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생활(7)
앞선 회차들에서 계속 언급했던 "2주간의 공백", 그리고 직전 회차에서 언급한 "끝나지 않은 사주 액땜" 이야기는 중3 1학기 마지막 기말고사를 2주 앞둔 시점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릴 때부터 줄곧 유지해 온 9~10시 사이 취침, 6~7시 사이 기상은 중학교 1학년때까지만 해도 계속 지켜졌는데, 중2에 올라가자, 1주일에 한 번이긴 했지만 교육지원청 영재교육원 수업도 취침 시간을 넘겨서 마쳤고, 공부량도 늘어났으며, 과학고 입시를 위한 성적관리에 수행평가와 숙제도 중요해져 저절로 취침시간이 늦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시험기간엔 거의 12시 가까이까지 공부시간을 늘려가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시험 당일의 컨디션을 위해서는 전날에는 시험공부보다 푹 자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지만, 반 1등을 놓치고 싶지 않고, 과학고 입시에 유리하다는 교내 3% 안에 들고 싶어 하는 아이의 의지를 꺾을 수가 없었다.
중3이 되어 본격적인 입시가 시작되자, 아이는 평소 취침시간도 시험기간처럼 12시로 바꾸겠다고 했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닐까?"
"친구들 중에 저처럼 일찍 자는 애가 없어요."
"친구들은 학원을 다니니까, 학원 왔다 갔다 하는 시간도 있을 테고, 학원 수업 듣는 시간도 있으니까 그럴 수 있지만, 너는 그 시간을 공부에 투자할 수 있으니, 집중해서 하고 그냥 일찍 자는 게 어떨까?"
"일단 한번 그렇게 공부해 보고, 학교에서 많이 졸린다거나 하면 조정할게요."
스스로 열심히 공부해 보겠다는데 계속 말리기도 애매해서 그렇게 하라고 했지만, 어릴 때부터 잔병치레가 많았던 터라 행여 건강을 해칠까 봐 걱정이 되긴 했다.
아니나 다를까, 중간고사 즈음 심한 목감기에 걸려 며칠을 고생했는데, 그 와중에도 시험공부를 한다고 공부방에 틀어박혀서 늦게까지 공부를 했다. 초등학교 때만 해도 목감기에 걸리면 항상 열이 났고, 열이 나면 탈수 증세가 심해져 입원을 해야 할 정도였는데, 정신력으로 버티는 건지, 과학고 입시에 대한 부담감으로 불안해서 버티는 건지, 해열제를 먹어가면서 시험공부를 해나갔다.
평소 같았으면 중간고사가 끝난 후 1주일 정도는 열심히 공부한 보답이라도 하듯이 조금 여유로운 시간을 즐겼을 텐데, 과학고 입시에 포함되는 성적이 중3 1학기까지라서 그랬는지, 중간고사가 끝난 후에도 정말 쉬지 않고 공부를 하는 듯했다.
아이가 항상 공부방 문은 열어놓고 공부를 했기 때문에, 우리는 아이가 공부방에 들어가 있는 동안엔 각자 책을 읽거나 휴대폰을 들여다보면서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게 조용히 있어주었다. 그렇다고, 발소리와 숨소리까지 죽여가며 주변을 고요하게 만든 건 아니었고, 백색 소음 정도는 집중력으로 이겨낼 수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해 일상 활동들은 유지하고 있었다.
그날도, 나는 아이의 공부하는 뒷모습을 계속 지켜보면서 거실에서 책을 읽다가 시간상 아이가 출출할 것 같아서, 과일을 깎아 공부방에 들어갔다.
"이거 먹으면서 조금 쉬다 하는 게 어때?"
아이가 하던 공부를 잠시 멈추고 나를 쳐다봤는데, 그때 아이 목에 뭔가 툭 튀어나온 게 보였다.
"잠시만, OO아. 목에 이게 뭐야?"
