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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 Way Dec 11. 2024

아빠 교육 1 : 인생은 실전이지

초등 종합(3)

울 아들에게 아빠는 어떤 존재였을까? 


신생아기를 거쳐 둘만의 육아가 시작되었다가, 친정살이를 하게 되는 등 육아 환경이 변화되는 속에서 아이 아빠는 늘 내 곁에서 육아를 묵묵히 도왔다. 

본격적인 아이와의 상호작용은 생후 14개월 무렵('20년 만에 다시 쓰는 육아교육일기 2' 제04화 참조)부터였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그 이전에도 아이 목욕을 함께 시켰고, 외출, 야외 활동도 함께 하는 등 나에게는 든든한 의지처였다.   


누구나 그렇듯, 우리도 각자가 살아온 환경이 달라, 아이 육아와 교육에 대한 의견 차이가 종종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름 현명하게 절충을 하면서 잘 살아온 것 같다. 

겉으로 보기에는 내가 아이의 육아와 교육을 도맡아 뭐든 내 기준으로 아이를 키운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울 신랑의 보이지 않는 눈과 손이 나와 아이 곁에 항상 있었던 것 같다. 

가끔은 아빠의 가치관과 기준이 어린 아들에게 너무 과한 게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되돌아보니, 아빠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던 것 같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고, 아빠에게 시간적 여유가 생기고 난 뒤부터는 평일에도 저녁식사 이후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이 시기 아빠가 아이와 주로 했던 것은 거실에서 각자가 원하는 책 읽기, 3D 안경 끼고 애니메이션 보기, 보드게임 같이 하기, 밖에 나가서 다양한 체육 활동 하기 같은 것들이었다. 


보드게임 같은 경우엔 나도 동참하곤 했는데, 이게 뭐라고 어찌나 치열한지, 두 남자의 불꽃 튀는(?) 경쟁, 아니 솔직히 말해서는 아빠에게 잽도 안 되는 어린 아들의 고군분투를 보느라 항상 노심초사했다.

아이와 함께했던 우리 가족 첫 보드게임은 "부루마불 게임"이었다. 

유명한 보드게임이니 다들 아시겠지만, 두 개의 주사위를 던져 나오는 숫자들의 합만큼 보드판 위의 말을 움직여서 땅도 사고, 건물도 사는 게임인데, 아이 아빠가 게임하는 내내 한 치의 양보도 해주지 않고 땅과 건물을 사 모으더니 결국 아이를 파산시켜 버리고 말았다. 

게임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계속 아빠에게 돈을 지불해야 하고, 샀던 땅을 도로 팔아야 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아이가 울음을 참고 있는 게 내 눈엔 보이는데, 아이 아빠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인생은 실전이야." 


아직 어린데, 좀 봐주면서 하면 좋으련만, 인생은 실전이라면서 아이의 경쟁심을 자극하고 이기고 싶어 하는 아이의 마음을 건드려 결국 울리고 말았다. 


"OO이 속상하지? 근데 아빠는 어른이고, OO이는 아직 어리니까 지는 게 당연해. 그렇지만, OO이가 아빠를 이기고 싶으면, 엄마랑 같이 연습도 하고 전략도 짜보자. 아빠를 이길 수 있게 엄마가 도와줄게."

게임은 게임일 뿐이지만, 아이가 펑펑 우는 이유를 나는 충분히 이해가 되어서 아이를 달래주었는데, 울 신랑은 아이가 울어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게임에서 이긴 것이 사과할 이유는 아니다."라고 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된 우리의 첫 보드게임이 파국으로 끝났지만, 아이는 그 이후에도 아빠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승부욕이 좀 강했던 아이는 어떻게든 아빠를 이겨보려고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애를 썼지만, 주사위 던지는 스킬이나 운, 그리고 약간의 전략으로 승패가 좌우되는 게임에서는 단 한 번도 아빠를 이길 수 없었고, 끝끝내 서럽게 울면서 "아빠, 미워."를 외치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리기 일쑤였다. 그런데도, 울 신랑은 절대 져주질 않았다. 

