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33개월 육아 & 놀이(교육)
목표로 했던 학위는 받았지만, 나의 다음 행보가 정해지지 않은 채,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다.
연구실에 매일 출근해야 할 필요는 없어졌지만, 여전히 연구실 세미나에 참석했고, 후배들의 논문을 봐줬으며 정기적으로 강의를 하러 나갔다.
그래도 시간적 여유가 많아 점점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던 시기였다.
하지만, 지난달에 비하면 엄마가 많이 바빠졌기 때문에 혹시나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을까 봐 주간 계획표를 짜서 벽에 붙여 두었다.
월요일 : 엄마 학교 가는 날
화요일 : 엄마랑 문화센터 가는 날
수요일 : 엄마 학교 가는 날
목요일 : 엄마랑 놀이날. 가끔 학교 갈 수 있음
금요일 : 엄마 학교 가는 날
토요일 : 엄마와 함께하는 즐거운 놀이날
일요일 : 엄마랑 아빠랑 함께하는 즐거운 놀이날
그리고, 학교를 가기 전, "오늘은 O요일. 그래서, 오늘은 O 하는 날." 하면서 인지 시킨 후 학교를 다녀왔더니 쉽게 적응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엄마가 학교를 가는 날은 싫어했다. 그래서, 어떤 날은 월요일인데도, "와, 오늘은 화요일이다. 그치?" 하고 말하기도 했다.
월, 수, 금을 제외한 놀이날에는 대부분 집에서 함께 놀았지만, 키즈카페를 간다거나 동네 놀이터를 간다거나, 가끔 아빠 연구실에 가서 점심을 함께 먹고 오기도 했다.
학교를 나가는 날을 제외하고는 아이와 가능하면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는데, 다행히 지난달과 같은 기싸움(?)은 더 이상 벌어지지 않아 평화로운 육아가 다시금 시작되었다(그런 줄 알았다.).
아이와 의사소통이 수월해졌던 생후 21개월 무렵부터 높임말을 가르치기 시작했지만, 긴 문장을 말할 때에는 제대로 된 끝맺음이 되질 않았었다. 그래서 이 시기 본격적으로 높임말을 연습시키기 시작했다.
"어른들께는 항상 말을 끝맺을 때 "~요."라고 해야 해."라고 했더니, 제법 잘 따라 했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지 가끔 "엄마, 놀자~~요."라든지 "엄마, 오늘은 문화센터 같이 가는 날이야~~요?"라고 해 식구들을 웃음 짓게 만들기도 했다.
물건 정리정돈도 이젠 시키는 대로 잘했고, 어떤 날엔 시키지 않았는데도 놀고 나면 치우기도 했다.
발뒤꿈치를 들긴 해야 했지만, 엘리베이터 버튼도 누를 수 있을 만큼 키가 컸고, 몸이 재바른 편이다 보니, 잘 뛰어다녔다. 하지만, 앞뒤 살피지 않고 그저 뛰어다녀,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지는 날들이 많아 혹시 아이를 잃어버릴까 봐 노심초사했던 시기였다.
생후 33개월, 가을학기 문화센터는 음악 관련 수업(뮤직 가튼)과 아이가 좋아했던 레고닥타베이비, 2개를 신청했는데, 레고닥타베이비가 폐강되는 바람에 음악 수업만 듣게 되었다.
벌써 6개월째 문화센터를 다니다 보니, 서로 인사를 나눌 만큼의 친분이 생긴 엄마들도 있었는데, 나의 가을학기 수강신청 상황을 보더니, 좀 의아해했다.
"왜, OO이 엄마는 한 과목을 1년 단위로 꾸준히 듣지 않고 옮겨 다녀요? 이렇게 하면 수료증도 못 받고 레벨업도 힘든데?"
하지만, 나는 아이가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걸 잘하는지 알고 싶어서, 그리고 어린이집에 들어가기 전까지 다양한 경험을 쌓았으면 해서 문화센터를 다니기 시작한 거라 남들이 뭐라 하든 꿋꿋하게 3개월 단위로 과목을 옮겨 다녔다.
그런데, 가을학기에 수강하기 시작한 뮤직가튼 수업은 아무래도 실패를 한 것 같았다.
일단 인원이 너무 적은 수업이라 선생님과 거의 1:1 수업을 했고, 내용 자체가 전래동요를 듣고 덩실덩실 춤을 추는 활동들을 하다 보니 아이가 많이 부끄러워하고 당황스러워했다.
그래도 엄마와 문화센터 가는 건 좋은 지 가지 않겠다고 하진 않았는데, 수업 참여율이 50%밖에 되질 않았다. 어떤 활동은 잘 따라 했다가, 또 어떤 활동은 부끄럽다면서 거부했다.
아이가 거부하는 활동의 경우엔, 선생님 입장에서는 엄마가 좀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게 유도해 주길 바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러질 않았다. 아이가 하고 싶어 하지 않으면, 얌전히 앉아서 선생님이 뭘 하시는지, 친구들은 어떻게 하는지 함께 구경했고, 그러다 아이가 관심을 보이면 그때서야 활동을 할 수 있게끔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아마,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난 극 I형 사람인데, E처럼 행동하려고 노력했던 것이.
나는 원래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 맺음에 시간이 꽤 오래 걸리고, 낯선 환경에 불편함을 느끼는 편이었다. 그런데, 아이와 함께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선생님을 찾아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고, 아이 또래 엄마들과 먼저 인사를 나누는 등의 오지랖을 부리기 시작했다.
성격이 쉽게 바뀌는 건 아니라서 그 과정이 쉽진 않았지만, 내 아이를 위해서 어쩔 수가 없었던 것 같다.
