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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 Way Dec 08. 2024

자칭 과학 영재(?) 소년

초등 고학년(2)

울 아들은 전학 이후, 곧 학교에 적응해 절친도 만들고 자유롭고 즐거운 학교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반면, 나는 "정보력을 가진 엄마"로서의 역할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핑계를 대자면, 반모임이 가장 활성화되는 시기가 1학년인데, 3학년 때 전학을 왔기 때문에 반모임을 통한 인맥을 쌓을 수 없었고, 학부모운영위원도 공석이 나야 들어갈 기회라도 얻을 수 있는데, 공석이 난다 한들 전학 오자마자 학부모 운영위원이 되는 건 좀 어려웠다. 더구나 학원도 다니지 않으니 사교육을 통한 정보 입수의 길도 막혔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학교 행사에 적극 참여하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공개수업에 빠지지 않고 갔고, 선생님께서 학부모를 필요로 하실 때, 예를 들면 "과학 수업 보조"가 필요하다고 하시면 자원했다. 그 덕에 몇몇 학부모와 안면을 트기는 했으나, 정보를 주고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열심히 반 행사에 참여하다 보니, 반장 엄마가 관심 있게 봐주는 듯했다. 


"OO이 엄마, 오늘 와줘서 고마워요. 근데, 학교 밖에서는 만난 적이 없네요. OO이는 어느 영재원 다녀요?" 

아이들의 반 행사가 끝난 뒤, 뒤처리를 하고 있는데, 반장 엄마가 다가와 인사를 하시면서, 대뜸 영재원을 어디 다니냐고 물으셨다. 

"영재원... 이요?"

"4학년이면 보통 영재원 보내지 않나요? 울 딸내미 말로는 OO이가 과학을 잘한다고 하던데?"

'아, 그런 게 있구나. 애들은 4학년부터 그런데를 다니는구나.'


그 당시, 반장 엄마로부터 들은 "영재원"은 나에게 정말 생소한 단어였다. 

그래서 찾아봤더니, 정말 다양한 "영재원"이 있었다.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것부터 대학에서 운영하는 것까지, 더군다나 그 영재원을 들어가기 위해 학원을 다닌다는 이야기도 있고, 정말 나에게는 신세계였다. 


아이가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 간식을 먹을 때, "영재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넌지시 떠봤다.

"친구들은 영재 수업을 다닌다고 하던데, OO이는 영재 수업 받아보고 싶지 않아?"

"영재 수업요? 내가 영잰데? 영재 수업은 영재가 되고 싶은 애들이 듣는 수업 아니에요?"


울아들의 걸작 같은 대답에 "피식" 웃음이 났다.

저녁에 일찍 퇴근한 울 신랑에게 낮에 있었던 "영재원" 이야길 해줬더니,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구먼."이라고 하면서 껄껄 웃었다. 


'그래 뭐, 네가 행복하면 되지 뭐. 스스로 영재라고 생각한다는데, 뭘 더 바라겠어.'

그날 이후, 우리는 "영재원"이야기를 더 이상 꺼내지 않았고, "영재원" 해프닝은 그렇게 끝나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더니, "엄마, 학교에서 하는 과학실험대회에 나가고 싶어서, 선생님께 신청했어요."라고 했다. 

"과학실험대회?"

전학을 한 이후에는 학급 반장이니, 대회니, 상이니, 성적이니, 이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그저 "과학책"과 "과학실험수업"만 좋아하는 평범한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대회를 나가겠다고 해 좀 의아했었다.


아이 말로는, 교내 대회에서 1등과 2등을 하게 되면 시 대회에 나가는 대회이고, 교내 대회는 1주일쯤 뒤에 있을 예정인데, 아이들이 벌써 1등과 2등이 누구누구라고 정해진 것처럼 말하더라는 것이다. 알고 봤더니, 아이들 사이에서 OO 영재 교육원을 다니고 있는 아이들 중 1, 2등이 나올 거라는 예상이 돌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울 아들 왈, "1등은 아무리 봐도 내가 할 것 같은데. 내 주변에는 나보다 과학을 잘하는 아이가 없는데. 애들이 모르는 것 같아서 대회 한번 나가보려고요."


