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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 Way Nov 15. 2024

심하게 앓았던 중이염

생후 30, 31개월 육아 & 놀이(교육)

봄학기 문화센터(3, 4, 5월)를 마무리하고 여름학기가 시작되었다. 

문화센터에 대한 적응이 어느 정도 된 것 같아 1주일에 2번 가도록 2과목을 신청했다. 하나는 칼비테 키즈라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레고닥타베이비였다. 솔직히 말해 칼비테 키즈는 뭘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는 게 없다. 크게 감흥이 없었는지 기록도 없다. 하지만, 레고닥타베이비는 레고블록을 가지고 여러 가지 활동들을 했던 프로그램이었다는 것, 그리고 이 수업이 아이의 어린이집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것 때문에 정확하게 기억을 하고 있다.

 

아이의 여름학기 문화센터는 거의 대부분 나와 함께 갔다. 

아직 논문 마무리 작업과 논문 제출이라는 일정이 있긴 했지만, 논문 심사 당시와 비교하면 시간적 여유가 제법 있었다. 나와 함께라서 좋은 건지, 아니면 이제 적응이 완벽하게 되어서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이가 문화센터 가는 것을 너무 좋아했다. 특히, 레고닥타베이비를 재미있어했는데, 친구들과도 잘 지냈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들었으며, 수업 중 활동도 적극적으로 해내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이렇게나 재미있어하던 문화센터를 한 달 넘게 가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날은 문화센터를 가는 날이었는데, 학교에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겨서 동생이 아이와 함께 문화센터를 다녀왔다. 동생말에 따르면 별 탈 없이 잘 놀고 왔다고 했다

그런데, 학교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더니 나를 보자마자 안겨서는 "엄마"만 부르고 우는 것이었다. 

'지난달 그렇게 바쁠 때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뭐지?' 싶어 아이를 꼭 안은채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살펴봤더니 열이 좀 나는 것 같았다. 

사실, 계속 감기기가 있긴 했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콧물만 나는 수준이라 그냥 집에서 케어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아이가 계속 울고 열이 슬슬 오르는 것 같으니까 마음이 급해져 문을 닫기 일보 직전인 동네 소아과로 달려갔다. 마감 직전임에도 불구하고, 단골 환자다 보니 감사하게도 아이의 진료를 봐주셨는데, 진찰 결과 "중이염"이라고 하셨다. 그것도 두쪽 모두. 그것도 매우 심하게...


중이염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울 아들의 경우 감기를 너무 오래 달고 있었던 것이 원인인 것 같다고 하셨다. 중이염은 처음 걸린 거라, 많이 당황스러웠다. 밤새 귀가 아프다고 깨는데 맘이 너무 아팠다. 열도 잘 안 떨어졌고, 꽤 오랫동안 고생을 했다. 약이 잘 안 들어서 항생제를 3번이나 바꾼 후에야 열이 떨어지고 효과를 보기 시작했는데, 완전히 낫는데 까지 약 한 달 반 정도가 걸린 것 같다. 


이 와중에 아이는 낮에 잘 놀았다. 다만, 하루에도 몇 번씩 열이 오락가락했고, 열이 오르기 시작하면 고열이 나서 아이가 축 쳐졌다. 밤에는 귀가 더 많이 아프게 느껴지는지 밤잠도 계속 설쳤다. 


3일에 한 번씩 병원을 다녔더니, 이제 의사 선생님이 편한 지 진료도 잘 받았다. 코 빼는 거랑 주사 치료만 아니면 울지 않았고, 병원에만 오면 덩그러니 놓여 있는 미끄럼틀에서 1시간 넘게 다양한 놀이를 하면서 집에 가지 않으려고 해 애를 먹기도 했다. 

'그런데, 어떻게 저 하나의 기구로 1시간 넘게 혼자 놀고 있는지...' 참 신기하긴 했다.


열이 떨어지고 나서도 완전히 낫는 데까지 시간은 좀 걸렸지만, 입맛이 슬슬 도는지 밥을 제대로 먹기 시작했다. 다만, 중이염에 걸리고 난 이후부터는 빨대로 음료를 먹으면 귀가 아프다면서 빨대를 거부하는 증상이 나타났다. 귀가 다 나은 후에도 한동안 빨대는 기피대상이 되었다. 

이후 중이염에 걸리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썼지만, 생후 33개월에 감기와 함께 중이염이 한번 더 왔다. 하지만, 첫 중이염으로 고생을 실컷 한 뒤끝이라, 빠르게 발견하고 빠르게 조치한 덕분에 완치되는 데 짧은 시간이 소요되었고, 스무 살이 된 지금까지 더 이상 중이염에 걸린 적은 없었다. 


