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고학년(1)
"전학"이라는 이슈 덕분에, 아이는 편안하고 자유로운 초등학교 생활을 보내기 시작했다.
일단, 학교 수업은 저쪽이나 이쪽이나 비슷했지만, 과제, 수행평가 같은 것들의 양과 빈도가 줄었다. 시험도 있기는 했지만, 매달 치는 게 아니었고, 아이들 간의 경쟁을 부추기는 그런 유형보다는 단순한 평가로서의 역할만 했다. 그렇다 보니, 부담감을 덜고 학교 생활을 했던 것 같다.
방과 후 활동은 태권도만 꾸준히 계속 다녔고, 피아노학원은 전학 후 1년간 유지하다가 더 이상 배울 필요가 없다는 아이 스스로의 판단으로 그만 다니게 되었다. 나머지는 학교에서 운영하는 방과 후 프로그램 수업을 적극 활용했다.
태권도는 저쪽 동네에서 다니던 태권도 관장님의 소개로, 이쪽 동네의 같은 대학그룹(?) 태권도에 다니게 되었다. 사실 학교 앞에도 태권도장이 있었지만, 용인대 태권도, 계명대 태권도, 경희대 태권도 등 태권도도 그들만의 계보가 있는 듯하여,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위치하긴 했지만, 관장님들끼리 친한 곳으로 보냈다.
'학교 앞 태권도장에 가면 새 학교 새 친구들을 사귀는 게 더 쉽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살짝 하긴 했지만, 저쪽 태권도 관장님의 적극 추천 앞에서 더 이상 망설이기 그래서 결정하긴 했는데, 생각보다 좋은 선택이었다.
관장님들끼리의 소통을 통해 이쪽 관장님께서도 이미 아이의 성격을 다 꿰고 계셨고, 도장 간 교류를 통해 아이가 이전 친구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 주셨다. 결국 이곳에서 아이는 검은띠(3단)를 딸 때까지 열심히 다녔고, 6학년 말쯤 태권도에서도 하산을 했다.
학교에서 운영하는 방과 후 프로그램은 너무 다양하고 재미있는 수업이 많아서 선택이 어려울 지경이었다. 울 아들의 경우, 학습적인 부분을 업그레이드해 주는 영어, 수학 프로그램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운동하는 프로그램이나, 과학, 마술 수업에 흥미를 보였다. 내 생각에 방과 후 수업도 1~2개 정도가 적당할 듯하여, 아이에게 그 정도 선에서 원하는 수업, 해보고 싶은 수업을 선택하게 했더니, "과학 실험" 수업은 꾸준히 듣고, 나머지 수업들은 상황에 따라 선택하는 듯했다. 학교에서 운영하는 수업이다 보니, 비용대비 가성비가 좋은 양질의 수업을 들을 수 있어, 아이도 나도 만족했었다.
전학 이후, 아이의 일상은 학교 정규 수업 후, 방과 후 프로그램 참여, 집으로 돌아와 간식을 먹고, 태권도장 다녀오기가 기본이 되었고, 태권도를 마치고 나면 집에 와서 저녁 먹을 때까지 자유 시간을 가지다가 저녁 식사 후엔 전과 마찬가지로 우리만의 "공부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비록 전학이라는 변수는 있었지만, 아이의 일상에 안정감을 주기 위해, 이쪽 집에서도 "아이방"과 "공부방"을 똑같이 만들어주었고, 학교 적응을 위한 "생활 습관", 숙제하기, 책가방 싸기, 일일 다이어리 쓰기, 시험공부하기 등도 그대로 유지했다. 그 외 남는 시간에는 책을 읽거나 아빠와 함께 보드게임을 하는 등 아빠와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책가방 싸기는 초등 저학년일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세월아, 네월아 했다. 물론, 스스로 하는 일이 더 많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내 눈에는 너어무 느긋하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주변에서는 "가방 싸기 같은 건, 혼자 하게 내버려 둬야지, 엄마 손을 계속 타게 하면 안 된다."라고 하면서 내 방식을 비난했지만, 나는 내 아이에게만은 지금껏 해온 방식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알아서 하라고 방치하기보다는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줘야 할 때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는 아이와 함께 "가방 싸기"를 늘 같이 했다.
