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생활(9)
내가 아이를 대하는 방식과 아빠가 아이를 대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런 것 같다.
나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내가 주 양육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정상 친정살이('20년 만에 다시 쓰는 육아교육일기 1' 제09화 참조)를 하게 되었을 때에도 친정식구들에게 협조를 구해 일관성을 가지고 아이를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생활습관을 잡아주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일과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20년 만에 다시 쓰는 육아교육일기 2' 제18화 참조)"이 있다는 것을 가르칠 때에도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며 아이가 잘못을 인지할 때까지 설명하고, 설득하여 아이의 이유 없는 반항과 고집을 꺾기 위해 버텨냈다.
대신 그 외의 시간에는 많이 안아주고,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해주어서 아이의 정서적인 측면에도 신경을 썼다.
물론, 나도 사람이기 때문에, 늘 이성적일 순 없었다. 남들처럼 내 감정 컨트롤에 실패해 아이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는 날도 있었고, 아이의 괜한 트집에 짜증으로 되받아치기도 했다. 그런 날엔 또 후회하고 반성하며 매일매일 조금씩 나은 엄마가 되자고 다짐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진, 아이의 기질과 성격을 파악('20년 만에 다시 쓰는 육아교육일기 2' 제21화 참조)하고, 그에 맞춘 육아와 교육을 실시하여 최소한 남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는 바른 아이로 자라길 희망했다. 앞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 인성과 바른생활 태도를 심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부터는 학습적인 부분을 케어하는 것에 치중했지만, 그보다 내가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아이가 힘들 때 의지할 수 있고, 항상 편이 되어주는 엄마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청소년기 남자아이와 엄마의 관계가 항상 좋을 수만은 없으니, 나 나름의 방식으로 아이와의 트러블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예를 들면, 잔소리 10번 할 걸 참고 참아 2번만 한다거나, 일상적인 행동 교정이 필요하다 생각되면 명령형이 아닌 권유형으로 말하려고 애쓴다거나, 화가 나더라도 일단 숨부터 깊이 들이마시고 한소끔 쉰 후 가능하면 빙빙 돌리지 않고, 아이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끔 직설적이고 직관적으로 말한다거나 하는 등의 노력을 했다.
그리고, 초중고등학생 엄마들이 제일 많이 한다는 "공부 좀 해라.", "게임 좀 그만해라.", "휴대폰 좀 그만 봐라." 같은 말을 하기보다 사전에 규칙과 룰을 정해 그 범위 내에서 아이가 스스로 자제하는 법을 배울 수 있게 유도하였으며, 내 감정을 앞세워 "네가 이래서 엄마기 힘들어." 같은 말보다 "이건 이래서 잘못되었고, 저건 저래서 하면 안 돼." 같이 남자아이들의 기본 성향을 이용한 교육법을 통해 아이와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이 모든 것들은 내가 원래 현명한 엄마라서가 아니라, 육아나 교육 관련 지침서들을 꼼꼼히 읽고 울 아들 맞춤으로 적용하다 보니, 그리고 울 아들도 남자아이치고는 눈치가 빠른 편이라 잔소리거리를 잘 안 만들기도 해서 가능했던 일이다. 덕분에, 아이가 초등학생이 된 이후에는 아이에게 크게 화를 내거나 혼을 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어찌 되었든, 나는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만큼은 이성적으로 행동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이와의 소통과 교감에 있어서만큼은 사랑을 듬뿍 주고, 공감해 주는 감성 풍부한 엄마가 되고자 했었다. 다른 사람들은 내 이미지가 전자에 가깝다고들 생각했지만, 사실 나는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라 실제로 육아와 교육에 있어 나 스스로의 정체성과 타협하느라 나름 큰 어려움을 겪었었다.
반면 아이 아빠는 모든 면에서 이성적인 사람이라, 아이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그런 면이 드러났던 것 같다.
본격적인 아빠 육아가 시작('20년 만에 다시 쓰는 육아일기 2' 제04화 참조)되었던 그때도, 주로 아이가 주도하는 놀이에 동참(?)하는 느낌이었고, 동적인 놀이를 담당하기보다는 정적인 놀이 위주로 아이와 놀아주었다.
