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y Way Dec 09. 2024

경제관념 심어주기

초등 종합(1)

요즘, 너도나도 "경제공부"에 관심들이 많다. 

'주식, 부동산, 코인에 대해 좀 더 일찍 눈을 떴더라면...' 하고 아쉬워하는 지인들도 봤다. 우리도 때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몇 년 전부터 조금씩 관심을 가져보는 중이다.

그리고, 이제 스무 살이 된 울아들에게도 경제 관련 책을 추천하고, 경제 관련 지식 글들을 공유해 주면서 "경제공부"에 관한 직접적인 관심을 가지길 독려하고 있다. 


주변에 젊은 엄마, 아빠들을 보니, 아이가 초등학생 때부터 "주식 계좌"를 개설해 주기도 하고, "청약 저축"을 넣어주기도 하면서 "경제관념"을 일찍부터 심어주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하지만, 라떼는... 

그럴 정도의 여유도 없었고, 그만큼의 관심도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소소하게 아이에게 "경제관념"을 심어주기 위한 노력들을 했을 뿐이다. 


아이가 많이 어릴 때는, 계산놀이("20년 만에 다시 쓰는 육아교육일기 2" 17화 참조)를 통해 "돈"에 대한 개념을 심어주었다. 유아기 때는 "칭찬 스티커" 보상("20년 만에 다시 쓰는 육아교육일기 2" 24화 참조)으로 가끔 용돈을 주기는 했지만, 대부분 1천 원 미만이었다.


초등학생이 되고 난 이후부터는 "집안일 돕고 용돈 벌기"를 통해 경제관념을 심어주기 위한 노력들을 했다. 

그런데, 최근에 본 육아 영상에 따르면, 아이들에게 집안일을 돕게 한 후 주는 용돈은 옳지 않단다. 

'엥? 나는 그렇게 키웠는데?'

"집안일을 용돈과 연결시키지 말고, 모든 가족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인식시켜야 한다."가 영상의 핵심이었던 것 같은데... 뭐, 이미 그렇게 다 키운 걸 어쩔... 그리고, 아이 성향에 따라, 집집마다의 상황에 따라 다른 거 아닌가? 


어쨌든, 그때 당시 나는 "집안일 돕고 용돈 벌기"를 하면, 집안일을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경제관념도 심어줄 수 있고, 아이는 아이대로 필요한 만큼의 용돈도 벌 수 있고, 우리 가족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소속감도 생기는 등 1석 4조 이상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울 아들이 했던 용돈 벌이는 수건 개기, 아빠 구두 닦기, 현관 신발 정리를 메인으로 했고 가끔 분리수거 도와주기, 장 보는 거 도와주기 같은 이벤트성 벌이도 했다.


그런데, 울 아들만 그랬던 건진 잘 모르겠지만 아이가 용돈에 대한 절실함(?) 같은 게 부족했던 것 같다. 

사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태권도장에서 뿐이다 보니, 돈 쓸 일이 없는 것 같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길들여진 입맛 때문인지, 과자도 썩 즐기지 않았고, 잘 먹는 간식들은 집에 오면 다 구비되어 있어서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가 집안일을 통해 버는 "용돈"은 오로지 사적인 소비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내가 가지고 있다 보니, 아이가 학교 수업이나 공부를 위해 필요로 하는 책, 준비물 이런 건 본인의 용돈으로 사는 물품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당장 사고 싶은 장난감이 없는 한, 대부분의 용돈이 저금통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더군다나, 명절이며, 생일이며, 가끔 외할아버지를 만날 때마다 용돈을 받을 일이 생겨서 그런 건지, 내가 보기엔 용돈 벌이를 위한 적극성이 많이 부족했다. 


'경제관념 심어주는 거, 정말 실패한 걸까?'


돈을 너무 좋아하는 것도 문제, 돈에 너무 무관심한 것도 문제, 돈에 얽매이는 것도 문제, 뭐든 돈과 연관시키는 것도 문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긴 하지만, "돈돈돈" 거리는 것도 문제다 싶어,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해야 하는 일상교육 중 젤 어려웠던 게 "경제관념 심어주기"였던 것 같다.      


"집안일 돕고 용돈 벌기"는 6학년때까지 계속되었지만, 끝날 때까지 일관되게 수동적이었다. 

“현관 앞 신발 정리 좀 도와줄래?” 같은 내 요청을 한 번도 거부한 적 없었고, 그럴 때마다 주는 용돈도 거부한 적 없다. 이건, 마치 내가 용돈을 주고 싶어서 하는 "집안일 도우면 용돈 주기"가 아니었나 싶다. 

나의 경제 관련 일상교육이 다소 실패 쪽으로 기운 반면, 아빠는 아빠만의 방식으로 아이에게 "경제관념"을 심어주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가 모토였다고나 할까?


아이가 어릴 때는 아무런 대가 없이, 이유 없이 장난감을 사주곤 했다. 

그런데, 초등학교 고학년에 올라가고 난 이후부터는 아이가 원하는 것이 생기면 아빠에게 왜 그것을 사야만 하는 가에 대해 설득하고, 동의를 얻어야 살 수 있었다. 집안일 돕기를 통해 번 용돈을 쓰는 일이라 할지라도 아빠 판단에 "고가"다 싶으면, 왜 사야 하는 지를 설명해야 했다. 