지금도 가끔 아이가 집에 내려왔다가 대전으로 올라갈 때면 캐리어를 싸주기도 한다. 내가 버릇을 잘 못 들여 아이가 여직 캐리어를 쌀 줄 몰라서가 아니라, 지금은 내가 해주고 싶어서 자청하는 것이다.
늘 드는 생각이지만, 아이가 크고 나니, "이런 걸 내가 언제까지 해 줄 수 있을까?"라는 아쉬움이 생긴다. 그래서 아이가 스스로 캐리어를 쌀 수 있고, 어쩌면 내 방식이 맘에 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아이도 내 맘을 아는지 그냥 내가 하는 대로 두고 보는 것 같다.
어쨌든, 그렇게 아이의 학교 생활이 익숙해지고, 학교 적응을 위한 "생활 습관"들이 자리 잡아갈 때쯤, 주변에서 "수학"에 대한 이야길 하기 시작했다. 첫 수포자가 나오는 시기가 "4학년"이라면서 수학 공부, 아니 수학 선행을 시켜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3학년 수학과 4학년 수학 사이에 갭이 커서 아이들이 힘들어한다고도 했다.
그래서, 나도 아이가 4학년이 되자 초등 고학년에 맞는 공부 습관을 체계적으로 잡아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려면, 일단 아이의 공부법부터 점검해 봐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국어, 수학, 과학, 영어 과목에 대해서는 "시험공부"를 위한 문제 풀이식 공부가 아닌, 학교 공부에 필요한 공부법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일단, 국어 공부 점검.
사실, 국어 공부를 따로 시킨 적은 없다. 아이가 늘 책을 읽고 있었고, 책에 대한 내용을 말로, 글로 잘 표현했기 때문에 국어 공부의 필요성을 느낀 적이 없다.
한글을 빨리 뗀 편("20년 만에 다시 쓰는 육아교육일기 2" 20화 참조)이라, 또래 아이들에 비해 수준 높은 책을 읽었고, 그림이 없는 꽤나 긴 책들도 무리 없이 읽어내었기 때문에, 평소의 국어 공부는 독서로 대체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아이가 초등학생 때 읽던 책의 대부분은 "학습 만화책"이긴 했다.
하지만, 학교에서 주시는 "추천 도서 목록" 등을 눈여겨봐두었다가 그 리스트에서 아이가 원하는 책을 한 권씩 사주었다. 학습 만화책이 아니더라도 늘 거부감 없이 읽었고, 책의 내용을 공유해 줬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초등 국어 공부는 다했다고 생각했다.
울 아들의 경우, 보통 책 한 권을 선택하면, 여러 번 읽어 책의 내용을 깊이 이해하는 편이라 다독을 하진 않았다. 그래서 나도 책을 사줄 때 여러 권을 한꺼번에 사주지 않았고, 한 권을 끝내고 다음 권을 필요로 하면 그때서야 다음 책을 사주는 식으로 아이의 독서를 도왔다.
다음은 영어 공부 점검.
울 아들의 경우, 영어는 막내이모 담당이었다. 영어 전공이었던 동생이 아이와 영어 놀이를 함께한 이후("20년 만에 다시 쓰는 육아교육일기 2" 20화 참조), 1주일에 한번 꼴로 아이의 영어를 봐주었는데, 학교 교과목 맞춤형 영어를 가르쳐주었던 건 아니고, 어릴 때부터 해오던 놀이 영어에 학습을 가미한 방식이었다. 이전에 내가 공부하던 식의 문법 공부보다는 주로 speaking 위주였고, 간단한 writing도 가미된 형태였다. 그래서, 특별히 영어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다음은 과학 공부 점검.
