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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 Way Nov 18. 2024

반드시 해야 하는 일과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

생후 32개월 육아 & 놀이(교육)

아이가 32개월이 되었던 달에 드디어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를 받고 나면 뭔가 새로운 도전이 기다릴 것 같고, 새로운 세상으로 한걸음 더 나아갈 것 같았지만, 현실은 "육아"와 "경력" 사이에서 저울질을 해야 하는, 고민이 많은 시기였다.


졸업식(학위 수여식)을 하기 전까지 논문을 마무리 짓고 제출해야 하는 일정들이 있긴 했지만, 집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들이라 되도록이면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아이의 생후 32개월은 나와 보낸 시간이 가장 많은 달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덕(?)에 자아가 강해진 아이와 부딪히는 일들이 늘어갔다. 


이 시기 아이의 떼쓰기는 이전까지와는 양상이 달랐다. 

분명 의사소통이 잘 되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려고 애쓰던 아이였는데, 말이 안 통하고 막무가내인 날들이 생겼다. 

일단, 짜증이 아닌 분노를 표출하는 일들이 잦아졌다. 화가 나면 소리를 질렀고, 다른 사람(특히 큰 이모)을 때리는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습관적으로 반드시 해야 하는 일들, 세수하기, 이 닦기 등을 하지 않겠다는 반항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시기 "좋고 싫음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일과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첫째, 화가 날 때, 다른 사람을 때리는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둘째, 이 닦고, 세수하는 일 등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앞서(생후 26, 27개월) 언급했다시피, 울 아들은 꽤나 강성이라 한번 고집을 피우고 떼를 쓰기 시작하면 감당하기 힘든 날도 있었다. 물론 자주 그랬던 건 아니었지만. 

그런데, 이 시기엔 그 강도가 꽤나 더 셌던 것 같다. 그래서 몇 번의 위기와 고비가 있었다. 하지만, 잘못을 잘못으로 인지할 때까지 설명하고, 설득하고, 버텨냈다. 


그때 당시 기록에 따르면, "나는 아이가 적어도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아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건강한 정신과 건강한 마음으로 바르게 잘 자라주면 좋겠다. 그러니, 아이의 잘못을 인지했다면 아이에게 휘둘려서는 절대로 안된다. 이 기싸움에서 반드시 이겨내야 한다."라고 적혀 있다. 

나 또한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었나 보다. 

결국, 아이에게 "반드시 해야 하는 일과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인지시켰고(그때는 그렇게 느꼈다. 성공한 줄 알았다.), 이런 일들은 좋고 싫고의 감정 문제가 아니라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라고도 가르쳤다. 


그래도 아직은 세돌이 안된 순진한 아기인지라, 아이가 안정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동화책 속 이야기나 아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의 내용을 섞어 설득하는 것이 가장 잘 먹혔던 것 같다. 

예를 들면, "큰 이모를 자꾸 때리면, "오즈의 마법사"의 토네이도가 와서 OO이 혼자 오즈로 날아가버릴 수도 있다."라든가, "돼지가 된 뽀로로" 이야길 들려주면서 "이를 안 닦으면, 뽀로로처럼 돼지가 될지도 모른다." 같은 협박(?) 비슷한 걸 했다. 그러면, 겁을 잔뜩 먹어 말을 듣기도 했는데, 특히 돼지가 될지도 모른다고 하면 코를 잡고 뛰어와서 이를 닦아달라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화가 나 있는 상태에서는 그냥 정공법으로 나가는 게 가장 효과적이었다. 


이후에도 몇 번 더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긴 했지만, 엄마한테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싶은 지, 화를 내기보다는 말로 표현하려 했고 사람을 때리는 행동은 사라졌으며, 너무너무 싫은지 한숨을 쉬어가면서도 이를 닦고 세수를 꾸역꾸역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반드시 해야 하는 일과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제대로 인지시켰다고 생각했고, 울 아들이 순하고 똑똑해서 굉장히 빨리 받아들였다고 대견해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32개월엔, 아주 조금이긴 하지만, 다양한 음식을 맛보기 시작했다. 

전도 먹어봤고, 도넛이나 핫도그도 먹어보기 시작했다. 어른들이 먹을 때 약간씩 조각내서 맛 보였는데, 확실히 단 맛이 들어간 음식은 좀 꺼리는 편이었다. 

밥은 엄청 잘 먹는 편이었지만, 과자 같이 살찌는 간식을 안 먹여서 그런지 몸무게는 잘 늘지 않았다. 


여름학기 마지막 문화센터 날에는 아이 아빠가 황금 같은 휴가를 받아 아이와 함께 문화센터를 갔다 왔었다. 엄마 없이 아빠와 둘만 함께한 시간이었음에도 너무 잘하고 왔고 둘만의 추억거리를 쌓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준 것 같이 괜히 내가 다 뿌듯했다. 

남자 아이라 그런지 키울수록 아빠와 점점 붕어빵처럼 닮아 갔는데, 외모뿐만 아니라 행동도 닮아가는 것을 볼 때마다 흐뭇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시기 가장 많이 했던 외출은 이마트 방문이었던 것 같다. 

날이 너무 더워 매일 저녁 이마트에 출근 도장을 찍으러 다녔는데, 이마트에 가면 자동차 카트를 꼭 타야 했고, 서점에 들러 책을 꼭 읽어야 했다. 


집에 있는 책들도 열심히 반복해서 읽어줬더니, 짧은 동화 같은 경우에는 정말 한 자도 틀리지 않게 외워서 되려 우리에게 읽어(?) 주기도 했다. 


영어에 대한 관심도 계속되어서 문화센터에서 배운 것들을 집에서 흥얼거렸지만, 여전히 가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지 중국어같이 들리는 단어들로 영어노래인 척하는 것을 스스로 만들어 부르고 다녔다. 

슬슬 알파벳이라도 알려줘야 하나 어쩌나 고민이 되기 시작했지만, 다문화 가족도 아닌 우리 집에서 아직 우리말도 완벽하지 않은 아이에게 어설프게 2개의 언어를 접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건 아닌 것 같아 일단은 지켜보기로 했다.  


집에 있는 물건들을 이용한 창의적인 놀이를 스스로 개발해 놀이를 주도하기도 했고, 장난감들을 갖고 놀되 실제 용도와는 상관없는 놀이에 활용하는 모습도 종종 보였다. 


뽀로로와 토마스 기차에 대한 사랑은 여전했는데, 특히 토마스 기차 장난감을 가지고 혼잣말을 하면서 노는 모습이 제일 자주 보였다. 


미술 놀이는 좀 더 다양해져서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도 재미있게 놀았다.  


그리고, 32개월이 끝날 무렵 엄마, 아빠, 이모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함께 첫 휴가를 다녀왔다. 

한 명도 빠짐없이 온 식구가 함께 간 건 처음이었는데, 무더운 여름이라 청도 운문산 계곡에 가서 고기도 구워 먹고, 물놀이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왔다. 

아직은 아이가 많이 어려서 수영을 하진 못하고, 그저 물장구를 치는 정도였지만, 그래도 재미있어했다. 어른들이 계곡물에 몸을 담그고 수영을 하고, 따뜻한 돌 위에서 낮잠을 잘 때, 아이는 발을 물에 담근 채, 작은 조약돌을 주워다가 하루종일 계산놀이만 했는데도 재미있었단다. 

돌아오는 길에 꾸벅꾸벅 졸기 시작해서 다음날 아침에서야 눈을 떴는데, 눈을 뜨자마자 "돌 많고 물 많은 곳이 젤 좋아."라고 할 정도로 재미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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