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또 갑각류 이야기네요.
'늬들이 게맛을 알어?'의 2탄, 아닙니다.
이곳은 '브슐랭 가이드 VER 2026' 매거진을 위해 엄선한 저만의 맛집 리스트 중 의미 있는 곳이라, 제일 먼저 소개해 봅니다.
아마 한 15년은 넘게 이곳을 방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매년 딱 하루, 저희의 결혼기념일에 말입니다.
지금은 대구 수성관광호텔 별관 2동 3층에 있어, 창가 쪽 룸에서는 수성못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지지만, 예전에는 나즈막한 1층에 있었습니다.
제 기억에 세 번 정도 자리를 옮겨 지금의 위치에 온 것 같은데, 그 역사를 함께 하고 있네요.
처음 이 집을 방문했을 당시에는 랍스터가 꽤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가난한 대학원생 부부가 한 끼 식사로 지불하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는 가격이었죠.
하지만, 저희 신랑이 연구실 회식으로 방문해 본 뒤 저희와 함께 오고 싶었나 봅니다. 그 덕분에 결혼기념일에 어린 아들과 함께 이곳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날, 처음 맛본 랍스터 맛은 정말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맛도 분위기도 정말 최고였죠. 물론 아들의 랍스터를 손질해 주느라 저희 신랑은 우아하게 식사에만 집중할 순 없었지만요.
아이도 매일매일 오고 싶다고 할 정도로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곳 메뉴는 거의 변함이 없습니다.
바닷가재 회, 바닷가재 양념구이, 바닷가재 버터구이, 그리고 바닷가재 찜이 메뉴의 전부입니다. 그중 양념구이와 버터구이는 반반 주문이 가능합니다.
메뉴를 주문하면, 죽과 식전빵이 먼저 제공되고, 이어서 야채샐러드와 야채비빔국수가 나옵니다. 식전빵은 추가로 주문할 수도 있습니다.
메인 메뉴인 랍스터를 먹은 뒤에는 볶음밥과 미역국이 차례로 나오며, 마지막에는 플레인 요거트 디저트와 함께 녹차, 커피, 매실차 중 한 가지를 선택해 마실 수 있습니다.
메인 메뉴는 입에서 살살 녹습니다. 그런데 저는 마지막에 먹는 볶음밥과 미역국이 유난히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종종 했습니다. 사실 특별한 건 없습니다. 속재료가 눈에 잘 띄지 않는 단출한 볶음밥에, 미역국은 시판용 제품을 쓰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미역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고슬고슬한 밥알이 약간 짭조름한 맛과 잘 어우러져 입가심을 톡톡히 해냈고, 후추 향이 살짝 나는 미역국과도 찰떡궁합이었습니다.
처음 방문한 날, 매일매일 오고 싶다던 아이에게 저희는 매년,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을 축하하러 오자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대로 저희는 매년 방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식사비는 아들이 지불하고 있습니다.
카운터 위로 얼굴이 닿지 않을 정도로 작았던 꼬맹이가 1년간 모은 용돈을 꺼내 고사리 같은 손으로 계산하는 모습, 상상되시나요?
두 번째 방문한 날,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을 축하하는 의미로 랍스터를 자신이 사겠다며 아이는 카운터 앞에 섰습니다. 저희도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지만, 직원들도 아이가 돈을 꺼내는 모습을 귀엽게 바라보며 칭찬을 듬뿍 해주었습니다.
그날 이후, 결혼기념일 식사비는 여전히 아들이 지불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저희는 이곳을 다녀왔습니다.
저희보다 바쁜 아들 때문에 결혼기념일보다는 조금 이른 주말에 들렀고, 아이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대전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젠 아빠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훌쩍 자란 아이는 카드로 결제를 합니다.
그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지갑에서 만 원짜리를 한 장 한 장 꺼내던 어린 시절의 모습이 겹쳐져 코 끝이 시큰하더군요.
이 이벤트는, 언젠가 아이가 짝을 만나 자신만의 결혼기념일이 생기면 자연스레 사라지겠죠?
저희 신랑은 그런 게 어디 있냐며 평생 해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지만, 사실 이 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매년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어때요?
이만하면 사랑이 꽃피는 랍스터, 맞죠?
내년에도 별일이 없다면, 아들이 사 주는 랍스터를 맛보러 갈 생각입니다.
랍스터를 즐긴 뒤 수성못 주변을 거닐며 차 한잔을 마시는 것, 그게 바로 행복 아니겠습니까?
이상, '브슐랭 가이드 VER 2026'의 My Way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