"으이구, 진짜."


이후, 아이는 종목을 바꿔 바둑, 장기, 체스, 포커, 블로커스 같은 두뇌 게임으로 아빠에게 도전했고, 수많은 패배를 경험하면서 아빠에게 져도 울지 않는 경지에 오르더니, 끝내 아빠를 넘어서는 수준이 되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자, 아빠는 더 이상 아이의 승부욕에 불을 지피지 않았다. 아이는 여전히 아빠에게 이기겠다는 의지가 활활 불타올랐는데, 아빠는 아이의 그런 모습을 흐뭇하게 보면서 느긋하게 게임에 임하는 듯했다. 물론, 여전히 절대 일부러 져주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지만.


아빠와의 보드게임을 평정한 아이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 실력이 쑥 올라 학교에서 보드게임을 제일 잘하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혹시 이것도 다 아빠의 계획이었던 걸까?


사실 그 당시에는 보드게임을 하다 항상 아이를 울리는 울 신랑이 진짜 이해가 되질 않았다. 

'분하고, 억울하고, 속상하고, 분통이 터지는 저 마음, 분명 알 텐데...'

하지만, 이제는 아빠가 왜 그렇게 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긴 하다. 아마도 아이가 자라면서 겪을 험한 세상에 자신보다 나은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려주고, 룰과 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것도 알려주면서 나름 인생을 가르칠 목적이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꿈보다 해몽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그 당시 울 신랑의 방법이 아이의 연령에 맞지 않는 좀 거친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좀 긴 시간이 필요하긴 했지만 아이가 충분히 이겨낸 보면 그 방법이 아들의 성향에는 맞는 방법이었던 같기도 하다. 

뭐가 정답인지는 모르겠으나, 엄마 아빠의 다른 성향과 교육관이 아이에게는 마이너스 요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이가 고학년이 된 이후에는 아빠와 함께하는 활동 대부분이 스포츠 활동에 치중되었던 것 같다.  

자전거를 함께 타러 나갔고, 야구라기보다 캐치볼에 가까운 놀이를 하러 나가기도 했다. 인라인 스케이트도 가르쳐주고 싶어 했고, 보드도 함께 타러 나갔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한 실외 스포츠 활동은 단연코 "축구"였다. 둘이서 골키퍼와 공격수로 나눠 승부차기 형식의 축구를 자주 했는데, 이때도 울 신랑은 아이의 공을 죽자고 막아냈다. 

"갓 핸드"를 외치면서...


'도대체 이 남자 왜 이러는 거임? 아빠들은 다 이러는 거임?'


아빠에게 지는 것이 억울하고, 분하다고 울던 울 아들은 어느새 아빠의 인생 실전 트레이닝에 단련이 되었는지, 기술을 연습하고 익혀서 정당하게 이겨보려는 노력을 계속하되, 지는 것에 대해서는 무덤덤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적어도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인생은 실전이지."를 모토로 아이 교육에 관여하던 울 신랑은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 실제로 인생은 실전임을 보여줄 계획을 세웠다. 1년 치 휴가를 최대한 모아서 아이와 함께 유럽여행을 떠나보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유럽 여행을 떠나기 전에, 아이의 체력도 테스트할 겸, 해외여행 워밍업으로 홍콩을 다녀오자고도 했다. 


홍콩여행은 첫 해외 가족여행이었던 만큼 아빠가 모든 준비를 도맡아 했다.

항공편, 홍콩현지 교통편, 맛집, 관광지, 유의사항 등 홍콩 여행 모든 일정이 시간대별로 정리되어 있는 엑셀파일을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J형(계획형) 인건 알았지만, 너무 꼼꼼하게 작성된 일정표에 마음이 든든했다.