PPT를 만들어 발표하는 수준까지 요구하진 않았지만, 페이퍼에 "사야 하는 이유 3가지 적어오기", 혹은 "그 물건을 샀을 때의 장점과 단점 5가지 정리해 오기" 같은 미션을 수행해야 했다. 


처음에는, 아빠의 이런 요구가 아이에게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빠의 방식에 대해 토를 달지 않았다. 그저 아이가 사야 하는 이유 3가지를 생각할 때, 곁에서 도왔고, 그 물건을 샀을 때의 장점과 단점 5가지를 정리할 때, 같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아빠의 이런 교육은 아이가 스무 살이 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고, 아이가 완전히 경제적 독립을 할 때까지는 이어질 듯하다. 덕분에, 울 아들은 "가성비"를 따지는 아이로 자랐고, "돈"과 적정한 선을 지키며 아빠의 "경제공부" 조언을 수용하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아이가 초등학교 당시에는 아빠의 경제교육으로 다음과 같은 이득이 있었던 것 같다. 

1) 원래 말을 잘하는 아이였는데, 아빠를 설득하는 스킬까지 늘면서 "토론"을 잘하는 아이로 자랐다.

2) 아빠에게 설명과 설득을 하면서 발표하는 능력이 향상되었다. 

3) 어렴풋이나마 "돈"과 "소비"를 이해하고, 이 사회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바람직한(?) "경제관"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반면, 내가 걱정했던 것 중 하나는 아이에게 "욕구불만"이 생기진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가지고 싶고, 사고 싶은 물건마다 아빠를 설득해야 하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니, "세상에 쉬운 게 없다."는 것을 너무 일찍 알게 하는 건 아닌지, "왜 나는 물건 하나도 마음대로 살 수 없는가?"라고 불만이 생기는 건 아닌지... 

하지만, 남자아이라 그런 건지, 아님 과묵한 편이라 그런 건지, 그저 표현을 안 하는 것인지 알 순 없지만, 단 한 번도 불만을 표시한 적은 없었다. 

어쩌면, 아빠의 방식이 힘은 좀 들지만, 도움이 되는 방식이고, 아빠의 교육이 강압적인 건 또 아니라서 아빠의 마음을 이해했는지도...


[에필로그]

아이가 너무 갖고 싶어 하는 물건인데, 고가이고, 아빠를 설득할만한 근거가 부족할 경우... 

우리는 산타 할아버지를 이용했다.

아이 아빠도 1년에 한 번 정도는 설득 없이도 아이가 필요로 하고, 갖고 싶어 하는 물건에 대해 허용해 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아이는 갖고 싶어 하던 과학 실험 키트라든지, 좀 유명한 브랜드의 배드민턴 채 같은 걸 산타 할아버지로부터 선물 받았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 아들은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를 믿고 있는 걸까?'


물론, 우리는 아이가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를 믿고 있다는 전제 하에 산타 할아버지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긴 했다. 

예를 들면, 아이가 산타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면 미스터리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협박장 같은 형식으로 글자를 조합해 답장을 남겼고, 산타 할아버지를 꼭 보고 자겠다고 기다릴 때는 선물을 차에 숨겨두고 있다가 아이가 깜빡 잠든 새벽녘에 몰래 가져다 놓기 위해 밤잠을 설쳤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는 날도 아이가 밖에 나가 놀고 있거나 학교에 있을 때,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샀고, 인터넷으로 사야 할 경우에는 집으로 배송되지 않도록 신경 썼다. 


우리는 아이의 동심을 지켜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우리의 이런 노력 덕분에 아이 또한 늦게까지 산타의 존재를 믿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고학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산타 할아버지를 믿는 듯한 행동(산타 양말에 편지를 넣어둔다거나 하는...)을 해서 슬슬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아이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고, 아이 방을 구경하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데, '울 아들, 아직도 산타를 믿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5학년 말(2월)쯤으로 기억하는데, 친구들이 집에 와서 놀다가 아이 방의 과학 실험 키트를 보고 신기해했다. 그러자 울 아들이 “산타 할아버지가 작년에 선물해 주신 거야.”라고 하는 거다.

부엌에서 아이들 간식을 준비 중이던 나는, '드디어, 오늘 산타 할아버지의 환상이 깨지겠구나.' 싶었는데, 애들 반응이 시큰둥했다. 

“아, 그래? 산타 선물이구나. 좋겠다.” 


'엥? 뭐지? 이게 뭐야?!'

원래 울 아들이 평소에도 말이 안 되는 소리, 이해가 잘 안 되는 말을 자주 하는 아이라서 "그런가 부다." 하고 넘어간 걸까? 아니면, 별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라서 그냥 넘어간 걸까? 그것도 아니면, 그날 거기에 왔던 다섯 아이 모두가 아직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를 믿는 걸까?


이 일은 사실, 아직까지 미스터리다. 

우린 6학년때까지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전달했고, 그해를 끝으로 크리스마스는 집에서 가족과 함께 조용히 보내는 날이 되었다. 그리고, 대학을 다니기 시작하고서부터는 친구들과 보내는 휴일이 되었고.    


울 아들은... 

정말로 산타의 존재를 믿었던 걸까? 

아니면, 우리가 아이의 철저한 계획에 속은 걸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