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생활(8)
생각해 보면, 참 운이 좋았다.
아이가 걸린 병,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이하 HLH)은 겉으로 드러나기엔 몸살감기와 비슷해서 많은 사람들이 늦게 발견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그러다 치료 시기를 놓쳐 사망까지 이른다고 하는데, 울 아들은 발병에서 확진까지 4일이 걸렸으니 굉장히 빠른 편이었다.
만약 내가 동네 이비인후과에서 큰 병원을 가보라고 했을 때, 이 병원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 병원을 선택했더라도, 때마침 이 병원에 HLH 전문 의사가 스카우트되어 있지 않았더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이 병원에 HLH 전문 의사 선생님께서 계셨기 때문에, 소아과 과장님들도 아이의 병이 HLH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배제하지 않은 채 검사를 진행하셨고, 그래서 아이의 병이 HLH라는 진단이 빨리 나왔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그 당시에는 의사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HLH가 생소한 병이라 정확한 진단이 내려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는데, 진짜 우리는 운이 참 좋은 편이었다.
병원에서의 이튿날 아침, 7시부터 또 피를 뽑아 갔다. 아이는 여전히 미열 상태였지만, 계속 잠을 자서 그런지, 컨디션이 나빠 보이진 않았다.
1시간쯤 뒤, 골수 채취를 위해 5~6명의 의료진들이 병실로 왔다. 원래는 우리가 이동을 해야 하는데, 1인실이기도 하고, 아이의 안정이 우선이라 판단하여 병실에서 채취하겠다고 하셨다.
골수 채취를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짧으면 30분이지만, 골수 채취가 잘 안 될 경우 2시간이 소요될 수도 있다는 설명을 해주셨다. 보호자는 밖에서 기다리라고 해서 아이 아빠와 둘이 병실 앞에서 대기했다.
과학고를 꿈꾸던 열정 가득했던 아이가 하루아침에 희귀 난치성질환에 걸렸을지도 몰라 전신마취를 한 채 골수 채취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믿어지지가 않았다.
병실에서 간호사 선생님이 나왔다 들어가시고, 의사 선생님들이 아이 주변에 서서 이야길 나누고 있는 모습이 문틈으로 보이는데, 모든 것이 슬로모션처럼 느껴졌다.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으로 확진되면... 바로 항암치료를 위해 무균실에 들어가야 한데."
"응."
"심하면 골수 이식을 해야 할 수도 있데."
"응."
항상 어떤 일이든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냉철하게 처리하던 울 신랑도 아이의 병 앞에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최대한 티 내지 않고 이 상황을 냉정하게 보기 위해 애쓰는 듯했다. 나도 불안한 마음을 애써 감춘 채 담담하게 아이의 병을 받아들이는 척했다.
아이의 골수 채취는 다행히 30분 만에 끝났다.
아이가 움직이는 것을 막기 위해 전신 마취를 하고 골수 채취를 한 상태라 깊은 잠에 빠져 있다고 하는데, 뭔가 자세가 엉성했다. 편안하게 눕혔으면 싶었는데, 골수 채취한 부분의 지혈이 우선이라 자세를 그대로 유지시키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골수 채취에 함께 해 주셨던 선생님 중 한 분은 우리와 함께 남아서 아이의 상태를 계속 체크해 주셨다. 호흡곤란은 없는지, 심장 박동은 괜찮은지, 거의 2시간 넘게 함께 계시다 아이 숨소리가 안정되고, 지혈도 잘 되고 있는 것을 확인하신 후, 돌아가셨다.
아이는 장장 6시간을 자고 일어났다. 골수 채취 당시의 기억은 전혀 없는데, 골수 채취한 부분이 뻐근한 느낌이라고 했다. 지혈도 잘 되어서 검사로 인한 문제는 없는 듯했다.
골수 검사 이후,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계속 미열 상태였던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다소 안정되어 가는 느낌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좀 많이 고단한 것 같고, 며칠 사이 얼굴이 핼쑥해지긴 했지만, 과장님과 레지던트 선생님들이 걱정하시던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이 맞긴 한 건가 싶을 정도로 편안해 보였다.