"아, 이거 며칠 전부터 생긴 건데, 임파선이 부은 거 아닐까요?"
"임파선이라고 하기엔 너무 큰데? OO이 아빠, 여기 와서 이것 좀 봐주세요."
우리에게 의학적 지식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아이 목에 튀어나온 혹 같은 것이 정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음날 하교하자마자 아이를 데리고 동네 이비인후과에 갔었다.
"임파선염이네요."
"임파선이 이렇게 커지기도 하나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동네 이비인후과 의사 선생님께서 너무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시며 약을 지어주셔서 일단 한시름 놓긴 했는데, 그날밤 고열이 나기 시작했다.
이비인후과에서 지어준 약에는 해열제가 들어있지 않았고, 열은 계속 오르고 해서 할 수 없이 집에 구비해 놓고 있던 타이레놀을 먹였더니 아침에는 정상 체온으로 돌아왔다. 아이는 밤새 고열에 시달렸음에도, 평소와 똑같이 일어나 수행평가가 있는 날이라며 일찍 등교를 했다.
나는 전날 진료 때 "열"에 대한 이야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약을 바꾸든지 해야 할 것 같아서, 이비인후과 오픈 시간에 맞춰 의사 선생님께 전화상담을 요청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 왈, 본인이 진단한 임파선염이라면 그렇게 고열이 날 수 없다면서, 좀 더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큰 병원이라...'
아이가 하교하는 시간을 감안하면, 병원 문 닫는 시간 전에 도착하기가 힘들 것 같아서 가까운 병원을 검색하다가 대구파티마병원 소아과에 문의 전화를 했다. 아이 상황을 말씀드렸더니, 전화 접수는 받지 않지만, 5시까지 병원에 오셔서 바로 소아과에 방문하시면 진료를 봐주시겠다고 하셨다.
아이에게 문자를 남겨두고 하교하는 시간에 맞춰 학교 앞에서 기다리다가 아이를 바로 픽업해 병원으로 달려갔다. 정말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는데, 너무 감사하게도 과장님 한분이 우릴 기다려주고 계셨다.
소아과 과장님께서는 아이의 지난밤 상태에 대한 이야길 꽤 진지하게 들어주셨고, 아이의 목 상태도 확인하시더니 일단은 피검사부터 하자고 하셨다. 그리고 현재로서는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으니 항생제는 빼고 증상들을 완화시킬 수 있는 해열제와 일반 감기약을 처방해 줄 테니 오늘밤에는 그걸 먹어보라고 하셨다. 내일 오전 중에 나오는 피검사 결과는 전화로도 확인가능하니, 결과가 나오면 전화를 주겠다고도 하셨다.
아이는 낮동안 나른한 느낌이 있긴 했지만, 열이 나지 않았다면서, 그날 밤에도 밤늦게까지 시험공부를 했다. 그런데, 잘 무렵이 되자 다시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처방해 준 약을 먹였음에도 39도 이상의 열이 계속 오르는데 정말 속수무책이었다. 밤새 끙끙 앓는 아이 옆에서 온몸의 열을 식히느라 밤을 꼬박 새웠다.
아침이 되니, 밤새 오르락내리락하던 열이 또 떨어졌다.
어릴 때 열만 안 나면 잘 놀던 꼬맹이가 중학생이 되어도 똑같았다. 그렇게 밤새 아팠는데도, 열이 떨어지니 학교를 가겠다고 했다. 그날도 다른 과목 수행평가가 있어서 꼭 가야 한다고도 했다.
"학교에서 열이 난다거나 하면, 꼭 연락해. 알았지?"
아이가 힘들어 보여 도보 10분 거리의 학교를 차로 데려다주었고, 아이가 등교한 후, 나는 9시가 되자마자 피검사 결과를 알고 싶어 병원에 전화를 했다.
간호사님이 피검사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며, 결과가 나오면 바로 전화를 해주시겠다고 하셨는데, 그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정말 한없이 길게 느껴졌었다.
