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생활(6)
사주를 믿으십니까?
갑자기 웬 뜬금없는 사주 이야기냐면 아이의 중학교 시절, 다사다난했던 사건 사고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아이가 태어나고 난 후 신생아기에 해야 할 일 중에는 아이의 "이름 짓기"가 있다. 울 아들의 이름은 그 당시 친정아버지와 울 신랑이 아이 사주까지 보고 작명해 온 것이었다('20년 만에 다시 쓰는 육아교육일기 1' 제05화 참조).
그때 봤던 아이의 전체 사주는 대체로 좋은 편이었는데, 사주를 봐주셨던 교수님께서 "15세부터 18세까지(우리나라 나이로) 시기만 잘 넘기면 평생 평탄한 사주구먼. 사춘기를 아주 심하게 할 모양이야."라는 이야길 해주셨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사춘기는 원래 다 힘든 거 아냐?'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또 당장 와닿는 이야기도 아니고 해서 잊고 살았는데, 아이가 중학생이 되고 나서 그 사주가 뜻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일들이 일어났다.
아이의 중학교 시절을 되짚어 보면, 중학교 1학년때는 분리 수면을 하겠다는 선언(제11화 에필로그 참조) 외, 초등학교 때의 모습에서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중1이라고 하더라도 생일이 늦어 만 12세에 해당되다 보니, 마지막 예방접종이 남아 있었고, 오랫동안 잘 관리하던 마지막 유치도 그제야 빠졌다.
마지막 유치를 뺀 날, 정기적으로 다니던 소아치과에서 교정 치과를 추천받았다. 유아기 때 우려했던 것처럼('20년 만에 다시 쓰는 육아교육일기 2' 제21화 참조), 결국 치아 교정을 시작했다.
울아들의 경우 2차 성징은 중학교 2학년에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목소리가 갑자기 중저음으로 변했고, 등 쪽 피부에 튼살 흔적이 남을 정도로 키가 훌쩍 커버렸으며, 뽀송뽀송했던 얼굴에 수염이 나고 여드름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느끼기엔 아이가 자란다는 느낌보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변태"의 과정을 거치는 것처럼 정말 순식간에 변하는 것 같았다.
울 아들의 얼굴에 수염이 나기 시작하자, 아이 아빠는 서둘러 아이를 피부과에 데리고 가서 "제모"를 시켰다.
머리숱이 많고 수염이 너무 많이 나서 고생했던 자신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까 봐 초장에 수염들을 제거해주고 싶어 했다. 아빠의 빠른 판단 덕분에, 아이는 털보(?) 청년이 되진 않았다. 하지만, 언제든 비집고 올라오려는 수염 때문에 주기적으로 제모를 하러 다니고 있다.
아이가 중2가 되었지만, "중2병"을 의심할만한 정황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방문을 닫고 틀어박혀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말수가 줄었으며, 점점 얼굴 보고 대화하는 시간이 줄어들기는 했다. 사춘기 소년 특유의 짜증이나 이유 없는 반항은 대놓고 하진 않았지만, 점점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려는 경향은 강해졌다.
"OO이 방문, 떼버릴까?"
아이가 공부방에 들어가면 공부를 해서, 아이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면 문을 닫고 들어가 버리니까, 식사 시간 외에는 얼굴을 보기도 힘들고 일상적인 이야길 나눌 수가 없게 되자, 아이 아빠가 괜히 심술을 부렸다.
나도 아이와의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아쉽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아이의 프라이버시는 확보해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아이 아빠의 괜한 심술을 막아서며 아이만의 세상을 존중하려고 노력했다.
이 당시 학부모 모임에서도 늘 아이들의 '중2병'은 단골 소재였다.
아이 친구 엄마들의 이야길 듣다 보면, 울 아들의 행동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근데 OO이 엄마, '지랄(?) 총량의 법칙'이 있다는 건 아시죠?"
"지랄(?)... 총량의 법칙... 이요?"
엄마들 말에 따르면 "지랄(?)"은 언제든 총량만큼 하게 되어 있으니 미성년자일 때 하는 게 차라리 낫다고 했다. 미성년자 때 제대로 지랄(?)을 하지 않고 넘어간 착한 아이들은 성인이 돼서 지랄(?)을 하게 되어 있는데, 성인이 돼서 하게 되면 스케일이 커져서 법적인 문제가 생기기도 하니, 차라리 어릴 때 지랄(?)을 하고 넘어가는 게 좋다는... 좀 상스럽긴 하지만, 엄마들 사이에서 도는 이야기라고 했다.
울아들이 온순하게 사춘기를 보내는 것에 대한 질투 같기도 하고, 자기 아이의 지랄(?)을 합리화하는 것 같기도 한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였지만, 그 순간에는 대수롭지 않게 웃고 넘어갔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엄마들과의 이야길 아이 아빠에게 전달하다가 갑자기 아이의 사주 이야기가 불현듯 떠올랐다.
"15세부터 18세까지...라고 했었나?"
"뭐가?"