"와우"

아이 아빠와 나는 아이의 "근자감"에 다시 한번 웃음이 났지만, 스스로를 증명해 보겠다는 시도 자체는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응원을 해 주었다. 


그런데, 울 아들은 그날 이후, 도대체 1등은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도통 대회 준비를 하지 않았다. 1주일 뒤에 있을 과학실험 교내대회를 위해 아이가 한 일이라고는 평범한 일상처럼 WHY 책 읽기를 하는 게 다였다. 그것도 본인이 제일 좋아하는 분야 쪽으로만.

하지만, 스스로 교내대회를 나가겠다고 결정했고, 스스로 1등을 해서 자신이 "과학"을 제일 잘한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했으니, 우린 그냥 아이가 뭘 하든 가만히 지켜만 보면서 뒤에서 속닥속닥 이야길 했다. 


"뭔가 생각이 있어서 저러는 걸까?"

"일단 지켜보자. 저러다 본인 실력이 생각만큼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경험일 거야."


1주일 뒤, 아이는 교내대회를 치르고 왔고, 결과는 열흘 후 나왔는데...

대박, 본인이 공언한 대로, 1등을 한 거였다. 


아이들 사이에서는 영재교육원을 다니지 않는 OO이가 과학실험대회에서 1등을 했다는 것과 자신들이 점찍은 애가 어쩌다 2등을 하게 된 건지에 대해 여러 가지 소문이 퍼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울 아들은 당연한 결과라는 듯 소문에 동요하지 않았다. 


학교 대표가 된 울 아들은 2등을 한 친구와 함께 교육지원청 대회를 나갈 준비를 했고, 거기서도 상을 받아 목표로 했던 시 대회를 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시 대회는 팀원 간의 화합이 중요한 대회여서 손발을 맞출 시간이 부족했던 두 아이는 결국 참가상에 가까운 장려상에 그치고 말았다. 


대회를 끝낸 직후, 울 아들이 결과를 많이 아쉬워하는 것 같아서 이유를 물었더니,

"내가 생각한 건 A 방법이었는데, 친구가 영재교육원에서는 B 방법으로 배웠으니 B 방법대로 하겠다고 우겼어요. 친구한테, 내가 생각한 A 방법이 왜 더 나은지를 설명했는데도 그냥 B 방법대로 하더라고요. 내 생각에는 A 방법으로 했으면 시간 안에 결과를 만들어냈을 텐데, B 방법만 옳다고 우기다가 결국 실험을 다 끝내지 못하고 제출했어요."라는 것이다.     


아마, 울 아들이 생각했다는 A 방법은 모범답안이 아니었던 것 같다. 대회를 준비하는 학원이나 영재원에서는 B 방법을 가르쳤을 텐데, 친구 입장에서는 B 방법을 모르는 울아들이 전혀 도움이 안 되는 팀원이라 답답했을 테고, 울 아들은 울아들대로 아쉬움이 남는 그런 상황이었던 것 같다. 서로 입장차이가 있었고, 대회 스킬이 부족해서 생긴 당연한 결과였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의 입장차가 "사교육"이 만들어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좀 씁쓸했다. 제한 시간 내 제시된 문제를 실험하고 결과를 도출해 내는 것이라 마냥 울 아들의 방식이 옳다는 건 아닌데, "영재원"이라는 곳에서조차도 이 실험은 이런 방법으로, 저 실험은 저런 방법으로 해야 한다는 고정된 틀에 아이들을 가두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좀 뒤끝이 개운하지 못했다.


학교 대표로 나간 대회의 최종 결과는 아쉬웠지만, 울 아들은 이 대회로 많은 것을 얻었다.    

일단, 학교에서 과학 잘하는 아이로 등극했다. 말로만 아는 척하는 아이가 아니라 실제로 과학 실력을 갖추었다는 것을 친구들이 인정해 준 모양이었다.

두 번째로, 본인 스스로 "나는 영재야."라는 걸 증명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영재교육원 다니는 아이들을 이겼으니, 본인도 같은 레벨 혹은 그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글쎄다...