아이가 아직 말문이 트이기 전 함께 놀 때도 보면, 나는 아이의 반응을 대변하고, 아이의 말을 대신해 감정을 읽으려 애썼기 때문에 항상 시끌시끌 떠들면서 놀았는데, 아이 아빠는 분명 둘이 놀고 있긴 한데, 침묵 속의 고요한 상태로 몸짓으로만 놀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보였다.
하지만, 아이가 신체적으로 발달하고, 언어적으로 의사소통이 되고 난 이후부터는 번개맨 놀이도 함께 하고, 자전거도 같이 타고, 목욕도 같이 가는 등, 엄마가 하기 힘든, 혹은 할 수 없는 "남자용" 놀이와 일상을 도맡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보드게임이며, 생활 체육이며 주로 아이의 놀이 상대가 되어주면서, 실전 인생의 쓴맛을 일찍부터 톡톡히 보여주었다(제10화 참조).
그런데, 아이가 중학교에 간 이후부터는 아이를 대하는 아빠의 방식이 조금 변한 것 같았다.
물론, 여전히 주말에 축구를 하러 나가면 "갓 핸드"를 외치며, 아이의 공을 죽자고 막아냈고, 탁구도, 배드민턴도, 농구도 어느 것 하나 봐주지 않아 아이가 늘 좌절(?)하게 만들었지만, 내가 울 아들을 여전히 아이처럼 대하는 것과는 달리, 아빠는 아이를 점점 "남자"로 대하는 느낌이었다. 아직은 미성년자라서 엄마, 아빠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같았지만, 언젠가는 독립시켜야 하는 존재로서 아이에게 누려야 할 권리와 해야 할 의무와 행동에 따른 책임이 있음을 은연중에 알려주는 듯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학습적인 부분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던 아빠가, 아이의 과학고등학교 입시를 돕기 시작하면서 아빠의 역할이 실질적인 "교육"에까지 확대되기 시작했다(제15화 참조).
사실, 이전까지 아이 아빠의 행태들을 보면, 아이의 교육에 있어서는 방관자에 가까웠고, 아이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는 듯한 뉘앙스를 풍겨왔기 때문에, 아이 입시에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도움을 줄 줄은 몰랐다.
아이가 영재학급, 영재교육원을 다닐 때도 "근자감"이라고 치부하며 코웃음을 치던 사람이(지금 생각하니, 아이를 자극하려고 일부러 그랬는지도.), 아이의 과학고 입시 자소서를 그렇게나 꼼꼼하게 검토해 줄 줄이야.
아이가 과학고를 가겠다고 했을 때에도, "그래, 열심히 한번 해봐."라고 할 뿐, 그 어떤 내색도 하지 않던 사람이, 아이 면접 연습에 필요한 화이트보드를 사러 밤늦게 온 동네를 돌아다닐 줄이야.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아이의 꿈과 목표를 응원했고, 공부하는 아이의 모습을 흐뭇하게 쳐다보며 기특해했던 아빠의 진심을 아이의 과학고 입시 준비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아이 또한, 과학고 입시를 치르면서 여러 면에서 아빠의 도움을 받게 되면서 아빠의 꼼꼼함, 아빠의 냉철함, 아빠의 똑똑함에 존경심을 가지게 된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이왕 이렇게 도와줄 거였으면 아빠가 좀 일찍 나서주면 좋으련만, 늘 아이 뒤에서 지켜만 보다가 아이가 힘들어하면 그제야 나서는 게 좀 불만이었다.
사실 아이 아빠가 과학고 입시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아이가 오랜 시간 과학고 입시용 자소서로 힘들어하다 우리에게 SOS를 친 후부터였으니 말이다.
아이가 과학고 입시용 자소서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어느 날, 뭐가 잘 안 풀리는지, 저녁 식사 시간에 자소서 쓰기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아이 아빠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몇 가지 팁을 술술술 알려주기 시작한 것이었다.
나는 아이가 자소서로 고민에 빠져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나서지 않고 지켜만 보더니, 아이가 고민을 털어놓자 그제야 그렇게 나서는 게 영 못마땅해서 한마디 했다.
"왜 당신은 아이에게 이런 이야길 미리 해주지 않는 거야?"
"물어보지 않았으니까."
"어른의 시선에서는 보이지만, 아이의 시선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기 마련인데, 그런 걸 미리 알려주면 아이가 시행착오도 줄이고 더 낫지 않아?"