그리고 아이가 중이염을 앓는 동안,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아이가 생각보다 참을성이 많다는 거였다. 아이를 키우면서 여러 번 느꼈던, "아픈데도 참 잘 논다."가 순한 아이라서 그런 줄 알았는데, 참을성이 많아서였던 것이다. 참을성이 많은 건 여러모로 장점인 것 맞지만, 참을성이 많아서 생기는 일, 특히 병과 관련된 것은 생각보다 큰 사건을 만들기도 했다(관련 이야기는 "20년 만에 다시 쓰는 육아/교육일기 3"을 기대해 주세요.). 


한 달 넘게 중이염을 앓다가 완치 판정을 받은 후, 제일 먼저 한 일은 문화센터에 가는 것이었다. 아픈 동안에도 너무너무 가고 싶어 했는데, 오랜만에 출석을 했더니 선생님과 친구들, 아이들과 함께 오시던 부모님들이 반겨주셔서 기분 좋게, 재미있게 수업을 하고 돌아왔다. 


중이염 이후엔 구내염이 생겨 밥 먹는 게 다시 부실해졌지만, 그래도 중이염만큼 아픈 건 아닌지 잘 견뎌냈다. 


먹는 건 가리는 것 없이 잘 먹었지만, 여전히 가공되지 않은 것 위주로 먹었던 시기였는데, 이모들의 농간(?)으로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눈을 떠 가끔 아이스크림을 간식으로 먹기 시작했다.


이 시기, 연습용/교정용 젓가락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사진을 찍으면 검지와 중지를 펴 V를 그리며 찍었다. 

윙크도 할 수 있게 되어서 더 다양한 포즈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계산놀이가 시작되었다.  

아침에 눈만 뜨면 뭘 살 거냐고 물어봤고, 물건을 이야기하면 외할머니의 계산기를 두드리며 가격을 알려주었다. 

'도대체 어디서 뭘 본거야?'

엉터리 계산이긴 했지만, 병원놀이, 소꿉놀이에 계산놀이가 더해져 역할놀이 자체가 꽤나 풍성해졌다. 

그래서, 작은 계산대가 있는 장난감과 어린이은행 화폐 등 소품을 사줬다. 외할머니께서 가계부를 쓰실 때 사용하시던 계산기는 돌려드리고, 어린이용 계산기와 어린이은행 화폐로 훨씬 더 재미있게 놀았다.


뽀로로와 토마스 기차는 같은 걸 봐도 재미있는지, 본방에 재방까지 넋을 놓고 봐서 그 당시 EBS TV 편성표를 외우고 다녔다. 아이가 물어볼 때마다 지금은 하는 시간인지 아닌지를 알려주었고, 프로그램이 방영하는 시간이면 미리 알려주고 TV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예쁜 자세로 얌전하게 볼 수 있게 준비시켰다.   

TV 시청이 끝나면, TV에서 본 놀이를 따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특히 뽀로로에서 루피가 요리를 한 날엔 소꿉놀이세트를 펼쳐 루피처럼 요리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외할아버지께서 사주신 빨간색 자동차는 여전히 최애 장난감이었고, 끼우는 블록이 아닌 쌓는 블록도 제법 높게 쌓는 놀이를 즐겨했다.


문화센터 선생님 놀이는 디테일이 더해져, 집에 있는 소품들까지 동원해 놀이를 즐겼는데, 이 놀이가 시작되면 최소 2명 이상은 모여야 했고, 아이가 가르쳐 주는 춤도 추고 노래도 불러야 해서 생각보다 체력이 많이 소모되었다.


토마스 기차를 즐겨보더니 역시나 기차놀이에 푹 빠져서 TV에서 본 토마스 기차 내용을 흉내 냈다. 

처음엔 집에 있는 기차 장난감을 가지고 했지만, 이모들이 "토마스 기차" 장난감을 사준 뒤부터는 하루종일 토마스 기차 장난감을 손에서 쥐고 놓지 않았다. 그런데, 토마스 기차놀이는 내가 생각하기에 좀 과격하고 공격적인 내용이 많았다. 예를 들면, 고든 기차가 철길에서 떨어진다든지, 토마스가 어디에 부딪힌다는지 하는  내용이 많아 제법 시끄럽기도 하고, 위험해 보이기도 했다. 

'가만히 둬도 될까?' 하는 생각이 간혹 들긴 했지만, 너무 재미있게 놀아 일단은 지켜만 봤다. 