마지막으로, "과학"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을 가지게 된 것 같았다. 더불어 대회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의 과학 지식을 뽐낼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실험을 계획하고 실행해 보는 것에 재미를 느낀 것 같았다.  


나는 아이가 "과학실험대회"를 신청하고, 참여하고, 결과를 얻어내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근자감인가 vs. 진짜 실력인가"를 놓고 조금 헷갈리기 시작했다. 

근자감이라고 하기에는 결과가 너무 좋았고, 실력이라고 하기에는 데이터가 너무 부족했고. 그래서, 일단은 너무 앞질러 생각하지 말고, 시간을 두고 아이의 역량이 어느 정도 까진 지를 찬찬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내가 봤을 때, 울 아들은 특별하다기보다는 그냥 조금 독특한 점이 있는 평범한 아이였다. 당시 내가 관찰했던 아들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보였다.

1) 아들은 과학에 확실히 관심이 많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 흥미를 보였다. 

2) 가끔 사물을 독특한 관점으로 보기도 했고, 틀에 박힌 방식보다는 새로운 방식을 선호했다. 

3) 기억력이 좋아 쉽게 기억하고, 오래 기억했다. 

4) 호기심은 많지만, 모험심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어릴 적에 비해서는 새로운 것도 시도해 보려는 노력은 했다. 

5) 승부욕이 강했고, 실패 자체를 싫어했지만, 자존감이 높고, 회복 탄력성이 좋아 잘 이겨냈다.

6) 책을 아주 깊게 여러 번 봐서 그런지, 아니면 기억력이 좋아서 그런지 또래 아이들에 비해 알고 있는 과학 지식이 많았고, 아빠는 "근자감"이라고 표현했지만, 자신감이 충만했다. 


다른 부모님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울아들은 앞으로 어떤 아이로 자라날지, 어떤 역량을 펼치면서 살아갈지 궁금하게 만드는 매력을 가진 아이였던 것 같다.  


[에필로그]      

"OO아, 이게 뭘까?"

"아, 그건 아직 실험 중이에요."  


울 아들은 학교 정규 수업 후 듣는 "과학실험" 방과 후 수업만으로도 성이 안 찼는지, 집에서도 "과학실험"을 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간단한 실험 정도는 할 수 있는 과학실험키트를 선물했다. 물론, 우리가 아닌 산타 할아버지가(해당 이야기는 곧 발행 예정). 

아이는 과학실험키트를 본인 방에 설치해 두고, 하루에도 몇 번씩 무언가를 실험하는 듯했다. 

가끔 청소를 하러 들어가 보면, 뭘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시험관에 흰색 곰팡이, 파란색 곰팡이가 생겨있기도 했는데, 절대 함부로 내 마음대로 버리지 않았다. 실패해서 버려도 되는 것이라는 확답을 받은 다음에야 버렸고, 뭘 만들고 있는 건지 조차도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아이가 혼자 기록하고, 조합하고, 실험하는 모습을 지켜만 봤다. 아이만의 실험은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계속되었고, 어느 날 실험이 끝났다고 하길래 아이와 함께 실험 기구를 모두 깨끗이 씻어 방에서 치워버렸다.


그 실험은 성공했던 것일까? 실패했던 것일까?


최근에, 육아교육일기를 쓰면서 자료를 정리하다가 보니, 우리가 끝끝내 아이에게 무슨 실험을 했는지 물어보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OO아, 그때 네 방에서 과학실험키트로 몇 달 동안 실험했던 거 기억나?"

"아~. 네."

"그거, 뭘 그렇게 실험한 거야?"

"나만의 향수를 만들어보고 싶어서 실험했었죠."


아이 말에 따르면, 집에 있는 화장품들과 알코올 등을 조합해서 좋은 향이 나는 물(향수)을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비율도 바꿔보고, 재료도 바꿔보고 했지만, 결국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집에 있는 모든 재료를 다 한 번씩 써본 후, 실험이 실패했다고 판단되어서 실험을 중단했다고도 했다. 


'아하, 그런 거였구나!'


아이의 비밀(?) 과학실험은 그렇게 약 10여 년 만에 베일이 벗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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