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12개월 육아 & 놀이(교육)
첫 생일을 조금 일찍 치르고 난 뒤, 진짜 생일날(12월 초)엔 첫돌맞이 예방접종(A형 간염, 수두 등)을 하러 갔다. 어른 걸음으로 약 5 ~ 10분 정도 되는 거리를 아장아장 걸어갔고, 손을 잡아주면 계단도 걸어 올라갔다. 병원에 도착해서는 병원에 설치되어 있던 미끄럼틀을 타고 놀았고(물론, 손을 잡아주면), 주사를 맞는 그 순간 잠깐 울긴 했지만, 또 씩씩하고 의젓하게 진료실을 나갔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제 갓 첫 돌이 지난 아이치고는 확실히 빠른 발달 사항을 보였던 것 같은데, 그땐 그냥 너무 당연해서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던 같다.
생후 12개월 시기엔 말을 배우려는 지, 혼자 웅얼거리는 소릴 제법 냈고, 음악에 맞춰 춤 비슷한 것을 췄다. 다리를 굽혔다 폈다,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하면서 다양한 표정도 지었고, 어리광, 재롱, 애교도 피웠다. 물론 짜증도 부렸고. 뭐든 하려고 해서 "안돼."라는 소릴 자주 하게 되었고, "주세요."와 "감사합니다."를 가르쳐서 물건을 주고받을 때마다 연습을 시켰다.
그렇게 12개월 차 육아는 아이가 쑥쑥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평온한 나날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돌이 지난 지 열흘 정도 되었을 때, 갑자기 분리 불안 증상이 나타났다. 엄마 껌딱지가 되어서는 한 발짝도 못 떼게 했고, 밥 먹는 거, 잠자는 거 모두 엄마가 무조건 해줘야 한다고 떼를 썼다. 외할머니가 해주시고, 이모가 해줘도 되던 걸 모두 거부하고, 무조건 엄마가 해야 한다고 하니, 갑자기 너무 바빠졌다. 그래도, 육아책에 "돌이 지나면서부터 엄마를 졸졸 쫓아다니고,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방으로, 부엌으로 걱정스러운 듯 찾아다닐 정도로 엄마의 존재가 아기의 마음속에 확실히 뿌리내리는 시기"라고 되어 있길래, 최대한 아이의 기분을 맞춰주려고 노력했다. 마침 이 시기가 연말이라 학교 연구실 일정도 느슨해져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1주일간 자체 휴가를 쓰고서는 아이가 원하는 대로 맞춰주려고 노력했다. 그랬더니, 정말 딱 일주일 만에 분리 불안 증상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정말 "이 한 몸 불사르겠다."는 생각으로 1주일 내내 아이와 붙어 있었는데 다행히 효과가 있었다.
돌이 지났지만 모유 수유는 계속하는 중이었고, 주로 밤잠을 자기 전에 했다. 대신 낮동안엔 이유식에서 한 단계 벗어난 무른 국밥(?) 정도의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아이의 음식은 간을 거의 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점점 어른들이 먹는 음식에 관심을 보이며 먹어보고 싶어 해서, 간이 센 건 물에 씻어서 아주 조금 맛을 보여주곤 했다.
자의식도 강해졌는지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을 매우 뚜렷하게 표현했고, 어른들이 예뻐하는 행동이 뭔지, 예뻐하는 표정이 뭔지 확실하게 아는 것 같았다.
낮잠이든 밤잠이든 잠이 한번 들면 꽤 깊이 잤지만, 낮잠은 재우기가 쉽지 않아 늘 업어 재웠다. 그런데, 12개월 거의 끝자락에 와서는 드디어 낮잠도 그냥 누워 자기 시작했다. "낮잠 잘 시간"이라 알리고, 침대에 같이 누워 토닥토닥해 줬더니 업어주지 않아도, 모유 수유 없이도 그냥 잠이 들었다.
심하진 않았지만, "내가 할 거야 병(?)"은 여전히 진행 중이어서, 아기띠도, 체온계도, 외할머니가 하시던 청소도 모두 본인이 다 하려고 했다. "내가 할 거야"와 "모방 행동"이 결합된 상태인 듯 보였다.