너무 더워 그런가, 층간소음을 걱정할 만큼 축구, 농구에 진심이더니 조금 뜸해졌고, 문화센터에서 영어노래를 배우고 온 뒤부터는 집에서 영어 노래를 하루종일 흥얼거렸다. 하지만, 영어 가사는 기억이 잘 안 나는지 마음대로 지어 부르는 것 같았다. 


아이의 30개월과 31개월은 6월과 7월이라 바깥활동 하기에 딱 적당했던 것 같다. 

그런데, 중이염에 걸려 초반에는 나가지 못했다. 중이염이 거의 나아가던 31개월 중반 이후부터 대전 결혼식에도 다녀오고, 아빠 연구실 MT도 따라갔다 오고, 월드컵 공원에서 축구와 분수놀이를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울 신랑 후배가 카이스트에서 야외결혼식을 했었다(이야, 이때부터 카이스트에 발을 들여놨었구먼!). 

거기 참석차 대전에 갔다가 새로 생겼다는 동물원, "오 월드"에 들렀었다. 이 동물원엔 사파리가 있다길래 갔던 건데, 낮이라 그런지 야행성인 맹수들은 모두 널브러져 자고 있고, 얼룩말과 기린만 왔다 갔다 해 좀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아이는 신기했는지 차창과 한 몸이 되어 동물들이 가까이 올 때마다 연방 탄성을 질렀다. 

짧은 사파리 구경 후엔 놀이기구를 타러 가서 키 제한을 통과하는 모든 것, 부모 동반으로 탈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타고 왔다. 나는 놀이기구를 너무 무서워해 회전목마 외엔 타지 않는데, 울 아들은 남자아이라 그런지 무서워하질 않고 즐기는 것 같았다. 아기용 바나나킥이라고 상승했다가 단계별로 급강하하는 놀이기구도 타보겠다고 해서 혼자 태웠는데, 옆에 앉은 누나, 형들은 소리도 지르고 울기도 하고 그러는데, 울 아들은 그걸 타는 내내 웃고 있었다. 진짜 내 과는 아닌 것 같다. 


아빠 연구실 MT는 충무와 거제가 목적지였고, 2박 3일 일정이었는데, 중이염 치료 막바지라 따라갔다 왔다. 약을 먹고 있는 중이긴 했지만, 일상 루틴을 지키면서 별 탈 없이 잘 놀다 왔다. 

다만, 1년 만에 다시 만난 연구실 이모, 삼촌들이 또 낯선지 내 무릎과 품에 자꾸 파고들었고, 아빠만 찾았다. 같이 간 또래 아이들과 노는 것도 영 어색해했다. 아무래도 아팠던 것이 영향을 끼친 것 같긴 하지만, 덕분에 남자아이 치고 참 얌전하다는 칭찬을 들었다. 

뭐, 다른 남자 아기들에 비하면 얌전한 편이긴 했다. 하지만, 가끔 떼를 쓸 때면... 할많하않. 어쨌든, 이젠 MT 정도는 수월하게 다녀올 수 있을 정도로 키운 것 같았다.  


중이염이 낫고 난 후의 어느 주말 저녁, 날도 덥고 하길래 아이를 데리고 월드컵 공원에도 다녀왔었다.

축구공을 하나 챙겨 들고 갔는데, 어찌나 잘 달리는지 따라다니기가 쉽지 않았다. 아직은 주변의 상황을 확인하고 행동하는 나이가 아닌지라, 공만 보고 뛰는 바람에 자전거 타는 사람, 인라인 타는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도록 케어해야 했고, 공이 다른 사람에게 가지 않도록 막아야 해서 아빠와 하는 축구놀이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더 땀을 뻘뻘 흘렸던 것 같다. 

장난꾸러기 기질도 어김없이 나와 공을 분수에 자꾸 빠뜨리려고 하는 바람에 울 신랑과 내가 그걸 막아내느라 용을 썼다. 아이의 체력을 방전시켜 보겠다고 나왔다가 우리 체력이 방전되는 꼴이었다. 결국 공은 분수에 빠져버렸고, 그 공을 구해내는 과정에서도 아이는 즐거워 보였다. 

여름이다 보니, 월드컵 공원의 바닥 분수에서도 물이 쏟아져 나왔는데, 바로 들어가 보지 못하고 손에 물 묻혀보기, 발에 물 묻혀보기, 발 담가보기, 그리고 조금씩 안으로 들어가 보기 같은 단계를 거쳐 겨우 분수대 중앙까지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장난을 치거나 놀이기구 타는 걸 보면 꽤나 대담한 것 같다가도, 또 어떨 땐 조심성도 많고 겁도 좀 많은 것 같아, 아직은 아이의 기질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든 시기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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