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15개월 육아 & 놀이(교육)
"선배, △△이가 똑같은 책만 계속 읽어달래요."
며칠 전 후배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아이가 계속 자동차 책만 읽어달라고 해서 고민이었는데, 요 며칠 자동차 책 중에서도 한 권에 꽂혀 계속 그것만 읽어달라고 한단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
"읽어달라는 책을 읽어주고 나서는 제가 읽어주고 싶은 책을 읽어줬어요. 그랬더니 짜증을, 짜증을..."
책 편식이 심하면 안 될 거 같아 전화했다는 후배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울 아들의 책 편식 경험담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잘은 모르지만, 책 편식 하면 안 되나?
후배 아이와 마찬가지로, 울 아들도 아주 잠깐 책 편식 경향을 보였던 적이 있다. 책을 많이 좋아하는 편이라 틈날 때마다 책을 들고 와서 읽어달라고 했는데, 이상하게 한 권만 계속 들고 오는 날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걸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또 같은 책이네? OO 이는 이 책을 좋아하나 보다."라고 하면서 그냥 읽어줬다. 그게 며칠 지속되었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러다가 책 속의 그림과 비슷한 그림이 있는 다른 책, 혹은 책 속의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는 다른 책을 찾아보여줬다.
"잠깐만, 이 책이랑 이 책이랑 같은 자동차가 있네?" 하면서.
책 편식을 고쳐보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었고, 같은 색깔의 사물, 같은 그림 찾기 등의 놀이 활동으로 이어보려는 생각은 한 것 같다. 그런데, 그 활동이 아이에게 좋은 자극이 되었는지, 아니면 그 이후부터는 자연스럽게 책을 읽고 나면 다음 활동(그림 찾기, 색깔 찾기 등)으로 넘어가서 그랬는지 더 이상 한 권의 책에만 집착하는 행동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봐도, 뭘 알고 한 행동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이 뭐가 있을까 늘 생각하면서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 시도해 보려고 하는 내 성향이 결과적으로는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준 것 같다.
그래서, 결론은... 아니, 내 생각은...
아이가 책 편식을 하면 하는 대로 흘러가게 둬도 괜찮을 것 같다는 거다. 다만, 너무 과하다 싶은 생각이 들면 아이의 성향을 잘 파악해서 나처럼 자연스럽게 방향을 틀어주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15개월에 접어들면서 나타난 제일 큰 변화는 단연코 음식이었던 것 같다. 여전히 모유를 먹이고 있기는 했지만, 모유보다는 이제 다른 걸 더 많이 접하다 보니 외출할 때 더 이상 아이 몫의 식사 준비를 하지 않았다. 아주 가끔 하는 외식이기도 했고, 이제 15개월이니 조금씩 바깥 음식을 먹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밖에서 밥을 먹게 되면 어른들 먹는 음식들 중에 간이 좀 덜 된 음식을 먹이거나, 좀 짜다 싶으면 물에 씻거나 밥을 섞어 먹이면서 간 조절을 해주었다. 새로운 음식들임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거부하거나 싫어하는 것 없이 의외로 잘 먹어 주었다.
말은 여전히 엄마, 아빠라는 단어만 제법 또렷하게 말했는데, 상황에 맞게 억양을 달리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던 것 하나. 울 아들은 흥이 많은 아이였다.
지난달까지 둠칫둠칫하던 춤(?)이 15개월에 접어들어서는 노래에 맞춘 율동으로 바뀌었다. 이미 돌 전에 음악을 틀어주면 박자에 맞춰 손뼉을 쳤고, 엉덩이를 실룩실룩 흔들었으며, 발도 동동 구르는 등 흥겨워했었는데, 아이가 자라면서 점잖아지는 바람에 그 소중했던 기억을 잊고 살았다. 15개월 무렵의 기록들과 사진들을 정리하다 보니, 새삼 흥 많은 아이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15개월에 나타난 또 다른 변화 한 가지는 또래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물을 좋아하는 편이라 목욕탕엘 자주 데리고 갔는데, 보통은 아기용 욕조에 앉혀 두면 물장난을 치며 혼자 신나게 놀았었다. 그런데, 15개월에 접어든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목욕탕에 데리고 갔더니 16개월 되었다는 또래 여자아이에게 관심을 보였다. 물론 처음에는 약간 거리를 두고 그냥 쳐다만 보는 것 같았는데 어느샌가 가까이 다가가 장난감도 교환하고 간식도 나눠먹으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특히 여자 아이가 하는 행동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다가 따라 하기도 했는데, 여자 아이가 요구르트를 먹기 시작하니까, 썩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한 모금씩 빨아보는 행동을 해서 너무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목욕탕에서 만난 여자아이와는 일시적인 만남이긴 했지만, 드디어 울 아들에게도 친구라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한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한동안 건강하게 잘 지내더니, 15개월 끝무렵, 역시나 환절기를 그냥 지나치진 못했다. 또 감기에 걸려 병원을 가야 했다. 미열이 나서 하루종일 볼이 발그레했지만, 노는 건 큰 차이 없이 잘 놀았다. 다만, 아프면 먹는 걸 거부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럴 때면 어쩔 수 없이 모유수유 양과 횟수가 늘어났고, 다른 사람보다 나를 많이 찾았다. 병원을 가는 건 또 귀신같이 알아서, 병원 앞에만 가면 울기 시작했다. 의사 선생님이 진찰이라도 할라치면 대성통곡을 했는데, 정말 감쪽같게도 진료실만 나오면 눈물을 그친 채 병원에 설치된 유아용 미끄럼틀을 타고 놀았다. 이젠 손을 잡아주지 않아도 잘 탔다.