그리고 보니, 과학도 늘 하던 대로 과학 관련 책(학습 만화책 포함) 많이 읽고, 과학 실험 방과 후 수업도 꾸준히 듣고 해서 딱히 더 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아이의 "과학"에 대한 관심을 충족시켜 주는 활동만으로도 스스로 또래 친구들보다는 과학을 잘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결국, 남은 건 수학 공부.
역시나, 미리 아이를 키워본 선배 언니들의 조언, "고학년 이후부터는 수학에 집중해야 해."라는 말이 맞았던 것 같다. 그래서 아이의 수학 공부를 점검해 보았다.
일단, 수학은 이해력이 필요한 과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교과서 내의 개념만 잘 이해한다면, 문제를 풀고 응용으로 넘어가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나 교과서 방식 그대로, 학교에서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시는 그대로 수학 공부를 하는 아이에게는 3학년 과정에서 4학년 과정으로 넘어가는 것이 그리 어려운 과정은 아니었던 것 같다. 여전히 느리게 문제를 풀었지만, 개념부터 챙기는 공부를 계속했다.
다만, 수학은 개념 이해도 중요하지만, 문제를 많이 풀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울 아들은 딱 거기까지만 했다. 고학년이 되어도 수학 숙제 열심히 풀고, 단원평가나 시험이 있다면 그제야 시험공부랍시고 복습하고, 딱 그 정도.
아이가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 뭐, 초등학생이 수학 숙제 열심히 하고, 시험 있을 때 열심히 공부하면 되었지, 뭐'라고 생각하다고도,
'그래도, 수학 문제집 하나는 사서 매일 한 페이지씩이라도 풀어야 하는 거 아냐? 다른 친구들은 매일 수학 학원을 갈 텐데...' 하는 생각 사이에서 갈등했다.
아이가 4학년이 되자마자 했던 과목별 공부법 점검 이후,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냥 그 상태 그대로 6학년까지 죽 이어졌다.
단, 몇 가지 꼭 챙겼던 것은 있다.
첫째, 학교에서 치는 모든 시험, 아주 작은 쪽지 시험조차도 "시험"이라고 생각하게 해, 시험 준비하는 습관을 들였다. 그 시험이 성적표에 기재되는 시험이든 아니든 꼭 시험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도록 했다. 그 이유는 시험공부를 할 때만 "복습"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나름 아이의 과목별 실력을 유지시키는 궁여지책이었다.
둘째, 아이가 시험공부를 할 때는 항상 옆에 같이 있어 주었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다시피, 하나부터 열까지 지시를 하거나 가르친 것이 아니라, 아이가 어떻게 하는 지를 지켜봤고, 어려워하는 부분은 없는지 이해를 잘하지 못하는 부분이 없는지 체크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셋째, EBS 교육방송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영어나 수학 교과목 수업 위주로 들었는데, 1강부터 꾸준히 들었던 것은 아니고, 아이가 필요로 하는 것만 선택해 들었고, 방학에는 "EBS 여름/겨울방학생활" 같은 프로그램을 보게 했다. 특히, 방학 때 보는 EBS 프로그램의 경우는 생각보다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어서 공부를 한다는 느낌보다 1편의 드라마나 예능을 보는 듯했다.
마지막으로, 울 아들의 성향을 파악한 결과, 아는 것을 중복해서 배우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을 새롭게 배우는 것에 대한 관심도가 높고 흥미를 보였다. 그래서, 예습보다는 복습에 집중했다. 물론, 과학 같은 경우에는 아는 것을 중복해서 배우는 경우가 많긴 했지만, 아는 것을 자랑하기보다는 본인이 아는 것이 확실한 지식인지 체크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실험해 보는 것에 집중하는 듯했다.
전학 이후, 아이의 초등 고학년 생활(3학년 포함)은 학습적인 부분 외 다양한 경험을 해 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체계적이고 빡빡했던 곳을 경험한 뒤끝이라 그런지, 아니면 학습적인 억눌림(?)에서 벗어나서 그런지, 공부에 대한 거부감도 없었고 해 보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경험해 보면서 평범한(?) 초등학생 시절을 보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