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14개월 육아 & 놀이(교육)
생후 14개월, 잠시 잠잠하던 이가 다시 나기 시작했다. 그것도 한꺼번에 4개. 윗니 송곳니 2개와 그 뒤에 위치한 이 2개가 같이 나기 시작했다. 어금니 쪽 잇몸도 많이 단단해졌다. 그래서인지 사과 같은 것도 입안에서 부숴 먹기 시작했다.
모방놀이도 점점 디테일해졌다.
어른들이 화장품 바르는 모습, 전화받는 모습, 청소하는 모습, 특히 물걸레질하는 모습 등을 잘 따라 했다. "인사"를 가르쳐 "OO이 인사"라고 하면 고개는 숙이되, 얼굴은 우릴 보며 인사 흉내를 냈고, "주세요"를 가르쳤더니, 뭐든 원하는 게 있으면 고사리 같은 손 2개를 겹쳐 "주세요"를 했다.
밤중 수유는 완전히 벗어났고, 낮에도 먹는 게 많아서인지 그다지 찾진 않았다. 다만, 품에 안겨서 내 가슴을 만지작 거리기 시작했다. 특히 밤에 자다가 깼을 때, 젖을 먹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려고 하는 건지 더 한 것 같았다. 모유 수유는 주로 밤잠을 자기 직전에 했는데, 차츰 양이 줄어 먹이는 시간도 단축되었다. 육아책에 보면, 두 돌까지는 모유 수유를 하라고 했지만, 이가 생기니까 좀 아프기도 했고, 먹는 것도 점점 다양해지고 해서 슬슬 끊어볼까 생각했던 시기였다.
혼자 숟가락질이 가능해서(물론 지켜보고 있긴 해야 했지만), 대부분은 식탁에 앉아 어른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하지만, 간혹 아프거나 하면 입맛이 없는지 잘 먹으려 하지 않아서, 소풍 나온 것처럼 거실로 데리고 나와 먹이기도 했다. 그러면, 또 분위기가 바뀌어서 그런지 잘 먹었다. 그 당시 나는 14개월 아기에게 필요한 건 완벽한 식습관을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아직은 잘 먹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제 이유식을 넘어 제법 많은 것을 먹어보는 시기였지만, 집 밖에서는 여전히 먹거리 문제가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이 시기에 끼어 있던 설 명절날, 시댁에 내려갈 때 아이 먹거리를 모두 준비해 가야 해서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본격적인 아빠 육아의 시작은 돌이 지난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그 당시, 울 신랑은 박사과정 중이면서 경제적 책임도 져야 하는 상황이라 주말에도 많이 바빴다. 하지만, 아이와의 스킨십(아이를 쓰다듬어 주거나, 안아주는 것)을 하루도 빼먹지 않고 매일 해줬고, 쉬는 날엔 틈틈이 아이와 함께 외출하거나 짧지만 굵게 놀아주면서 아빠의 존재감을 아이에게 각인시켰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돌이 지난 이후부터의 사진을 보면, 아빠와 놀고 있는 모습이 제법 많이 찍혀 있다.
사실 나는 아빠가 몸으로 놀아주는 것을 담당할 줄 알았는데, 울 신랑도 정적인 사람이라 몸으로 놀아주는 건 주로 이모들 담당이었고, 아이와는 앉아서 놀거나, 아이가 하자는 대로 그냥 따라다니는(?) 그런 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예를 들면, 아이가 망토 놀이를 하면 같이 망토를 하고 돌아다녔고, 아무 목적 없이 아이 손을 잡고 혹은 아이를 안고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녔다. 아빠와 같이 청소를 하기도 했고, 파리채나 효자손 하나만 있어도 그냥 들고 흔들면서 놀았다. 제일 많이 해준 놀이는 본인은 앉아 있고, 아이는 뛰어다닐 수 있는 비치볼 놀이나 고무풍선 놀이(고무풍선 놀이는 터지는 걸 목격한 후 약간 겁을 냈지만, 가볍고 둥둥 떠다녀 그런지 좋아라는 했다.), 숨바꼭질 같은 거였던 것 같고, 아이가 밀어주는 장난감 자동차에 올라타 있는 사진도 제법 많이 보였다. 그리고 동화책을 읽어주는 경우도 꽤 많았다. 특히, 태교동화를 읽어주던 때처럼 목소리 톤과 제스처를 이용해 동화 구연을 해줬는데, 아이가 집중해서 듣고 있는 모습이 종종 보였다.