그리고 잠자는 자세가 영... 이상했다.
주로 엉덩이를 들고, 쭈그린 자세로 자는 경우가 많았는데, 찾아보니 추우면 그럴 수도 있단다. 하지만 이불을 덮어줘도 쭈그린 자세는 바뀌지 않았다.
'뭐지? 저 자세가 편한가?'
베개에 눕혀 재우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었다.
이 시기 울아들의 최애 놀이는 소꿉놀이였다.
남자아이이긴 하지만, 청소랑 부엌살림에 관심이 많길래 소꿉놀이세트를 사주었는데, 뭔가 만들기도 하고, 먹는 척도 하면서 혼자 너무 잘 놀았다. 더 이상 아무거나 입으로 가져가지 않았기 때문에 콩이나 쌀 같은 것들을 소꿉놀이 재료로 제공하면 나름 먹거리를 만들어 우리에게 주기도 했다.
할머니와 다도도 시작했다.
할머니가 녹차를 마실 때 같이 앉아 흉내를 냈는데, 아직 아기라 찻잔에 보리차를 따라 주고 잣과 호두를 간식으로 내놓으면 차 한잔을 마시면서 간식을 먹었다.
사실 직접 보진 못했다. 하지만, 동생과 친정 엄마께서 해 주신 이야길 들었고, 그때 찍어 놓은 사진을 봤는데, 제법 그럴듯했다. 매일 그렇게 차(?) 한잔씩 마시는 시간을 가졌단다.
울아들의 15개월은 따뜻한(?), 가끔은 꽃샘추위가 지나가는 봄이었다. 그래서, 집 근처 초등학교에 가서 그네, 시소, 미끄럼틀을 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았다. 아직은 다 무서워했지만, 그래도 꽤나 즐거워했다.
월드컵 경기장에도 자주 갔었다. 가면 흙도 만지고, 돌도 만지고, 솔방울도 줍고, 나무도 만져보며 정말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한시도 눈을 떼면 안 될 정도로.
그 당시 부산에서 학교를 다니던 막냇동생을 보러 부산에도 갔다 왔었다. 간 김에 해운대 앞에 있던 부산아쿠아리움도 방문했었다. 아이의 첫 아쿠아리움 방문이었는데 너무 생소했는지 동물원에 갔을 때와는 사뭇 다른 반응이었다. 그저 물을 좀 만져보고 싶은 것 같기도 하고, 물고기를 부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아장아장 걷기도 하고, 엄마, 아빠 품에 안겨 있기도 하면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재미있게 놀았다. 그리고 아쿠아리움 기념품 가게에 들러 물고기 모양이 그려진 미니 탱탱볼도 사줬다. 우리는 아이와 함께 여행을 할 때마다 함께 간 장소의 추억을 오래오래 간직할 수 있도록 기념품을 하나씩 사줬는데, 이 미니 탱탱볼이 그 첫 기념품이었다. 통통 튀는 공이 재미있었는지 한동안 최애 장난감이 되었다.
아쿠아리움 구경을 마치고는 해변가로 나와 해운대 모래밭을 걸었다. 작년에 왔을 때, 모래를 무지하게 싫어한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아빠와 바닷바람을 맞으며 모래장난을 한참 했다.
생후 15개월, 이 당시 울 아들 시간의 대부분은 노는 시간이었지만, 뭔가에 꽂히면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 집중해서 놀았기 때문에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어른들의 시간으로는 참기 힘든 순간이 많았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느긋하게 기다려주길 선택했다. 물론, 쉽진 않았다.
"OO아, 엄마 이제 가야 해."
아침 출근할 때마다 하던 굿바이 루틴은 여전히 유효했지만, 1교시 강의가 잡히는 바람에 아침 시간이 바빠지자 아이가 조금 당황해했다. 한동안 현관 앞에서 조금 이른 굿바이 인사를 했더니 울먹울먹 하는 모습을 보였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이모랑 재미있게 놀고 있어. 바이바이."
울먹하는 아이 모습을 남겨둔 채 출근하는 마음이 영 무겁고 안 좋았다. 그런데, 내 동생 말에 따르면, 내가 현관문을 닫고 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즐겁게 놀았단다.
'뭐지? 페이크야?'
"꼭 받아야 해? 애가 너무 힘들어하잖아."
생후 15개월에 해야 하는 뇌수막염 3차 접종을 하러 병원에 갔다가, 간 김에 빈혈 검사를 받았다. 나는 육아를 담당하는 입장에서, 아이가 영양상 불균형은 없는지, 빈혈약을 거의 다 먹어가고 있는 중이니 확인차 빈혈검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울 신랑은 아니었던 것 같다.
처음으로 아이 육아에 관한 의견 불일치로 조금 다퉜다.
검사 결과 다행히 빈혈 수치는 정상으로 나왔지만, 검사 내내 아이가 울었고, 힘들어하는 바람에 나도 많이 속상했다. 그래도, 나는 검사 결과를 받아 들고 나서야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한동안 나와 울 신랑 사이에 냉기가 흘렀다.
이후, 아이를 키우면서 우린 이런 사소한 의견불일치를 종종 겪었고, 그때마다 "아이를 위해서"라는 최종 목표는 같은데 생각하는 방법이 달라 조금 힘든 시간들을 보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