아이는 몸이 아픈 게, 쉽게 치료가 되는 병이 아니라 큰 병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후, 과학고 입시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이번 학기 기말고사만 잘 치면 입학 원서를 넣기 위한 준비는 끝나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HLH로 확진이 되면 일단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하고, 항암 결과가 좋으면 다음 단계로 치료가 넘어간다는 설명을 아이도 함께 들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학업을 계속하기엔 무리가 있을 것 같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듯했다.
"상황을 봐야 하겠지만, 치료가 시작되면 일단 휴학을 해서 건강부터 회복한 후, 다시 3학년 1학기부터 학교를 다녀도 되고, 아니면 검정고시를 쳐서 중학교 졸업을 인정받은 후, 과학고에 도전해도 되고. 준비 기간이 늘어나긴 하겠지만, 과학고 입시에 도전할 방법은 많으니까, 지금은 건강을 회복하는 일이 우선인 것 같아. "
아이도 지금까지 한 노력들이 많이 아쉽긴 했지만, 그렇게 하는 게 최선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듯했다.
나는 솔직하게 말해서, 그 당시 그 순간에는 아이의 건강 회복 외엔 정말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었다. 그저 아이가 우리 곁에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주면 다른 건 다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과학고? 그런 거 1도 필요 없습니다. 그냥, 제발, (과장님 등의 반응으로 봐선 가능성은 희박하겠지만)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이 아니면 좋겠고, 만약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이라면 치료가 잘 맞아 예후 좋게 완치되면 좋겠습니다.'하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래서, 골수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간절하고 힘든 시간이었다.
급행으로 골수 검사를 맡겼음에도 불구하고, 결과를 아는 데까지 꼬박 하루가 걸렸다. 주치의 선생님께서 회진을 오셔서, 결과에 따라 치료계획이 일부 달라지긴 하겠지만, 뭐가 되었든 바로 치료를 시작할 것이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아이는 아침저녁으로 피검사를 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치료 없이 수액만 맞으며 지냈다. 입원하던 당시 맞았던 광범위 항생제 투여도 HLH일 확률이 높아지자 중지했고, 열도 떨어졌으니 해열제 투여도 중지되었다. 먹는 것에 대한 제한도 없다 보니, 그냥 병원에서 푹 쉬고 있는 느낌이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과장님께서 회진을 오셔서 골수검사 결과를 알려주셨다.
지금은 8개 기준(발열, 비장 비대, 혈구감소증, 고 중성지질혈증 또는 저섬유소원혈증, 골수나 비장 또는 림프절에서 혈구포식 관찰, NK세포활성도의 저하 또는 결핍, 고 페리친혈증, 높은 농도의 sIL-2r) 중 5개를 만족하면 HLH로 진단한다는데, 그 당시에 우리가 듣기로는 6개 기준 중 4개가 일치하면 HLH로 진단하는데, 울 아들은 5개가 일치해서 HLH로 최종 진단했다고 하셨다.
"결국,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인 거네요."
"그런데, 어머니. OO이의 피검사 상 일부 호전되는 수치가 생기기 시작해서, 일단은 치료를 조금 미루고 경과를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항암치료는 진짜 신중하게 해야 하는 거라, 지금 현재 아이 상태에 호전이 보이는데, 섣불리 진행하기가 좀 애매합니다. 일단 하루 더 지켜보고 결정하는 게 좋겠습니다."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 확진이라는 과장님 말씀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는데, 치료를 일단 미루고 경과를 지켜보자는 말씀에 금세 안도감을 느꼈다.