"사춘기 아주 심하게 한다고 했던 시기."
"아, 그랬지?"
아이 아빠는 방문 닫고 들어가는 것부터 이미 사춘기가 시작된 거라고 했지만, 친구 엄마들 말에 따르면 울 아들의 행동은 사춘기 축에 끼지도 못하는 거라고 했으니 앞으로 점점 더 심해질 일만 남은 건 아닌지 걱정이 살짝 되긴 했다. 하지만, 당장 아이의 행동에 큰 변화가 있었던 건 아니라서 또 "사주" 이야긴 잊힌 채 시간이 흘러버렸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학교에서 동아리 활동의 일환으로 실내 아이스링크를 간다며 아침부터 두꺼운 외투와 장갑을 챙기며 업되어 있던 아이는, 예상치 못한 사고로 지금까지도 큰 불편을 겪고 있다.
"OO이 어머님 되시죠?"
아이가 돌아올 때가 된 것 같다고 생각하던 그 시간에, 낯선 전화번호가 뜨길래 받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는데, 아이의 과학 선생님이셨다.
"네, 선생님."
"OO이가 오늘 동아리 활동으로 아이스링크에 왔는데, 사고가 생겨서 지금 병원으로 가는 중입니다."
정말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면서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다.
"여보세요? OO이 어머님?"
"아, 네."
"OO이가 앞으로 넘어지는 바람에 이를 많이 다친 것 같아서, 치과를 가는 중인데, 교정을 하고 있다고 해서 일단 교정 치과 병원으로 가는 중입니다."
'아, 그렇지. 교정을 하고 있었지?'
사고라고 해서, 순간적으로 팔, 다리, 머리 중 어딘가를 다쳤다고 생각했는데, 다친 곳이 치아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선생님 전화를 끊자마자 교정 치료를 받고 있던 병원에 전화를 해, 아이 사고 상황을 말씀드렸더니, 원장 선생님께서 직접 전화를 다시 받으시더니, 일단 내원을 하라고 하셨다.
아이 아빠에게 아이 사고 소식을 전한 후, 교정 치과로 서둘러 갔는데, 도저히 손발이 떨려 운전을 못할 것 같아서, 택시를 타고 갔다.
동아리 인솔 교사로 따라가셨던 과학 선생님을 그때 처음 뵈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평소 아이를 많이 챙겨주셨던 것에 대한 감사함을 전할 새도 없이 눈인사만 하고 아이부터 살펴보러 들어갔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원장 선생님께서 긴급으로 아이의 상태를 봐주신 뒤였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교복에 묻은 피 말고는 아이 상태가 멀쩡해 보였다.
"앞으로 넘어졌다고 해서 이가 부러졌나 했는데, 교정기를 착용하고 있어서 그랬는지, 이가 떨어져 나간 건 없고, 앞니 4개가 밀려 들어가 있는 상태입니다. 일단 지금 착용하고 있는 교정기는 부러진 상태라 응급 수술로 교정기부터 제거하고, 앞니 4개를 모두 제자리로 돌려놓은 후, 찢어진 잇몸도 봉합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고 나면 다시 교정기로 이를 잘 고정해 둘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어머니가 선택을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뭘... 요?"
"저를 믿으시고, 여기서 응급 수술을 할 건지, 아니면 경대병원 응급실로 갈 건지. 참고로 저도 경대병원 치과에서 근무했었기 때문에 이런 응급 수술은 자신 있습니다."
"그럼, 여기서 부탁드리겠습니다, 선생님."
치과 원장 선생님께서 꽤 자신 있게 말씀하시기도 했고, 내가 생각해도 아이를 데리고 다시 경대병원 응급실에 가서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고 하는 과정이 시간도 걸리고, 번거로울 것 같기도 해서 원장 선생님께 부탁을 드렸더니, 바로 수술준비를 하시겠다며 잠시 나가셨다.
원장 선생님께서 나가시고 나서야 아이한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는데, 아이 얼굴을 보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많이 아프지?"
"아뇨, 하나도 안 아파요. 걱정 많이 했죠?"
아이가 생각보다 너무 담담하고, 침착해서 안심이 되면서도, 피 묻은 교복이며, 부어오르기 시작한 입술이며, 까진 손이며, 눈앞에 아이의 사고 당시 상황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어 너무 마음이 아팠다.
아이의 수술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치료실 밖에서 아이를 기다리면서 보니, 과학 선생님께서도 계속 기다리고 계셨다.
그제야 선생님께 제대로 된 인사를 건넸는데, 너무 미안해하셨다.
"일단, 저희가 파악하기로는 친구들과 스케이트 경주를 하다가 혼자 넘어진 것 같은데, 정확한 것은 CCTV 확인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어머니."
과학 선생님께서는 아이 수술이 끝날 때까지 남아서 아이 상황을 학교에 공유하셨고, 학교로부터 안내받은 학교 안전 공제회에 대한 이야기도 전달해 주셨다. 아이 수술이 끝나고 과학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후, 치과 원장 선생님께서 나오시더니 "신경치료 전문 병원"을 추천해 주셨다.