그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울 아들의 첫 해외여행인 홍콩 여행 3박 4일은 대부분이 순조로웠다. 다만, 그 당시 컨디션에 따라 배앓이가 잦았던 아이가 도보 여행이 힘에 부쳤는지, 현지 음식이 좀 기름졌는지 하루 정도 배탈이 나서 고생을 하긴 했다. 그래도 아빠 계획대로 홍콩 옆 마카오도 다녀오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돌아왔다.


아이 아빠가 선택했던 첫 해외여행지인 홍콩은 비행시간도 짧고, 여행 기간도 짧았지만, 진짜 목적지였던 유럽여행은 비행시간이며 여행 기간이 길 예정이라 좀 더 철저한 계획이 필요했다.

아이 아빠는 2주 정도 휴가를 낼 수 있겠다고 하면서, 아이가 5학년이 끝나는 2월, 6학년에 올라가기 직전에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를 다녀오자고 했다. 

그러면서, 아이에게 여행 세부 계획을 짜보라고 했다.

"자, 아빠가 준비했던 홍콩 여행을 참고 삼아서, 유럽 여행은 OO이가 엄마랑 같이 세부 계획을 세워 보는 게 어떨까?"

"뜨아..."

초등 5학년, 아니 이제 6학년이 되어가는 아이가 유럽 여행 세부 계획을 어떻게 세운단 말인가...


아빠의 제안에 아이와 나 둘 다 1차적으로는 좌절했지만, 다시 정신을 바짝 차렸다.

아이의 체력과 시간, 우리의 일정 등겨우 맞춘 여행이라 이번이 아니면 다시는 실행 기회가 생기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다행히도, 그 당시 프랑스 출장을 자주 다니던 아이 아빠 덕분에 여행 준비에 어려움은 없었다. 우리에게 세부 계획을 일임하긴 했지만, 맛집이며 가볼 만한 곳들을 넌지시 추천해주곤 했다. 

아빠가 비행기표를 구하고, 숙소를 예약할 때, 나는 아이와 함께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이탈리아 로마에서 가장 유명한 곳, 가장 가보고 싶은 곳들에 대한 리스트를 작성하고 동선을 감안해 최종 목적지를 선정했다. 

유럽 여행을 다녀온 블로그를 뒤졌고, 유럽 여행 책을 사다가 공부했으며, 아이도 미리 기본 정보를 익히도록 유도했다. 어렵게 시간을 낸 만큼, 아이에게 좋은 추억과 최대한의 경험치를 쌓게 해 주고 싶어서 정말 철저하게 시간단위로 이동 경로까지 정리하며 계획을 짰었다. 


출국부터 귀국까지 약 2주간의 유럽 여행은 짧다면 짧을 수도 있는 기간이었지만, 아이에게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경험으로 남아 있는 것 같다. 

새로운 음식들을 맛보고, 새로운 문화를 경험해 보고, 교과서에서만 보던 것들을 직접 눈으로 봤다는 것만으로도 아이에게는 좋은 추억이 된 것 같았다.


에피소드 1. 프랑스에서의 추억

어릴 적에 비해서는 새로운 것, 새로운 음식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줄어들었는데, 프랑스에 도착한 첫날, 프랑스의 다양한 빵에 대한 거부 의사를 내비쳤다. 아침 식사가 애매해서 현지 마트에서 식빵을 사서 먹었는데, 그게 입맛에 괜찮았는지, 다른 빵은 맛도 보지 않겠다는 거였다. 

"프랑스 빵이 얼마나 맛있는데, 한 번만 먹어봐." 라며 겨우 달래서 한입 맛보게 했는데... 

그때부터는 뭐, 다들 예상했다시피 더 일찍 맛보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고, 그 이후에는 유럽 현지 음식들도 일단은 맛을 보는 방향으로 노선을 정하는 듯했다. 덕분에 음식으로 인한 고생은 덜한 것 같다.


에피소드 2. 영국에서의 추억

생후 15개월에 사준 첫 기념품 이후('20년 만에 다시 쓰는 육아교육일기 2' 제05화 참조), 우리는 새로운 곳에 갈 데마다 아이에게 그곳을 기억할만한 작은 기념품들을 사줬다. 