생각해 보면, 이 시기에 아이 아빠가 해준 육아는 특별한 게 없었다. 그저 아이 손을 잡고 아이가 원하는 대로 같이 걸어 다니거나 아이가 하자는 대로 따라 하거나, 아이와 상호 작용하는 놀이를 하거나 책을 읽어주거나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아이가 아빠를 제법 잘 따르고 좋아했다.
14개월이 된 울 아들은 여전히, 엄마, 아빠, 이모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함께 집안 물건(소쿠리, 밥주걱, 파리채, 청소기, 걸레(물티슈) 등)들을 가지고 노는 걸 좋아했고, 책을 가지고 노는 걸 즐겼다.
책을 읽어주는 건 아이가 원할 때 언제든지, 그리고 잠자기 전엔 반드시 해오던 루틴이었지만, 그것 말고 책을 도구로 혹은 장난감 대용으로 사용해서 놀기도 했었다. 그 당시 지인들로부터 물려받은 하드커버 중고 책이 있었는데, 아이가 읽기엔 수준이 좀 높았고, 주신 분들은 전집이 아까워 주셨겠지만, 받고 보니 많이 낡아서 읽기용으로 쓰기엔 적절하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그 책을 장난감 대용으로 사용했었다. 아이와 함께 책을 쌓거나, 징검다리를 만들어 건너는 놀이를 했다. 책을 펼쳐서 아이만의 성을 만들어 주었고, 높이 쌓았다가 무너뜨리는 놀이도 했다. 굳이 블록 장난감이 없어도 책만으로도 다양한 놀이가 가능했고, 그러다 아이가 관심을 보이는 책이 있으면 사물을 찾거나, 색깔을 알려주거나, 글을 읽어주거나 하는 방식으로 놀았다.
개월수가 바뀌었다고 해서, 이전에 하던 짓(?)을 바로 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14개월에 접어들어서도 여전히 서랍을 열어 물건을 꺼냈고, 소파 위를 오르내렸고, 스위치를 켜고 끄고, 리모컨을 누르며 놀았다. 자신만의 공간(물풀공 텐트)에 자주 들어갔고, 아직은 생후 14개월 밖에 안된 아이라, 크게 혼을 낼 정도의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 종종(소파 올라가기, 멀티탭 만지기 등) 발생하기 시작해, 주의를 주고 하지 말아야 할 규칙들을 알려주었다.
아이의 14개월은 겨울이라 어김없이 잔병치레도 계속되었다. 또 코감기에 걸렸었는데, 그래도 잘 놀고 잘 먹고 잘 쌌다. 다만, 잘 때 코가 많이 막히는지 힘들어했다. 그 당시에도 셀프로 하는 코 흡입기 같은 게 있긴 했는데, 괜히 꼼꼼히 읽어 부작용 같은 걸 확인하고 난 후, 나는 겁이 나서 사용할 엄두를 내질 못했다. 그냥 너무 힘들어하면, 아파트 앞 소아과로 가서 의사 선생님께 코 흡입을 부탁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의 나도 겁이 참 많은 엄마였던 것 같다.
"어머, 이게 뭐야?"
기분 좋게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지, 아이가 볼이 발그레한 채, 나에게 쪼르르 달려와 볼뽀뽀를 해주면서 애교를 부렸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 꽉 안아주면서 아이와 눈을 마주쳤는데, 왼쪽 눈에만 쌍꺼풀이 생겨 있었다. 그날 이후, 아프거나 잠을 설친 날엔 두 눈, 혹은 왼쪽 눈에 쌍꺼풀이 짙게 생겼다.
20살이 된 지금도 평소엔 속쌍꺼풀이지만, 컨디션이 나쁘거나, 아프거나 하면 두 눈에 짙은 쌍꺼풀이 생기곤 한다. 엄마, 아빠는 둘 다 쌍꺼풀 눈인데... 쌍꺼풀은 우성유전 아니었나?
그리고 생후 14개월, 오른쪽 어깨에 작은 점이 생겼다. 아이 몸에서 발견한 첫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