거의 11시가 다 되어갈 무렵, 아이를 진료해 주셨던 과장님이 직접 전화를 주셨다.
"OO이 어머니, 아무래도 당장 입원을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피검사 수치가 매우 안 좋게 나왔고, 지금 이 상태면 아이가 너무 힘들 겁니다. 당장 입원 절차를 밟으시지요."
"무슨... 병인가요?"
"일단, 가와사키병으로 의심되긴 합니다만, 입원 후, 좀 더 정밀한 검사가 필요해 보입니다."
가와사키병...
생전 처음 들어보는 병명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하지만, 당장 입원이 필요하다고 하시니 소아과 과장님 말씀을 따르는 게 좋을 듯하여 담임 선생님께 바로 연락을 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전화를 받으셨다.
"OO이가 열이 너무 올라서 안 그래도 전화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어머니."
아이는 수업시간에 치는 수행평가까지는 마무리했는데, 열이 갑자기 너무 올라 보건실에 계속 누워 있었다고 했다. 교복을 입은 채로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고, 입원 절차를 밟았다.
그런데, 아이가 소아과 병동에 가기엔 너무 크고, 성인 병동에 가기엔 너무 어려 입원실 배정에 어려움이 있는 듯했다. 그래서 1인실이 있으면 들어가겠다고 했다.
마침 성인 병동에 1인실이 비었다길래, 일단은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가 후에 소아과 병동에 자리가 나면 옮기기로 했는데, 소아과 병동에 자리가 나기까지 과장님과 간호사 선생님들이 아이 하나 때문에 병동을 이동해 찾아와 주셔야 해서 좀 많이 번거로운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 아이 상태를 확인하러 올라오셨고, 계속해서 아이의 고열 원인을 찾기 위해 애써주셨다.
아이가 입원 후 제일 먼저 한 것은 광범위 항생제와 해열제 교차 투약, 그리고 정밀 피검사였다.
열이 너무 많이 나니까 혈관이 전혀 보이질 않아 간호사 선생님들이 링거 주삿바늘을 꼽는데 애를 먹으셨다. 결국 아이 손등, 팔뚝에 주삿바늘 자국을 여럿 남긴 후에야 수간호사님이 등판하셔서 링거줄을 달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 이 해열제가 마지막 해열제입니다. 이것까지 효과가 없으면, 일단은 열이 내릴 때까지 어머니가 아이 몸을 좀 닦아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링거 주사를 꽂아주셨던 수간호사 선생님께서 처방받은 약을 연결해 주시면서, 아이 피검사 결과 간기능이 너무 떨어져서 해열제 투약도 위험하다는 과장님 말씀을 전달해 주셨다.
사실, 아이의 상태는 눈으로 보기엔 목에 부은 임파선과 높은 열 외엔 크게 나빠 보이지 않아서 과장님과 간호사 선생님의 반응이 너무 무서웠다.
"아이가 지금 너무 힘들 텐데, 너무 잘 견디고 있는 겁니다."라고 하시는데, 참을성이 많다는 게 이럴 때는 득이 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징징 거리기라도 했다면, 내가 좀 더 빨리 발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병원에 와서 안심이 되어 그런지, 입원 직후부터 계속 잠만 잤다.
나는 아이 옆에서 10분 간격으로 열을 재며, 열이 떨어지길 기도했다. 그리고 "가와사키병"이 뭔지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가와사키병이란 소아에서 발생하는 원인 불명의 급성 열성 혈관염으로 피부, 점막, 임파절, 심장 및 혈관, 간 등에 기능 이상을 가져올 수 있고, 위장관 장애, 담낭수종, 드물게 뇌수막 등의 염증이 나타날 수 있는 병이다. 원인은 불명확하지만, 현재까지는 유전학적 요인이 있는 소아가 다양한 종류의 병원체에 감염되면 과민반응이나 비정상적인 면역학적 반응을 일으켜 가와사키병이 발생한다고 추정하고 있다. 재발률은 3% 정도 되며, 치료는 발병 10일 이내에 급성기 치료가 시행되는 것이 이상적이다. 면역글로불린 다량 요법과 고용량의 아스피린 치료가 행해져야 하며, 사망률은 0.01%이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등 요약정리
'원인을 알 수도 없고, 특별한 예방법도 없는 이런 병에 울 아들이 어쩌다가... 잠깐, 유전학적 요인?'