"난 조언이 하고 싶지, 잔소리가 하고 싶진 않아."
"조언과 잔소리의 차이가 뭔데?"
"조언은 아이가 필요로 해서 해주는 이야기이고, 잔소리는 TMI인 거지. 아이가 굳이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이야기를 어른이랍시고, 아빠라는 이유만으로 해주는 거, 그게 잔소리지. 안 그래도 OO 이한테 이야길 하다 보면, 자꾸 말이 길어지고, 조언과 잔소리 경계를 넘나드는 것 같아 조심하는 중인데, 굳이 물어보지도 않는 부분을 이야기해서, 아이가 아빠 말을 잔소리라고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아."
'음... 아빠 말도 일리가 있긴 한데, 들어두면 약이 되는 잔소리도 있는 거 아닐까....' 싶었는데, 사전을 찾아보니, 아빠 말뜻을 알 것 같았다.
[조언 : 말로 거들거나 깨우쳐 주어서 도움.
잔소리 : 쓸데없이 자질구레한 말을 늘어놓음. 필요 이상으로 듣기 싫게 꾸짖거나 참견함.]
어쨌든, 아이 아빠는 아이가 아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일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돕지만, 그 외 일에는 아이가 혼자 애를 먹고 있어도 가만히 지켜보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빠의 마음에 아이의 행동 모두가 흡족했던 것은 아니었다.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울 아들이 똑똑하고 영특한 편에 속하는 건 맞는 것 같은데, 가끔은 정말 빙구 같은 짓을 할 때도 있었다. 아이가 그럴 때마다 아이 아빠는 내게 와서 맘에 들지 않았던 아이의 행동에 대해서 투털대곤 했다.
"나한테 그러지 말고, 애한테 직접 가서 이야기해."
"싫어. 난 좋은 아빠만 할 거야."
아마도 나처럼 아이 아빠도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은 최대한 아끼면서 아이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것 같았다.
언젠가 유시민 작가님이 "말을 하기 전에 생각해야 할 3가지"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첫째, 옳은 말인가?
둘째, 꼭 필요한 말인가?
셋째, 친절한 말인가?
아이 아빠가 이 이야기를 알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이에게 말을 할 때 보면, 이 3가지를 잘 지키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가끔, 대놓고 할 말 안 할 말 다 쏟아내고, 싸우고, 그러다 화해하는 집과 우리 집처럼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느라 말을 아끼는 집 중 어디가 더 건강한 가족관계일까에 대해 고민을 하기도 한다. 각자의 선을 지키는 우리의 관계가 괜찮은 건가 싶기도 하고, 아이는 이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궁금하다.
아빠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과학고 2차 면접까지 끝낸 후, 결과 발표가 나기 전에 아빠와 아이는 둘만의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3년간 힘들었던 시간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입시를 준비하면서 쌓은 아빠와의 유대감을 둘만의 여행을 통해 더욱 공고히 했으면 해서 흔쾌히 동의했다. 아이도 언제나처럼 아빠의 제안에 토를 달지 않고, 동의했다.
처음 떠나는 남자들만의 여행이 아이에게 오랫동안 기억되는 좋은 추억이길 바랐다.
아이 아빠가 계획한 둘만의 여행 목적지는 두 곳이었다. 카이스트와 강화도.
과학고 입시 결과가 나오기 전이었지만, 아이가 꿈꾸는 공학도의 꿈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카이스트에 발도장을 꾹 찍고 강화도로 향했던 것 같았다.
둘만의 첫 여행이다 보니, 혼자 남은 내가 마음이 쓰였는지 아이 아빠는 출발하는 순간부터 가는 곳곳마다 사진을 찍어 내게 근황을 전해주었는데, 늘 그렇듯 시크한 아들 사진만 한가득이었다.
아이 아빠는 지금도 잔소리가 아닌 조언을 해주는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세상을 먼저 산 어른으로서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아이의 의견을 꼭 물어보았고, MZ세대들의 생각이 우리와는 다름을 염두에 두고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또한, 자신과 비슷한 길을 걸어가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보호자로서, 아빠로서, 인생선배로서 많은 도움이 되길 바라는 것 같았다.
내가 보기엔, 완벽하진 않아도 꽤 좋은, 꽤 괜찮은 아빠 같은데... 아들, 네 생각은 어때?