이전에도 간혹 혼자 놀긴 했지만, 돌이 지나고 나서부터는 혼자 노는 시간도 꽤 늘어났다. 뭔가에 열중해서는 혼자 웅얼거렸고, 혼자 웃었고, 뭔진 모르겠지만 바빴다. 아이가 혼자 놀 때는 안전상의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관여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만 봤다. 대신 아이와 눈이 마주쳐 뭔가 도움을 요청하거나 반응(미소를 짓는 등)을 보이면, 바로 응답했다.
자기 전뿐만 아니라 낮에도 책을 읽어달라는 요청이 늘어났다. 아이가 책을 읽어달라고 하면, 집중을 하든 안 하든 반드시 읽어 주었고(읽어 주도록 식구들에게 요청했고), 좋아하는 책이 생겨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어 달라고 요청하면,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읽어 주었다.
더불어 사물을 인지하는 놀이도 하기 시작했다.
집안 물건 모든 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뭔지 물어보는 놀이였는데, 아직 말이 서툰 시기라, 사물을 가리키며 궁금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게 다였지만, 그럴 때마다 반복적으로 사물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흠... 뭔가, 궁금한 게 많아진 것 같네?'
그래서, 아기 관찰 카드를 샀고, 벽에 동물 포스터와 과일 포스터를 붙였다.
돌 이후의 첫 외출로 달성공원엘 갔다 와서 그랬는지, 동물 포스터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아기 관찰 카드는 꽃, 나무, 동물, 과일 등의 그림과 낱말이 적혀 있는 단순한 카드형식이었는데, 그 당시엔 아이가 쉽게 가지고 놀 수 있게 했을 뿐, 카드 하나하나를 들고 뭔가를 가르치려고 하진 않았다. 다만, 아이가 관심을 보이면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특히, 관찰 카드 속 그림과 같은 실물이 집에 있는 경우엔 그림과 실물을 연계시켜 보는 활동도 했었다. 예를 들면 아이가 관찰 카드 속에서 바나나를 가리키며 쳐다보면, "바나나"라고 가르쳐준 후, 냉장고에서 바나나를 꺼내 와서 카드 속 그림과 실물을 비교해서 보여주었다.
"이거랑 이거랑 같네? 와, 똑같지? 바나나는 노란색이야. 우리 맛도 한번 볼까?"
그렇게 사물 인지 놀이를 열심히 한 덕분인지, 어느새 보니까, 친정 부모님이 걸어두신 가족사진 속의 인물과 실제 인물을 구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하나.
생후 12개월 막바지엔 그림 그리기 라기보다는 낙서 놀이를 시작했다.
스케치북을 주로 사용하려고 했지만, 아이의 낙서 욕구를 충족시켜 줄 필요가 있다는 육아서의 지침을 보고선, 낙서는 지정된 장소에만 할 수 있도록 원형 테이블 하나를 종이로 덮어 낙서장을 만들어 주었다. 크레파스를 들고, 볼펜을 들고, 연필을 들고, 색연필을 들고, 원하는 걸 든 채로 엄마도, 이모도 함께 낙서를 하며 놀아주었는데, 아이와 어른들 모두가 재미있어하는 활동이었다. 나중에 보니, 혼자 그림(? 낙서)을 그리면서 놀기도 하는 것 같았다.
돌이 지난 이후부터는 밖에서도 혼자 잘 걸어 다니기 시작하다 보니, 할 수 있는 게 많아졌다. 그래서 외출도 자주 해서 아이에게 많은 경험을 쌓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물론, 나중에 아이가 커서 이 시기를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때 느낀 감정(즐거움, 놀라움, 새로움 등)과 지식, 정보, 경험은 꼭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워낙 우리 두 사람 모두 집순이, 집돌이인 데다가 바쁘기도 해서, 생후 12개월 시기엔 겨우 동물원 한 번, 결혼식 한 번, 간단한 외출 한 번이 끝이었던 것 같다. 역시나 마음만 앞서고, 실천이 잘 안 되는 초보 엄마, 아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