"아무래도, 앞니 4개는 신경이 죽은 것 같습니다."
원장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앞니 4개가 너무 많이 밀려 들어가서 조심조심 앞으로 빼내긴 했는데, 아이가 전혀 아파하질 않았다고 하셨다. 아이가 아프지 않다고 한 게 걱정할까 봐 한 말이 아니라 진짜였던 것이었다.
그다음 날, 교정 치과에서 추천해 준 신경 치료 전문 병원에 갔더니, 두 분이 서로 선후배 관계라 밤사이 아이의 사고 상황과 치료 상황에 대해 공유하고 치료 계획을 세웠다고 하셨다. 그래서, 문진표 작성이나 기타 서류 제출 없이도 바로 아이의 치아 상태에 대한 진단과 치료가 가능했다.
"잇몸 봉합 수술은 OO 원장 선생님께서 해주신 거죠? 진짜 꼼꼼하게 잘하셨네요. 제가 해도 이렇게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신경 치과 원장 선생님께서는 몇 가지 검사와 확인을 하시더니, 교정 치과 원장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과 똑같은 말씀을 해 주셨다.
"앞니 신경은 죽었습니다."
다만, 치아가 온전한 상태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당장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거나 하는 상황은 아니라서 당분간은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해주셨다. 그리고 다친 이 주변의 치아들도 강한 충격을 받은 상태라 자주 병원에 들러서 확인을 하자고도 해주셨다.
이후, 아이의 잇몸이 완전히 낫고, 주변 치아들이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3일에 한번, 1주일에 한번, 1개월에 한 번, 3개월에 한 번, 6개월에 한 번 단위로 기간을 늘려가며 진료를 받았고, 지금은 사고 당시 그대로 비록 죽은 치아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앞니에 치아들이 고정되어 있다. 대신 앞니로는 딱딱한 것들을 더 이상 씹어먹을 수 없어서 많은 불편함을 겪는 중이기도 하다.
아이의 치아 사고 이후, 주변 어른들은 "15세부터 18세까지 심한 사춘기를 겪게 될 것이다."라는 사주를 생명에 지장이 없는 정도의 사고로 액땜한 것이라며 위로하셨고,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리고 아이의 중2병도 이 사고 덕분에(?) 제대로 발현되지 못하고 끝나 버린 거라고 생각했다.
또한 이걸로 액땜이 끝났으니 앞으로 평탄할 일만 남았으면 좋겠다고 바랬다.
그런데...(다음 화에 계속...)
3년으로 예상했던 아이 교정 기간은 그 사고 이후, 하염없이 늘어났다. 앞니 4개도 언제 색깔이 변하고 문제가 생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아직도 1년에 1~2번은 정기적으로 교정 치과와 신경 치과를 방문 중이다. 그래도 이제는 탈부착 교정기를 가끔 사용해도 될 정도로 안정기에 들어섰다.
그동안 정기 검진 때마다 아이와 함께 병원을 방문했지만, 아이 혼자 들어가 진료를 받고 나와서 원장 선생님 얼굴을 뵐 일이 없었다. 그런데, 하루는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가 다른 진료를 마치고 나오시는 원장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원장 선생님께 항상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보니, 그날 좀 과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던 것 같다. 원장 선생님께서 한참 서 계시더니 다가오셨다.
"OO이 어머니시죠?"
"네, 선생님."
"사고 났던 이들이 유착도, 뼈흡수도 없이 잘 관리되고 있네요. 색깔도 살아있는 이들이랑 비슷하게 유지되고 있고. 지금처럼 관리만 잘해주시면 될 것 같네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원장 선생님께서도 그날 그 사건이 기억나셨는지, 인사를 건네주셨다.
그런데, 인사 뒤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말씀을 해주셨다.
"사실, 그때 그 응급수술, 너무 오랜만에 하는 수술이라 저 엄청 긴장했었습니다. 레지던트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긴장한 상태에서 진짜 최선을 다했어요."
"네????"
'아니, 너무 당당하게, 너무 자신만만하게 말씀하셔서 아이를 원장 선생님께 맡겼던 건데, 이게 무슨....'이란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내 생각이 얼굴에 너무 티가 났는지, 원장 선생님께서 웃으시면서 한 말씀을 덧붙이셨다.
"그날, 어머니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너무 절박해 보이셨어요. 이대로 아이를 데리고 경대병원에 가시면 다시 검사받고, 다시 진단받는 과정을 거친 후에야 수술을 받을 수 있을 텐데, 그 시간을 못 견디실 것 같기도 하고, 빨리 조치하는 게 OO이 한테도 좋을 것 같아서, 저도 큰 결심을 했던 겁니다. 하하하."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을 줄이야...
아이의 이가 그나마 이만한 게 원장 선생님의 빠른 판단 덕분이었다 싶어,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 만약 원장 선생님께서 조금이라도 불안하고 긴장된 모습을 내게 보이셨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싶으니 정말 뒤늦게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