준 후,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한동안 막춤(?)을 출 수 있게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날 이후, 아이는 '춤'을 제외하고는 선생님 말씀을 잘 따랐고, 나선다거나, 아는 척을 한다거나, 까분다거나 하는 일 없이 모범적으로 행동해 다행히도 선생님께서 많이 예뻐해 주셨습니다.
둘째, 문화센터를 통해 아이의 관심분야를 찾아낼 것.
제가 아이를 문화센터에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아이가 사회성을 배우러 어디든 가기 전에 선생님과 친구들이 있는 환경을 미리 접해봤으면 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더불어 이 수업들을 통해 아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잘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체육수업, 음악수업(뮤직가튼), 블록수업(레고닥타) 등 매 분기마다 다른 수업을 신청해 참여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무사히 박사학위 심사를 마치고, 드디어 아이를 데리고 문화센터를 다니기 시작하자 제게 애정 어린(?) 훈수를 두는 엄마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왜, OO이 엄마는 한 과목을 1년 단위로 꾸준히 듣지 않고 옮겨 다녀요? 이렇게 하면 수료증도 못 받고 레벨업도 힘든데?"
저는 그때도 지금처럼 내향형이었으나, 무식해서 용감했던 시기(03화 참조)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누가 뭐라든 그냥 제 생각대로 3개월 단위로 수업을 옮겨 다녔고, 결국 그곳에서 제 아이의 관심분야를 찾아내었습니다.
제 아이의 문화센터 수강은 가을학기를 끝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사교육 맛보기가 아니라, 본격적으로 사교육 정글에 첫발을 내딛을 준비가 필요하다 판단해, 아이가 갈만한 곳을 찾고, 그곳에서 적응하는 기간을 길게 가졌습니다.
문화센터는 약 9개월 만에 끝났지만, 그 여운은 꽤 오래 이어졌습니다.
"우리 친구들 모두모두 모이세요. OOO(이 놀이가 시작되면, 누가 되었든 모두 이름 석자로 불렸습니다.). 선생님이 부르면 예예 선생님 해야지. OOO."
"예예 선생님."
"자, 신나게 하자."
"예예 선생님."
그 당시, 역할놀이에 심취해 있던 아이는 문화센터 선생님 놀이를 시작했고, 이 놀이가 시작되면 최소 2명 이상은 모여 아이가 가르쳐 주는 춤도 추고, 노래도 불러야 해, 생각보다 체력이 많이 소모되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부작용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문화센터에서 배운 것들을 집에서 따라 하고, 반복하면서 새로운 분야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는 순기능도 있었습니다.
* 아이의 높임말은 의사소통이 수월해졌던 생후 21개월 무렵부터 가르치기 시작했지만, 긴 문장을 말할 때에는 제대로 된 끝맺음이 되지 않아, 본격적으로는 33개월부터 연습을 시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지 가끔은 "엄마, 놀자~~~ 요."라든지, "엄마, 오늘은 문화센터 가는 날이야~~~ 요?"라고 해서 식구들을 웃음 짓게 만들었습니다.
[여덟 번째 고슴도치 시선] 실로폰에서부터 시작된 음악놀이(7개월)는 집안의 온갖 물건들을 두드리는 음악활동이 되었다가, 제대로 된 음악놀이세트 장난감을 이용한 작은 음악대(20개월), 아빠와 결성한 밴드(26개월)를 거쳐, 솔로 기타리스트(28개월)로까지 발전하였습니다. 아무래도 음악적 소양이 풍부하고 끼가 많은 아이였던 것 같습니다.
[다음 이야기] 궁금한 건 못 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