유럽 여행을 하는 동안에도 각 장소마다 아이가 원하면 기념품을 사줬는데, 영국에서의 기념품이 제일 맘에 들었던 것 같다. 금빛나는 기념동전 안에 영국의 각 명소들이 그려져 있는 것이었는데, 나중에는 주객이 전도되어 기념동전을 사려고 명소들을 찾아다니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영국에서는 각자의 취향을 고루 반영해 아이가 좋아하는 해리포터 스튜디오, 내가 좋아하는 셜록홈스 박물관, 그 밖에 여러 유명한 곳들을 다녔는데, 결국 끝까지 남은 건 아이 방에 고이 전시되어 있는 영국 기념동전인 것 같다. 


에피소드 3. 이탈리아에서의 추억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한 이탈리아. 점점 체력이 고갈되어 가기도 했고, 날씨도 좀 받쳐주지 않아서 기억이 가장 많이 남는 곳이었다. 애써 찾아간 트레비분수가 공사 중이었다거나, 현지 맛집이라고 추천받아 갔더니 마침 휴무일이었다던가, 이탈리아식 피자, 파스타만 먹다 보니 질려버려 이탈리아에서 가장 맛있었던 현지 음식은 맥도널드의 빅맥이었다던가 하는 기억이 남아 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로마에 있던 "나폴레옹 박물관"을 방문한 것이었다. 

원래 계획상에는 없었던 곳인데, 다음 목적지를 가다가 구글 지도상에서 발견하고 들어가 본 곳이었다. 목적지까지의 거리가 좀 있어서 한참을 걷다 들어간 곳이라 그랬는지, 아이가 어딘가에 잠시 앉고 싶어 했고, 마침 벽과 벽 사이에 놓여있는 의자가 보여 잠시 엉덩이를 걸쳐 앉아 있었다. 

그런데 박물관 관리인이 와서, 그 의자도 나폴레옹이 쓰던 의자라는 거였다. 

얼마나 당황을 했는지... 

전시가 되어 있던 다른 가구들(의자 포함)들은 접근을 금지하는 표식이 있었지만, 아이가 선택한 의자는 그냥 벽 모서리에 놓여있는 게 다였다. 우리가 봐도 전시물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거였다. 하지만, 관리인이 전시 물품이라는데, 우리 실수가 맞는 것 같아서 관리인에게 정중히 사과를 했다. 다행히 아이가 어리기도 했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엉덩이만 살짝 걸친 상태여서 관리인도 아이의 실수를 이해해 주었다. 아이도 많이 당황하긴 했지만, 상황을 충분히 이해했고, 민망해했다.  

어쩌다 들어간 나폴레옹 박물관은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볼거리가 이것저것 있었고, 박물관 방문 이후 우리는 한동안 울 아들을 "나폴레옹 의자에 앉아본 소년"으로 불렀다. 아이가 자신의 실수를 너무 맘에 담아두지 않고 작은 해프닝으로 넘겼으면 하는 마음에 그랬는데, 아이도 다행히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유럽여행을 무사히 마친 이후, 역시나 우려했던 대로 서로의 일정이 잘 맞지 않아서 우리의 가족 여행은 지금까지 국내에 한정되고 있다. 물론 아이가 중3 때 후쿠오카를 한번 다녀오긴 했지만, 그 외에는 거의 매년 겨울마다 국내를 돌며 연말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아빠보다는 나와 보내는 물리적인 시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자라면 자랄수록, 남자 아이라 그런 건지, 아빠의 역할과 존재감이 점점 커졌던 것 같다. 

다소 이른 아빠의 인생 실전 트레이닝으로 초반에는 많이 울고 힘들었지만, 아빠의 계획(?)대로, 좌절도 겪고, 잘 지는 법도 배우면서, 회복탄력성을 키워나갔던 것 같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빠와의 케미는 점점 좋아졌고, 지금도 아이는 아빠와 돈독한 사이를 유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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