'부끄러워하던 아이가 저 놀이는 해 보고 싶다는데, 엄마인 내가 부끄러워서 선생님한테 말씀을 못 드리는 그런 상황은 좀 아니지 않나.'라고 생각하며 용기를 냈던 것 같다.
이 시기, 아이와 나, 둘이서만 하는 일들도 늘어났다.
문화센터도 둘이서만 다녔고, 목욕탕도 둘이서만 다녀왔다.
적어도 2인 1조 내지는 3인 1조로 움직여야 활동이 편했는데, 이젠 혼자서도 아이를 케어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만큼 아이가 잘 따라와 주었다.
그래서 아이와 단 둘이 지하철을 타고 교보문고를 다녀왔다.
집에서 교보문고까지 왕복한 시간과 교보문고에서 보낸 시간을 합하면 총 5시간 정도 소요되었는데, 책을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너무 신나고 행복한 날이었던 것 같다.
지하철 역에 도착해서는 아이가 직접 표를 끊을 수 있게 해 주었고, 지하철 입구에서도 직접 표를 넣을 수 있게 해 주었더니 너무 좋아했다.
마침 우리의 목적지로 가는 지하철이 도착했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다음 기차를 타고 가자고 해서 기다렸다. 알고 봤더니, 지하철을 보면서 토마스 기차를 연상해 빨간색 1호선 지하철은 제임스(james), 회색은 스펜서(spansor), 초록색이 좀 많이 있는 지하철은 퍼시(percy)라고 이름 붙이며, 차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어릴 땐 소리에 꽤나 민감한 편이었기 때문에 지하철 소리에 스트레스를 받진 않으려나 걱정했지만, 그래도 지하철을 몇 번 경험해 본 적이 있어 그런지 지하철이 들어올 때마다 눈을 동그랗게 뜨기는 했지만, "기차 들어온다." 하면서 즐기는 것 같았다.
목적지인 교보문고에 들어가기 전, 간식을 먹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근처 가게에서 "팥빙수"를 사줬는데, 처음 먹어보는 것이라 잔뜩 기대했다가 두세 푼 정도 떠먹더니 포기를 했다.
"왜?"
"너무 달아요."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단 음식, 사탕이나 초콜릿, 젤리 같은 걸 안 먹여서 그랬는지 단 걸 좋아하지 않았다.
다 자란 지금은 초콜릿 케이크, 초콜릿 아이스크림 정도는 먹는데, 그 외 사탕, 젤리, 과자 등은 여전히 썩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교보문고에서는 다양한 책을 구경하고 읽어볼 수 있어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갔다.
이마트 서점과 비교하면 책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아이가 더 행복해했다. 집에 돌아가자는 소릴 할 수 없게끔 푹 빠져서 이것도 읽어달라, 저것도 읽어달라 했다. 어떤 책은 그림만 보는지 혼자서 한참을 읽기(?)도 했다. 겨우, 원하는 책 한 권을 골라 산 후에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는데, 긴 여정이 힘들지 않을 만큼 많이 큰 것 같아 대견했다.
그리고, 이 시기엔 "공부"라는 말을 너무 좋아했다. "엄마, 한글공부 하자~요."라든지, "이모, 숫자공부 하자~요." 같은 말을 제법 많이 했다. 아이의 일상엔 여전히 "놀이"의 비중이 컸지만, 점점 한글과 숫자에 대한 "공부"를 원했던 시기였다. 나는 한글놀이와 숫자놀이를 하고 싶었는데, 문화센터 같은 외부의 영향을 받아, 집에서 알려주지도 않은 "영어"에도 관심을 보이더니 "공부"라는 말에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이가 원하는 학습책을 사다가 하루에 30분~1시간 정도 아이가 원할 때 "공부"를 했다. 스티커에 관심을 보였던 생후 21개월엔 사물, 숫자, 한글 놀이책을 사다가 책에 구애받지 않고 스티커를 활용한 놀이를 했지만, 이제는 "공부"를 원하니 학습책에서 시키는 대로 스티커를 붙여가며 했는데도 재미있어했다.
"거 참... 신기한 아일세..."
그럼에도 나는 아직 학습적 교육을 시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커서 아이가 원할 때만 "공부"를 했기 때문에 규칙적인 활동은 아니었던 시기였다.
이 시기, 결혼 5주년을 맞아 아이와 우리만의 가족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당일치기였지만, 이모들이 함께 했다거나, 단체 모임 여행이라거나, 명절이라 어쩔 수 없이 움직여야 한 것이 아닌, 우리 세 식구만 오붓하게 다녀온 여행은 처음이라 새로웠다.
하지만, 아이가 감기로 인해 컨디션이 좀 나빠서 평소와는 다르게 얌전했는데, 그래도 눈으로 본 것들, 귀로 들은 것들, 엄마, 아빠와 함께 직접 체험해 본 것들이 좋았는지, 집에 와서는 이모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 그날 보고 들은 것들을 이야기해 주면서, 기념품으로 받은 선물을 자랑했다.
지금 아들의 기억 속엔 우리와 함께 했던 어릴 적 경험들이 별로 남아있진 않은 것 같다. 사진을 봐도 우리만큼의 감흥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어린 시절 나누었던 엄마, 아빠와의 교감은 사춘기 시절을 지나 성인이 된 지금, 아이와 우리와의 관계에 분명 좋은 밑거름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시기의 아이들에게는 비싸고 좋은 물건보다는 풍족한 사랑과 함께하는 즐거움, 새로운 경험이 더 가치 있는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