아직은 진단이 확실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너무 생소한 병이라 찾아봤더니, 더 마음이 심란해졌다. 그래도 치료법이 있는 병이라고 하니 작은 희망이 생기긴 했다.
아이를 입원시키길 강력하게 제안하셨던 과장님께서 저녁 회진을 와주셨고, 다행히 아이의 열도 조금 떨어지기 시작했다.
"정밀 피검사 결과는 1시간 이내로 나올 것 같습니다. 지금은 간기능이 너무 떨어져 있는 상태라 급하게 광범위 항생제만 투여했고, 해열제도 이것만 쓰고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약간이라도 효과가 있는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과장님이 나가시고 나서, 열이 조금 내린 아이가 잠에서 깼다. 오래간만에 푹 자서 그런지 컨디션이 괜찮아졌다면서 웃어 보였다. 내가 보기엔 영 창백한 것이 여전히 아픈 것 같아 보이는데, 그래도 괜찮다고 하니 '가와사키 병이 맞나 보다.' 싶어 내심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잠시 후, 방금 전에 저녁 회진을 오셨던 과장님께서 다시 들어오셨는데,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저, 어머니. 정밀 피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아무래도 가와사키병이 아니라, 다른 병으로 의심이 됩니다. 혈구 탐식성 림프조직구증이라고 희귀 질환인데, 정확한 건 골수검사를 진행해 봐야 알 수 있습니다. 이 병은 빠른 진단이 반드시 필요한 병이라, 골수검사를 내일 당장 했으면 하는데, 어머니께서 좀 알아보시고, 서울에 있는 다른 병원으로 옮기고 싶다 하시면, 전원을 시켜 드리겠습니다. 다만, 저희 병원에 얼마 전에 스카우트한 소아암 담당 과장님께서 이 병에 있어서는 권의자시라 저는 그 과장님께 맡겨보심이 어떨까 싶습니다. 어머니께서 잘 판단하셔서 알려주시면, 저희가 바로 조치를 취해 드리겠습니다. 조금 있다가, 이 병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기 위해, OOO 과장님께서 들르실 겁니다."
"혈구... 뭐?"
가와사키병도 생소해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알게 되었는데, 뜬금없이 긴 이름의 병인 것 같다니... 더군다나 담당 과장님이 "소아암 권위자"라니...
과장님이 나가시고 나서, 아이와 나 둘 다 잠시 멍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과장님께서 의심된다고 하신 병명을 검색해 봤는데, 둘 다 너무 당황을 했다.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HLH)이란, 전신 염증과 면역반응 조절이상으로 고열과 범혈구감소증 및 장기부전을 초래하는 치명적인 면역조절장애 질환이다. 원래 다른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을 포식해야 하는 대식세포가 이상 증식해서 적혈구, 다른 백혈구, 혈소판의 전구 세포인 거대핵세포 등을 잡아먹어 생기는 질환으로 희귀병이자 자가면역질환이다. 원발성(가족성 or 유전성)과 이차성으로 나뉘고, 표준 치료법이 없어 백혈병 치료법을 대부분 따와서 적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빠른 진단과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치사율이 높고 재발률도 높은 병이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등 요약정리
그냥 가벼운 임파선염 정도라고 생각했던 것이, 치료가 가능한 가와사키병이 되더니, 갑자기 치사율과 재발률이 높은 희귀병이라니...
지금은 검색해 보면, 이 병에 대한 기사도 있고, 블로그 자료들도 있는데, 아이가 이 병에 걸렸을 당시에는 정보가 많이 없었다.