치료 계획이 보류된 이후, 아이는 낮에도 자고, 밤에도 자고, 식사 시간 외에는 눈 떠 있는 시간이 없을 정도로 하루종일 잠만 자는 시간을 보냈다. 특별한 치료도 없이 계속 잠만 잤고, 입맛도 괜찮은 지 식사시간에는 병원 밥도 잘 먹고, 챙겨 온 과일 간식도 잘 먹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며칠간 아침저녁으로 피를 뽑아 갔고, 저녁 회진 때마다 피검사 결과가 계속 호전되고 있다는 결과를 받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아이도 정말 회복이 되고 있는지, 슬슬 기말고사 시험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낮동안 깨어 있는 시간이 늘면서 심심했는지, 기말고사 공부할 것들을 좀 챙겨다 달라고까지 했다.
과장님도 회진을 도실 때, 아이에게 "이제 몸 좀 괜찮으면 공부 좀 하지?"라고 농담을 건네시기도 하셨다.
나는 기말고사 공부를 하겠다는 아이의 말이 농담인 줄 알고 그냥 웃어넘겼는데, 학교에 가서 교과서랑 문제집을 좀 갖다 달라고 했다.
"진짜 하려고?"
"네, 쉬엄쉬엄할게요."
결국 담임선생님께 연락을 드려 교실 출입을 허락받았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아이들이 교실 청소 중이었는데, 담임선생님께서 미리 아이의 짐을 다 싸놓고 계셨다. 그리고 아이가 결석해 있는 동안 각 과목별로 배포된 학습지를 챙겨 주시며, 아이의 안부를 물어주셨다. 아이의 친구들도 "OO 이는 괜찮아요?"라고 물었는데, 코 끝이 시큰해지며 울컥했다. 모두 고마웠다.
그렇게 며칠간 주치의 선생님과 과장님께서 아이의 상태를 면밀히 살펴봐 주시더니, 결국엔 항암 치료 패스, 면역 치료 패스, 스테로이드 치료 패스 상태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첫날 입원 당시 급하게 투약했던 광범위 항생제와 해열제 외엔 그 어떤 약도 쓰지 않고 며칠 푹 쉬면서 회복이 된 것이었다.
HLH 치료 계획이 모두 취소된 후에도 과장님께서는 퇴원 결정을 쉽게 내려주지 않으셨다. 간과 페리틴 수치가가 여전히 마음에 걸리신다면서 신중에 신중을 기하시더니, 마지막 간 수치까지 정상에 가깝게 올라서는 걸 확인한 후, 퇴원을 결정해 주셨다.
과장님께서는 퇴원약으로 간 기능 회복약을 처방해 주셨고, 1주일 후 내원해서 다시 피검사를 해보자고 하셨다. 나에게는 간에 좋지 않은 음식들은 철저히 배제하고 균형 잡힌 식사를 챙겨주면 좋겠다고도 하셨다. 그리고,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은 재발이 매우 잘 되는 병이라서, 아이가 열이 나면 반드시 응급실로 내원하라고도 하셨다. 다만, 울 아들의 경우는 자연 회복된 경우라, 재발이 될 확률이 낮은 편이긴 하다는 말씀도 해주셨다.
이게 꿈인가? 생신가?
퇴원은 했지만, 간 기능이 완벽하게 회복된 건 아니라고 하셔서, 등교를 시켜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했는데, 과장님께서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니 등교를 시켜도 괜찮다고 하셨다. 단, 아이 상태가 조금이라도 나빠진다 싶으면 병원에 내원하거나 전화 달라고 하셨다.
아이는 약 12일 만에 퇴원을 해 집에 왔는데, 그날 하루만 푹 쉬더니, 이틀 뒤에 있을 기말고사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일단은 병에서 회복했으니, 과학고 입시를 위한 마지막 시험을 포기할 순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해보는 데 까진 해보겠다는데 말릴 수가 없었다.
다행히, 입원하기 전에 미리 해둔 공부가 있어서 시간을 단축할 순 있었지만, 이틀 만에 기말고사 공부를 한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리고, 겉은 멀쩡해 보여도 장기가 손상된 후 회복된 병이었기 때문인지, 피곤함을 이겨내질 못하는 것 같았다.
'꼭 이래야 하나?' 싶으면서도 아이가 해보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는데, 가만히 두고만 볼 수 없어, 내가 옆에 붙어 아이의 공부를 도왔다. 정말, 이틀간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과학고 입시에 필요한 마지막 기말고사를 끝내고 나서야 아이는 안도하는 것 같았다.