정말 앞이 캄캄한 느낌이었다.
아이도 인터넷 검색을 해보고 나서 많이 당황을 했는지 말이 없었다.
1인 병실에 정적이 내려앉아 있는 그때, 간호사 선생님께서 소아암 병동에 1인실 자리가 났다고 알려주셨다.
소아암 병동이라니...
아이와 함께 주섬주섬 짐을 챙겨 성인 병동에서 소아암 병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소아암 병동은 성인 병동보다는 확실히 분위기가 밝았다. 아이가 배정받은 방으로 가면서 다른 병실들을 잠깐 봤는데, 병실마다 울 아들 키의 1/3 ~ 1/2 밖에 되지 않을 것 같은 꼬마 아가들이 누워 있었다.
옮긴 병실에서 짐 정리를 하고 있는데,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의 권위자라고 하시는 과장님께서 여러 선생님들을 이끌고 병실에 오셨다.
과장님께서는 병에 대한 설명을 죽 해주셨고, 지금 제일 급한 건 병을 확진하는 일이라고 하셨다. 그러기 위해서는 골수 검사를 내일 당장 급행으로 해야 하고, 그 결과를 받아서 치료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보통은 3단계로 치료가 진행된다고 하셨다. 첫 번째는 항암치료, 두 번째는 면역치료, 그리고 마지막은 스테로이드 치료.
어떤 단계 치료부터 할 건지는 병의 경과를 보고 결정해야 한다고 하셨다. 아직 확진 상태가 아니었지만, 이미 과장님은 확진을 확신하고 계신 듯했다.
"고열이 떨어지고 계속 미열 상태인데..."
"열은 떨어졌는지 모르겠지만, 피검사 결과 아이 상태는 계속 나빠지고 있습니다."
가만히 어른들끼리 하는 이야길 듣고 있던 아이가 과장님께 질문이 있다고 했다.
"이런 병은 왜 걸리는 건가요?"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지만, 유전일 수도,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것일 수도 있어서, 골수검사를 하면서 왜 걸렸는지도 확인할 거야. 아마 2~3주 정도 지나면, 원인을 알 수 있을 것 같아. 또 궁금한 거 있어?"
"치료하면, 살 수 있어요?"
"그럼. 내일 골수검사를 통해 확진이 되면, 바로 치료 들어갈 거고, 그럼 다시 건강해질 수 있어. 걱정하지 마. 근데, 애들이 이런 거 궁금해하는 경우 별로 없는데, 너 많이 똑똑한가 보구나?"
환자인 아들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변해 주시던 과장님께서는 아이가 질문을 마치고 침상에 눕자, 잠시만 따로 보자고 하셨다.
"어떻게 하실 계획이신가요? 전원을 계획 중이시라면, 당장 옮기는 게 아이 치료에 도움이 됩니다. 이 병은 조기 발견과 빠른 치료를 해야 예후가 좋습니다."
"여기 남아서 치료받겠습니다. 내일 당장 골수검사 잡아주세요."
이미 과장님께서 아이 병실에 오시기 전에, 검색을 통해 이 병의 권위자임을 확인했고, 아이 아빠와도 통화를 해서 여기 남기로 결정을 했던 터라 더 이상 고민 없이 치료를 받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최선을 다해 치료하겠다 하시면서, 향후 검사 일정에 대해 알려주셨다.
그날 밤, 퇴근한 아이 아빠도 병실에 합류해 함께 밤을 보냈다.
잠이 잘 오지 않던 나는 곤히 자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의사 선생님들의 오진이길, 검사 결과 별일 아니길 정말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데, 갑자기 복도가 소란해지더니, "코드블루"가 떴다는 안내 방송이 들렸다.
여기 소아암 병동인데...
복도의 어수선함과 옆 병실 아이 엄마의 울음소리가 이제 남일 같지 않은 상황이라 마음이 참 힘든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