2주간의 공백이 있었으니, 성적이 좀 떨어질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미리 해둔 공부 덕분에 시험이 어렵진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결과는...
어느새 내신 공부의 노하우가 생겼는지, 그 와중에 반에서 1등을 했다. 결국 아이가 원하는 대로 과학고 입학 원서를 낼 수 있게 되었다.
1주일 후, 피검사를 위해 다시 대구 파티마병원 소아과에 내원했고, 그 이후 피검사 간격을 늘려가며 병원을 계속 오갔다. 피검사를 하는 날에는 공복 상태로 가야 해서, 늘 병원 오픈 전에 검사실에 들렀고, 피검사 후에는 병원 식당에서 아침을 먹은 후, 바로 등교를 했다. 검사 결과는 다음날 하교 후에 들을 수 있어서 아이가 직접 오거나 나만 와서 듣기도 했다.
HLH 재발 유무를 확인하기 위한 피검사는 대학 입학 직전(21년 2월 종결)까지 계속되었다. 그 사이 원인 불명의 열이 나서 응급실에도 여러 번 왔었다. 아이가 열이 나면 모든 것이 올스톱 되고, HLH이 발병되었던 그날로 시간이 되돌아갔다. 그러다 차츰 열이 나는 횟수도 줄고, 피검사 결과도 줄곧 괜찮게 나오면서 그날의 트라우마로부터 서서히 벗어나게 된 것 같다.
아이의 HLH는 이차성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으로 최종 판별이 났다. 원발성(유전)이 아니라서, 그리고 스스로 회복된 케이스라 재발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진단받았다.
주변에서는 사춘기 때 발생할 수 있는 급작스런 여러 변화로 병이 생겼다 나은 것일 수 있다고 말하지만, 생사를 넘나든 그 경험은 정말 다신 하고 싶지 않다.
몇 년 전의 일이지만, 그날의 일이 너무 생생하다.
아이가 발병하고 긴박했던 투병생활동안, 인터넷을 뒤지며 자료를 찾았지만, 쉽게 정보가 나오질 않았다. 그래서, 아이의 투병일지를 블로그(지혜의 동산 "희망가득한 병상일지" 카테고리 참조)에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 병을 꼭 이겨내겠다는 의지였고, 같은 병을 갖고 있는 환우들과 보호자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리고, 결국 이 병을 이겨낸 케이스도 있음을 알리는 글이 되었으니, 내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스무 살이 된 지금도 아이가 열이 난다고 하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하지만, 이젠 재발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던 대구 파티마병원 OOO 과장님 말씀을 굳게 믿는다. 아이도 이후, 자신의 건강에 대해 맹신하지 않고, 늘 신경을 쓰면서 살고 있는 것 같다.
15세부터 18세까지 겪게 된다는 심한 사춘기는 치아 사고와 생사를 오가는 큰 병으로 사주 액땜을 한 것 같다. 아이도 본인의 사춘기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유 없이 짜증이 나고, 화가 나는 시기가 잠깐 있긴 했는데요, 엄마 아빠가 잘 이해해 주셔서 잘 넘어간 것 같아요."
우린 잘 느끼지 못했는데, 아이에게도 그런 시기가 있긴 했었나 보다. 그런데, 우리가 잘 이해해 줬다고 느끼다니... 감동이었다.
내가 보기에, 울 아들의 사춘기는 과학고를 준비하는 과정이 너무 바빠서, 그리고 중3 때 너무 갑작스럽고, 힘들게, 2주간의 큰 투병생활을 하면서 사라져 버린 게 아닐까 한다.
짧고 굵게 아이를 잃을 뻔한 경험을 한 이후, 나는 늘 아이의 건강을 기도한다. 그리고 어떤 결정을 할 때마다, 그 순간을 떠올린다.
나중에 후회될 일을 만들지 말자.
내 아이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지금 원 없이 사랑해 주자.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우리와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